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58화 (25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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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꿩 잡는 게 매다

법무법인 대하.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법무법인으로 야당 대선 후보의 비선조직 국일 팀의 핵심 구성원인 박일환의 전 직장이었다.

대하가 입주해 있는 층에서 내린 나는 접수대를 다가갔다.

“김희중 변호사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약속은 하셨나요?”

접수대의 여직원이 물었다.

“다청 홍콩 사무소의 임순 소개로 왔다면 아실 겁니다.”

여직원이 전화로 연락을 하고 얼마 후 안쪽에서 50대 후반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금테 안경에 약간 살이 찐 사내였다.

“김희중이라고 합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나는 자신을 김희중이라고 소개한 사내를 따라 들어갔다.

김희중의 사무실은 꽤 안쪽에 있었다.

“전해 듣기로는 부동산 소송 건으로 우리 회사 도움을 받고 싶으시다고?”

“맞습니다. 홍콩 투자회사인 W&R 한국 법인이 최근 부동산을 취득했는데 원주인이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소송요? 무슨 혐의로?”

“우리 회사가 자신에게 사기를 친 사기꾼들과 공범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기요?”

“어이없는 주장이죠. 한국 법인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부동산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 주인이 사기를 당해서 빼앗긴 부동산이라면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서류를 보면 알겠지만, 한국 법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나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김희중에게 건넸다.

“서류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군요. 전 주인이 명당 사채시장에서 부동산을 담보로 지수 옵션에 투자했다가 대출을 갚지 못해 넘어간 부동산을 매입한 거고요.”

“맞습니다.”

“이런 소송이라면 굳이 우리를 찾아오시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서류를 읽은 김희중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 법무법인의 중국 측 협력사인 다청을 통해서 굳이 찾아오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전 주인이 소송을 건 근거가 뭡니까?”

“그게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더군요. 전 주인이 손해를 본 옵션 투자에서 W&R 한국 지사가 이익을 봤다는 게 이유더군요. 옵션에 투자하는 회사가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자기가 손해 본 투자에서 우리가 이익을 봤다고 그게 사기 공범이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말이 안 되죠.”

“문제는 전 주인 쪽에서 우리 투자 명세와 금전 거래 명세에 대한 열람을 요청했다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투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밀 사항을 알려 달라니 이게 도대체가······.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한국 지사에서 고용했던 변호사가 법원에서 이 요구 사항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전 주인은 거래 정보 공개하기 싫으면 일부라도 부동

산을 돌려주면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쪽에서 요구하는 부동산의 가치가 200억이 넘습니다.”

“200억요?”

200억이라는 말에 김희중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

“도대체 상대 변호사가 누굽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변호사가요?”

“홍도현 변호사라고 하더군요.”

내가 말했다.

“아······.”

이름을 듣자 김희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에 서울 중앙지법에서 영장 전담 판사였던 홍도현 변호사라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네요.”

“저희 쪽 변호사도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창 전관예우를 받는 시점이라서 서울은 물론이고 수도권에서는 어지간한 일은 대부분 가능할 거라면서요.”

“참 안 좋은 악습인데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겠네요. W&······R 한국 지사에서는 거래 정보나 금전 거래 명세는 절대 넘길 수 없다는 뜻이시겠죠?”

“그렇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파기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손해가 한두 푼이 아닙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차라리 200억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보상을 하고 일을 해결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다른 법무법인과는 달리 저희 대하는 설립 초기부터 재판이 주력이었습니다. 흔히 저희를 불패 대하라고 부르죠.”

“확실히 해결할 수 있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내 질문에 김희중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법률 문제에 100%는 없습니다. 하지만 홍도현 변호사를 상대할 수 있는 법무법인을 원한다면 저희 대하보다 더 가능성이 큰 곳은 없을 겁니다.”

김희중이 말했다.

“100%는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예. 어디를 가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 100% 공개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곳은 찾기 어려울 겁니다.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사기겠죠. 적어도 현재로서는 홍도현 변호사를 상대하는 데 대하보다 나은 곳은 없을 겁니다.”

김희중이 나를 설득했다.

“그런 말을 하시는 근거는 박일환 변호사님 때문인가요?”

내 말에 김희중이 당황했다.

잠시 후 김희중이 입을 열었다.

“박일환 변호사님은 현재는 대하를 떠나신 분입니다.”

“그래요?”

“예.”

김희중이 대답했다.

“이번 사건으로 박일환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죠?”

“꼭 그렇다기보다는 현재 대하에 근무하는 변호사분들도 훌륭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거······ 홍콩에 전화해서 따져야지 안 되겠네요.”

“예?”

“사정을 이야기하니 차기 대통령 최측근인 박일환 변호사가 세운 법무법인이라면서 아무리 상대 변호사가 전관 변호사라도 걱정할 것 없다고 이야기를 해서 찾아왔는데 지금은 떠난 사람이라니······.”

“그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변호사님 말씀대로 이제 박일환 변호사님이 대하와는 상관이 없는 분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큰 법무법인이라는 김앤리를 찾아가는 게 나을 뻔했네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희중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 슈트 소매를 잡았다.

