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48화 (249/270)

(248)

#249. 상황과 때에 따라서 다르다

1.

다뉴브강과 엘베강의 홍수로 독일 도시가 물에 잠긴 뉴스가 끝나자 독일뿐만 아니라 두 강과 인접한 체코와 헝가리도 큰 피해를 났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다행히 주가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주가에 영향이 없다면 유럽에서 홍수가 나든 아니면 대규모 화재가 나든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홍수가 난 것은 유럽뿐이 아니었다.

“홍수로 투자 협상이 미뤄지고 있다고?”

- 지금 중국이 난리가 아니라더라고······. 이미 사망자만 100명이 넘고 재산 피해를 본 사람은 1천만 명이 넘었다고 하면서 협상 연기를 요청하더라고······.

“지난주부터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한국은 그렇다고 홍콩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듣지를 못했네.”

중국에서 폭우로 장강이 범람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주부터였다고 한다.

- 바빠서 그런 일에 신경을 여유가 없었으니까. 더구나 중국 자연재해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하긴 지금 중국의 위치는 딱 그 정도기는 하지.”

지난 7월로 홍콩이 중국 일부가 되고 5년이 지났다.

하지만 2년간 홍콩에 내가 만난 홍콩 사람들 중에서 자신들을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중국이 강대국이기는 했지만, 홍콩 일반인들에게 중국은 그냥 못사는 이웃 나라일 뿐이었다.

홍콩과 관련 없는 중국에서 일어난 자연재해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중국 일부가 된 홍콩도 그런데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 장강과 인접한 지방 정부나 기업들 모두 지금 초비상상태라서 투자를 진행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어쨌든 알았어.”

- 인도네시아 ‘석탄채굴작업계약’ 허가는 나온 거야?

“내일 인도네시아에 가서 받을 생각이야.”

- 받으면 팩스로 본사에 서류를 보내 줘.

“바로 보내 줄게.”

- 투자 포지션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 뉴스를 보니 연준에서 금리를 한동안 인하하지 않을 것 같던데?

리안이 투자 방향에 관해 물었다.

지난주 내려가던 주가가 반전된 것은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투자은행들의 보고서가 연이어 나온 것이 계기였다.

그런데 투자은행들의 예상과는 달리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연준 측에서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 투자은행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예상은 연준이 금리를 당장 인하한다는 것이 아니라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인하하리라는 것이었다.

아직 8월 중순이니 남은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지만 금리 인하를 기대했던 시장으로서는 연준의 이런 반응은 조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상승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연준 금리 인하 보고서가 주가 반전의 계기였지만 그건 말 그대로 계기일 뿐이잖아.”

- 하긴 뭐······. 오를 때가 되어서 오른 것이라는 것이 더 맞는 말이지.

“내 생각에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가 발표되는 다음 주까지는 지금 상승 포지션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소비자신뢰지수는 영리 민간 경제 조사 기관인 ‘컨퍼런스보드(Conference Board)’가 발표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에 대한 전망이었다.

쉽게 말해서 미국 소비자들이 다음 6개월 동안 경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소비자신뢰지수가 발표되는 시기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10시였다.

사실 이 지수가 완전히 미국 소비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보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조사가 그렇듯 소비자신뢰지수도 겨우 5천 가구를 대상으로, 그것도 지금이 아니라 6개월이라는 길다면 긴 기간에 대한 예상을 묻고 그걸 모아서 발표하는 지수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조사와 마찬가지로 일단 조사가 권위를 얻으면 결과 자체가 영향을 주게 된다.

여론조사에서 침묵의 다수니 나선 효과니 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비자신뢰지수도 매월 마지막 화요일에 발표될 때마다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주가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소비자신뢰지수가 높아지면 미국의 주가와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국가들의 주가가 오르고 지수가 떨어지면 주가가 내려간다.

- 소비자신뢰지수라. 하긴 마지막 주에 발표되는 통계 중에는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기는 하지. 그런데 소비자신뢰지수 발표 때까지 상승 포지션을 유지한다는 말은 그 후에는 포지션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야?

리안이 물었다.

