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63화 (264/270)

(263)

#264. 목마른 자와 손을 잡는다.

“정경유착이네요?”

주치앙에게서 들은 인도네시아군 소유 사업 방식은 군부가 지방에 소유한 기업들을 통해 선거를 돕고 그렇게 당선된 지방자치단체 대표나 의원들에게 이권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군 소유의 기업이라는 점이 특이할 뿐 전형적인 정경유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그렇죠. 어쨌든 칼리만탄주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군부뿐입니다.”

“군부라 설득하기 쉽지 않은 상대네요.”

수하르토 시절 가지고 있던 막강한 권력은 잃었지만, 인도네시아군의 힘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네시아군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몇 달 전 열린 동티모르 학살에 대한 재판이었다.

인도네시아 법원은 1999년 동티모르 학살에 관여됐다고 기소당한 인도네시아군 관계자 전원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내렸다.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실상 동티모르 독립을 허용했음에도 동티모르 학살에 인도네시아군이 관여한 이유는 좀 복잡했다.

동티모르는 처음부터 인도네시아와의 다른 지역과는 연관성이 없는 지역이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주민들 대다수도 인도네시아와는 달리 기독교도였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70년대 중반 해외 모든 식민지를 포기하면서 무주공산이 되었다.

그때 동티모르를 장악한 것이 공산주의 계열 무장 세력이었다.

동티모르와 가까운 인도네시아와 호주는 물론이고 한창 냉전 중이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 누구도 동티모르가 공산국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결국, 미국과 호주의 동의를 얻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격적으로 동티모르를 합병했다.

당연히 이런 합병에 반대한 동티모르인들은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수하르토 정권 시절 인도네시아군은 독립을 요구하던 동티모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하지만 수하르토 정권이 경제 위기로 붕괴하고 더는 동티모르의 독립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민투표로 독립을 허용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와는 달리 인도네시아군은 동티모르 독립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군에게 동티모르는 자신들이 피를 흘리며 지켜 온 영토였기 때문이었다.

정식으로 국민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군의 사주를 받은 친인도네시아 민병대가 동티모르 전역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동티모르 학살이 멈춘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유엔에 평화유지군 파견을 요청한 이후였다.

결과적으로 동티모르 학살은 인도네시아군이 인도네시아 정부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인도네시아군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군 지휘부를 소개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지금 지휘부보다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전 특수부대 사령관이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정치안보장관을 통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수비안토와 유도요노요?”

“예.”

“둘 다 거물이네요.”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였고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와히드 대통령과 메가와티 대통령 밑에서 장관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야 하죠.”

주치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전 사령관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전에 무슨 사업을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지금은 밥 하산이 운영하던 펄프 회사와 플랜테이션 농장을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밥 하산이라면······.”

“예. 지금 감옥에 있는 바로 그 밥 하산 전 장관입니다.”

내가 밥 하산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수하르토 정권에서 일했던 고위 관료 중에서 유일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대통령 시절 저지른 부정으로 감옥에 있는 사람의 회사를 그 전 사위가 인수해서 운영한다······. 굉장히 수상해 보이네요.”

“뭐, 그렇죠. 감옥에 갇힌 상태에도 내놓지 않던 회사를 헐값에 넘겼으니까요. 그래서 사실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재산인데 관리하고 있다가 군을 그만둔 사위에게 넘긴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수비안토 사령관이 밥 하산의 다른 비리를 알고 협박을 해서 회사를 강탈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말이 많습니다.”

주치앙이 상황을 설명했다.

“어쨌든 그 수비안토 사령관이 이번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죠?”

“예! 인도네시아군 최고 정예 부대인 특수부대의 사령관이었고 수십 년간 군 요직을 다 거친 인물이니까요. 여전히 골카당의 당원이기도 합니다.”

“군부와 골카당 내 막강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 본다면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좋은 인물이기는 하네요.”

“그렇죠. 다만······ 이야기했다시피 돈과 권력 모두 부족한 것이 없는 인물이다 보니 설득하려면 꽤 많은 것을 줘야 할 겁니다.”

“그렇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비안토 사령관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아쉬운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사업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가 혹할 만한 대가를 줘야 하는데······.

