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32화 (233/270)

(232)

#233. 모든 사람은 각자 원하는 것이 있다

1.

홍콩에서 중국 투자 외에 내가 한 일은 W&R의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일상적인 업무는 카이 황이 혼자서도 처리해왔다.

하지만 W&R의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결정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이티 비용으로 5천만 달러나 쓰자는 말씀입니까?”

카이 황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정도의 수익이 유지됐을 때 매년 이 정도 비용을 매년 지출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다른 투자회사는 수익의 8% 정도를 쓰는 것에 비해서 그리 많은 투자는 아니죠.”

“은행이나 투자회사들이 아이티 비용으로 수익의 7~8% 정도를 쓰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굳이 그런 비용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저희는 관리해야 할 고객도 없지 않습니까?”

카이 황은 내 이야기에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그는 다른 금융회사와 W&R의 차이점을 이야기했다.

그의 말대로 은행이나 일반 투자회사들이 매년 엄청난 아이티 비용을 쓰는 것은 그들에게는 관리해야 할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W&R은 회사 자금만으로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거래하는 회사라고는 투자회사들이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류오린이었다.

“고객은 없지만, 투자를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야 류오린 3팀으로 류오린의 정보를 이용했지만 독립한 이상 우리만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독립한 이후에도 류오린 시스템에 접속할 권한은 계속 가지고 있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벌어 준 돈과 앞으로 벌어 줄 돈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죠.”

“언제까지 류오린의 시스템에만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만의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 시스템을 통해서 우리만의 투자 정보를 축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세금을 줄이려면 지출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W&R은 작년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W&R의 초기 자본금은 리안이 현물 투자한 건물 가치를 높게 잡는다고 해도 5천만 달러 정도였다.

아무리 홍콩의 법인소득세율이 16% 정도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내야 할 세금은 막대했다.

홍콩의 세법이 해외 주식 투자로 벌어들이는 이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지만 카이 황이 직접 관리하는 홍콩 투자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올해 4월에 내야 했을 법인 소득세는 7천만 달러 정도였다.

물론 당연히 우리는 그 세금을 다 내지 않았다.

리안에게서 투자받은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처리해서 비용으로 처리한 것이다.

“설마 매년 업무용 부동산을 사들일 생각은 아니었겠죠.”

내 이야기에 카이 황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에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부동산을 사들일 생각이었습니까?”

“그게 사실······.”

잠시 망설이던 카이 황이 말을 이었다.

“에드릭 씨가 도련님께 홍콩 부동산이 계속 오른다고 이야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리안 도련님과 W&R 사업 분야에 부동산 투자업 진출 여부를 의논하기는 했습니다. 마침 에드릭 님도 한국에서 부동산 투자업을 하고 있고 해서······.”

“부동산 투자업이라······.”

리안과 카이 황이 부동산 투자업에 진출할 계획을 의논했다는 말에 이들과 내가 처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부동산 투자업에 진출한 것은 정윤호를 영입하면서부터였다.

그와도 이야기했지만, 현재 우리의 투자 수익률만 생각하면 부동산에 진출하는 것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아무리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현재 우리 투자 수익률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부동산은 좁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단순한 재산 이상의 의미였다.

바로 부동산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진다는 의미였다.

그 관계는 중세 시대 동아시아에서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와 유사한 측면이 부분이 많았다.

나에게는 홍콩 부동산은 그냥 적당한 수익성을 가진 투자일 뿐이지만 리안과 카이 황에게는 홍콩에서 리안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단인 것이다.

문제는 리안과 카이 황은 W&R을 나를 대신해서 운영하고 있었고 그런 이상 나는 둘의 사정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리안과 카이 황의 이런 상황을 모르면 모를까 알고도 아주 무시하는 것은 우리 사이의 상호 신뢰를 깨는 일이었다.

“리안과 그런 의논할 정도라면 알아볼 만큼 알아봤을 것 같은데요?”

리안은 모르지만, 카이 황은 리안에 관한 일이라면 굉장히 세심하게 일을 진행했다.

리안과 부동산 투자업에 대한 진출 이야기를 나눴다면 지금쯤 이미 어떻게 부동산 투자업에 진출하고 진출한 이후에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까지 계획을 세워 두었을 것이다.

“대충 조사는 하기는 했습니다만 아직 보고할 단계는 아닙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그 대충이라도 말해 보세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홍콩의 어지간한 부동산은 이미 주인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부동산은 홍콩 정부가 소유한 것들뿐인데······. 얼마 전 저희와는 사이가 나쁜 퉁칭화 홍콩 행정장관이 연임에 성공한 이상 어려운 일이고요.”

현재 홍콩의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회사들이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홍콩 정부가 소유한 부동산을 헐값으로 사들이면서였다.

그 예가 바로 장쩌민 주석과 밀접한 관계인 리자청이었다.

