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46화 (247/270)

(246)

#247. 갑을 관계가 바뀔 수도 있다

1.

서울로 들어온 이후에도 나는 더는 대사관에 출근하지 않았다.

내가 출근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엘리어스는 물론이고 대사관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대신 나는 W&R 한국 지사로 출근해서 일에 집중했다.

전 세계적인 주가 내림세가 멈추고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계기는 전날 미국 주식시장의 폭등세였다.

점심시간 휴장하고서야 제러미 하, 아니 하성철과 나는 겨우 쉴 수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내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홍콩에서 사 온 커피를 함께 마시자며 내가 그를 사무실로 부른 것이다.

“리먼 브라더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주가에 영향을 줄지는 몰랐네요.”

하성철이 말했다.

리먼 브라더스는 어제 올해 말까지 현재 연 1.75%인 연방기금금리가 1%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어제 뉴욕 주가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장에서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이미 지난주에 골드만 삭스가 비슷한 전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보다 이번 리먼 브라더스의 전망에 시장에 큰 반응을 보인 것이고요. 리먼의 보고서가 골드만보다 더 낫다고 보기도 어려운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그건 리먼 브라더스가 골드만 삭스보다 더 믿을 수 있는 투자은행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주보다 시장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제너럴 일렉트릭(GE),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대형주들은 물론이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종목 중에서는 무려 445개가 주가가 오르는 것은 좀······.”

하성철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상승 폭만 보면 나스닥이 4% 중반대로 가장 높고 S&P500 지수는 오히려 그보다 낮은 3% 조금 못 미치는 상승률 아닙니까.”

“그거야 나스닥에 상장된 반도체, 컴퓨터, 인터넷 같은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 폭이 다른 종목보다 더 많이 떨어졌으니 더 많이 오른 거죠.”

“하긴 그도 그렇군요. 이런 때 한국 지수도 올라야 하는데 이건 기관 놈들 때문에······.”

3%에서 4% 이상 폭등한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지수 상승률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관들이 오랜만에 오른 주가에 프로그램 매도세도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나마 개인들이 사들여서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으면 오히려 한국만 주가가 폭락했을 수도 있었다.

“다른 기관들과는 관계없이 우리는 미국에서 많이 오른 컴퓨터, 인터넷, 반도체 위주로 사들이면 됩니다. 이 기업들은 미국의 나스닥 지수 영향을 다른 업종보다 많이 받으니까요.”

하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국 지사의 투자는 홍콩 본사와는 투자 방법이 아주 달랐다.

W&R 홍콩 본사는 선물을 중심으로 헤지로 옵션 투자를 병행하는 파생 시장 위주의 투자였다.

하지만 한국 지사는 몇 달 전 조민이 맡고 있던 한국 코스닥 지수 선물을 한국 지사로 가져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개별 기업 주식 투자 위주였다.

포지션 청산의 가능성 있어서 한순간에 모든 투자 금액을 잃을 수 있는 파생 상품 투자보다 위험성은 낮지만, 훨씬 많은 것을 해야 했다.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의 주식을 하나하나 매입하는 것은 꽤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파생 상품에 투자를 제외한 W&R 한국 지사의 투자 규모는 어지간한 대기업도 한국 지사가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투자 기업 주가에 영향을 줄 만큼 커졌다.

투자하는 기업의 수도 많은 만큼 직원들의 수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직원 수만 따지면 한국 지사의 직원 수가 오히려 홍콩 본사의 직원 수보다 커진 상태였다.

홍콩 본사는 매매 자체는 류오린을 통해서 하지만 한국 지사는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빠른 인터넷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한창 바쁠 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전에 이야기한 인수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예전 우리 투자 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계기였다.

홍콩에서의 투자야 류오린을 통하면 되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투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당연히 어떤 곳에 얼마를 투자하는지였는데 이 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우리가 어떤 주식을 사들이는지까지 유출되었다.

알아보니 한국 증권회사에서 그런 정보를 내부 관계자 혹은 특정인에게 유출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나는 하성철에게 국내에서 인수할 증권회사가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내가 하성철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은 그가 홍콩 페어그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외환 위기로 큰 타격을 입고 몰락하기는 했지만, 홍콩 페어그린은 한때 홍콩 금융계의 황제였다.

홍콩 페어그린은 한국에도 페어그린증권이라는 자회사가 있었다.

홍콩 페어그린 본사가 인도네시아 투자 실패로 파산했다면 한국 페어그린증권은 적대적 인수 합병 실패와 이어진 한국 외환 위기로 파산했다.

하지만 한국 페어그린증권은 한국 재벌 기업 중 하나를 상대로 적대적인 인수 합병을 시도할 만큼 위세를 떨쳤다.

당시 한국 페어그린증권의 직원 중 상당수는 현재도 한국 투자회사나 증권회사에 흩어져 활약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 지사를 설립하면서 하성철을 지사장으로 임명한 이유였다.

“아직은 후보들만 추려 놓은 상황입니다. 곧 인수 기업이나 회사가 정해지면 보고드리겠습니다.”

