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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 키치웨딩-27화 (27/132)

27화

속삭이는 말이 귀에 닿을 때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두근거리는 맥박을 따라 밑이 성기를 옴쭉옴쭉 물어 댔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올랐다. 누군가 몸에 불을 지핀 듯 뜨겁고 괴로웠다. 속에 들어찬 뜨거움을 뱉고 싶어 비명을 질렀지만, 열기는 조금도 식질 않았다.

유두를 책상에 문지르고,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어 성기를 받아도 쾌감은 시원하게 해소되질 않았다. 개미가 물어뜯는 것처럼 자글자글 계속해서 끓어오르며 괴롭히기만 했다.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았다. 이대로 숨이 콱 막혀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독한 감각이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찰나,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등허리를 잔뜩 휘며 상체를 바짝 치켜들었다. 추락하는 듯 아뜩한 감각이 찾아오고, 암전되는 시야와 함께 스르륵 고개가 꺾였다.

의식이 끊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래화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악……!”

목에 매서운 통증이 일었다. 권이태가 목덜미를 콱 깨물어 기절하려는 래화를 억지로 깨워 낸 것이다.

“기절하지 마…….”

그가 양손으로 가슴을 마구 주무르며 귀를 씹어 댔다.

“나 좆물 싸는 거 봐 줘야지, 자기야…….”

이미 울고 있었지만, 래화는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피할 수 없는 절정이 찾아왔다.

안이 사정없이 꽉꽉 수축했다. 정액을 짜내려는 듯 힘껏 조이는 움직임에 권이태가 인상을 구기며 몸을 떨었다.

딱딱하게 근육이 뭉친 허벅지에 말랑한 엉덩이가 찰싹찰싹 부딪혔다. 하얀 점액으로 온통 지저분해진 붉은 살이 거대한 성기를 받아들이고 뱉어 내길 반복했다.

여태 자글거리며 온몸을 괴롭히던 쾌감이 한데 단단히 뭉쳐 들었다. 아랫배가 딱딱하게 굳으며 경련했다.

덜컥 겁이 났다. 여기서 더 하면 진짜 망가질 것 같았다. 하지만 권이태가 사정을 해야 끝이 날 터였다. 래화는 울면서 애원했다.

“나, 그만, 흣, 너무 힘들어, 이제 싸, 싸 줘…….”

가차 없이 몰아붙이는 그에게 제발 그만하라고, 괴로운 쾌감을 끝내 달라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빌었다. 하지만 도저히 끝날 기색이 없었다. 얼굴 옆에 놓인 팔뚝을 깨물었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권이태…….”

땀에 젖은 탄탄한 갈색의 살갗을 핥으며 힘겹게 속삭였다.

“이, 이태야, 흐으, 이태야……. 그마안……. 나, 싸 줘어…….”

권이태가 앓는 소리를 내며 래화의 등에 이마를 박았다. 그의 팔뚝에 핏줄이 퍼렇게 돋았다.

“씨발, 윽, 후으…….”

악문 잇새로 욕설과 신음을 뱉더니, 잘고 빠르게 허리를 털었다. 안에 들어찬 성기가 불뚝거리는 순간, 그는 박혀 있던 걸 단숨에 뽑아냈다. 온통 내벽을 쓸며 뽑히는 감각에 래화는 자지러지며 절정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하아아……!”

요란한 신음을 터뜨리며 사지를 벌벌 떠는 사이, 콘돔을 벗어 던진 그가 래화의 등 위에 성기를 길게 미끄러트렸다. 뜨거운 것이 피부 위에 진득한 점액을 묻혔다. 낮고 질척한 탄성이 터졌다.

“흣……!”

움찔거리는 등줄기 위에 하얀 액체가 후두둑 쏟아졌다. 절정의 잔여에 시달리던 래화는 짧게 몸을 떨었다.

권이태가 길게 숨을 뱉으며 뒤에서 끌어안아 왔다. 잇자국이 남은 목과 어깻죽지에 떨어지는 입맞춤이 느껴졌다. 온순한 척 가만가만 얼굴을 문지르는 그에게 죽을힘을 다해 경고했다.

“또 하면…….”

진심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잦아드는 숨과 함께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그거…… 잘라 버릴 거야…….”

눈꺼풀 위에 어둠이 덮였다. 래화는 그대로 줄 끊어진 인형처럼 기절해 버렸다.

***

고구마와 오이를 식칼로 난도질하는 꿈을 꿨다.

고구마는 아주 크고 뚱뚱했고, 오이는 무척 길쭉했다. 유난히 크기가 크긴 했지만, 반질반질하고 탱글탱글한 채소는 신선하고 맛있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보자마자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래화는 분노에 가득 차 식칼을 집어 들었다.

“죽어!”

그리고 채소들을 마구마구 썰어 주었다. 식칼이 번뜩일 때마다 고구마와 오이가 토막 났다. 한참 칼춤을 춰서 모든 채소를 동강 내 준 후에야 겨우 속이 풀렸다.

래화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식칼을 내려놓았다. 또 나타나면 이번에는 아예 잘게 다져 버릴 생각이었다. 두 번 다시 못 쓰게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하는 찰나, 잠에서 깨어났다.

“……?”

잠에서 깨어난 래화는 눈을 깜빡였다. 채소를 난도질하는 꿈이라니. 개꿈도 이런 개꿈이 없었다.

