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68화 (269/270)

(268)

#269.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다

1.

서울로 돌아온 후 마상혁은 내 지시를 따랐다.

찌라시를 통해 홍콩 W&R이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우주증권이나 대현증권을 인수한다는 정보를 퍼트린 것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하는 대로 했습니다만······.”

마상혁이 고개를 숙였다.

“어쩔 수 없죠. 마 소장님 잘못이라기보다는 제 잘못이죠.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고 시기도 나빴고요.”

나는 마상혁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W&R 한국 지사 수익률 정도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거로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네요.”

이름이 알려진 사람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너는 네 생각보다 안 유명하다.’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였다.

W&R 한국 지사는 2천만 달러를 투자해서 시작한 만큼 수익률 측면에서는 W&R 홍콩 본사 수익률보다는 낮았다.

그렇지만 그건 홍콩 본사의 수익률이 높아서지 절대 한국 지사의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구나 류오린을 통해서 투자 정보를 감췄던 홍콩 본사와는 달리 한국 지사의 투자 정보는 이미 한국 증권사를 통해서 흘러나갔다.

이런 일을 보고 나는 W&R 한국 지사의 수익률 정도라면 여의도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 여의도에서 찌라시를 제작에 참여했던 마상혁은 영입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마상혁을 통해서 W&R 한국 지사도 아니고 홍콩 본사가 한국 증권사를 인수한다는 이야기를 퍼트렸음에도 내가 알아본 여의도 반응은 차가웠다.

한마디로 뭔 헛소리냐는 것이다.

외국 유명 투자 은행도 아니고 W&R이라는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홍콩 회사가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증권사를 인수한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근거가 없는 헛소문으로 생각한다고요?”

“예. 우리 회사 이름이 생소한 것도 생소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최근 코스닥 주가 조작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마상혁이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주 한국 주식 시장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연이은 코스닥 기업들의 주가 조작 사건이었다.

28일에는 세 명의 코스닥 기업 대표가 한꺼번에 주가 조작으로 고발당하는 일이 생겼다.

그중에는 한때 코스닥의 황제주라고 불렸던 모디야소프트의 사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당장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보유한 주식 가치가 1,500억 원이 넘어 신흥 부호라고 평가받았던 인물이었다.

“하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 주가 조작 영향이 어느 정도 갈 것 같습니까?”

제러미 하에게 물었다.

“어쩌면 꽤 오래 갈지도 모릅니다. 특히 코스닥의 경우에는요.”

제러미 하가 대답했다.

“그래요?”

“예. 모디야소프트도 그렇지만 이번에 주가 조작으로 적발된 기업들은 1998년 한국의 벤처 붐이 불 당시 설립되어 2001년에 상장된 기업들입니다. 그렇게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의 수가 작년 2001년에만 170개 정도 된다더군요. 그중 상당수는 전자 통신 관련 기업들이고요. 문제는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닷컴 버블이 붕괴한 이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전

자 통신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그건 그렇죠.”

전 세계적으로 통신 전자 업종 기업들의 주가는 말이 아니었다.

단순히 닷컴 버블이 꺼진 영향이 아니라 실제 수익성 자체가 악화하고 있었다.

이런 실적 악화로 현재 전 세계적인 전자 통신 기업 중에서 몇 년 사이 대표가 바뀌지 않은 기업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기존 기업들도 매출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설립된 지 이제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기업들의 수익성이 좋을 리 없죠. 더구나 한국의 경우에는 주가 조작에 대한 처벌도 약해서······.”

제러미 하가 말을 흐렸다.

“하긴, 한국은 주가 조작이 적발된다고 해도 기소되는 경우도 적고 그나마도 3년 이상 걸린다더군요. 당연히 그사이에 주가 조작으로 얻은 이익 대부분을 빼돌려서 환수되는 액수도 거의 없고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내 말에 제러미 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면 저라도 주가 조작으로 한탕 해서 한몫 챙기겠습니다. 이건 완전히 남는 장사죠.”

우리 둘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정윤호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한국 정보기관 직원 출신이었던 그로서는 우리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정보기관에서 퇴직했다고는 하지만, 교포라고는 하지만 미국인 둘이 옆에서 한국을 비난하는 것에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주가 조작도 주가 조작이지만 지금 온 나라의 관심이 이번 태풍 피해에 집중된 것도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워낙 피해가 크다 보니······.”

