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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모든 사람은 적당한 가격이 있다
1.
임순에게 홍콩과 중국의 인수할 만한 민간 조사업체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홍콩 공항으로 향했다.
홍콩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 앞에는 시위대가 모여 있었다.
지난번 엘리어스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홍콩 정부가 중국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홍콩 입국을 거부했다.
그 일을 항의하기 위해서 모인 시위대였다.
시위대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시위 참가자 중 꽤 많은 수가 파룬궁 수련자들인 것 같았다.
파룬궁 수련자들이 시위에 나온 것은 이번 홍콩 정부의 입국 거부에 가장 큰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파룬궁은 90년대 말 중국에서 가장 강한 박해를 받은 수련 단체였다.
사실 교리나 파룬궁 단체의 행동만 보았을 때는 박해받을 이유가 없었다.
중국 정부가 파룬궁을 박해하는 배후에는 장쩌민 주석의 중국 내부 권력 다툼이 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었다.
아직 홍콩에는 파룬궁이 불법 단체가 아니었고 탄압도 받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입국 금지처럼 파룬궁 관련자들도 홍콩 정부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한 나는 택시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내가 택시를 타자마자 택시 운전사가 말을 걸었다.
“외국에 갔다가 오늘 귀국하시나 보네요.”
“아! 예. 뭐······.”
“그럼 어제 축구 보시지 못했겠네요. 진짜 어제는······.”
우연히도 내가 서울로 돌아온 전날도 한국 축구 국가 대표 팀의 경기가 있었던 것 같았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내가 탄 택시 기사는 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내내 축구 이야기를 했다.
택시 기사도 달라졌고 전날 경기 결과도 다르지만, 주제는 같았다.
기사의 말에 의하면 전날 한국 축구 대표 팀이 독일 축구 대표 팀과의 월드컵 4강전에서 패했다고 한다.
패배하기는 했지만, 한국 축구 국가 대표 팀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면서 대단히 흥분한 상태였다.
이러다가 사고가 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차 안에서 한국에서 할 일을 생각하려고 해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다음에는 경호원들에게 차를 끌고 마중을 나오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2.
대사관에 출근한 나는 엘리어스의 사무실을 찾았다.
“어서 오세요.”
엘리어스는 사무실에 들어서자 의자에서 일어나며 나를 반갑게 맞았다.
“지금 홍콩에서 오는 길입니까?”
“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대사관으로 곧장 왔습니다.”
“왜 일단 쉬고 내일 출근하지 않고요.”
“홍콩에서 서울이 얼마나 걸린다고요. 퇴근하고 쉬면 됩니다.”
내 이야기에 잠시 바라보던 엘리어스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하죠.”
의자에 앉자마자 엘리어스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대로 홍콩 정부가 중국 반정부 인사의 입국을 거부했더군요.”
엘리어스가 나를 반갑게 맞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야기했던 입국 거부가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해외 주요 언론을 통해서 크게 보도된 덕분에 홍콩 내에서도 꽤 여러 가지 말이 많습니다. 시위도 계속되고 있고요.”
“그렇겠죠. 미리 준비한 덕분에 입국 거부가 되자마자 미국과 영국 주요 언론에서 크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국무부 동아시아 국에서 대사님께 직접 전화를 걸어서 크게 칭찬했다고 하더군요. 모두 에드릭 씨 덕분입니다.”
내가 정보를 미리 알아내서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듯 보였다.
“저야 정보를 알린 것뿐인데요. 그걸 중요한 문제로 부각한 것은 사무관님의 능력이죠.”
“몰랐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이죠.”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지난번에 일했던 투자회사가 중국에 투자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한참 홍콩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던 엘리어스가 화제를 바꿨다.
“투자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단 직접 투자를 하기 전에 상하이 쪽에 자금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상하이에 자금을 들여갔다면 혹시 상하이 주식시장에도······?”
엘리어스는 세부적인 투자 상황에 관해 물었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질문이었다.
갑자기 구체적인 투자 내용에 대해서까지 묻는 엘리어스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건 왜 물으시는 것인지?”
“아니요. 오늘 출근하다가 뉴스를 보니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상하이 주가지수가 14% 가까이 올랐다는 기사를 본 것이 기억나서요.”
엘리어스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저는 일단 상하이에 자금이 들어갔다는 말만 들었지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해서요.”
“기왕이면 상하이 주식시장에 투자했다면 대박이 났을 텐데 아니라면 아깝겠네요.”
“그러게요. 하지만 그랬다면 저도 들었을 텐데 별다른 말이 없어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가면 전화로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이왕이면 대박이 났으면 좋겠네요. 그럼 에드릭 씨가 정보를 얻는 게 조금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어스의 사무실을 나온 순간 내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조금 전 나는 엘리어스의 말에 많이 당황했었다.
마치 그가 W&R의 사정을 아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엘리어스의 말대로 지난주 상하이 증시는 14% 가까이 올랐다.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의 주가는 그보다 더 올라 18%나 올랐다.
반면 다른 주요국의 증시는 반대로 미국의 정보 통신 기업 월드컵이 대규모 회계 부정으로 폭락했다.
2주 전 작년 중국 산업 생산이 15% 이상 상승했다는 발표 이후 상승세였지만 한 주 사이에 14%나 상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W&R 입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큰 이익을 얻은 셈이었다.
이런 사실은 W&R이나 류오린의 직원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엘리어스가 정확히 상하이 주식시장을 꺼낸 것이다.
‘설마 회사 내에 엘리어스가 사람을······?’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류오린이 홍콩과 중국 직원 중심이라면 W&R은 직원 중 반 이상은 미국과 유럽 출신이었다.
