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하 키치웨딩-2화 (2/132)

2화

카페 안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유리문이 연신 여닫히면서 문 위에 달린 종이 미친 듯이 짤랑거렸다.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권이태가 남자를 두들겨 패는 타격음이 평화롭던 카페를 산산이 부숴 놓았다.

래화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남자들끼리 시비 붙은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저들 딴에는 잔뜩 흥분해서 주먹을 휘둘러 댔지만, 허우적거리는 꼴에 지나지 않았다. 솔직히 개헤엄 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권이태는 달랐다. 가볍고 날렵하게 내지르는 주먹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랐고, 명확하게 목표물을 타격했다. 잘 모르는 래화가 보기에도 그는 전문가였다.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구경하던 래화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엉망진창이 된 가게 꼴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CCTV를 돌려 볼 사장님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벌써 까마득했다.

황급히 카운터를 돌아 나갔다. 남자의 배 위에 올라타 주먹을 치켜들고 있던 권이태가 래화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래화는 숨을 멈추었다. 온통 피를 뒤집어쓴 모습이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반들거리는 검은 눈에 담긴 희열. 제가 품은 폭력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권이태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

짤막한 소리와 함께 잔인한 눈빛을 지워 낸 그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우리 고객님 놀랐겠네.”

그리곤 피 묻은 주먹을 흰색 셔츠에 슥슥 닦았다. 인상을 구겨 가며 열심히 닦아 댔으나 핏물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권이태에게 두들겨 맞아 뻗었던 남자가 끅, 신음을 흘렸다.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얼룩진 남자는 힘겹게 일어나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뽑아 들었다. 래화는 눈을 크게 떴다.

총……. 진짜 총이었다.

살면서 실물로 보게 되리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물건이 눈앞에서 번쩍였다. 남자는 권총을 흔들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개새끼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래화는 가늘게 떨면서 권이태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무서워하긴커녕, 눈썹만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 뭐야.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는 듯 중얼거린 권이태가 스윽 다리를 굽혔다. 그리고 슬링백의 지퍼를 열었다. 가방 안에서 나온 건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었다.

총을 꺼내고 장전하여 조준하기까지, 일련의 동작은 유려할 정도로 매끄럽고 신속했다. 권이태는 남자에게 권총을 겨누며 싱긋 웃었다.

“나도 그거 있어.”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흔히 영화에서 들었던 우렁찬 총성 대신, 피슉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

남자의 오른손에서 피가 솟구쳤다. 남자가 떨어트린 권총을 주워 든 권이태는 뺨에 튄 핏방울을 손등으로 닦으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딱 보니까 몇 번 쏴 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왜 까불어.”

권이태는 연속하여 두 번 방아쇠를 당겼다. 남자의 양쪽 허벅지에 총알이 하나씩 박혔다. 고꾸라진 남자가 피를 줄줄 흘리며 헐떡거렸다. 카페 바닥 위로 핏물이 번져 나갔다.

“하아.”

지루하단 듯이 한숨을 푹 내쉰 권이태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두툼한 반지갑을 열어젖혀 남자 위에서 탈탈 털었다. 샛노란 오만 원권이 팔락팔락 끝없이 떨어졌다.

“여기 깽값.”

텅 빌 때까지 지갑을 털어 대던 권이태가 엇, 하더니 얼른 떨어진 지폐 한 장을 주워 들었다. 노란 오만 원권 사이에서 혼자 초록색인 만 원권이었다. 만 원을 대충 지갑에 쑤셔 넣고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하나만 가져갈게. 발렛비 내야 해서.”

핏물에 치덕치덕 젖어 가는 오만 원들 속에서 남자가 시뻘건 눈으로 끅끅거렸다.

“이, 시팔, 미, 미친 새끼…….”

“미친 새끼라니, 서운하네.”

권이태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태연히 대꾸했다.

“존나 미친 새끼인데.”

그 말을 끝으로 권이태가 남자의 머리를 걷어찼다.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남자는 그대로 기절했다.

남자가 의식을 완전히 잃은 걸 확인한 권이태는 권총을 다시 슬링백에 집어넣고선 뒤돌아섰다.

반사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일어난 반응이었다. 새까만 눈동자가 굳어진 래화를 담았다.

여전히 열기로 들끓던 눈은 시선을 마주하는 사이 천천히 식어 갔다. 가만히 래화를 바라보던 그가 슬쩍 웃어 보였다.

“몸 썼더니 목마르네…….”

그러더니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물었다.

“아이스 초코 지금 주문되나?”

***

널리 알려져 있던 악명에 단단히 각오하긴 했었다. 그래도 소문이 으레 그렇듯, 조금 과장된 건 아닐까 생각했건만…….

전혀 아니었다. 권이태를 표현하기에 또라이라는 단어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상또라이, 미친 또라이 같은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늘어놓으며 그를 고용한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래화가 고민에 빠져 있거나 말거나, 커다란 은색 스포츠카는 도로 위를 유유히 주행하는 중이었다.

번쩍거리는 거대한 스포츠카는 몹시 눈에 띄었다. 조금 과장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차를 쳐다볼 정도였다.

