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하 키치웨딩-20화 (20/132)

20화

멱살이 잡힌 이정환은 숨을 헐떡였다.

“자, 자네, 일단 진정하고……!”

“이게 진정할 일입니까?”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불룩하게 올라왔다.

“사위 지금 마음에 상처받아서 장인어른 한 대 치고 싶은데요, 씨발.”

컥컥 소리를 내며 버둥거리던 이정환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눌렀다. 호출기였는지, 밖에서 경호원 다섯 명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권이태는 쓰레기 버리듯 이정환을 바닥에 던졌다. 겨우 풀려난 이정환이 요란하게 기침을 터뜨리며 쌍욕을 했다.

“이, 이, 미친놈……!”

이어폰에서 최정도 함께 비명을 질러 댔다.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상견례 하러 간다더니 장례식 치르는 새끼!

권이태는 말없이 눈썹을 치켜세우곤 손목에 찬 시계를 풀었다. 건물 한 채 값인 시계를 주머니에 넣으며 저를 둘러싼 경호원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분명히 수적으로 우세한데도 불구하고, 경호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형편없는 놈들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총 꺼낼 필요도 없었다.

테이블을 걷어차 방어벽을 세우고, 뒤쪽에 있는 놈부터 붙잡아다 명치에 주먹을 갈겼다. 힘없이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남자를 내던지고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다리를 붙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려쳤다. 크게 요동치는 놈의 배를 짓밟아 주었다.

“커헉!”

급소를 눌린 남자는 몸을 커다랗게 웅크리며 왈칵 토했다. 피 섞인 토사물 위에서 뒹구는 남자를 내버려 두고 나머지 놈들을 해치웠다.

경호원 다섯을 깨끗하게 다져 놓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순식간에 정리를 끝내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대충 가다듬었다. 통유리창 앞에 주저앉은 이정환이 떨리는 눈으로 권이태를 올려다보았다.

권이태는 바닥에 떨어진 이정환의 담뱃갑을 주워서 담배를 두 개비 꺼냈다. 이정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에게 하나를 건네줬다. 덜덜 떠는 손에 억지로 담배를 쥐여 주고 불도 붙여 주었다. 이정환이 담배를 입에 무는 걸 확인하곤 깍듯이 사과했다.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이정환이 미친 새끼인가 하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모른 척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정환이 피우는 저타르 담배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하지만 제 담배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난장판이 된 룸을 헤집고 다닐 수도 없어서, 그냥 얌전히 이정환의 맛없는 담배를 피웠다. 연기를 길게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며 말했다.

“제가 래화…… 정말 많이 좋아합니다. 그래서 래화가 하는 말은 다 들어줄 생각입니다. 래화 입에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 뭐 이런 말이 나오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닌 이상에야 처가로 들어가긴 좀 힘들지 않겠습니까.”

이해하시죠, 하고 말하니 이정환이 넋 빠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권이태는 무릎에 팔꿈치를 얹고 바닥에 재를 툭툭 털었다. 쭉 찢어진 눈매를 구기며 이정환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저는 장인어른이 우리 래화 손가락 부러트린 것 같거든요. 장인어른은 아니라고 하시고, 증거도 갖고 계시지만…….”

권이태는 말하다 말고 비죽 웃었다. 지금 이정환은 너무 상식 밖인 상황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 당장은 대응을 못 하고 있지만, 나중에 정신 차리고 나면 난리가 날 터였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최대한 밀어붙여 볼까…….

입술을 길게 끌어 올렸다. 싱긋 웃는 얼굴로 그에게 담배를 까닥거렸다.

“저랑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

-너 때문에 나는 일찍 죽을 거다. 알겠냐? 심장 마비, 이딴 걸로 뒤질 거라고.

“메이는?”

-일단 입국 미루고 슈미트랑 마카오에서 진행하겠대.

“메이한테 오늘 녹화본 따서 보내. 아까 그 병원 영상 딥페이크 합성인지 확인하고, 류설연이랑 이래화 관련해서 더 알아보라고 해.”

-지금보다 더 자세하게 조사 들어가면 불법인 거 알지? 그래도 진행한다?

“어. 그리고 이래화 입원했던 병원 상세하게 알아봐. 거긴 조만간 내가 직접 방문할 테니까.”

-병원에서도 지랄 떨면 진짜 죽는다. 오늘 지랄병 했으니까 당분간 참아.

“으응…….”

내가 왜 그랬을까.

권이태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매사 충동적으로 살긴 하지만, 그래도 항상 마지막 선은 지켰다.

전체적인 계획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는 편이었는데, 아까는 그냥 퓨즈가 나가 버렸다. 그야말로 눈 돌아가서 날뛰었으니, 최정이 지랄병 도졌다고 잔소리할 만했다.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보았지만, 여전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감정과 관련한 문제는 그에게 있어서 언제나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뇌가 고장 난 권이태가 제대로 느끼는 감정은 오직 폭력적인 희열뿐이기 때문이었다. 그 외의 다른 감정은 한없이 무디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이래화가 특이하게도 약간, 아주 약간 신경 쓰여서 자꾸 건드려 보고 싶고, 그러다 보니 자극받게 되고, 결국 충동적으로 굴어 버리는 것 같았다.