한참 가만히 눈만 깜빡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몽롱한 정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멍하게 늘어져 있던 래화는 문득 자신이 굉장히 따끈한 돌 같은 무언가에 엎드려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 생각 없이 깔고 누운 것을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다가, 파드득 놀랐다.

“……!!”

눈앞에 검은 뱀 문신이 보였다. 래화가 깔고 누운 것은 권이태였다. 그것도 그냥 권이태가 아닌, 알몸 상태인 권이태…….

그나마 래화는 커다란 흰색 박스티를 하나 입고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래는 팬티 하나 없었다. 다리에 닿는 맨살의 감촉이 적나라했다.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사이, 간밤에 있었던 일들이 불꽃놀이처럼 머릿속에서 팡팡 터졌다.

권이태와 섹스했다.

기가 빨릴 만큼 진득하고 과격한 섹스였다. 성교로 그런 쾌감을 얻을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자극이 너무 심해서, 기억을 되짚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미쳤어…….

눈을 질끈 감았다. 허벅지 아래에 짓눌린 성기가 느껴졌다. 말랑한 그것의 감촉에 발가락이 오그라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 벌떡 일어나고 싶지만, 그러면 권이태가 깰 것이다. 지금은 그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래화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일정하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결에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사르륵 눈을 감았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뒤늦게 몸이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어제 권이태한테 고루고루 두들겨 맞은 덕분에 온몸이 아팠다. 특히 밑이 퉁퉁 붓고 쓰렸다. 그 괴물 채소가 들락날락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래화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래를 살살 더듬어 보았다. 다행히 어디 찢어지거나 하진 않은 듯했다. 다만 정말로 밑이 빠질 것처럼 아파서, 당분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권이태가 깨끗하게 씻겨 주긴 한 모양이었다. 온갖 액체를 뒤집어썼는데, 끈적거리거나 찜찜한 곳 하나 없이 몸이 보송했다.

엉덩이를 달싹거리며 이곳저곳 살펴보던 래화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두꺼운 팔뚝이 스르륵 허리를 끌어안은 탓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느릿하게 속삭였다.

“그만 꼼지락거리지…….”

반쯤 감긴 눈꺼풀 아래 드러난 검은 눈동자가 나른히 래화를 응시했다.

“너 지금 또 하면 죽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대꾸를 준비하던 래화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하려던 말을 싹 잊어 먹었다.

아침부터 눈뜨자마자 하고 싶어서 꼼지락댄 사람으로 매도하다니!

양심이 있다면 저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래화는 속으로 인내심을 되새기며 말했다.

“할 생각 없거든…….”

그리고 놀라서 목을 손으로 감쌌다. 목소리가 다 갈라져 있었다. 바짝 마른 탓에 통증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권이태가 래화를 안은 채로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래화를 침대 등받이에 기대어 앉히고,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의자에 걸쳐진 트레이닝 바지를 주워 입으며 하품하는 동안, 래화는 이불을 끌어당겨 다리를 덮으며 주위를 살폈다.

권이태의 침실로 보이는 공간은 단출했다. 침실과 드레스룸, 화장실이 붙어 있는 구조였는데, 깔끔한 모노톤 인테리어에 가구도 몇 개 없었다. 사람이 머무르는 곳답지 않게 휑한 느낌이 강했다.

커다란 엑스트라 킹사이즈 침대에는 검은색과 회색의 침구가 덮여 있어서 삭막함을 더해 주었다.

방 안을 둘러보던 래화는 불쑥 얼굴 앞으로 내밀어진 작은 생수병을 받아 들었다. 뚜껑까지 따서 건네준 생수병을 붙잡고 꼴깍꼴깍 마셨다.

시원한 물이 입술에 닿으니 갑자기 더 갈증이 났다. 래화는 오백짜리 생수병을 반이나 비웠다. 권이태를 쳐다보니 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몇 시야?”

“8시. 이래화 정말 칼같이 일어나네…….”

막막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10시까지 카페에 출근해야 하는데,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권이태가 핸드폰을 이불 위에 툭 던지며 말했다.

“매니저한테 오늘 오전 근무까지 좀 해 달라고 했어.”

“그래도 돼?”

그는 말없이 검지와 엄지를 맞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매니저가 흔쾌히 오전 근무를 받아들일 만큼의 보상을 약속한 모양이었다.

가장 큰 걱정거리가 해결된 래화는 추욱 몸을 늘어뜨렸다. 손가락 하나 꼼짝할 힘도 없었다.

“…….”

가만히 앉아 있자니 고요한 정적이 신경 쓰였다. 래화는 마른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었다. 이래서 권이태가 깨어나지 않았으면 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나름 매끄럽던 관계가 완전히 조각조각 나 버렸다. 권이태를 흘긋 보았지만,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만 팔짱을 끼고 서서, 알 수 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래화를 쳐다볼 뿐이었다.

마치 불가해한 존재를 관찰하는 것처럼…….

그의 시선에 래화는 어떤 긴장감을 느꼈다. 어색하게 돌린 시선에 탁자 위의 담뱃갑이 들어왔다. 이 상태에서 어젯밤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것보다는 뭔가 아무 말이라도 하는 게 나을 듯했다. 래화는 괜히 담뱃갑을 화제로 삼아 보았다.

“저게 네가 피우는 거야?”

권이태는 눈동자만 돌려 담뱃갑을 쳐다보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담뱃갑을 집어 래화에게 던져 주었다.

얼떨결에 담뱃갑을 받아 들고 그를 보았다.

권이태는 그런 래화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쑥 물었다.

“뭐 떠오르는 거 없어? 기억나는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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