신호에 걸려서 잠시 정차하자, 도로변의 젊은 남자들이 몰려들어 잔뜩 흥분한 얼굴로 차 사진을 찍어 댔다.

창문의 선팅이 짙어서 안쪽이 보이진 않겠지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영혼 다 털린 표정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래화는 손으로 살짝 얼굴을 가렸다.

운전석의 권이태는 신호가 걸리자마자 컵 홀더에 꽂아 놓은 아이스 초코를 집어서 쭉쭉 빨아 마시느라 바빴다. 컵 홀더에는 아이스 초코 두 잔이 나란히 꽂혀 있었는데, 하나는 이미 텅 비었다.

첫 번째 잔은 두어 모금 만에 끝장내더니, 두 번째 잔은 아껴 먹는 건지 그나마 오래 먹고 있었다. 그래 봤자 다음 신호에 걸리면 끝날 것 같지만 말이다.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사라지는 아이스 초코를 구경하다가 창밖 풍경을 확인했다. 래화의 집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내 집에는?”

“못 가지. 거기 가면 2차전 해야 할걸.”

카페는 난장판인 그대로 두고 나와 버렸다. 피범벅인 바닥에 총상을 입은 사람이 널브러져 있지만, 아버지가 붙인 사람이니 뒤처리도 알아서 할 터였다.

카페 사장님에게는 따로 연락해서 보상해 드릴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도 아버지가 처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죄송하다는 사과는 꼭 드리고 싶었다.

아이스 초코를 아주 조금 남겨 두고 애꿎은 빨대 끝만 질겅질겅 씹던 권이태가 백미러를 확인하며 말했다.

“지금은 바로 신혼집 직행. 필요한 건 그냥 사. 돈 많잖아.”

“알았어.”

“알바는 오늘부로 잘렸을 테니 신경 안 써도 되겠고.”

“그쪽 집 근처에서 새 아르바이트 찾아볼 거야.”

“알바 계속 해야겠어? 소일거리 필요한 거면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텐데.”

“정기적으로 외출해서 사람이랑 교류하는 일이어야 해. 나 일하는 동안 네가 와서 지켜봐.”

“으음.”

권이태는 된다, 안 된다, 대답 대신 애매한 소리만 냈다. 그가 핸들을 손가락 끝으로 토독토독 두들겼다. 그러다가 완전히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담배 피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인데.”

“담배 입에도 대 본 적 없어.”

술과 담배 같은 중독성 물질은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았다. 딱 자르는 대답에 권이태는 또 흐음, 하고 애매하게 굴어 댔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대답이나 제대로 하라고 쏘아붙이기 직전이었다.

위이잉.

래화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래화는 그대로 얼어붙었다가, 느릿하게 액정을 확인했다. ‘이정환 회장님’이라는 글자가 화면 가득 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권이태가 아이스 초코를 컵 홀더에 꽂으며 말했다.

“스피커폰으로 받아.”

말없이 전화를 받고 곧장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래화야.

이정환은 더없이 침착했다.

-이제 그만하고 돌아오자.

이 모든 상황이 래화의 철없는 일탈이라는 듯, 점잖게 타이르는 목소리였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시야가 거뭇하게 물들었다. 목이 꽉 조여들며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눈앞에 짧은 장면들이 연이어 스쳤다. 어지러울 정도로 향기를 뿜어내던 꽃, 아름다운 엄마, 희고 깨끗한 캔버스, 그리고…….

“……!”

래화는 움찔 몸을 떨었다. 큼직한 손이 어깨를 강하게 붙들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래화를 직시했다. 짙은 색의 눈동자 안에 형편없이 떠는 제 모습이 고스란히 비쳤다.

느리게 숨을 뱉고선 어깨를 붙든 손을 밀어냈다. 하지만 단단하게 붙든 손은 쉬이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래화는 입술만 움직여 소리 없이 말했다.

‘치워.’

그러자 권이태도 똑같이 입 모양으로 답했다.

‘싫은데.’

기가 막혀서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힘껏 노려보는데도 권이태는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권이태와 눈싸움을 하느라 오래도록 아무 말 않고 있으니, 이정환의 어조가 날카로워졌다.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이러는지 알면서도 그러는 게냐.

겨우 손을 치워 낸 래화는 차분하게 목소리를 꺼냈다.

“회장님.”

어려웠던 첫마디를 떼고 나니 뒷말은 쉬웠다.

“항상 그러셨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회장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그 말씀,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겠어요.”

언제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구속하던 양아버지를 향해 날카롭게 벼려 낸 말을 꽂았다.

“저 이 사람 사랑해요.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아요. 무슨 일 생길까 걱정되고, 지켜 주고 싶고, 하루 종일 보고 싶고.”

권이태가 옆에서 숨죽여 웃기 시작했다. 열렬한 사랑 고백을 내뱉는 입술과 달리, 래화는 냉랭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말을 맺었다.

“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해요.”

-이래화!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핸드폰 너머에서 결국 고함이 터졌다. 래화는 손을 움켜쥐며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이정환이 목소리를 높이면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때 권이태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버님.”

-누가 자네 아버지인가!

벌컥 소리치는 이정환에게 권이태는 깍듯하게 대답했다.

“그럼 장인어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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