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235.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한다
1.
잠시 후 나는 엘리어스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던 이유는 페이팔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작은 엘리어스가 건넨 정보였다.
몇 달 전 엘리어스는 내게 이란과 이라크의 담합으로 원유 가격이 인상할 것이라는 정보를 건네주었다.
정보를 들은 나는 내가 직접 거래를 하는 대신 리안에게 정보를 넘겼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도 점도 있었지만, 굳이 원유를 선물거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정보를 들은 이상 신세를 진 셈이었다.
엘리어스에게 어떤 식으로든 신세를 지기 싫었다.
무슨 관계든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 내 원칙이었다.
대신이라면 그렇지만 온라인 결제 업체인 페이팔에 투자해 보라는 말을 넌지시 건넸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내가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기억도 희미할 정도로 그사이에 워낙 많은 일이 있었다.
“그때 제 말을 듣고 팀장님의 아버님께서 페이팔 주식을 사셨었다고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해서 지금까지 나도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때 바로 사셨다더군요.”
“······.”
엘리어스의 말투는 지난번보다 조금은 부드러웠다.
나 때문에 이익을 봐서 그런가?
지난번에 완전히 나를 부하 취급하면서 명령조였던 것과는 아주 달라진 말투였다.
“이번에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하면서 50% 이상 이익을 남겼다는데······.”
“50%나요?”
몇 달 사이에 50%의 이익이라면 일반적으로는 엄청난 이익이었다.
“페이팔이 상장될 때 공모주가가 주당 13달러였는데 이번에 인수하면서 주당 23달러에 인수했다고 하더군요.”
공모가 13달러였던 주식을 주당 23달러에 지급했다면 2월에 상장된 회사가 5개월도 안 되어서 77%가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엘리어스의 아버지가 50% 정도의 이익을 봤다면 주당 15달러 초반에 사들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해 달라더군요.”
엘리어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 저는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팀장님 아버님께 전한 것은 팀장님이고 조사하고 산 것은 팀장님 아버님이죠. 이익을 봤다고 해도 두 분의 복이겠죠.”
내 말을 듣던 엘리어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는 투자를 권한 것이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투자를 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시던데······ 사실인가요?”
그의 말대로 내가 엘리어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당시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굳이 엘리어스에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몇 달 전에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 합병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더구나 제가 투자 이야기를 했을 때만 해도 페이팔이 막 상장한 직후였는데요.”
페이팔은 올해 초인 2월에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내가 이야기하던 시점은 상장한 직후였다.
상장하고 4개월이 되지 않아서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통은 상장하기 전에 인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게 법적인 절차는 물론이고 인수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아버지는 자네가 이번 인수 합병을 알고 투자를 권한 것으로 생각하던데 정말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럼 페이팔 주식 구매를 권한 이유가······?”
“올해 초에 이베이의 실적 발표를 보고 내린 결정입니다.”
“이베이의 실적 발표요?”
엘리어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 이베이의 매출이 상승했는데 이베이의 거래 중 70% 페이팔을 통해서 거래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인터넷을 통한 상품 거래가 활발해지면 활발해질수록 페이팔의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특별한 정보가 있어서는 아니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당시만 해도 홍콩과 한국을 오가던 제가 미국의 인수 합병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이베이의 매출액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었고 매출액 중 페이팔로 결제되는 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페이팔 주식을 사도 손해는 보지 않으리라 생각한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이베이가 페이팔을 매입할 것으로 생각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베이만이 아니라 후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아마존을 비롯한 다른 온라인 상점의 매출액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베이가 이런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페이팔의 인수였다.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한다고 해서 다른 경쟁 온라인 상점들이 페이팔 사용을 중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온라인 상점의 페이팔 사용을 중지하면 독과점금지법에 제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베이가 굳이 페이팔 사용을 중지하지 않더라고 이베이와 경쟁하는 온라인 상점들로서는 스스로 페이팔 사용 비중을 줄이거나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페이팔을 사용하는 이상 자신들의 영업 비밀이 그대로 경쟁 업체인 이베이에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페이팔은 현재 온라인 결제의 대세였다.
경쟁 기업들이 페이팔 결제 비중을 줄이거나 중지하면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베이로서는 경쟁 기업들이 페이팔을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경쟁 기업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최악의 경우는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엘리어스에게 말한 것처럼 이베이 거래의 대부분이 페이팔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추세를 생각할 때 페이팔이 이베이에 인수되지 않고 독립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게 장기적으로는 성장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까 에드릭 씨 말은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한 게 우연이라는 말이죠?”
“당연하죠.”
“전 에드릭 씨가 이베이의 내부 정보라도 알고 이야기를 한 줄 착각했네요.”
엘리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자식이 설마······.’
나는 엘리어스의 미소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 달 전 나는 엘리어스가 CIA를 움직였다고 의심했었다.
그 후부터 엘리어스의 말과 행동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색안경을 쓰게 보게 되었다.
색안경을 쓰고 보면 지금의 말은 내가 이베이의 내부 정보를 빼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베이의 내부 정보를 얻을 수도 없지만, 내부 정보를 통해서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지 않습니까!”
나는 엘리어스의 추측을 부인했다.
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서 내부 거래 의심을 받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지금 본국에서는 살림 여왕이라고 불리며 미국의 이상적인 어머니상으로 여겨지던 마사 스튜어트가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서 주식을 매각했다는 주식 내부 거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마사 스튜어트가 내부 거래로 벌어들인 돈은 억만장자인 그녀의 전체 재산에 비하면 아주 적은 금액이었다.
