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굳게 닫혔던 행거 도어가 완전히 우그러지며 양쪽으로 벌어졌다. 강제로 열린 문 사이로 황소 마크가 붙은 스포츠카의 범퍼가 찌그러진 머리를 들이밀었다.
수억 원짜리 차를 가뿐하게 들이박으며 등장하는 모습에 창고 안의 조폭들은 난리가 났다. 욕설을 내뱉으며 갖가지 연장을 들었다. 쇠파이프와 못이 박힌 몽둥이, 날이 시퍼런 칼 따위를 들고 스포츠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운전석에서 에어백을 헤집고 비틀비틀 내린 것은 안경을 낀 말라깽이 남자였다. 누가 봐도 평범한 일반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내리자마자 바닥에 엎어졌다.
“우에웩…….”
그리고 거하게 토사물을 뱉었다. 캑캑거리는 연약한 꼴에 조폭들이 잠시 당황하던 때였다.
조수석 문이 열렸다.
운전자와 다르게, 긴 다리를 쭉 뻗으며 한없이 여유롭게 내려선 이는 바로 권이태였다. 권이태는 비척거리며 일어난 남자의 주머니에 돈다발을 찔러 주었다.
“고생했고, 얼른 가 봐.”
남자는 울먹울먹하면서도 허둥지둥 돈을 챙겨서 달아났다. 권이태는 남자가 도망가는 것을 확인한 후, 느릿하게 창고 안을 훑었다. 시선은 가장 먼저 래화를 향했다.
“…….”
눈 맞춤은 짧았다. 그는 곧바로 옆에 앉은 최정도 무사함을 확인한 후, 창고 안에 우글우글하게 모여 있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폈다.
조폭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우그러진 문 너머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지원군을 끌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으니, 하나둘씩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뭔데, 씨발?”
“허어, 씨바, 개쫄았는데 꼴랑 한 놈?”
흉기를 든 수십 명이 동시에 웃는 모습은 무척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왁자지껄하던 웃음은 점차 잦아들었다. 미묘한 분위기가 창고 안을 감돌았다.
당연히 겁을 내야 할 상대가 고요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권이태는 약간의 무료함마저 내비치고 있었다.
수십 명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정적이 내려앉은 찰나.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걸 그룹 노래로 설정해 둔 벨소리의 주인은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시펄, 놀래라…….”
그가 욕설을 중얼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통화 음량을 최대로 높여 놨는지, 스피커폰을 하지 않았는데도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조용한 창고 안을 또렷하게 울렸다.
-제안은 생각해 보셨나요?
독특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여자의 질문에 전화를 받은 남자가 흘깃 래화를 돌아보았다. 래화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의 눈길이 닿은 곳이 래화의 오른손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제 손에 들린 망치를 공연히 까닥거렸다. 무거운 망치가 휙휙 움직일 때마다, 래화는 누군가 손으로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생각이야 해 봤지. 근데 저쪽은 손 한쪽 망가뜨려 달라는 거였잖아? 그걸 털끝 하나 다친 곳 없이 성하게 돌려달라는 거는……. 아무래도 좀 차이가 확 나니까.”
애매하게 말을 돌리던 남자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돈을 더 주셔야겠는데.”
합의되지 않은 발언인지, 몇몇 이들이 욱하는 눈치였다. 서로 의견이 안 맞아서, 아까부터 계속 핏대 높여 가며 싸웠던 듯했다.
-으음…….
남자의 요구에 여자는 곤란한 신음을 흘렸다. 묘하게 뭔가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묻어나는 소리를 흘린 그녀가 질문했다.
-혹시 저희 쪽 협상가가 거기 도착하지 않았나요?
“목에 뱀 문신 두른 놈이라면 하나 왔지.”
-네. 그분께 요청해 보시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네요.
전화가 끊어졌다. 시선이 일제히 권이태를 향했다. 권이태는 한 마디로 협상을 끝냈다.
“싫은데.”
조폭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듣기만 해도 섬찟한 욕설들이 쏟아졌으나, 권이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태연하게 차를 뒤적거린 그가 뒷좌석에서 가방을 하나 꺼냈다. 가방을 본 최정이 히익 소리를 내며 기겁했다.
“야! 권이태!! 여기 한국이야, 미친놈아……!”
대체 뭐가 들었기에 저런 반응인가 했는데, 가방에서 등장한 물건에 래화도 똑같이 기겁했다.
권이태가 꺼낸 건 분해된 기관총이었다.
조폭들은 넋이 빠진 얼굴로 기관총을 바라보았다. 그들 손에 들려있던 흉흉한 무기들이 갑자기 석기시대의 돌도끼처럼 초라해졌다.
너무 놀라서 다들 굳어 있는 사이, 권이태는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기관총을 조립해 나갔다.
철컥철컥 소리 몇 번에 총열과 방아쇠가 끼워졌다. 순식간에 온전한 모습을 갖춘 기관총에다 탄띠를 장전시킨 권이태가 총구를 겨누었다.
