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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50화 (25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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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 쉬운 일만 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251. 쉬운 일만 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1.

제안을 받고 하루 뒤 나는 아침 일찍 이반 부카드를 찾아갔다.

“이번 작전에는 참여하기 어렵겠습니다.”

“이번 일은 어렵겠다고?”

이반 부카드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아무래도 이번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국토안보부에서 하는 일인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저희 팀이 CIA 정식 조직은 아니지만 어쨌든 CIA 일을 도와서 일을 하는 상황에서 국내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다는 것이 팀원들의 의견입니다.”

“그럼 자네만이라도 이번 일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가?”

“저 혼자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이런 일은 자네가 주도적으로 해 오지 않았나.”

“그건 다른 팀원들과의 회의를 통해서······.”

“날 바보로 아나?”

이반 부카드가 내 말을 잘랐다.

“80년대 냉전이 한창일 때부터 이 일을 해왔는데 외부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나? 우리가 무슨 광고 회사도 아닌데 일을 하면서 매번 회의해서 일을 결정해. 자네가 일을 처리하고 의견을 내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지 아닌지 딱 알 수 있지.”

이반 부카드가 말했다.

“그건······.”

나는 순간적으로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빈틈을 보인 것은 바로 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일 중에는 시간에 쫓기는 일이 꽤 많았다.

다른 팀원들과 회의를 하는 척하고 의견을 낼 시간이 없었다. 바로 의견을 내고 작전을 제안해야만 했다.

“내가 자네 팀 다른 팀원들이 뭘 하는지는 아는 것이 없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다른 팀원들이 대단한 능력자들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능력을 알고 있는 믿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자네야.”

말을 마친 이반 부카드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래도 이번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냐는 듯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 CIA에서 근무했고 지금도 CIA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국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어렵겠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럼 지금도 CIA에 근무하면서 자네에게 작전을 제안한 나는 뭔가? 거절하는 진짜 이유가 뭔가?”

“그런 것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내 얼굴을 바라보던 이반 부카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나 보군.”

“네.”

나는 CIA를 퇴직하기 위해 꽤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퇴직한 뒤에도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 돈으로 에이전트 에스 팀이라는 조직을 진짜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핑계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이 일을 잘할 뿐 아니라 꽤 좋아한다는 것이다.

투자로 돈을 버는 것도 좋아하고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스파이 일과의 차이가 있었다.

한마디로 투자로 돈는 버는 것은 지금까지는 너무나 쉬웠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욕을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치트 키를 켜고 게임을 하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스파이 일을 좋아하면서 내가 CIA를 그만둔 이유는 간단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요구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반 부카드의 요구를 거절하는 이유였다.

차라리 CIA라면 모르지만, 국토안보부에서 내려온 지시라니······.

내가 아무리 돈을 번다고 해도 국토안보부와 관련되면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은 피하고 싶었다.

“이것 참······ 난처하게 됐군.”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국내 여론이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일반 시민들은 탈레반 1천 명 정도 죽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미국인들은 놀라울 만큼 다른 나라에 관해 관심이 없었다.

미국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미국만으로도 아주 넓었고 미국만으로도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굳이 다른 나라에 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나도 그거야 알지만, 문제는 민주당이네.”

“민주당요?”

나는 이반 부카드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민주당이 문제라니?

혹시······?

“그래. 그렇지 않아도 경고를 듣고도 지난 911 테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의회에서 질책을 받은 것이 얼마 전이네. 아프가니스탄이야 사실 큰 문제가 아니지만 지금 문제는 이라크와의 전쟁 계획에 차질이······.”

민주당이 문제라고 할 때부터 눈치챘지만 이반 부카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단순히 지금 국내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제로는 백악관과 현 공화당 정부의 생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지금 이반 부카드는 정보 조직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규칙인 정치적 중립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이미 내 눈앞에 있는 이반 부카드는 CIA의 인도네시아 부지부장이 아니라 국토안보부, 아니 백악관의 사람으로 보였다.

하긴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반 부카드는 냉전 시대 유럽에서 활동한 현장 요원 중에서도 엘리트 요원이었다.

그랬던 그가 민주당 정부 들어와서는 아시아, 그것도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인도네시아 부지부장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고 해도 스파이도 인간이었다.

지난 민주당 정부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그것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내 확신에 찬 대답에 이반 부카드의 표정이 변했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나?”

“예.”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야. 올해는 중간선거가 있는 해가 아닙니까. 더구나 대부분 지역에서 예비선거가 열리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처형된 포로에 관해 관심을 가질 민주당 의원들이 있을지······.”

“자네 말이 일리가 있군.”

“여전히 시민 대부분이 지난 911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저는 이번 일이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미 말했지만,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내심 탈레반 포로가 죽은 것에 대해 통쾌해할 시민들이 꽤 많을 겁니다. 복수는 언제나 달콤한 것이니까요.”

미국은 개척 정신이 일으킨 나라였다.

학교에서는 복수는 허무한 것이라느니 사적인 복수는 불법이니 공권력에 처벌을 맡기라느니 가르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복수를 직접 하는 주인공을 사랑한다.

만약 미국인들이 사적인 복수를 싫어했다면 그런 영화가 흥행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직접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저라면 이번 예비선거에서 이런 미국인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줬을 것 같네요.”