만약 마사 스튜어트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감옥에 갈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예상될 정도로 미국 정부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 외에도 미국 증권 감독 기관은 강도 높은 내부 거래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것은 모두 미국 정부가 경제 침체와 주가 하락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부자들의 탐욕 탓으로 돌리는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엘리어스가 내가 내부 정보를 빼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약점이었다.
내가 이베이의 페이팔 인수를 예상한 것은 내부 정보를 통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깨끗한 것도 아니었다.
조민의 공매도는 물론이고 다른 거래 중에도 내부 정보에 가까운 정보를 이용했었다.
무엇보다 CIA 작전 중에 얻은 정보나 CIA 통해 얻은 정보를 이용하기도 했다.
조사하면 걸릴 것이 너무나 많았다.
2.
그날 이후 엘리어스와 나와의 관계는 겉으로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중국 권력 이양에 대한 준비도 착착 진행되었고 가끔 둘이서 밤에 술도 마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엘리어스와 있을 때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어스가 갑자기 내 자리로 찾아왔다.
“에드릭 씨. 혹시 중국 상하이 쪽에 꽌시로 이용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상하이 쪽에 특별한 꽌시가 없기도 했지만,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로 홍콩에만 있어서 상하이 쪽은 꽌시라고 할 만한 것이 적기는 합니다만······. 갑자기 상하이 쪽 꽌시는 왜 물으시는 것인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내 질문에 엘리어스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는 사람이 상하이에서 일하다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난처한 상황이라면?”
“말하기가 좀 그렇기는 한데······.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함께 호텔에 있다가 걸렸다가 하더군요.”
단순히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호텔에 간 것에 대해 걸렸다는 표현을 쓸 리가 없었다.
‘매춘이군.’
상하이의 바와 클럽은 공공연하게 매춘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본국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맞습니다. 대학교 친구인데 내가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것을 알고 연락을 해 왔더군요.”
“미국인이라면 행정처분이 전부일 텐데요. 매춘이면 ‘치안관리처벌법’의 대상일 테고 외국인이면 그중 10조에 해당하니 곧 풀려날 겁니다.”
“강제 출국을 당하고 여권에 ‘호색한’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힌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걱정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중국이 공산당 독재의 사회주의 독재국가이다 보니 가끔 말도 안 되는 헛소문과 괴담이 사실인 것처럼 퍼진 경우가 있었다.
성매매 하다가 적발되면 여권에 호색한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힌다는 것도 그런 괴담 중 하나였다.
“호색한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힌다는 것은 헛소리지만 아마 강제 출국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외국인이 성매매 하다가 적발되면 80% 정도는 강제 출국을 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10년 정도?”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친구가 중국의 재입국을 못 하는 상황이 되면 회사로 돌아가서 아주 큰 불이익을 받게 될 거라는 겁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에서도 성매매는 불법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성매매로 단속되는 것은 대부분 경범죄로 처벌이 약하지만 엄연한 범죄였다.
중국에 업무차 출장을 와서 성매매로 10년간 재입국이 불가능해진다?
지금 미국에서는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대규모 정리 해고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마 엘리어스의 대학 동창이라는 사람은 돌아가면 정리 해고 1순위가 될 것이다.
“전화를 걸어서 사정하는데······. 알다시피 이런 문제를 대사관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은 어렵죠.”
“그렇기는 하죠.”
“친했던 친구라서 도와주고 싶은데 마침 에드릭 씨가 일하던 회사가 중국 쪽과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에드릭 씨가 혹시 아는 사람이 있나 해서 찾아와봤습니다. 친한 친구라서 제발 부탁드립니다!”
엘리어스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엘리어스는 내 상사였고 상사의 부탁은 부탁이 아닌 명령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말하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물론 엘리어스와 내 관계가 그런 정도의 명확한 상하 관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부탁을 했는데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팀원들이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유심히 쳐다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 자리에서 내가 거절한다면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엘리어스에게 망신을 주는 셈이었다.
“이번에 도와주시면 제가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엘리어스는 은혜라는 꺼냈다.
체스에서 말하는 막다른 상황인 체크 메이트였다.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예전에 알던 엘리어스가 아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엘리어스가 나보다 인간관계에는 능숙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많이 친한 친구였나 보네요.”
“제가 대학 때 도움을 많이 받았죠.”
나는 엘리어스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엘리어스의 부탁을 강제로 떠맡았지만 이 문제로 리안이나 장샤오이에게 전화할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카이 황에게 전화할 생각도 없었다.
마침 나에게는 상하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법률 자문이 있었다.
바로 다청의 임순이었다.
나는 임순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상하이에서 그런 문제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돈은 어느 정도 들어갈 겁니다.
“돈은 충분히 낼 생각이 있습니다.”
공안을 매수하는데 내가 내도 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낼 생각은 없었다.
엘리어스의 아버지는 억만장자였고 엘리어스도 돈에 구애받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엘리어스를 위해 돈까지 낼 생각은 없었다.
- 그럼 문제없을 겁니다. 제가 다청에 들어가서 처음 들은 이야기가 돈으로 매수할 수 없는 공무원은 없다는 겁니다. 만약 매수할 수 없다면 그건 돈이 부족하다는 말이죠.
임순이 말했다.
매수는 불법이지만 해결하기만 하면 나는 상관없었다.
결과만 좋으면 방법은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