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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 키치웨딩-7화 (7/132)

7화

웃으며 하는 말투가 장난스러웠다. 하지만 래화에게는 전혀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결코 과장된 걱정이 아니었다. 실제로 ‘권이태’라는 존재를 조금이라도 겪어 본 이라면, 래화의 걱정에 깊이 공감할 터였다. 래화는 진지하게 말했다.

“안 돼.”

이걸로는 부족할 거 같아서 좀 더 자세한 설명도 덧붙였다.

“한국에선 사람 죽이면 감옥 가.”

말해 놓고 보니 갑자기 궁금해서 불쑥 물어보았다.

“……혹시 가 본 적 있어?”

“없어.”

권이태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대답했다. 하는 짓으로 봐선 한 번 정도는 다녀왔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히죽히죽 웃어 대는 그에게 엄중히 당부했다.

“아무튼 그냥 얌전히 남편 노릇만 해.”

“네, 여보.”

이세연이 근처까지 다가온지라 째려보기도 쉽지 않았다. 래화는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쳤다.

티 나지 않는 선에서 힘껏 때렸지만, 권이태에게는 조금도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근육이 단단하다 못해 돌 같았다. 덕분에 오히려 때린 래화의 팔꿈치가 얼얼했다.

권이태는 솜방망이로 맞은 듯 피식 웃더니, 래화를 좀 더 꽉 끌어안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즐겁게 팔랑거리며 걸어오던 이세연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녀는 딱 달라붙은 래화와 권이태를 노골적이지 않은 선에서 조심스럽게 훑어보았다.

묻고 싶은 말이 수두룩한 눈이었다. 그러나 그녀 또한 부잣집의 교양 있는 아가씨인 만큼, 다짜고짜 호기심을 해소하는 대신 예의 바른 인사부터 건넸다.

“래화, 잘 지냈어?”

이세연은 어떻게 해야 자신이 귀여워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키가 작은 그녀는 방긋 웃으며 래화를 올려다보았다. 사랑스러움이 물씬 흐르는 몸짓이었다.

“연락은 왜 안 받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애교스러운 책망에 래화는 무표정하게 되물었다.

“우리가 그렇게 친했나?”

이세연이 파르르 속눈썹을 떨었다. 그녀가 고개를 아래로 툭 떨어트리며 속삭였다.

“아, 저기, 미안해. 그냥 나는, 걱정되고 반가워서…….”

다시금 살며시 들어 올리는 얼굴에는 안쓰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가련한 모습이었다. 래화는 착한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나쁜 악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서로 적당한 거리 유지하면서 지내자.”

“응……. 그래도 기왕 이렇게 만났으니 안부 정도는 물으면 안 될까?”

애처로운 목소리와 다르게, 이세연의 눈동자는 반들거렸다.

“만나는 사람 생겼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이정환에게 갖다 바칠 건수가 생겼는데 쉽게 물러설 리가 없었다. 래화가 저를 내쫓기 전에, 이세연은 얼른 권이태한테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래화 사촌, 이세연이에요.”

권이태는 직업 만족도 백 퍼센트인 얼굴로 싱긋 웃으며 답했다.

“래화 남편입니다.”

이세연이 입술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녀는 당황해서 버쩍 굳었다가 다급히 물었다.

“나, 남편이요? 결혼했어요? 언제?”

“혼인 신고한 지는 이제 이틀쯤 됐네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한 권이태가 래화의 뺨에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

“그치, 여보?”

“…….”

래화는 이를 꽉 물었다.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이세연은 권이태를 훑느라 바빠서 래화를 살피지 못했다. 동글동글한 갈색 눈이 반짝거렸다. 래화의 흠을 잡아낼 생각에 신이 난 것이었다.

이세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권이태는 잘생기긴 했지만, 솔직히 그게 전부였다. 상견례 데려가면 뺨 맞을 상이었고, 부모님한테 보여 드리기에 몹시 부끄러운 남자였다.

짧은 연애라면 모를까, 결혼 상대로는 절대 내세울 만하지 않았다. 특히 대산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권이태는 연애 상대조차 될 수 없는데…….

결혼이라니.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래화가 사랑에 미쳐서 정신 나간 짓을 벌이는 꼴이었다.

“래화가 아무 말도 안 해서 이제 알았어요!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세요.”

이세연이 발랄하게 외치며 작게 박수까지 쳐 댔다. 권이태와 잘 어울린다고 하니까 왠지 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래화는 좋아서 깔깔거리는 이세연을 내버려 두었다. 굳이 한마디 해서 대화가 길어지는 것보다는, 대충 받아 주고 빨리 보내 버리는 게 나았다. 오래 같이 있을수록 피곤해질 뿐이었다.

