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59화 (260/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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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쓰러져야 한다

- 이것 죄송하게 됐습니다. 박 선배님이 그런 일로 만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씀하시네요.

김희중은 말했다.

박일환이 나와의 만남을 거절했다는 이야기였다.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었다.

“사실입니까? 제가 가진 자료에 관해 이야기했는데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다고요?”

- 예. 만약 정부가 야당 정치인 친인척 병역을 조사했고 그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있다면 요즘 세상에 결국 세상에 알려지지 않겠냐면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김희중이 대답했다.

나는 순간 욕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결국, 밝혀지지 않겠느냐고?

세상은 동화가 아니었다.

힘을 가진 자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리 진실이라도 덮이기 마련이었다.

대선 기간이었다.

이런 시기에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대선 주자들이었다.

대선 주자에 관한 이야기를 단순히 사실 보도만을 위해 기사를 내는 언론사는 없었다.

대선 주자에 관련해서 나오는 이야기나 기사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각 대선 캠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을 비선 조직을 이끄는 박일환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세상에 결국 알려진다는 둥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에게 알아서 언론사에 제보하라는 말이었다.

나를 만나 주지도 않으면서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화가 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왕 말이 나온 상황에서 거부하기도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나는 박일환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박 선배님이 나중에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김희중이 말했다.

당장 박일환을 만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죠.”

이 정도 미끼라면 박일환도 걸려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 예상을 빗나간 셈이었다.

- 그리고 소송 건은 저희 대하에 맡겨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하에요?”

- 예. 선배님께도 말씀드렸는데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에······ 자연스럽게······.

김희중이 전한 박일환의 말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단순한 말버릇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정부 내사 자료를 알리면 그 대가로 소송을 해결해 줬다는 의미라고 봐야 했다.

소송 해결은 핑계일 뿐 진짜 목적인 박일환을 만나지 못하게 된 나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 웃으면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네요.

통화를 끝내고 나는 앞에 앉아 있던 정윤호와 마상혁을 바라보았다.

외부 통화를 통해 대화를 모두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두웠다.

“정 대표님과 마 소장님은 각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데 성공했는데 저만 실패했네요. 아무래도 내가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의 위세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나는 박일환이 나를 만나 주리라 생각했다.

야당의 정국 주도권 장악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는 총리 인준안을 부결시키는 게 필요했다.

하지만 연속으로 총리 인준안을 부결시키는 것은 야당으로서도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명분이 필요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그런 명분을 줄 수 있었다.

대놓고 미국 대사관의 직원이라는 사실까지 밝혔는데도 거절당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윤호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기는요. 자료를 공개하면 소송을 해결해 준다는데 공개해야죠. 마 소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나는 정치인 친인척 병역 내사 자료를 마상혁에게 넘겼다.

“적당한 기자를 골라서 이 기사를 터트리세요. 되도록 빨리요.”

“알겠습니다. 바로 내일 1면 뉴스로 내보내겠습니다.”

마상혁이 대답했다.

“괜찮겠습니까? 기사가 나오면 야당이 정국을 장악하고 그렇게 되면 판도가 굳어질 텐데요. 그렇게 되면 비선 조직은 국일 팀은 고사하고 야당 캠프에 참여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어려워질 텐데요.”

정윤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박일환이 만남을 거부한 이유는 굳이 나를 만나지 않더라도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겠죠.”

“예. 여당 후보의 지지율은 10%대이고 월드컵 성공으로 축협회장의 인기가 높기는 하지만 전국 단위 선거란 조직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이길 수가 없으니까요.”

“그것도 그거지만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자료를 받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그에게 나는 전관예우 변호사 한 명을 해결하지 못해서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 미국인일 뿐이니까요. 검찰을 움직일 수 있는 박일환이 거래를 제안한 것은 그로서는 나름대로는 배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이런 배려는 내가 한국인이고 미국 대사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었다면 검찰을 통해서 W&R 한국 지사를 조사하겠다는 협박을 했겠지.’

박일환은 나를 만나지 않는 이유도 그리고 이런 배려를 하는 이유도 내 뒤에 미국 정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실패했으니 캠프 합류에 성공한 두 분이 일을 열심히 하셔야겠네요.”

내가 말했다.

“국무총리 인준안이 부결되고 정국 주도권을 야당이 장악하게 되면 여당 내 동요가 심해질 겁니다.”

“그렇겠죠. 지금 여당 대선 주자는 당내 비주류 출신이니까요. 그나마 높던 지지율도 10%대로 떨어졌고 축협회장이라는 대안이 있으니까요.”

현 여당 대선 주자는 여당 내에서도 비주류였다.

당내 세력 기반이 부족한 비주류 출신인 그가 대선 주자로 선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번 여당 대선 후보 경선이 이른바 국민 참여 경선 방식으로 치러졌기 때문이었다.

기존 당내 대선 후보 경선과는 달리 비당원의 투표가 50% 절반 이상 대선 후보 선출에 반영되었다.