뭘 줘야 할지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은 제가 알기로는 군 시절에는 그렇게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일을 맡기기는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내가 직접 접촉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와히드를 몰아내기 위해 작전을 하던 시절 이반 부카드를 통해서 그를 끌어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장관 사퇴와 이어진 경찰청장 해임이 와히드 탄핵을 밀어붙일 도화선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에 딱히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이 군 시절 군 주류가 아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4성 장군까지 올라갈 정도로 군 내부에서는 인정받던 인물입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다면 와히드와 메가와티 두 대통령이 장관으로 임명하지 않았겠죠.”

“그것도 그것이지만 무엇보다 와히드 대통령 시절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치 안전 장관으로 가장 역점을 두어 추진한 일이 바로 군 개혁이 아닙니까! 그 일로 현재 군 지휘부와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물론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장관이 현재 군 지휘부와 사이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장관은 고위 장성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민에게 지지를 받는 군 출신입니다. 더구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에게는 그를 뒷받침할 정치 세력도 있습니다.”

“정치 세력이요?”

“예. 메가와티 대통령에게서 정치안보장관에서 또다시 해임된 후 지지자들을 모아서 정당을 창당했습니다. 다음 총선에서 많아 봐야 5% 정도 의석수를 차지하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그래도 군으로서는 의회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유일한 인물이죠.”

“하긴······. 얼마 전 헌법 개정으로 인도네시아군은 군부에 배정되었던 의석을 잃기는 했죠. 예전부터 가까운 골카당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골카당은 군이 아닌 관료 출신이 장악하고 있고요.”

“예. 군부로서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장성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의 말을 무시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야 하죠.”

인도네시아군이 여전히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도네시아군의 전성시대가 끝났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도네시아군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시대의 흐름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인도네시아군이 이런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도네시아군으로서는 장성 출신이면서도 대중에게 이미지가 좋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같은 정치인은 귀중한 자산이었다.

“가능성이 낮지만 까놓고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이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주치앙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아무리 이미지가 좋다고 해도 군 장성 출신이었다.

아직도 수하르토 시절 경험이 생생한 인도네시아에서 군 장성 출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저도 뭐······.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주치앙이 말했다.

그도 스스로도 자신의 이야기가 가능성 없다고 생각하는지 말을 하면서도 멋쩍은 표정이었다.

“누가 알겠습니까. 진짜 대통령이 될지······. 일단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에게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말했다.

메가와티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고 단숨에 야당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녀가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쿠데타로 쫓겨난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람들의 동정을 살 만한 이야기가 있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도 와히드 대통령과 메가와티 대통령에게 직언했다가 해임당했다는 사람들의 동정을 살 만한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이 정도 이야기로 2년 후에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얼마 전 헌법 개정으로 인도네시아 대선에 후보를 내려면 총선에서 20% 이상의 지지율을 얻거나 의회 의석 중에서 25%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제 민주당이라는 신생 정당을 창당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대선에 나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두 사람 중 누구에게 연락할까요?”

주치앙이 물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에게 연락하죠!”

“예? 수비안토 사령관이 아니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에게요?”

“예. 수비안토 사령관은 설득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에 비해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은 이제 막 창당을 했으니 필요한 것이 많을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주치앙이 머뭇거렸다.

“왜요?”

“아시겠지만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도 그렇게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와히드 전 대통령이나 메가와티 대통령에게 직언했다가 해임당한 인물이니까요.”

주치앙이 말했다.

“글쎄요. 청렴하고 강직하기만 한 인물이 4성 장군에 오를 정도로 인도네시아군이 만만한 곳이던가요?”

어느 나라 군대나 장성은 정치인이나 다름없었다.

능력만으로 승진할 수 있는 것은 영관급까지였다.

그 후에 승진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력이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는 어느 나라 군대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수하르토 정부 시절 군에서 장성에 오른 인물이었다.

수하르토 정부가 붕괴한 이후에는 4성 장군이 됐고 퇴역한 이후에는 군 개혁을 주도했다.

정치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더구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은 와히드 전 대통령이 실각하고 메가와티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부통령에 출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부통령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요.”

나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와히드 정부에 이어서 메가와티 정부에서 정치안보장관이 된 것은 그의 야심과 정치력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장관의 해임이 와히드 전 대통령 사퇴의 도화선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메가와티 정부에서 자리를 보장받을 수는 없었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독선적인 성격이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측근의 직언도 무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전임 대통령의 명령에 항명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를 장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관 중 하나인 정치안보장관에 임명하고 싶어 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부통령에 출마한 것 자체가 자신의 지분을 받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그쪽과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주치앙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다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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