“어제 미국 홈 데포트 실적 발표 봤어?”

- 홈 데포트라면 주택용 공구 업체 말이야?

“맞아 주로 가정용 건축자재 및 인테리어 디자인 도구를 판매하는 회사지. 그 회사 매출이 28%나 늘었다고 하더라고 경쟁 기업인 로웨는 매출이 42%나 증가했다고 발표했고 말이야.”

- 실적 호조로 주가가 꽤 오르기는 했네. 그런데 이 업체들이 포지션을 바꾸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그 회사 주가가 오른 것을 보고 느껴지는 것 없어?”

- 글쎄? 홈 데포트가 가정용 건축자재 인테리어 업체 중에서는 가장 크기는 하지만 전체 주가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잖아?

리안이 되물었다.

그는 홈 데포트나 로웨 같은 공구 업체 매출이 급증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어쩌면 대부호의 아들이자 홍콩인인 리안으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미국 평범한 집들은 이사하면 대부분 직접 공구로 집을 고치거나 꾸미는 것이 대부분이야. 가정용 공구 매출이 늘어났다는 것은 최근 몇 달 사이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집을 새로 사거나 이사를 했다는 의미야.”

- 아······.

리안은 이제야 알아들은 것 같았다.

설사 리안이 미국에서 살았다고 해도 언제 직접 공구로 집을 고쳐 봤겠는가?

“최근 미국 금융기관들이 주택 관련 대출에 주력한다더니 그 영향인 것 같아.”

- 네 말대로라면 이번 소비자신뢰지수는 떨어지겠군.

“내 생각은 그래. 시중에 자금은 한정되어 있는데 일반 소비자들이 최근에 집을 사거나 이사를 했다면 다른 데 쓸 돈이 있겠어?”

- 무슨 말인지 알겠어. 소비자신뢰지수가 발표되기 전에 미리 준비해 놓을게.

주가와 주택 가격은 장기적으로 보면 주가가 상승할 때 주택 가격도 상승한다.

이건 주가나 주택 가격 모두 경제가 성장해야 상승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단기간으로 봤을 때 주택을 구매하는 데 사용되는 비용과 주식을 매입하는 데 사용되는 비용은 경쟁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주택을 사거나 이사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다른 비용을 줄이고 결국에는 주가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장기 투자라면 모르지만 우리는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금융 시장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로서는 미국인이 가정용 공구를 사거나 가정용 인테리어를 위해 비용을 지출해 추가 지출 여력이 없어지는 것은 악재였다.

“그럼 인도네시아 가서 ‘석탄채굴작업계약’ 받으면 연락할게.”

- 수고해라! 그리고 나 다음 달에 결혼해!

“뭐?”

- 결혼한다고······. 자세한 이야기는 네가 인도네시아에서 홍콩으로 오면 이야기해 줄게.

리안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당황했다.

내가 알기로는 리안과 조민의 결혼은 빨라야 내년이었다.

갑자기 결혼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전화를 걸어서 결혼을 왜 빨리하냐고 묻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리안은 동업자일 뿐 가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리안과 조민이 결혼하면 둘이 관리하는 자금 규모가 너무 커지는데······.’

리안 카이 황 조민이 관리하는 W&R의 투자금 규모는 80%가 넘었다.

이전에도 둘은 약혼한 상태였으니 결혼한다고 크게 변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제 리안 집안과 조민 집안은 하나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다.

리안이나 조민은 믿지만, 조민의 집안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을 믿는 것과 아무런 대비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2.

인도네시아 도착한 후 에너지자원 광물부의 관리를 만나 약속받았던 허가를 받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시 만난 관리는 지난번과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거만한 표정이었다.

“이번에 ‘석탄채굴작업계약’ 허가를 받는 회사가 홍콩 회사더군요?”

“그게 문제가 됩니까?”

“그건 아니지만 조금 이상해서 말입니다. 저는 당연히 미국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소개해 준 분이 그렇다고 해서 꼭 미국 회사여야 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홍콩에 본사가 있을 뿐 이번 계약의 주체인 투자회사는 파나마에 있는데요?”