W&R의 직원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첫 번째가 리안과 카이 황을 통해 채용된 직원들이었고 나머지는 따로 면접으로 보고 채용한 직원들이었다.
그중 후자는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진행된 금융권의 구조 조정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 중에서 채용한 직원들이었다.
W&R이 1년 정도밖에 안 된 회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직원들의 근무 기간도 길어 봐야 1년 정도였다.
외부에서 유혹을 있을 때 흔들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보안을 강화해야 할 것 같았다.
3.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는 다행히 별다른 일이 없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은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일단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하객 40명이 탄 여객기를 격추하는 사건도 있었다.
당연히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폭탄 기술자를 암살하고 이어서 다시 보복 공격을 받는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사건들은 대사관에서 하는 중국 관련 업무나 W&R과 내 개인적인 투자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일들이었다.
한국에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나마 큰일이라면 한국 축구 대표 팀이 터키와의 3, 4위 결정전에서 패해서 4위로 월드컵을 마친 것과 같은 날 서해에서 북한의 도발로 해전이 발생했다는 정도였다.
서해에서 일어난 해전은 한국 증시에도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 증시는 한 주 동안 7% 이상 급등했다.
미국 증시는 아직 월드컵 회계 부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다른 아시아 증시는 충격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5년 전만 해도 동아시아 전체가 경제 위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후유증은 있지만 나름대로 충격에서 회복하고 있는 셈이었다.
오랜만에 생긴 한가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에이전트 에스 팀을 채용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대놓고 에이전트 에스 팀이 이름을 내세울 수 없으므로 W&R 조사 부서와 보안 부서를 내세워서 사람을 구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낮에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을 때 리안이 찾아왔다.
“사람이 구하는 게 생각만큼 안 돼?”
“그러게, 생각보다 어렵네.”
“사람은 꽤 많이 지원했다면서?”
“쓸 만한 사람이 없어. 조사 부서에서 사람을 뽑는다니까 다들 본사에서 근무하는 리서치 부서인 줄 알고 지원했더라고······.”
“너는 현장에 직접 가서 조사할 사람을 구한다고 했었나?”
“맞아. 발로 뛸 사람이 필요한데 다들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생각하고 찾아오니······.”
“사무실에서 일할 사람이라면 이미 회사에 있지.”
“그러게 말이야.”
나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리안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예전 단테 패트릭에게서 구했던 전직 정보 요원들에게 가장 먼저 접근했다.
경험도 있고 어느 정도 정보기관에서 검증된 인물들이니 에이전트 에스 팀의 요원으로 가장 적당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착각한 것은 처음 명단을 받았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도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CIA는 물론이고 관련 분야 인력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
말 그대로 능력이 있는 전문가는 부르는 것이 값이 된 것이다.
두 번째 착각은 동아시아는 정보 분야 종사들이 그리 선호하는 지역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CIA 출신은 적어도 보안 분야에서는 보증수표였다.
그런데 뭐 하러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동아시아에서 일하려고 하겠는가?
나중에 유럽에나 미국으로 회사를 옮길 생각이라면서 설득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때 가서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면 되겠지만 그래서야 에이전트 에스 팀을 만들겠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청에 부탁한 것은 어떻게 됐어? 여기 홍콩과 베이징과 상하이에 민간 조사 업체 중에 인수할 만한 업체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던 것 말이야.”
2주 전 나는 다청의 임순을 만나서 홍콩과 중국의 민간 조사업체 중 인수할 업체를 알아봐 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적당한 업체가 없다더라고. 너도 알다시피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중국 현지에서 민간 조사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잖아.”
“그건 알고 있어.”
“그래서 그런지 너무 과한 금액을 요구하더라고······.”
“W&R이 사지 못할 정도야?”
“그건 아닌데······. 그 돈 주고 살 정도로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아니라서······.”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수할 만한 업체는 대부분 규모가 작았고 시스템이 갖춰진 업체는 너무 비쌌다.
소규모 업체라도 인수한 이후에 계속 써먹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돈을 쓸 생각이 있었다.
문제는 그런 업체는 업체의 사장이 그 업체에서 가장 유능한 조사원이자 핵심 인력이었다.
비싼 돈을 주고 그 업체를 인수했을 때 큰돈을 번 사장이 계속 힘든 조사원을 할 리가 없었다.
계약으로 어떻게 잡아 놓는다고 해도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이 전처럼 일할 리가 없었다.
시스템이 갖춰진 회사는 너무 비싸서 그냥 돈을 주고 이용한 것보다 오히려 손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뭐 어쩌겠어. 다른 회사 사람을 돈을 주고 빼 와야지. 지금 받는 돈보다 두 배 이상 주면 어떻게 되겠지.”
다른 회사에서 사람을 빼 오는 방법은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돈을 받고 온 사람들을 에이전트 에스 팀으로 이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왕 사람을 구하기로 한 이상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걸로 되겠어?”
“나머지는 그냥 그때그때 업체에 의뢰해서 조사를 맡겨야지. 그리고 한국에서도 따로 구해 보려고.”
“한국에서?”
“응.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부서장 중 한 명이 정보 계통 쪽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이야기한 사람은 정윤호였다.
그를 통해서 국정원이나 특수부대 퇴직자들을 채용할 생각이었다.
이 방법은 별로 쓸 생각이 없었다.
내가 한국계인데 한국인을 작전에 이용하다 보면 자칫 추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적당한 사람을 지금 구할 수 없는데 한국인이라도 채용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엘리어스가 직접 공항까지 나와 있었다.
그는 나를 웃으며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게!”
‘얘는 또 왜 이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특별히 해 준 일도 없었다.
저런 모습을 보일 이유가 없는데 저런 모습을 보이니 오히려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