정윤호가 화제를 돌릴 생각인지 태풍 피해를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마상혁이 정보지에 우리의 증권사 인수 정보를 올리기 전날인 일요일 한국은 태풍 ‘셀마’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한반도 동남부를 휩쓸고 간 태풍 ‘셀마’에 이재민만 몇만 명이 넘고 재산 피해는 아직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계 회사가 한국 기업을 인수한다는 정보에 관심을 둘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날씨도 도와주지 않네요.”

얼마 전 유럽과 중국도 수해로 큰 피해를 보았을 때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단지 수해로 인한 주가 영향만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태풍이 내 계획을 망치고 보니 조금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죠.”

나는 마상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마 소장님은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정보지를 통해서 흘려 주세요. 아무래도 우리에 대해서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으니 일단 알려야죠.”

“알겠습니다.”

마상혁이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다시 제러미 하에게 돌렸다.

“그리고 하 대표님은 인수할 소규모 증권사를 알아보세요.”

“증권사를요?”

제러미 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 제가 들은 정보로는 한국 정부에서 한동안 신규 증권사 허가를 불허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지난 8월에 개설된 BNP파리바증권이 마지막이라고 하더군요. BNP파리바증권도 신한은행과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거라는 정보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기존 증권사 인수 금액이 올라가겠군요?”

“예. 이 소식대로라면 우주증권이나 대현증권을 인수하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증권사 인수금액이 올라가기 전에 되도록 빨리 찾아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러미 하가 대답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정윤호를 바라보았다.

“정 대표님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매입에 조금 더 박차를 가해 주세요.”

“예산은 어느 정도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요. 부족하면 제가 홍콩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드릴 테니까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리안에게서 W&R 본사에서 홍콩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인 투자금을 가지고 있는 W&R이 돈을 빌려야 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홍콩 금융 기관으로서는 W&R 같은 우량 투자 기업이 돈을 많이 빌릴수록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홍콩 금융 기관 이해 관계자 상당수는 W&R이 최근 조성하고 있는 각종 투자 펀드의 투자자들이기도 했다.

투자를 받으면서 대출도 함께 받게 생긴 셈이었다.

리안의 이런 요청에 나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가 유지되고 있었다.

한국은 단기금리가 아직 5% 내외였지만 기업 대출 금리는 6%대 부동산 대출 금리는 7.5~8% 정도였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제로금리였고 홍콩이나 싱가포르만 가도 이자율이 1%대였다.

환율이 안정적이라면 홍콩에서 돈을 빌려서 한국에 들여와 부동산을 사는 것만으로도 이익인 셈이었다.

물론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주식에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부동산에 투자하는 금액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특히 전 세계적인 저금리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홍콩에서 돈을 빌려 한국 부동산 투자하는 것은 수익성이 높은 투자였다.

2.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예전에 만났던 바에서 만난 엘리어스와 나는 형식적인 인사를 나눴다.

잠시 가까워졌던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게 꼭 엘리어스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근본적으로 그와 내가 서로에 관한 생각 자체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엘리어스는 내가 자신의 지시를 완전히 따르기를 원했고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엘리어스는 그런 나를 누르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반감이 커졌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내가 잠시 숙이고 넘어갔으면 아마 지금은 서로 큰 도움이 되는 사이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나는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는 일을 견디지 못했다.

이제 나와 엘리어스의 관계는 사무적인 거래 관계였다.

나로서는 지금, 이 관계가 오히려 편했다.

“한국 정부 움직임에 대한 정보는 잘 받았습니다.”

“에드릭 씨 회사가 증권사를 인수한다는 소문을 듣고 필요한 정보 같아서 전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사실입니까?”

엘리어스가 말했다.

“예. 뭐 우주증권이나 대현증권 같은 대형 증권회사는 아니지만, 증권회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보지를 통해 듣기는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군요.”

엘리어스가 말했다.

마상혁의 정보지를 통해 퍼트린 소문이 정작 원하는 사람들이 아닌 엘리어스의 귀에 들어간 셈이었다.

조금은 이상한 일이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의 엘리트 외교관인 엘리어스와 증권가 정보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한국 증권가 정보지까지 보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안 봅니다.”

엘리어스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럼······?”