그는 홍콩 해안 일대의 부동산을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사들였다.

리자청이 그 거래를 통해서 얻은 차익은 최소 수십억 달러였다.

그 외에도 중국 정부와 가까운 홍콩 부호들 상당수가 이런저런 개발에 발을 걸쳐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리안의 가문이 홍콩에서 영향력을 잃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이권에서 완전히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요? 방법은 있나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방법이, 홍콩에서 부동산 투자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 부동산 투자회사를 인수하는 것입니다.”

“인수할 회사는 있습니까? 부동산 투자회사라면 오히려 부동산을 사는 것보다 인수하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단순히 부동산을 인수하는 것보다 그런 부동산을 소유하고 개발하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수익이 나는 회사라면 팔 이유가 없었고 수익이 나지 않는 회사라면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그랬는데 최근에 인수할 만한 적당한 부동산 투자회사가 몇 곳 생겼습니다.”

“그래요?”

“예. 아시겠지만 얼마 전 미국의 신용 평가 기관에서 홍콩의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회사 네 곳에 대한 신용 등급을 낮췄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리안과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고요. 아······ 가장 큰 부동산 투자회사 네 곳의 신용 등급이 내려갔으면 다른 회사들은 더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겠군요.”

신용 평가 기관의 신용 등급은 평가를 받는 국가나 회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금리의 기준이었다.

신용 등급이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자금 조달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신용 평가 기관에서 투자 등급을 낮춘 이유는 홍콩 부동산 시장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작년에 홍콩의 거의 모든 부동산 투자회사가 홍콩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해서 대규모로 부동산을 사들였는데······. 자금 상황을 앞두고 자금 조달 금리가 올라갔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죠.”

홍콩의 부동산은 최소가 몇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몇억 달러였다.

자금 조달 금리가 조금만 올라가도 엄청난 이자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그나마 이건 자금을 추가로 대출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조직이었다.

세계적인 신용 평가 기관이 홍콩 부동산 시장의 장래가 어둡다고 발표한 직후에 부동산 관련 추가 대출을 순순히 해 줄 리가 없었다.

“한번 적당한 회사를 알아보세요. 리안을 생각하면 홍콩에서 부동산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카이 황을 내 이야기에 기뻐하며 고개를 숙였다.

영국 영향을 강하게 받은 홍콩에서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내 결정에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왕 부동산 개발업에 진출하는 거, 아예 부동산 투자회사는 W&R에서 분리해서 자회사를 세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회사요?”

내 제안에 카이 황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쉽게 말해서 W&R 한국 지사처럼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하자는 말이죠. 한국 지사의 지분을 제가 거의 다 소유한 것처럼 부동산 투자회사도 그렇게 운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W&R 한국 지사는 내가 따로 운용하던 투자금을 W&R에 주고 매입하는 방식으로 본사에서 독립시켰다.

한국 지사의 W&R 홍콩 본사 지분은 4% 정도였다.

내가 홍콩 부동산 회사를 W&R에서 분리하려고 하는 이유는 나에게는 홍콩에서의 영향력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가 미국으로 옮길 때를 생각하면 어차피 홍콩에 리안이 따로 운영하는 회사가 있는 것이 나았다.

“우리야 좋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 절세하는 방법은······.”

“그건 따로 아이티 투자 외에도 따로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습니다.”

내 말에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리안 도련님과 의논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제안은 리안으로서도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그로서는 온전히 홍콩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W&R은 내 지분이 절대적이었다.

한마디로 아무리 리안과 카이 황이 회사를 운영한다고 해도 내가 마음먹으면 그대로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부동산 투자로 얻은 영향력을 내게 그대로 빼앗긴다는 의미였다.

반면 리안이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은 부동산 투자회사를 세운다면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리안이 홍콩에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들을 출자해서 부동산 투자를 할 수가 있었다.

W&R의 사업 부분으로 부동산 투자를 하면 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2.

카이 황과 부동산 투자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 나는 다청의 임순을 찾아갔다.

그를 통해서 인수할 회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과 본토의 민간 조사업체를 인수하신다고요?”

“맞습니다. 알겠지만 며칠 후면 류오린 3팀이 류오린을 나와서 W&R에 합류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독립과 동시에 중국에 따로 투자할 생각이고요. 그래서 기존에 류오린에 의존하던 정보는 물론이고 본토에서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순은 내 요구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본토에서는 민간 조사업, 즉 ‘탐정’이 불법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불법인 만큼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여기 홍콩처럼 기업 규모의 조사업체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내 거듭된 요구에 임순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일단 제가 알아보는 대로 알아보겠습니다.”

임순으로서는 사실상 자신의 실적을 책임지는 내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민간 조사업체를 인수하려는 이유는 당연히 W&R의 투자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민간 조사업체로 위장해서 에이전트 에스 팀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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