“잠시만요. 박일환 변호사님이야 창립 변호사분인데 그만두셨다고 해서 저희와 인연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죠. 특히 제게는 스승 같으신 분이라서 자주 뵙고 있습니다.”

김희중이 말했다.

“그거 다행이네요.”

나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알아보니 서울에서 앞으로 1년 반 동안 홍도현 변호사를 상대할 수 있는 변호사는 박일환 변호사뿐이라고 하던데요.”

전관예우의 기간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였다.

서울 같은 경우 홍도현처럼 영장 전담 판사를 하다가 그만두면 한동안 한 달 수입이 최소 5억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주 완벽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상대측 요구 자체가 무리한 주장입니다. 홍도현도 무리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제가 수임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물러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그렇게 물러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제 뒤에 박 선배님이 있기 때문이지만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저는 이왕이면 확실하게 박일환 변호사님이 나서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건 어렵습니다. 알아보고 오셨겠지만, 지금은 박 선배님은······.”

“바쁘시죠. 대하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시느라······.”

“예. 그렇습니다.”

“5억 드리죠.”

나는 김희중을 보며 말했다.

“예?”

“박일환 변호사님께 제 말을 전해 주시기만 하면 김희중 변호사님께 5억 드리겠습니다. 현금으로요.”

김희중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말을 하지 않았지만, 김희중의 눈에서 돈에 대한 욕심과 나에 대한 경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혹시 처음부터 사건 의뢰가 아니라 박 선배님을 소개받기 위해서 오신 겁니까?”

김희중이 나를 향해 말했다.

그는 나를 향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한눈에도 화가 났다기보다는 욕심이 앞선 모습이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온 것은 맞습니다. 다만 제가 정공법보다는 빠른 해결책을 선호해서요. 홍도현 변호사도 제 뒤에 박일환 변호사님이 있는 것을 알면 포기할 것 아닙니까. 아무리 전관이라고 해도 바보가 아닌 이상 검찰을 장악하고 사람과 각을 세울 리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박일환 변호사님께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사람을 소개받는 대가로 5억을 쓰는 제가 사건을 해결해 주시는 분께는 얼마를 쓰겠습니까?”

“잠시만요!”

김희중이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런 말을 박 선배님 앞에서 했다가는 아마 몇 마디 하지 못하고 쫓겨날 겁니다. 박 선배님은 돈만으로 움직이실 분이 아닙니다.”

나는 김희중의 말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았다.

박일환을 돈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 가소로울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돈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는 있었다.

박일환은 검사장 출신이었다.

전관예우를 생각하면 퇴직하고 1년 사이에 모은 돈이 최소한 수십억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퇴직 후에 세운 법무법인을 인수 합병을 통해 한국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법무법인으로 키워 냈다.

아마도 본인은 물론이고 자식이나 어쩌면 손자 대까지 쓰고도 남을 돈을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박일환은 대선에 관여하고 있었다.

선거 그것도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전국 단위 선거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게 마련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후보들이 쓴 돈이 수천억이 넘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올해 6월과 8월에 열린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이 수백억을 넘게 썼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재벌이 아닌 이상 개인 재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여기에 당선 후에 들어갈 통치 자금까지 생각하면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나는 김희중에게 박일환 소개를 부탁해야 하는 처지였다.

“제가 박일환 변호사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지 돈만이 아닙니다. 박일환 변호사님께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증거도 있고요.”

“도움이 될 정보요?”

김희중은 다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 제가 알기로는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이번에도 총리 인준안을 부결시킬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무언가 대답하려던 김희중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순간 몸을 뒤로 젖히며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제가 듣기로는 그렇습니다.”

“저는 야당 관계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의외네요. 박일환 변호사님과 친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까 자주 만나신다고 이야기하시지 않았나요?”

“만나도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김희중이 딱 잡아뗐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만나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이 대선에 깊이 관여했는데도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어쨌든 그래서요. 무슨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겁니까?”

“총리 인준안을 부결시키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연속에서 총리 인준을 거부하기에는 야당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김희중 변호사님은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요.”

“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야당이 총리 인준을 거부할 명분이 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요?”

“예. 아마 이번에도 총리 인준안을 부결시키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선까지 정국 주도권은 야당이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무슨 정보인데요?”

김희중이 물었다.

“무슨 정보인지는 박일환 변호사님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내 말에 김희중이 쓰고 있던 가면이 한 꺼풀 벗겨졌다.

“나한테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말인가?”

김희중의 말투가 변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어디서 무슨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출처도 불명확한 이야기를 가지고 박 선배님을 만났다가는 위험할 겁니다. 그러면 W&R 한국 지사의 거래 정보에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출처가 확실하다면요? 예를 들어 미국 대사관이 같은 곳에서 얻었다면요?”

“미국 대사관?”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인지 김희중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김희중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는 에드릭 손이라고 합니다.”

“분명 W&R 한국 지사 일로 찾아왔다고······?”

“대사관에서 일하기 전에 W&R 홍콩 본사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대사관에서는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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