“우리 래화 잘 부탁드려요. 제가 항상 불안했었거든요. 래화가 겉으로는 냉랭하게 보여도 실은 무척 마음이 여려서.”

그러나 이세연은 순순히 래화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얕게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시겠지만, 래화가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으니까 아무래도 많이 걱정될 수밖에…….”

권이태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의 표정을 살핀 이세연이 손으로 입을 살풋 가렸다.

“아, 설마……. 모르셨어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당혹스럽게 중얼거렸다.

“결혼한 사이라 당연히 아실 줄 알았어요…….”

그리곤 래화를 돌아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래화야, 이런 건 미리 말을 했어야지. 왜 이렇게 경우 없이 행동했어.”

래화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래화가 어쩌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는지 잘 알면서도 이런 지저분한 말을 해 댔다.

짙은 피로감이 머리를 짓눌렀다. 아픈 기억을 알량하게 찔러 대는 이세연 때문은 아니었다. 옆에 붙어 있는 남자가 신경 쓰였다.

래화는 여전히 자신의 허리를 휘감고 있는 이를 쳐다보았다. 계속 래화를 보고 있었는지, 곧장 시선이 마주쳤다. 권이태가 비죽 웃었다.

“자기, 대가리에 문제 있어?”

그는 검지로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나도 그런데.”

역시 천생연분이라면서 실실거리는 말에 래화는 조금 당황해서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이세연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는 무어라 대꾸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상식 밖에서 행동하는 사람을 처음 만난 탓일 터였다.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우물대는 사이, 먼저 질문을 던진 건 권이태였다.

“나한테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안 궁금해요?”

아마 절대 궁금하지 않겠지만, 이세연에게 거부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람을 너무 잘 죽여서 문제였거든요.”

새까만 눈동자가 이세연을 직시했다. 또렷한 안광이 감도는 눈은 감춰 왔던 폭력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시선을 그대로 받아 내는 이세연의 몸이 가늘게 경련했다.

“하루에 수십, 수백씩 죽이는데 죄책감도 없고, PTSD도 없고. 이 새끼 정상 아니다 싶으니까 냅다 정신병원에 처넣더라고요. 그러다 자기들이 아쉬우니까 다시 꺼내 줘서 말짱하게 길거리 나돌아 다니게 됐는데…….”

이세연은 숨도 쉬지 못했다. 누가 시간을 멈춘 것처럼 버쩍 굳어 있었다.

“내가 여기서 총 꺼내서 이세연 씨 혓바닥에 구멍 뚫으면.”

권이태가 잠시 침묵했다.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못내 아쉽게 질문했다.

“다시 병원에 들어가야겠죠?”

“……!”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있던 이세연이 헉 하고 몇 발자국이나 뒷걸음질 쳤다. 그녀가 새되게 소리쳤다.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권이태는 래화의 머리에 얼굴을 기대며 느긋이 대꾸했다.

“무슨 소리긴요. 대가리에 문제 있는 놈이 하는 개소리지.”

숨을 몰아쉬느라 어깨를 들썩거리면서도 이세연은 권이태를 노려보았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억지로나마 그녀를 받쳐 주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 도망갔을 터였다.

“……지금은 대화할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까.”

이세연은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논리적으로 따지기는커녕 횡설수설하기 바빴다.

“다, 다음에, 다시……. 연락, 아니, 대화……. 사과를 받아야 하니…….”

잔뜩 주눅 들어 알아듣기 어려운 웅얼거림만 늘어놓던 그녀는 이내 주춤주춤 돌아서서 도망쳤다. 래화가 이세연과 알고 지낸 이래로 처음 보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세연의 도주를 지켜보던 권이태가 늘어져라 하품했다. 그는 래화를 놓아주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었다.

“이제 진짜로 쇼핑하러 갈까?”

백화점 라운지 가서 아이스 초코나 먹자며, 슬렁슬렁 앞장서 걸었다. 래화는 곧장 따라가지 않고 잠시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속이 복잡했다. 망설이다가 결국 입술을 열었다.

“……권이태.”

“응?”

돌아보는 남자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래화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정상이야.”

아직 미치지 않았다.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 혹시라도 갑자기 그런 일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지 전부 대비해 놓았다. 초기에 잡아버릴 테니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긴 변명을 준비하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권이태가 정신적인 문제를 물어보는 순간, 곧바로 줄줄 뱉을 변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맥 빠질 정도로 순순했고, 또한 단순했다.

“맞아.”

쏟아 내려던 변명이 목구멍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변명을 빼고 나니 남은 말이 없어서, 래화는 가만히 그를 보기만 했다.

권이태는 도장을 꾹 눌러 찍듯 말했다.

“너 정상이야, 이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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