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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51화 (25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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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 다른 사람의 기여를 알아주다

252. 다른 사람의 기여를 알아주다

1.

정윤호가 30대 초반의 사내를 데리고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이쪽은 예전에 같이 일했던 마상혁입니다. 저보다 먼저 퇴직해서 지금은 작은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에드릭입니다.”

나는 사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W&R 한국 지사 뒤에 누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젊은 분이실 줄 몰랐네요.”

마상혁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는 W&R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나는 정윤호를 돌아보았다.

혹시 그가 W&R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묻기 위해서였다.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정윤호가 손을 저었다.

“저는 아닙니다.”

정윤호가 말했다.

“정 선배에게 들은 것은 아닙니다.”

마상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여의도 쪽 일에 발을 조금 담그고 있는데 거기서 들었습니다. 여의도에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홍콩 W&R의 한국 지사에 대해 다 알고 있습니다. 실적이 워낙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의도라면 국회도 있지만, 한국 증권거래소와 투자회사들도 있었다.

투자를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는 정치권이라기보다는 금융 쪽이라고 봐야 했다.

“여의도 쪽 일을 하신다고요?”

내가 물었다.

“아는 사람들과 자그마하게 찌라시 만들어서 팔고 있습니다. 인맥도 다질 겸 용돈 벌이를 하고 겸사겸사······.”

마상혁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증권가 찌라시를 만드는 데 국정원 직원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군요.”

내 말을 들은 마상혁이 고개를 돌려 정윤호를 바라보았다.

“대표님은 내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처음부터 국정원에서 퇴직한 사람을 구해 달라고 해서 너를 데려온 것이고······.”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죠.”

마상혁이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찌라시에 국정원 직원들이 관련됐다는 이야기는 좀 과장된 소문입니다. 국정원 쪽 직원은 저하고 몇 명 안 됩니다. 다 퇴직한 사람들이고요. 찌라시 작성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로 경찰 쪽 인물이 많습니다, 기업 쪽 사람들도 있고요. 물론 기업 쪽 사람들은 주로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끼워 넣기 위해서 참여하는 것이지만요.”

“그쪽에서는 W&R을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물었다.

“워낙 실적도 높고 홍콩에 본사가 있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말이 많죠. 회사에 주역이나 명리학을 통달한 점술사가 앞일을 알려 준다거나 영국 정부나 중국 정부가 정보기관을 이용해서 키우는 회사라는 소문까지······ 별의별 소문이 다 있습니다.”

마상혁이 말했다.

마상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서 듣고 있던 정윤호가 끼어들었다.

“하여간 찌라시는 어쩔 수 없다니까. 뭔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말을 마친 정윤호가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찌라시가 그렇듯 헛소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근거가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증권가 찌라시는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증권시장이 발달한 곳이라면 어느 곳에나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은 정확성은 낮다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성이 낮기는 내가 일하던 CIA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중에서 옥석을 골라내고 정보로 만드는 게 내가 CIA 본부에서 하던 일 중 하나였다.

찌라시가 완전히 헛소리만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조금 전 마상혁이 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W&R이 점을 쳐서 투자 방향을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W&R은 내 판단에 투자 방향 대부분을 의지하는 회사였다.

더구나 영국이나 중국 정부가 정보기관을 이용해서 키워지는 회사는 아니지만 내가 CIA에서 일했으니 아주 말이 안 되는 소리도 아니었다.

정윤호가 끼어든 이유도 그는 내가 W&R 한국 지사의 투자 방향을 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윤호는 내가 미국의 정보기관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국정원을 퇴직한 그를 찾아내서 영입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국정원도 다른 정보기관들처럼 퇴직한 이후에도 국정원 직원이었다는 사실은 비밀이었다.

이건 퇴직한 국정원 직원들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물론 퇴직한 국정원 직원들로서는 자신의 경력을 밝힐 수 없으므로 퇴직한 이후 직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했다.

국정원 경력을 내세울 수 있다면 정윤호가 카센터를 하고 마상혁이 흥신소를 하면서 살 이유가 없었다.

“W&R이 영국이나 중국 정부에서 키워 주는 회사라면 제가 정윤호 대표님께 정보를 수집해 줄 사람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했을 리가 없겠죠. 여기까지 오신 것을 보면 마상혁 씨도 우리와 함께 일을 하실 마음이 있으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랬으니 팀장님을 따라서 왔겠죠. 그런데 제가 뭘 해야 하는 겁니까?”

“증권가 찌라시를 만들고 계신다면 지금 하시는 일을 계속하면 될 것 같네요. 그 일을 하면서 얻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면 됩니다. 물론 찌라시 내용이 다른 곳에 알려지기 전에 먼저 알려 주셔야겠지만요.”

“미리요?”

“예. 그게 아니라면 그냥 찌라시를 구독하지 굳이 마상혁 씨를 영입할 필요가 없겠죠. 이왕이면 찌라시에 올리지 않은 사소한 소문까지 다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소문까지 넘기면 정보의 신뢰도를 검증할 시간이 없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찌라시에 올라온 내용이라고 믿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것만 하면 됩니까?”

“우리 쪽에서 조사를 부탁하는 일을 하면 추가 조사를 해 주시면 됩니다.”