비주류였지만 국민적 인기가 높았던 지금 여당 대선 후보를 이길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특히 여당의 기반이었던 호남에서 승리가 결정적이었다.

이런 승리를 바탕으로 한때 여당 후보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한때 60%가 넘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 후보가 선출된 직후부터 대통령 측근과 아들들의 비리 의혹이 쏟아져 나오면서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월드컵 승리를 바탕으로 축협회장이 대선에 뛰어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야당 대선 후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여당 후보가 아닌 다른 대안이 생긴 것이다.

여당 후보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앞으로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마상혁이 물었다.

“현재 여당 내에서 축협회장과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말이 단일화지 실제로는 여당 후보가 물러나고 축협회장을 당내에 영입해서 대선 후보를 교체하자는 이야기죠.”

“맞습니다. 여당 의원들 쪽에서 거의 매일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마상혁이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정윤호에게 돌렸다.

“여당 후보는 사퇴할 생각이 없죠?”

내 질문에 정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사퇴하면 정치 생명이 끝나는데 사퇴하겠습니까? 당내에는 비주류지만 당 외부에는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많으니 이번 대선에서 패하더라도 차기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윤호가 대답했다.

“현 여당 대선 후보가 당선된 과정은 말 그대로 드라마였죠. 그리고 그런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단순한 지지자를 넘어 연예인의 팬클럽에 가까울 정도로 열성적이고요. 자신의 힘으로 만든 후보니까요.”

내가 말했다.

“여당 후보 지지자들이 그런 면이 있기는 하죠.”

정윤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면에서 여당 후보에게 후보 사퇴는 그런 팬을 저버리는 행동입니다. 무엇보다 현 여당 대선 후보는 과거 무모해 보이는 지역에서 선거에 출마하고 패배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패배할 것을 안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기야 하죠. 이번 선거는 여당 대선 후보에게는 패배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이기는 선거일 수 있으니까요. 선거에 패하더라도 차기를 노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그건 여당 대선 후보 개인의 승리일 뿐이지 여당으로서는 패배일 뿐이죠. 그게 여당 내에서 후보 교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유겠죠. 대안이 없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은 축협회장이라는 대안이 생겼으니까요.”

“그 일 때문에 캠프 내에서 불만이 많습니다. 당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당내 중진들이 자제를 시켜야 하는데 당권을 장악한 주류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요.”

“호남에 기반을 둔 당내 주류로서는 영남 출신인 현 여당 후보나 축협회장이나 외부인이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같은 외부인이라면 이왕이면 지지율 높고 돈도 많은 축협회장이 낫다고 생각할 겁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정윤호가 입을 열었다.

“캠프에 당 주류가 축협회장을 영입하기 위해서 후보를 당에서 쫓아낼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 될 수도 있겠군요.”

정윤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당 의원들은 이미 여당의 단맛을 봤으니 야당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겠죠.”

한국 속담에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도 안 남긴다.’는 말이 있다.

가난했다가 부자가 되면 예전 가난한 시절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야당이었다가 여당이 되면 다시 야당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 소장님이 여당을 흔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 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마상혁이 물었다.

“간단합니다. 적극적으로 여당을 흔드는 데 나서도록 캠프에 건의해 주십시오. 이왕이면 소장님께서 직접 나서는 것도 괜찮고요. 활동비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쓰시고요.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이 부결되고 야당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면 여당 내에서 동요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겁니다.”

이게 내가 야당에 총리 인준을 거부할 명분을 주려는 이유였다.

여당이 동요해서 뭔가 행동을 하지 않으면 현 구도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여당 대선 후보를 축협회장으로 바꾸시려는 겁니까?”

정윤호가 물었다.

“그래도 되고요. 하지만 후보를 교체하고 싶어 하더라도 일단은 명분으로 단일화를 내세울 겁니다.”

“그렇겠죠. 아무리 여당 주류가 여당 대선 후보를 싫어하더라도 처음부터 대놓고 물러나라고 주장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야당 후보를 긴장시키기 위해서는 단일화든 아니면 축협회장을 여당 대선 후보로 내세우든 일대일 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야당 후보는 올 초에 내 주었던 지지율 1위를 다시 찾은 상태였다.

여기에 비록 지난 대선에서 져서 야당이 됐지만 지금 야당은 40년 가까이 정권을 차지한 기득권 정당이었다.

이제 겨우 집권 5년 차에 불과한 여당보다 조직력이 월등했다.

반면 여당 후보는 지지율이 모자랐고 축협회장은 선거를 치를 조직조차 없었다.

이대로라면 대선은 해 보나 마나였다.

지금 유일한 희망은 여당에서 현 후보를 사퇴시키고 축협회장을 영입하든가 아니면 둘이 단일화를 하는 방법뿐이었다.

현 대선 정국에서 변수를 만들려면 야당 후보를 상대하는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야 했다.

일어나려면 먼저 쓰러질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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