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36화 (23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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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권력을 가진 자는 명예를 좇는 법이다

“오다가 소식 들었습니다. 파키스탄 민병대가 또 일을 벌였다면서요?”

내 이야기에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대로 끝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건 정말······.”

이반 부카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가 물었다.

이 정도 대규모 공격은 민병대로서도 위험한 일이었다.

이런 공격이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겼을 리가 없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인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군 캠프를 공격한 민병대를 인도로 소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키스탄 무샤라프로서는 보내 주고 싶어도 보내 줄 수가 없지. 파키스탄 내에서는 카슈미르에서 활동하는 민병대를 독립투사쯤으로 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겠죠. 만약 인도로 송환하면 파키스탄 군부와 국민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분쟁 지역이었다.

하지만 두 나라 중 어느 쪽이 더 카슈미르에 집착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연히 파키스탄이었다.

카슈미르 인도 점령 지대는 인도 내에서 유일하게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지역이었다.

일반 파키스탄인 입장에서는 카슈미르에서 인도군과 싸우고 있는 민병대는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전사였다.

몇 주 동안 인도군 캠프를 공격한 일은 알 카에다가 꾸민 일이라고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이런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었다.

무샤라프가 인도가 자국의 군 캠프를 공격했다고 지목한 민병대를 넘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최근 무샤라프는 대통령인 자신에게 총리에 대한 임명권을 부여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중이었다.

다른 어떤 때보다 국민의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인도가 지목한 카슈미르 민병대를 넘기는 대신 민병대의 훈련 캠프를 해체를 밀어붙이는 중이었네. 송환은 못 하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절충안이었지.”

카슈미르 민병대의 훈련 캠프는 단순히 훈련을 받는 장소가 아니었다.

훈련 캠프는 민병대의 지휘부이자 주둔 기지를 겸하고 있었다.

말이 훈련 캠프의 해체지 사실상 그 훈련 캠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민병대를 해체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키스탄 정부가 이런 일을 벌이는데 해당 민병대가 가만히 그 일을 당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이번 습격은 그 일 때문입니까?”

“그렇네. 이번 습격은 훈련 캠프 공격에 대한 반발이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민병대로서는 인도와 사이가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자신들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든······.”

카슈미르에는 인도군과 파키스탄군을 합쳐서 수십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경제력은 포함한 국력은 물론이고 순수한 국방력으로도 파키스탄은 인도를 이기기 어려웠다.

실제 몇 번의 인도 파키스탄 전쟁에서 승리한 곳은 항상 인도였다.

이런 파키스탄 정규군의 전력을 보완해 주는 곳이 바로 카슈미르에서 활동하는 민병대였다.

파키스탄 점령 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민병대는 인도가 점령하고 있는 이슬람 반란 세력과 연계해서 비정규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번 습격은 물론이고 지난번 군 캠프 공격 그리고 올 초에 있었던 인도 국회의사당 테러는 모두 인도 내 무슬림 반대 세력과 연계해서 벌인 일이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이 뭡니까?”

“가장 시급한 일이라······.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일로 무샤라프의 결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는 일이 아니겠나?”

“인도 쪽은요? 이번에 사망한 사람만 28명이라는데 괜찮겠습니까?”

지난번에도 군 캠프 공격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희생자는 인도인이었다.

아무리 인도가 파키스탄과 비교하면 잃을 것이 많다고 해도 언제까지 참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세운 알 카에다를 인도군 캠프 공격의 배후로 모는 작전 이후 인도는 나름대로 파키스탄에 대해 인내심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공격을 받았으니 여론이 다시 나빠질 가능성이 컸다.

“인도 쪽은 영국 쪽에서 설득하기로 했네. 아마 지금 인도를 방문하고 있는 영국 외무부장관이 알아서 할 거야. 우리는 파키스탄만 처리하면 되네.”

파키스탄만, 그중에서도 무샤라프만 설득하면 된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무샤라프가 흔들리는 것을 막는 일이라······.”

“방법이 없겠나?”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무샤라프가 훈련 캠프를 해체를 포기하고 인도와의 전쟁을 불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조사해 봤으면 알 텐데······ 무샤라프가 본래 어떤 인물이었는지 말이야.”

카슈미르 민병대 훈련 캠프를 해체하려고는 했지만, 무샤라프는 절대 인도에 대해 우호적인 인물이라거나 비둘기파, 즉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군 참모총장 시절만 해도 군부 내 매파, 즉 강경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참모총장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도와의 전투를 통해서 전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민병대 훈련 캠프를 해체하려던 것은 미국과 인도의 압력 때문이지 본심은 아니라고 봐야 했다.

“우리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무조건 막아야 하는 상황이지. 하지만 무샤라프로서는 인도와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야. 전쟁이 그의 권력 강화에는 오히려 나을 수도 있거든.”

