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44화 (245/270)

(244)

#245. 단순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1.

인도네시아 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얼마 후 이반 부카드가 자카르타로 돌아왔다.

“잘 끝났더군. 그동안 수고했네.”

이반 부카드는 인도네시아 헌법 개정안 내용에 꽤 만족한 듯했다.

“별로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민도 이번 헌법 개정안에 만족하는 것 같고요.”

이번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을 국민이 투표로 직접 선출하고 군이 기존에 의회에서 가지고 있던 의석수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렇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시위대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 셈이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시위대의 요구를 다 들어준 것처럼 보이는 이번 인도네시아 헌법 개정안은 우리가 처음 이야기했던 그대로 담고 있었다.

우선 후보로 나서려면 의원 중 25%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새로운 헌법 개정안은 오히려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던 기존 제도보다 새로운 정치 신인이나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이 어려웠다.

예전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것이 가능했었다.

“내용으로 보면 철저하게 기존 정당의 기득권을 유지해 준 셈이어서 그런지 인도네시아 여야 모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자네가 시위대의 관심을 군부 의석으로 돌리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개정안을 통과시키지는 못했을 거네.”

이반 부카드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고했네. 이번 개정안은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과격파를 등에 업은 세력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뭐, 그렇겠죠.”

이반 부카드의 칭찬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기존 정당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판에 끼어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더구나 인도네시아는 이번에 헌법을 개정하면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 그리고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선거까지 한 번에 치르는 셈이더군요. 이렇게 선거를 한꺼번에 치르면 모든 관심이 대통령 선거에 집중되기 때문에 기존 정당이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겠

죠.”

모든 선거를 한 번에 치르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선거에 따라오는 국론 분열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선거를 한 번에 치르다 보면 가장 중요한 선거에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 경우처럼 대통령 선거를 다른 모든 선거와 함께 치르다 보면 다른 선거는 기존 정당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국가였다.

아마 투표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후보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고 투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이건 미국도 바라는 바였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나라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개혁 세력이 집권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 개혁 세력이 집권한 이후에는 항상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개해 준 에너지 광물자원부 관련자는 만나 봤나?”

“예.”

“이야기는?”

“그게······.”

이반 부카드의 질문에 나는 말을 흐렸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내 표정을 본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워낙 석탄 광산 쪽 업체들이 거대 기업들이라서요. 인도네시아 석탄이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는 곳은 수마트라 남부 지역이지만 이 지역은 국영기업이 가장 큰 광산을 소유하고 있고 석탄 품질이 조금 떨어져서 다른 지역에 투자하려고 하는데······.”

“그런데?”

“질이 좋은 석탄 매장된 칼리만탄 지역에서 석탄 채굴 허가를 받으려고 했더니 제가 원하는 지역에는 이미 바크리 그룹의 자회사가 있어서 곤란하다고 하더군요.”

“바크리 그룹이라면 수하르토의 측근이자 현재 골카당의 중진인 아부리살 바크리가 운영하는 회사 아닌가?”

“맞습니다.”

다른 인도네시아 족벌 기업들처럼 바크리 그룹도 수하르토와의 정경 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이었다.

정치 권력은 메가와티에게 넘어갔지만, 여전히 인도네시아 경제계는 수하르토 시절에 성장한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수하르토 집권 시절 여당이었던 골카당은 야당이 된 지금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바탕에는 수하르토 집권 시절 성장한 인도네시아의 거대 기업들이 있었다.

이번 개정안으로 기존 정당들이 유리해진 이상 골카당이나 골카당 시절에 성장한 기업들이 단기간에 몰락할 가능성도 없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가 바크리 그룹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네 투자 규모가 바크리가 신경 쓸 정도라는 이야기인데······. 자네 투자 규모가 얼마나 되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건가? 몇천만 달러 정도로는 그런 말이 나올 리가 없는데?”

“시작은 제 자금으로 하겠지만 차츰 제가 알던 회사에서 투자를 받아서 규모를 늘릴 생각입니다.”

“진짜 본격적으로 투자를 할 생각인가 보군.”

이반 부카드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아마 그는 내가 투자를 하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듯했다.

“그렇습니다.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야죠.”

“그렇군. 어쨌든 상대가 바크리라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군. 바크리라면 다음에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는 말이 있는 거물이니 말이야. 물론 진짜로 바크리가 다음 대선에서 골카당의 후보로 나서기는 어렵겠지만 말이야.”

골카당의 다음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수하르토 집권 말기 참모총장이자 국방부장관이었던 위란토 장군이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칼리만탄섬에 바크리 그룹 자회사만 있는 것도 아니니······. 에너지 광물자원부와의 협상이 끝나면 회사를 인수해서 섬의 다른 지역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내가 말했다.

내 말에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좀 이해가 안 가는군. 그렇게까지 하면서 인도네시아 석탄 광산에 투자하려는 이유가 뭔가?”

이반 부카드가 물었다.

“투자하려는 이유야 뻔하죠. 돈 아니겠습니까?”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나?”

내 대답에도 이반 부카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자네는 그쪽에 더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그쪽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자원에 대한 투자는 단기간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투자할 생각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이반 부카드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수익만 생각하면 인도네시아 광산에 투자할 이유는 없었다.