일단 이래화가 우는 건 확실히 보기 싫었다. 옛날부터 이래화가 울면 기분이 약간 이상했는데……. 그게 조금 심해졌나 싶기도 했다…….

권이태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정답을 알 수 없는 문제는 미뤄 두고, 욕으로 노래를 부르는 최정에게 말했다.

“오늘은 퇴근. 남은 일 얘기는 내일 해.”

-알았다, 개자식아.

최정의 원한 서린 욕설을 마지막으로 콘택트렌즈를 빼고, 이어폰 패치를 제거했다. 한결 홀가분한 기분으로 복도를 걸었다.

로비로 나가니 대기하던 직원이 다가와 래화 아가씨에게 연락을 넣었고, 발렛 맡기신 차량도 곧바로 준비하겠다고 공손히 말했다.

직원들의 깍듯한 태도로 보아, 이정환 회장님이 한바탕 곤욕을 치르셨다는 내용은 아직 공유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발렛 직원이 가져온 차를 확인한 권이태는 비뚠 웃음을 흘렸다. 발렛을 맡겨 놨더니 직원이 이정환이 준 꽃바구니를 뒷좌석에 실어 놓았다.

오늘 나름 상견례라고 스포츠카가 아닌 세단을 끌고 왔는데, 넉넉한 뒷좌석에 쓰레기나 싣게 될 줄이야.

곧바로 꽃바구니를 꺼내 바닥에 집어 던졌다. 대리석 바닥 위로 생화가 흩어졌다. 이정환 회장이 선물한 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 직원들이 그 광경에 얼어붙었다.

달려와 치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만 놔둘 수도 없고. 엉거주춤하게 몰려들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때였다.

단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얀 트위드 정장을 입은 여자가 검은 스틸레토 힐을 신고 한 걸음, 한 걸음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가느다란 힐이 흩어진 생화 꽃잎을 짓밟았다. 엉망진창인 꽃길 위를 걸어오는 이는 이래화였다.

이래화는 제 발밑에 짓이겨진 꽃들을 보았다가, 이내 다시 권이태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저를 빤히 올려다보는 갈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노라니 또다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항상 느껴 오던 폭력을 향한 충동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다른 감정이었다. 권이태는 그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했지만, 자세히 표현할 수 없었다.

시선을 마주한 채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이래화가 도톰한 입술을 달싹였다.

“……끝났어?”

가슴 안쪽 깊은 곳이 간지러웠다. 심장이 세차게 튀며 뜨끈한 핏물을 토해 놓았다. 아까 경호원 다섯을 때려눕히고 오늘 치 지랄병은 다한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원인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충동이 들끓었다. 권이태는 옅은 갈증을 느끼며 입술을 핥았다.

“응. 상견례 끝났어, 자기야.”

그리고 음험한 속내를 감춘 채 다정하게 속삭였다.

“집에 가자.”

***

차에 타자 희미한 꽃향기가 느껴졌다. 권이태는 말없이 창문을 내려 차 안을 환기시켰다.

호텔 로비에 흩어진 꽃잎을 뒤로 하고, 래화는 권이태와 함께 DS 호텔을 빠져나왔다.

조용한 밤의 도로를 미끄러지는 동안, 차 안은 조용했다.

서로 물을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았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참 이어진 침묵 끝에 먼저 말문을 연 쪽은 래화였다.

“아이스크림.”

권이태가 운전하다 말고 눈동자만 돌려 흘긋 쳐다보았다. 래화는 그를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많이 사 놨어?”

“인터넷에서 샀는데 최소 주문량이 40개더라.”

“왜 샀는데?”

“너한테 잘 보이려고.”

대화가 끊어졌다. 권이태는 손가락 끝으로 공연하게 핸들을 툭툭 두드렸다.

“이래화.”

“응.”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아마 오늘 강미옥이랑 이세연이 왜 저에게 관심을 내보였는지, 이정환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등을 질문하길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래화는 묻지 않았다. 그냥 창밖으로 흘러가는 가로등 불빛만 보았다.

권이태가 이정환과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러 간 동안, 래화는 스위트룸에 홀로 앉아 있었다. 예전 류설연의 전시회를 보러 왔던 때처럼, 혼자 넓은 방 안에 앉아서 극도로 날카로워진 정신을 뭉뚝하게 억눌렀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감정을 마음속 깊이 쑤셔 넣고, 평온함을 만들어 냈다. 로비로 내려갈 즈음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로비에 도착해서 보았던, 엉망으로 흐트러진 꽃과 권이태, 그리고…….

“집에 가자.”

래화는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잠잠해진 줄 알았던 마음이 수런거렸다. 아직 희미한 꽃향기가 맴도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입술을 열었다.

“권이태.”

새빨간 불이 들어온 신호등이 시야를 스쳤다. 백미러를 통해 눈이 마주쳤다. 래화는 그와 시선을 얽은 채로 속삭였다.

“나랑 오늘 술 마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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