“예비선거에 개입하라는 말인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요즘 유대인 단체들이 득의양양하다고 하던데요?”

“유대인 단체라······. 하긴 그놈들이 요즘 살판나기는 했지.”

내 말에 이반 부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제가 무슨 말을 했나요?”

내 질문에 이반 부카드가 미소를 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자네는 내 제안을 거절했을 뿐이지. CIA는 국내 일에 관여하면 안 되는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이야.”

나는 인사를 하고 CIA 안가를 나왔다.

오기 전에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는 결심했지만, 이번에도 굴복해야 했다.

이반 부카드가 단순히 국토안보부로 가는 것이라면 내 생각을 밀고 나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태도와 말투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완전히 공화당 쪽으로 돌아선 것 같았다.

아시아에서는 이제 내 목소리를 내도 됐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았다.

돈을 더 버는 수밖에 없겠네.

2.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랜만에 대사관에 출근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내 방으로 바로 오게.”

엘리어스였다.

“오랜만이군.”

엘리어스가 말했다.

가시가 돋친 말이었지만 나는 미소로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보이시네요.”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니까.”

주가도 회복되어 상승세였고 무엇보다 아직 한국은 월드컵에서 4강에 올라간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열기의 최대 수혜자는 축협의 회장이었다.

재벌가의 일원으로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이끈 축협의 회장은 단숨에 대선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부상하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저러나 자네 일은 제대로 하는 건가? 출근은 하지 않더라도 일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엘리어스가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내가 중국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보내오지 않는 것에 불만인 것 같았다.

“그쪽 일이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실 텐데요? 더구나 얼마 전 큰일을 하셨으니 한국 국가정보원 도움을 받으셔도 되고요.”

“큰일?”

엘리어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출근하면서 보니 제가 요즘 머무는 호텔에서 남북한이 무슨 통일 축전을 했나 보더군요. 최근 남북대화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고요?”

나는 일단 말을 돌렸다.

“그렇기야 하지. 지금까지 대화를 거부하던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말이야.”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대통령은 말 그대로 식물이나 다름없었다.

청와대는 그나마 남은 기간 할 수 있는 일이 남북대화 정도밖에 없었다.

“그 남북 관계가 진전된 것이 브루나이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과의 협상 결과고 팀장님이 그 일에 참여하셨으니 실적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야 그렇지만······.”

“오기 전에 신문을 보니 청와대에서는 남북 관계 진전을 햇볕 정책의 성과라며 선전하고 있더군요. 하긴 뭐······. 일반 한국 국민은 그게 핏값이라는 사실을 모를 테니까요.”

“핏값이라니?”

엘리어스가 물었다.

“모르셨습니까?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진전과는 별개로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본국이 북한에 요구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건 이라크가 집중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 때문 아닌가? 뜬금없이 핏값이라니?”

엘리어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본국 정부가 북한에 그런 요구를 한 것은 한국 정부 정확하게는 청와대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서죠. 본국이 자신이 창당한 정당에서도 쫓겨나시피 나온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하겠습니까. 바로 핏값을 그렇게 치르는 거죠.”

“핏값이라······. 설마 장갑차 사건을 말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없죠. 아무리 힘이 빠졌어도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그 대통령이 가장 집착하는 게 남북대화니까요. 아마 국무부 고위층과 청와대 사이에 교감이 있었을 겁니다.”

두 달 전인 6월, 이동하던 주한 미군 장갑차에 한국인 학생 두 명이 사망했다.

당연히 한국 내에서 대대적인 반미 시위가 일어났고 소파 개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주한미군 철수 주장까지 나오고 있었다.

주한 미군을 철수는 물론이고 소파 개정을 원하지 않는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다.

잘못이었지만 그걸 인정할 수도 없었다.

아니, 사과까지는 할 수 있지만, 책임을 질 수는 없었다.

이번 사건과 관계는 없지만, 유럽 국가들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미군 범죄도 다루겠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라크전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미군의 힘이 필요한 때였다.

그런 때 미군을 다른 나라 법정에 세울 수는 없었다.

아무리 힘이 빠져도 대통령은 대통령이었고 수십 년간 야당의 지도자였던 인물이었다.

여론을 움직일 힘은 충분했다.

남북대화는 그런 일을 피하고자 한국 대통령에 입에 물리는 사탕이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 국가정보원이 다른 것은 몰라도 북한 정보 수집에 관한 한 꽤 유능하다고 하더군요. 북한 정보 수집을 위해서 중국에도 공을 들이고 있고요. 적어도 북한 문제에 관한 것이나 중국에 대해 한국 국가정보원보다 확실한 곳이 없습니다. 정보는 확실한 출처로부터 얻을 수 있으면 가장 좋죠.”

“한국 정보부의 도움을 받으라는 말인가?”

“안 될 것이 뭐겠습니까? 그냥 협조 요청을 해도 되겠지만 한국 정부에서 팀장님이 하신 일을 알게 되면 도움을 받는 데 더 쉽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조금 답답했다.

엘리어스는 능력이 한쪽에 치우친 면이 있었다.

나를 향해 이런저런 음모를 꾸미는 것의 반만 주변을 살폈어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장갑차 사건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나 갑자기 북한이 한국과 대화를 나누겠다고 나오는 이유가 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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