이반 부카드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자네가 그런 생각이라면 알겠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게. 내가 다른 지부로 가기 전까지는 최대한 도울 수 있으면 돕겠네.”

“감사합니다.”

내 말에 이반 부카드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감사는 무슨······. 자네가 그동안 나를 도와준 것을 생각하면 계속 도와주고 싶은데, 인도네시아를 곧 떠나야 해서 더 돕지 못하는 내가 오히려 미안하지.”

이반 부카드는 말했다.

2.

자카르타를 떠나 나는 홍콩으로 돌아와 리안을 찾아갔다.

그는 내가 인도네시아 광산 투자에 관해 이야기하자 이반 부카드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인도네시아 광산에 투자 규모를 계속 늘릴 생각이라는 말이야?”

“그럴 예정이야.”

리안도 이반 부카드처럼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네가 결정하면 나야 따라야 하겠지만 굳이 인도네시아 광산에 투자하려는 이유를 있는 거야? 아무리 광물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W&R이 선물이나 옵션에 투자해서 벌어들이는 수익률보다 높을 수는 없잖아?”

리안이 물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나는 앞으로 석탄이나 철 같은 광물자원이 단순한 투자 수익률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런 중요성은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커질 거고 말이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내 말은 굳이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에게 로비하면서까지 인도네시아 광산에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지.”

“나는 일단 인도네시아 광산업에 투자해서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면 리안 너는 물론이고 홍콩의 화교 자본과 장샤오이 팀장에게 말해서 그쪽 자본도 끌어들일 생각이야.”

“뭐?”

리안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인다고? 너는 지금까지 간섭이 싫다고 다른 투자자 자금 끌어들이는 것 싫어했잖아. 그래서 잘 나가던 러시아 펀드도 매각한 거고 말이야.”

지금까지 W&R은 외부 투자금을 받지 않았다.

“그 이유가 전부가 아니야. 지금까지 굳이 다른 투자금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거든.”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투자가 필요가 없잖아? 직원들도 우리 투자금 늘어나는 규모에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는데 무슨 투자가 필요해?”

리안이 물었다.

“나도 그런 생각이었는데 W&R은 큰 수익을 내고는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아. 아니, 오히려 큰 수익을 내면서 그 문제는 커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문제?”

“그래. 높은 수익률을 내면서 생기는 주변의 질투와 시기지.”

“그건 그렇지만······.”

“이 문제의 근본은 뭐라고 생각해?”

“그야······.”

“W&R이 투자를 받지 않고 나와 리안의 투자금만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잖아. 너 지금도 자기 투자금 받아 달라는 연락 꽤 온다면서?”

“그야 그렇지.”

“그나마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리안 네 집안이 대대로 홍콩에서 쌓은 인망과 작년 말에 설립했던 러시아 펀드에서 큰 수익을 냈기 때문인데······. 문제는 W&R의 수익률이 높아도 너무 높다는 점이야.”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기는 했지.”

“지금이야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벌었는지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비밀이 지켜지는 것도 시간문제야.”

내가 말했다.

“하긴 류오린의 경영진과 직접 매매를 전담한 장샤오이의 2팀 팀원을 비롯해서 아는 사람이 너무 많기는 하지. 더구나 수익을 신고했으니 작년에 우리가 얼마나 벌었는지는 홍콩 정부에도 알려질 테고 말이야.”

“그래서 투자를 받아서 자원 펀드를 만들 생각이야. 장기적으로 이익을 공유해서 우리를 보호해 줄 보호막을 만들어야지.”

처음 리안과 손을 잡고 W&R을 창업할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나는 이런 일은 내가 홍콩을 떠나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빠르게 성공해서 생기는 문제였다.

지금까지는 리안이나 그의 집안만으로 충분히 우리를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안 집안의 힘만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진작에 그 리안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그걸 막아 준 것이 올 초에 러시아 펀드의 성공과 그 펀드를 별다른 수익도 남기지 않고 기존 투자자들에게 넘긴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는 징조는 진작부터 있었다.

예를 들어 리안이 파키스탄 투자 때문에 오래 고민한 것 같은 일들이었다.

내가 홍콩을 떠나기 전까지 상황이 닥칠 때마다 땜질식으로 시간을 끌 생각이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 이익을 위해 CIA에서 한 일들도 이용하기로 한 마당에 뭐가 두렵겠는가?

물론 문제는 있었다.

“나야 투자 제안을 거절하지 않아도 되니 투자를 받으면 좋기는 한데······. 투자자들이 광산에 투자하는 것에 만족할까?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하는 선물 투자잖아?”

그랬다.

광산 투자는 아무리 자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도 몇 년간 서너 배 오르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 우리는 1년에 몇십 배의 이익을 얻은 우리 선물 시장 투자에서 얻고 있었다.

투자자들이 우리 기존 투자에 자금을 투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싫으면 말라고 해! 우리가 투자를 모집하면 투자하겠다는 사람만 모아도 충분하니까.”

어차피 투자 유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보호막을 만드는 수준이면 충분했다.

내가 원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자는 장샤오이였다.

그리고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장샤오이는, 아니 중국 본토의 권력자들은 중국 경제 발전을 위해서 해외 자원을 확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장샤오이를 끌어들인다면 중국 본토의 권력자들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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