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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52화 (253/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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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3. 조금 양보하면 상대는 더 많은 것을 바란다

253. 조금 양보하면 상대는 더 많은 것을 바란다

1.

“여기는 무슨 일로?”

홍콩에서 나는 여기서 볼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났다.

오랜만에 홍콩 집에서 쉬고 있을 때 나를 찾아온 방문객이었다.

내가 홍콩에 있을 때 리안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옆집에 사는 그를 방문객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한마디로 홍콩 집에 찾아온 첫 방문객이었다.

바로 이반 부카드였다.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 홍콩을 거치지 않나. 홍콩에 내렸을 때 주중 이맘때쯤에 자네가 홍콩에 머물고는 했다는 생각이 나더군.”

이반 부카드가 말했다.

말을 저렇게 하지만 내가 홍콩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온 것이 분명했다.

민항기를 타고 자카르타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항공편의 경유지 중에 홍콩이 있지만, 그보다는 도쿄를 거치는 항공편이 더 많았다.

내가 화요일이나 수요일 사이에 홍콩에 오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다.

하지만 류오린을 퇴사한 이후에는 홍콩에 한 달에 한두 번 오기도 어려웠다.

이반 부카드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서울에 있었으면 서울로 찾아왔겠지.’

이반 부카드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CIA를 그만둔 다음에는 내 이름으로 된 여권을 사용했다.

내 출입국 기록을 조회하는 것은 CIA 간부인 이반 부카드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워싱턴이라면······. 혹시 벌써 국토안보부로 옮기시는 것입니까?”

내가 물었다.

“맞아, 워싱턴에서 급히 찾아서 말이야. 어차피 다른 지부로 갈 예정이라서 인도네시아 지부 일은 정리했으니 굳이 시간을 끌 필요도 없더군.”

“아······ 예, 늦었지만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직급은 지금이나 비슷해.”

“그래도 워싱턴에서 일하는 것과는 다르죠. 더구나 국토안보부라면 말 그대로 세계 정보 세계의 정점 아닙니까.”

“정점은 무슨······. 국토안보부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

“아니 왜요?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국토안보부보다 더 강한 정보기관은 없는데요?”

“국토안보부는 말 그대로 테러에서 영토를 보호하는 부서야. 그런데 나는 CIA에 입사한 이후 쭉 해외에서만 근무했잖아. 본국 내에서 주로 활동하는 국토안보부는 나와 안 맞아. 난 사무실보다는 현장 체질이거든.”

이반 부카드가 말했다.

현장 요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강한 듯했다.

“그런데 왜 국토안보부에?”

이반 부카드는 국토안보부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중동 지부로 옮길 예정이었다.

말 그대로 현장으로 돌아가는 셈이었다.

더구나 최근 중동, 특히 이라크가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들의 첫 번째 관심 지역이었다.

“중동으로 파견하러 가기는 한데 내가 파견될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였거든······. 나보고 거기 가서 감시와 지원 임무를 하라더군. 그 이야기를 듣고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나도 힘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그러자면 백악관과 중앙정부에 나에게 힘을 실어 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말이야.”

이반 부카드가 말했다.

“한마디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국토안보부로 가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지금 CIA 간부들은 수준 이하야. 자네 우리가 몇 달 전에 오사마 빈 라덴을 다 잡았다가 놓친 것을 알고 있나?”

오사마 빈 라덴은 말 그대로 현재 미국의 첫 번째 적으로 911 테러 직후에 잠적해서 현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보기관은 살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정보기관이 추적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오사마 빈 라덴을 이미 몇 달 전에 잡을 뻔하다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있었지. 왜 실패했는지 아나?”

“글쎄요. 잡을 뻔했다던 이야기도 지금 처음 들어서······.”

“오사마 빈 라덴이 탄 것이 거의 확실한 차량을 공격하겠다는 요구를 위에서 바로 대답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 후에도 숨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역을 공격하려고 했더니······. 위에서 추가 조사를 지시하더군. 열흘 후에 공격 명령이 내려왔지만, 그때는 이미 도주한 다음이었어.”

이반 부카드가 열변을 토해 냈다.

처음 만난 후 그가 저렇게 열정적으로 말하는 경우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불만이 많아 보였다.

나로서는 CIA 간부들이 꼭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누가 탔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차량을 공격하고 오사마 빈 라덴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수부대를 파견해서 마을을 공격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아무래도 내가 이반 부카드와 같은 현장 요원보다는 그가 화를 내는 CIA 간부들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어제 이스라엘군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팔레스타인 건물을 공격해서 수십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 희생자 중 대부분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CIA 간부들의 편을 들기도 어려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오사마 빈 라덴 아닌가?

오사마 빈 라덴을 잡을 수 있으면 어느 정도 희생자를 있어도 잡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이번에 워싱턴에 가기 전에 자네를 보러 온 것은 자네에게 떠나기 전에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네.”

“감사 인사요?”

“국토안보부를 가는 데는 자네와 했던 일들이 큰 도움이 됐네.”

“제가 뭘 했다고요.”

“무슨 말인가? 이번에도 자네에게 큰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 일요?”

“탈레반 포로에 대한 학살 말이야. 예비선거를 이용하는 게 해결책이었네.”

이반 부카드의 말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예?”

“지난 주말에 끝난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평소 이슬람에 우호적인 발언을 했던 신시아 맥키니 후보가 탈락했네.”

CIA는 철저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된다.

그런 CIA의 부 지부장인 이반 부카드가 내가 한 말을 받아들여 진짜로 예비선거에 개입하다니······.

“그때 한 말은 단순히······.”