“최정.”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이래화 챙겨.”
최정이 제 손목의 끈을 단숨에 퍽 끊어 냈다. 그리고 거의 날듯이 래화에게 뛰어들어선, 양손으로 래화의 귀를 틀어막으며 끌어안았다.
최정의 품에 눈앞이 온통 가려지는 동시에, 창고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관총 소리와 비명이 틀어 막힌 귀 너머에서 먹먹하게 전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최정이 조심스럽게 래화를 놓아 주었을 때.
래화가 가장 먼저 본 것은 핏물이 튄 벽이었다. 울퉁불퉁한 판넬에 핏방울이 흩뿌려진 꽃잎처럼 흠뻑 튀어 있었다.
아까만 해도 창고 내부가 후텁지근했는데, 지금은 피부에 닿는 공기가 서늘했다. 온 사방에 구멍이 뚫린 탓에 바깥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덕분이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이 핏물과 함께 바닥에 고였다. 지옥도 속에서 권이태는 기관총을 어깨에 걸쳐 놓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이들 사이를 휘적휘적 걸었다.
그의 발이 전화를 받았던 남자 앞에 멈춰 섰다. 권이태는 벌겋게 과열되어 달아오른 총열로 남자의 뺨을 지긋하게 눌렀다.
“끄아아악!!”
살이 지져지는 고통에 남자가 사지를 푸들푸들 떨었다. 전기를 맞은 것처럼 몸을 들썩이다, 사타구니를 축축하게 적셨다.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 대는 남자를 보며 권이태가 비죽 웃었다. 동정심을 품거나 안타까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을 재밌어할 뿐이었다.
“권이태! 으아악, 권이태!!”
최정이 절뚝거리며 달려가 그를 붙들었다. 권이태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나, 뒤이은 말에 또다시 총을 휘두르려던 손을 멈췄다.
“정신 차려, 새끼야! 아가씨도 여기 있잖아! 다 보고 있는데……!”
“…….”
권이태가 그제야 총구를 아래로 내리고 뒤로 물러났다. 최정이 목소리를 낮춰 연신 무어라고 속삭였다.
권이태는 말없이 듣다가, 최정에게 기관총을 건네주고 손을 툭툭 털었다. 최정이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흐아아 숨을 내뱉고선 얼른 기관총을 제 품에 안았다. 그리고 후다닥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메이! 어어, 와씨, 간신히 말렸다. 그래도 오늘은 플러이가 있어서 그런지, 금방…….”
최정은 누군가와 통화하며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권이태는 최정을 흘긋 보았다가, 이내 래화를 향해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래화는 여전히 흙바닥에 앉아 있었다.
“…….”
래화의 앞에 멈춰 선 권이태가 무릎을 굽혀 쪼그리고 앉았다. 키가 크다 보니, 쪼그려 앉아도 래화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에게서 피 냄새가 났다. 금방 짐승을 도축한 것처럼, 온기가 느껴지는 무더운 피 냄새였다.
그을린 옅은 갈색 피부 위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타인의 피를 묻히고 온 남자는 아직 희열이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래화를 보았다. 낮은 목소리가 짧은 단어를 뱉었다.
“손.”
무슨 뜻인지 몰라 쳐다만 보고 있자, 권이태가 다시금 말했다.
“손 줘 봐.”
가늘게 경련하는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느릿느릿한 움직임이 답답한지, 그는 래화의 손을 낚아챘다.
아직도 손목에 묶인 끈을 풀어 주고, 손을 앞뒤로 뒤집어 가며 어디 다친 곳이 없나 꼼꼼히 확인했다.
래화의 양손이 다 멀쩡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길게 숨을 뱉었다. 숨결에서 희미한 술 냄새가 났다.
권이태 또한 제게서 나는 술 냄새를 맡았는지,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변명을 했다.
“아까 봤지? 운전 내가 안 했어…….”
술 먹고 총은 쐈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선 래화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래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말 없는 래화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쭉 찢어진 눈매가 설핏 가늘어졌다.
피에 젖은 머리카락, 열이 올라 보기 좋게 불그스름해진 뺨, 그리고 검은 눈동자.
래화는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자신이 보았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숨김없이 항상 가면처럼 뒤집어쓰고 있던 능글맞은 여유로움 대신, 가장 밑바닥에 숨겨 놓았던 분노를 드러내던 남자.
그 순간의 권이태는 비정상적이고 기괴했다. 한여름 밤의 지독한 악몽처럼 섬찟했고, 젖은 나뭇잎 아래에 숨은 독뱀처럼 음산했다.
머리 안쪽이 찌릿하고,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어찌나 세게 뛰는지 피가 혈관을 타고 도는 감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과도한 자극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머릿속에 누가 사이렌을 켠 것처럼 경고음이 울렸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그를 보았다. 무엇을 더 숨겨 놓았는지,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탐색하려 안달을 냈다.
래화는 남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권이태를…… 그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