현재 파키스탄 국민과 군부가 무샤라프에게 가장 불만을 느끼는 이유는 그가 같은 무슬림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이 공격한 일을 돕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헌법 개정을 통해서 장기 집권을 노리는 무샤라프로서는 그의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은 만약 무샤라프가 인도와 전쟁을 벌이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었다.

“내부 불만을 누르고 통합을 하는 데는 전쟁만 한 것이 없기는 하죠.”

오래전부터 외부의 적과 전쟁을 벌여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은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 지금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전쟁이 벌어져서는 절대 안 되네.”

“하긴 요즘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보면 안정을 되찾으려면 멀어 보이기는 하더군요.”

2주 전 아프가니스탄에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아프가니스탄의 군벌들과 부족들이 보낸 대표들의 동의를 받아서 정부가 들어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맞아. 수도인 카불에서는 탈레반 잔당들이 산발적인 테러를 벌이고 있고 며칠 전에는 심지어 부통령이 암살당하는 일까지 있었지.”

“그런데 듣기로는 부통령의 암살 배후가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가 아니라는 말도 있던데 사실입니까?”

“사실이네. 우리는 부통령을 암살 배후에 현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나 북부 동맹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고 있네. 말이 짐작이지 수도인 카불 내에서 부통령 정도의 거물을 암살할 힘을 가진 것은 현 카르자이 대통령과 북부 동맹뿐이지.”

부통령도 군벌 출신이었다.

삼엄한 경호를 받던 중에 암살을 당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르자이 대통령은 파키스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 출신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작년부터 과도정부의 수반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실권을 쥐고 있는 것은 군벌이었고 그중에서 가장 큰 세력은 북부 동맹이었다.

북부 동맹은 군사력을 앞세워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 그리고 외교부장관 등 핵심 요직을 차지한 상태였다.

“카르자이 대통령이요? 비교적 합리적인 외교관 아닙니까?”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기는 하지. 지난 1년 동안 과도정부 수반으로 있으면서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받아 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원조금이 문제가 된 것 같아. 부통령이 조금 욕심을 많이 부렸다고 하더군.”

이권을 두고 욕심을 부리다가 암살을 당했다는 의미였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위해서 욕심을 부렸을 리는 없었다.

“역시 돈과 욕심이 문제군요.”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 그렇지.”

모든 다툼의 시작은 결국 욕심이었다.

‘무샤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방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샤라프의 욕심이라······.”

“무샤라프를 설득할 방법이 생각났나?”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무샤라프가 가장 원하는 게 뭘까요?”

내가 이반 부카드에게 되물었다.

“그야 지금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권력을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것이고 말이야.”

“그렇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돕는 대가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무샤라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도 많죠.”

“그야 그렇지. 우리야 무샤라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만, 본국이나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그를 무샤라프 장군이라고 부르고 있지.”

“그렇죠.”

언론들이 무샤라프를 장군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를 정당한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탈취한 군부독재자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럼 무샤라프 대통령이 가장 인정을 받고 싶은 국가가 어디일까요?”

“그야 영국 아니겠나?”

“그렇겠죠.”

인도와 파키스탄은 영국의 식민지이자 지금도 영연방의 일원이었다.

다른 영연방 국가들처럼 파키스탄의 상류층 중 상당수는 자식들을 영국에 유학 보내고 있었다.

“제가 알기로는 파키스탄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1999년 쿠데타 이후 영연방의 자격이 정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무샤라프에게 영연방에 다시 받아 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영연방의 자격정지를 풀어 준다는 것은 곧 영국이 무샤라프를 파키스탄의 정당한 국가수반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겠군.”

“그렇죠. 아마 무샤라프가 가장 바라는 일 중의 하나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바로 파키스탄의 상류층도 무샤라프를 인정하기 쉬워질 테니까요.”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영국 정부가 순순히 자격정지를 풀어 주겠나? 그건 쿠데타를 인정하는 것인데 말이야.”

“저야 모르죠! 그건 부지부장님이 하셔야죠.”

“뭐야!”

“어려워도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무샤라프 정권이 안정화되는 것은 본국으로서도 원하는 일이니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이반 부카드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영국이 아무리 미국의 최우방이라고는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독재자를 정당한 국가수반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당장 무샤라프 대통령을 영국이 인정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지금 지금이 아니면?”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현 파키스탄 선거법으로는 내후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어차피 간선이라서 지금으로서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재선되는 것이 거의 확실하죠.”

“그러니까······. 2년 뒤에 무샤라프가 재선되면 그때 파키스탄의 영연방 자격정지를 풀어서 정당한 국가수반으로 인정하겠다는 약속을 하자는 말이군.”

이반 부카드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약속하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무샤라프로서는 거절하기 어려울 겁니다. 자신이 파키스탄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국내외적으로, 특히 영국에게 인정받고 싶어 할 테니까요.”

훔친 물건을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포기할 도둑은 없었다.

명예욕이 때로는 다른 욕심보다 앞선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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