“대사관 일을 도와주는 한국 언론계 사람 중에서 한국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는 미국을 위해서 일하는 한국인이 많았다.

정치권이나 경제계는 물론이고 언론계에도 그런 사람은 많았다.

특히 자신이 알아낸 비밀 정보를 언론사보다 미국 대사관에 먼저 전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비밀 정보를 넘긴다고 한국인을 처벌할 리가 없었다.

이들은 미국 정부에 협조함으로써 언론사에서는 출세 코스라고 할 수 있는 미국 특파원 파견에 유리했다.

미국 특파원으로 일할 때도 미국 정부의 호의를 받을 수 있었다.

기자들에게 미국 정부에 비밀 정보를 먼저 주는 것은 위험은 적으면서 대가는 큰 일이었다.

미국 특파원으로 가는 기자들이나 특파원으로 일하다가 한국 언론사의 간부가 된 사람 중 상당수는 어느 정도 미국의 정보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W&R을 어떻게 알고······?”

내가 물었다.

정보원이 있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가 W&R에 관한 이야기를 엘리어스에게 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정보원이 있다고 엘리어스가 한국의 모든 정보를 전해 들을 리가 없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에드릭 씨나 W&R 투자회사에 관련된 소식이 있으면 전해 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한국 정보원에게 나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는 말이었다.

엘리어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해는 마십시오. 그냥 이번처럼 단순히 도울 일이 없나 알아봐 달라는 정도였으니까요.”

믿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아마도 단순히 기자에게 내 이야기를 부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쪽에서 W&R이 한국의 대형 증권사를 인수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이야기가 증권가 정보지에 실렸다는 말을 해 주더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조금 불쾌하네요. 제가 도움이 필요하면 먼저 엘리어스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나온 것은 그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선의로 한 일인데······. 불쾌하다면 죄송합니다.”

엘리어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미안하면 다음부터는 하지 않으시면 되죠.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고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런······ 단단히 오해하신 것 같네요. 제가······.”

“아닙니다.”

나는 엘리어스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어쨌든 이번은 제가 도움을 받았으니 저도 엘리어스 씨에게 정보를 하나 전해 드리죠. 17차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임위원 수가 이전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임위원 수가 달라진다는 내 말에 엘리어스가 많이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앙정치국 상임위원이라면 중국 지도부 아닙니까? 그 숫자가 달라진다고요? 정원은 7명으로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무슨······!”

엘리어스는 당장이라도 내 멱살이라도 잡을 듯한 표정이었다.

“정치국 상임위원 수야 항상 변해 오지 않았습니까? 최대 11명이었을 때도 있었고 적게는 3명이었을 때도 있었고요.”

“그거야 옛날이야기 아닙니까? 7명은 죽은 덩샤오핑이 당내 세력 균형을 위해서 정한 숫자인데······. 그걸 누가······. 장쩌민 주석입니까?”

“그럼 누구겠습니까?”

내가 되물었다.

중국에서 그런 권력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도대체 몇 명으로 변하는 겁니까? 숫자가 줄어들 리는 없을 테고······. 누가 추가로 들어가는 겁니까? 몇 명이나요?”

엘리어스가 따지듯 물었다.

“저야 알 수 없죠. 제가 들은 이야기는 17대 중앙정치국 상임위원 수가 변할 수도 있다는 말이 중난하이에 돈다고 정도입니다.”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엘리어스가 말했다.

“이번도 우연히 얻은 정보라······. 그리고 이미 엘리어스 씨가 전해 준 정보에 대한 대가는 치른 것 같은데요?”

“부탁드립니다. 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도 정보를 알게 되면 꼭 알려 주십시오. 중국 차기 지도부에 관한 정보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

“그런 정보라면 제가 굳이 엘리어스 씨를 통해서 정부에 전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 사이에 그 정도 신뢰는 없는 것 같은데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것은 딱 질색입니다. 제가 어디서 일했는지는 엘리어스 씨도 아실 테고······. 우리 세계에서는 그런 일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죠.”

“그건 호의로······.”

“그런 호의 필요 없으니······ 제 도움을 받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준비해 주십시오. 적어도 아직은 엘리어스 씨가 거래 상대로는 쓸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앉아 있는 엘리어스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거리에는 눈에 안대를 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눈병이 유행해서 학교가 임시 휴교를 했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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