“까다롭네요. 그래서 제가 얻는 것은요? 여기 팀장, 아니 정 대표님은 1년에 최소 1억 이상은 주시겠다고 하셨는데요? 회사에 그럴듯한 자리도요”

“지금 운영하는 흥신소는 어떻게 하시고?”

“그까짓 흥신소 그만둘 생각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그럴듯한 자리가 필요해서요.”

“자리라면 정 대표님 회사에 적당한 자리를 만들면 되지만 괜찮겠습니까?”

“애가 크다 보니 흥신소를 계속하기는 좀······.”

말을 하다 말고 마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정윤호가 다시 끼어들었다.

“이 친구 아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나 봅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흥신소 이미지가 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한국의 사설 조사원에 대해 조사를 해 보았다.

조사해 본 결과는 한국에서 사설 조사원에 대한 이미지는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한국도 사설 조사원, 즉 탐정이 불법인 나라였다.

하지만 탐정이 불법인 나라 중에서도 한국은 특히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한국에서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라면 주로 불륜이나 쫓아다니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외부에 내세우기는 어려운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원하는 일을 하려면 기존 사무실을 아주 폐쇄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럼 이렇게 하죠. 마상혁 씨가 운영하는 흥신소를 우리가 인수하겠습니다.”

“흥신소를 인수하신다고요?”

“예, 10억 드리죠.”

10억이라는 말에 마상혁이 놀란 듯 눈이 커졌다.

“10억요?”

“대신 최소 5년 동안 마상혁 씨가 흥신소를 그대로 운영해 주는 조건입니다. 물론 회사에 따로 자리도 마련해 드릴 겁니다.”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죠. 감사합니다.”

마상혁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2.

“휴······.”

정윤호를 따라 사무실은 나온 이후에야 마상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제야 마상혁은 긴장을 풀린 것 같았다.

“10억이라니······!”

“10억이나 받으니 좋냐?”

정윤호가 말했다.

“그럼 좋지, 안 좋아요?”

마상철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지금 사는 아파트가 2억이 안 돼요. 그것도 겨우 대출받아서 사서 언제 갚나 걱정이 많았고요. 그런데 한 번에 10억을 준다잖아요. 직원 겨우 두 명짜리 사무실인 흥신소를요.”

“그렇게 좋으면 연봉은 안 받아도 되겠네.”

정윤호의 말에 마상혁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건 아니죠. 그래도 받을 돈은 받아야죠.”

마상혁이 고개를 돌려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10억을 한 번에 준 것으로 봐서는 나이는 젊지만, 통은 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10억을 받은 이상 말했던 연봉 1억은 받기 어려울 것 같았다.

증권가 찌라시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는 마상혁은 꽤 오랫동안 여의도 쪽 사람들과 일을 해 오고 있었다.

그가 본 금융계 인간들은 하루 술값으로 수천만 원을 썼으면 썼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돈에는 인색했다.

그렇다고 해도 월급은 받지 않고 일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목돈이 있더라도 매달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목돈을 까먹는 것은 금방이라는 사실을 마상혁은 잘 알고 있었다.

마상혁이 다시 정윤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1억은 아니더라도 한 5천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겠죠······?”

정윤호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연봉은 내가 이야기한 대로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한 대로라면 1억요?”

정윤호의 말을 들은 하상혁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우리 회사가 다른 것은 몰라도 돈을 버는 만큼 직원들에게 확실한 보상을 하는 편이야. 아마 네가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니 놀라지나 말라고······.”

정윤호가 말했다.

마상혁은 순간 에드릭이 자신의 흥신소를 10억에 인수한다고 했을 때 정윤호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데려온 사람이 10억이라는 돈벼락을 맞으면 기분이 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마상혁이 아는 정윤호는 꽤 훌륭한 요원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속이 넓은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의 부하가 10억을 벌었을 때 웃으면서 그걸 축하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교관님은 얼마나 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마상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알아서 뭐 하게!”

정윤호가 마상혁의 질문을 딱 잘랐다.

“너 여기 홍콩 회사 한국 지사인 것 알지? 외국에서는 다른 사람이 얼마나 버는지 묻는 게 큰 실례야!”

“알겠습니다.”

마상혁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웃기지도 않네. 언제부터 외국 회사에 있었다고······.’

몇 년 전까지 두 사람은 국정원에 함께 다니는 사이였다.

더구나 마상혁이 알기로는 정윤호는 그 후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하고 작년 초까지 부인인지 처가에서 돈을 받아서 카센터를 운영했었다.

그런데 외국 회사에서의 예의 어쩌고 하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정작 자기는 옆에서 흥신소를 10억에 사들인 것을 보고 자신의 연봉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나에게 고마워하라고. 퇴직한 직원 중에서 내가 너를 연수할 때 잘 보고 회사에 추천해 준 것이니 말이야.”

정윤호의 말에 마상혁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막 국정원에 들어갔을 때부터 교관님은 저의 우상이셨습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 마상혁은 정윤호를 그리 좋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마상혁이 정윤호를 처음 만난 것은 국정원에 막 들어가서 연수를 받을 때였다.

정윤호는 신입 요원들을 가르치는 교관이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당시 연수를 받은 요원들은 정윤호를 싫어했었다.

하지만 마상혁은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꿀 생각이었다.

어쨌든, 자신에게 돈벼락을 안겨 준 사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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