“알았습니다. 회사 인수는 전적으로 지부장님만 믿겠습니다.”

나는 증권회사 인수에 대해 하성철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어차피 나는 한국에서 계속 있을 생각도 아니었다.

증권회사를 인수한다고 해도 그 운영은 하성철이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운영할 회사도 아닌데 굳이 인수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을 하성철에게만 맡겨 놓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는 하성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동산 사업을 총괄하는 정윤호는 W&R 한국 지사의 감사직을 맡고 있었다.

2.

한국 주식시장이 폐장되고서야 귀국 첫날의 바쁜 일정이 끝났다.

나는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쯤 홍콩에서 전화가 왔다.

- 장샤오이예요.

“예. 벌써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나는 홍콩으로 돌아오기 전 장샤오이에게 인도네시아 자원 투자 펀드에 참여를 제한했다.

- 시간을 끌 일은 아니니까요.

장샤오이가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자원 투자 펀드 투자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할 생각이 없었다.

공모 펀드가 아니라 사모 펀드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자원 투자 펀드는 W&R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공모 펀드는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펀드 투자자는 리안과 W&R을 통해서 투자자를 모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샤오이는 내가 따로 만나서 투자를 제안했다.

장샤오이는 내 제안에 대한 대답을 이틀 만에 해 준 것이다.

하지만 너무 빨랐다.

내가 제안을 한 것은 장샤오이지만 투자를 하기를 원한 것은 장샤오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팀장님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닐 텐데요?”

내가 장샤오이에게 투자 제안을 했지만, 실제 투자를 받기 원한 것은 그녀의 배경이었다.

장샤오이의 집안인 양가장이나 중국의 국영기업들, 더 나아가 푸젠성의 당서기 같은 공청단이나 성장 같은 태자당 같은 배경 말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앞으로도 W&R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최근에 그분들에게 투자에 대한 결정권 대부분을 위임받았어요. 류오린에서 제 성과에 인정을 받은 셈이죠. 따지고 보면 에드릭 씨 덕분이지만요.

“아······.”

조금 아쉬웠다.

같은 투자를 받더라도 장샤오이의 결정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인물들이 직접 결정을 내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게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자신이 내린 결정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내가 생각했던 인물들이 직접 투자 결정을 내렸다면 아주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W&R를 보호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장샤오이를 믿고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라면 투자가 잘되더라도 그 성공으로 얻는 믿음과 신뢰는 W&R이 아니라 장샤오이가 얻게 된다.

그렇다고 장샤오이를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 어쨌든 그녀는 내 결정을 믿고 투자한 것이었다.

그걸 비난할 수는 없었다.

- 그런데 나중에 중국 기업에 우선권을 주는 것은 맞겠죠?

“예. 채굴된 광석을 매입할 우선권은 당연히 중국 기업에 줄 생각입니다. 나중에 지분을 매각할 때도 같은 조건이면 중국 기업에 매각할 생각이고요.”

중국 기업들에 이런 특혜를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자원 투자 펀드라는 자체가 수익보다는 홍콩과 중국에서 W&R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더구나 내 예상대로라면 중국은 원자재의 최대 수입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감사해요.

장샤오이가 말했다.

투자하는 그녀가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은 내가 중국 기업을 선정 권한을 장샤오이에게 줬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과 물건을 사는 사람 중에서 대부분은 물건을 사는 사람이 갑이었다.

하지만 한정된 원자재의 경우에는 공급자가 갑인 경우가 꽤 많았다.

“아닙니다. 팀장님이 저를 그동안 도와주신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별것 아닙니다.”

- 제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그런데 혹시 남아프리카에 가실 생각은 없으시죠?

장샤오이가 갑자기 내가 남아프리카에 갈 수 있는지 물었다.

“남아프리카요?”

- 예. 지분을 매입한 기업 중 하나에서 연락이 계속 오고 있어서요. 실제 투자자를 만나고 싶다고요.

“아······.”

나는 올 초에 대표로 있던 AAM을 청산한 이후 그 자금으로 브릭스라고 불리는 국가 중에서 중국을 제외한 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에 투자를 시작했다.

투자하는 나라마다 투자 방법이 조금 달랐는데 남아프리카는 그중에서도 개별 기업에 투자하는 형태였다.

- 아무래도 우리가 매입하는 지분이 점점 커지는 것에 그쪽 경영진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내 투자는 조세회피처에 세운 회사들을 통해서 행해졌다.

실제 투자자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장샤오이를 통해서 연락이 온 것은 이해가 갔다.

“회사 하나는 그렇게 많은 지분이 아닌데 어떻게 장 팀장님께 그런 연락을 간 거죠?”

한 회사가 가진 지분은 이렇게 만나자는 연락이 올 정도로 많지가 않았다.

- 그쪽에서 남아프리카 정부를 통해서 조사한 것 같아요. 최초로 매입 지시를 내린 회사가 모두 류오린이니 지분의 주인이 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린 거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만날 생각은 없습니다.”

- 역시······.

“류오린도 투자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계속 물어보면 그냥 투자 목적인 것 같다고 대답해 주세요.”

- 알겠어요.

장샤오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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