내가 말했다.

회사 소재지가 홍콩에 있는 것이 큰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아무래도 이미 헌법 개정안도 통과된 상황에서 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석탄채굴작업계약’ 같은 허가는 에너지자원 광물부의 가장 큰 이권 중 하나였다.

내 주라는 지시를 받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아무런 이득도 없이 넘기려니 아까운 듯했다.

“그래도 본사가 홍콩에 있는 것은 사실이죠. 조금 알아보니 회사 대표도 에드릭 씨가 아닌 다른 분이더군요.”

“이번 계약에 대한 권한을 제게 일임한다는 위임장을 가져왔는데도 그게 문제가 됩니까?”

“물론 그렇지만 여전히 이상해서······.”

“정 그러시면 소개해 준 분에게 전화를 걸어 보시죠.”

나는 전화기를 들어 관리가 보는 앞에서 이름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직접 통화하시겠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신호음이 가자 관리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는 내가 전화를 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나를 소개한 사람은 인도네시아 CIA 지부의 이반 부카드였다.

명목상으로는 부지부장이기는 했지만 현 인도네시아 CIA 지부장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한 정치인 출신이었다.

말 그대로 이반 부카드가 인도네시아 지부의 실세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반 부카드는 와히드 탄핵 전부터 메가와티 대통령 측과 많은 일을 해 왔다.

아무리 인도네시아에서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자원 광물부의 관리라도 해도 허가를 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쉽게 가죠.”

“알겠습니다.”

관리가 대답했다.

그는 책상에 놓은 전화기를 들었다.

“준비해 놓은 서류 가지고 들어오게!”

관리가 지시를 내리자마자 문이 열리고 직원들이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그들에게서 서류를 받아 확인한 후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건 제 전화번호입니다.”

나는 사무실을 나오기 전 지갑에서 쪽지를 꺼내 관리에게 건넸다.

내가 건넨 쪽지를 받고 무언가를 확인한 관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해 주십시오. 서로서로 도움이 되면 좋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급히 쪽지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쪽지에 적힌 계좌 잔액을 확인하면 더 밝아지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상대가 내 뒤에 CIA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에너지자원 광물부의 고위 관리와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내가 처음부터 돈을 주지 않은 것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돈을 줬다면 그는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처럼 내가 자신에게 당연히 줘야 했을 돈을 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못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받는 돈은 같은 돈이라도 받는 사람으로서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받을 돈을 주는 것과 못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돈을 받는 것은 다른 법이니 말이다.

조삼모사는 언제나 그렇듯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내가 에너지자원 광물부 청사를 나오고 얼마 후 전화벨이 울렸다.

- 요즘 정신이 없어서 자네가 인도네시아에 입국했다는 소리를 지금 들었네. 인도네시아에 입국했으면 바로 나에게 전화해야지.

이반 부카드였다.

내가 인도네시아에 입국한 것은 오전이었다.

반나절이 지금에야 연락이 온 것을 보니 이반 부카드가 바쁘기는 바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일을 끝내고 연락하려고 했습니다.”

- 그 석탄 관련 허가 말인가?

“맞습니다.”

- 그런 일이면 미리 연락하지. 내가 미리 전화 한 통 해 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바쁜 분에게 그런 수고를 끼칠 수야 없죠.”

- 하여간 자네가 인도네시아에 와 있다니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자네에게 전화를 걸까 했는데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 일단 지난번 그곳으로 와 보게. 자세한 이야기는 와서 이야기하지.

이반 부카드가 말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내가 연락을 먼저 안 했던 것인데······.’

조금 전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어 놓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나는 인도네시아 관리 앞에서 CIA 부지부장에게 전화를 걸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에너지자원 관리부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었던 곳은 예전 내가 인도네시아에 마련한 안가였다.

당연히 받을 사람도 없으니 통화를 연결해 주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상대가 알게 되면 사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속임수였다.

하지만 숫자가 아니라 직접 사람을 만나서 이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약간의 속임수와 허세가 필요할 때도 있었다.

그게 투자든 정보활동이든 말이다.

투자나 정보활동 그리고 사기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