“알고 있네, 걱정하지 말게. 알아보니 유대 단체가 이미 반 신시아 맥키니 전선을 구축한 상태라서 내가 특별히 한 일은 거의 없네.”

‘이 인간이······!’

거의······라면 어느 정도는 개입했다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이반 부카드 독단적으로 행동인지 아니면 윗선도 관여된 것인지 걱정부터 앞섰다.

만약 윗선이 관여됐다면 자칫 정치 게이트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반 부카드가 이제야 귀국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혼자서 한 일이 아닐 것이다.

부시 정부가 막 나가고 있다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 일은 내가 모를수록 좋은 일이었다.

더는 관여되는 것은 위험했다.

“이제 민주당 의원들도 더는 미국 내에서 이번 탈레반 포로 학살은 물론이고 이라크와 이슬람을 대놓고 옹호하지는 못하겠지.”

“······.”

나는 이반 부카드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더는 말하기 꺼린다는 것을 눈치챈 이반 부카드가 화제를 돌렸다.

“이제 내부 반발은 어느 눌렀으니······. 다음 주에 딕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장관이 미국 단독으로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할 거네. 그 후에는 백악관에서 직접 움직일 거고 말이야.”

저런 극비 정보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이번에 이반 부카드가 잡은 줄은 꽤 위까지 연결된 듯했다.

나로서는 별로 반갑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제 CIA도 퇴직한 이상 CIA 인도네시아 부지부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위치였다.

이반 부카드가 국토안보부의 간부가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가 말했듯이 국토안보부는 미국 영토에 대한 위협을 막는 것이 주 임무였다.

내가 미국에 진출하지 않는 이상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지금 기세라면 내가 미국에 진출할 때쯤에는 어지간한 일로는 대통령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반 부카드가 대통령 최측근과 선이 닿았다면······?

억만장자가 된 지금도 전처럼 끌려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내 잘못이었다.

CIA를 그만둘 생각에 어지간한 일은 양보하다 보니 지금까지 끌려다니게 된 것이었다.

인간은 본래 작은 양보를 하면 더 큰 것을 바라게 마련이었다.

국토안보부 일이 바빠서 나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나는 흔들리지 않을 힘을 가져야 했다.

나에게 그 힘이란 당연히 더 많은 돈이었다.

2.

이반 부카드가 홍콩을 다녀간 다음 날 나는 W&R 빌딩으로 출근(?)했다.

류오린을 퇴직했지만 내가 회사에 온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일했던 카렌마저도······ 나를 보자 고개를 잠깐 숙이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류오린에 다닐 때 W&R 빌딩에 있던 지금도 여전히 비어 있었다.

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듯이 말이다.

정확하게는 내 짐 일부만 집으로 옮겼을 뿐 내가 일했던 그대로였다.

회의실에 갔을 때 브레이크 혼자 와 있었다.

“브레이크 씨! 오랜만이네요.”

“팀장······ 아니, 에드릭 씨 정말 반갑습니다. 몇 달 만인데 몇 년 만에 뵙는 것 기분이네요. 다른 분들은 그래도 그사이에 몇 번 만났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연락도 하시지 않아서 섭섭했습니다.”

“브레이크 씨가 바쁘게 보내셔서 그렇죠. 낮에 몇 번 왔는데 그때마다 밤에 근무하시고 출근을 하시지 않아서요.”

“그런가요? 그래도 연락해 주셨으면 제가 일을 미루더라도 시간을 냈을 겁니다.”

“하하······. 빈말이겠지만 감사합니다.”

“빈말이라니요! 에드릭 씨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투자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에드릭 씨입니다. 그런 분을 만나는 일이라면 일을 미뤄야지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여기 대표님이랑 대주주님도 노려보시네요.”

나는 슬쩍 옆에 있는 카이 황과 리안을 바라보았다.

둘은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회의실에 들어와 있었다.

“에드릭 씨와 대화를 나누면 얻는 게 많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요.”

브레이크가 대표인 카이 황을 보며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합니까? 에드릭 씨의 실력은 저도 인정하고 있으니 시간이 날 때 많이 배워 두십시오.”

“감사합니다!”

브레이크가 카이 황에게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도 허락하셨는데 아예 지금 약속을······”

“물어보고 싶으신 것이 있다고요?”

내가 브레이크의 말을 잘랐다.

그가 나를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당연히 브레이크와 따로 만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뭐 하러 남자인 브레이크를 밤에 따로 만나겠는가?

차라리 예전 홍콩에 있을 때 한창 만났던 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는 게 나았다.

시간은 꽤 지났지만 지금도 전화하면 나올 사람이 한두 명 정도는 있었다.

“영국 정부가 헤지펀드의 쇼트 셀링을 막을 것이라는 정보가 있어서요?”

“그 문제라면 큰 신경 쓸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쇼트 셀링을 막는다면 공매도나 선물과 옵션의 숏 포지션을 모두 못하겠다고 하는 것인데······. 이걸 막으면 런던 유가증권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그래서 헤지펀드의 쇼트 셀링을 중점적으로 막을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헤지펀드만 막아요? 그걸 어떻게 구분하는데요? 설사 규제한다고 해도 우회할 방법은 많습니다. 영국이 런던 금융 시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이상 실효성이 없는 제도입니다.”

그제야 안심한 듯 브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브레이크도 헤지펀드의 쇼트 셀링만을 막는다는 정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안해하는 것은 아무래도 런던 주식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조민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보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하나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법적으로는 외부인인 내 자리는 가장 끝자리였다.

“화요일 미국 소비자 신뢰지수가 발표되기 전에 모든 포지션을 하락 포지션으로 전환합니다.”

리안의 이야기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나도 회의에 집중했다.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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