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하 키치웨딩-43화 (43/132)

43화

이래화는 뭘까.

요즘 들어 권이태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었다. 살면서 특이하다 싶은 놈들은 여럿 만나 봤다. 용병 업계에 특히 제정신 아닌 새끼들이 많기도 하고, 온갖 의뢰인들이랑 부닥치며 별사람 다 만나 봤다 싶었는데…….

이래화 같은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안 그렇게 생겨선 또라이 짓 하는 게 웃겨서 그런지도 몰랐다.

계속 관심 가고, 신경 쓰이고, 생각나고.

요새는 이래화 생각 때문에 일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도 이래화를 앞에 놔두고 이래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권이태는 이선우와 대화하는 이래화를 물끄러미 보았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무섭다고 그러더니 키스하고…….

“내가 무서워?”

불쑥 튀어나온 질문에 최정은 고민하지도 않고 즉시 답했다.

-응. 존나 무섭지. 너랑 원수질 일 없이 사는 게 내 목표.

귀에 꽂은 이어셋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권이태는 잠시 눈매를 찡그렸다. 그리고 재차 물었다.

“일할 때 말고, 그냥 일상에서.”

-일상에서도 당연히 무서운 거 아니냐?

“…….”

권이태의 침묵이 길어지자, 최정은 낄낄 웃다 말고 스르륵 꼬리를 내렸다.

-아아니……. 물론 잘생겼지. 엄청 잘생겼는데, 그으……. 너한테 생활 살기가 좀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옛날보단 성질 많이 죽었잖아. 너 처음 만났을 땐 그냥 야생 동물이었어.

도움이 안 되는 놈한테 물어봤다. 괜히 시간만 낭비한 권이태는 무표정하게 빨대로 음료를 빨아 마셨다.

쪼록.

바닐라 라떼가 바닥을 보였다. 아이스 초코가 없어서 아쉬운 대로 시킨 메뉴였는데, 시럽을 잔뜩 넣어 달라고 했더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

얼음만 남은 컵을 옆으로 치우고, 미리 주문해 놨던 두 번째 음료를 집으며 이래화를 관찰했다.

이래화는 한쪽 면이 널찍한 전면 유리창으로 된 개방감 있는 카페를 약속 장소로 잡았고, 이선우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아주 훌륭한 위치였다.

창문이 널찍한 덕분에, 최정도 맞은편 건물에서 편하게 감시할 수 있었다. 안전은 챙겨야 하지만 데이트는 방해하지 않겠다며, 최정은 오늘 하루 종일 저렇게 멀찍이 떨어진 채 뒤따라 다녔다.

아무래도 납치 사건 이후로 최정이 이래화 경호에 많이 신경 쓰는 듯했다. 예전 같았으면 권이태 혼자 충분하지, 하면서 따라올 생각도 안 했을 터였다.

권이태는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넣어 둔 슬링 백을 만지작거렸다. 혹시나 이선우가 헛짓거리하면, 가장 먼저 그의 팔다리에 구멍 하나씩 내 주고 시작할 예정이었다.

“지금 쏘면 딱 괜찮겠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최정이 재깍 왱알거렸다.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권이태는 빨개진 이선우의 귀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얼굴 벌게지는 게 열 오른 것 같아서. 시원하게 구멍 하나 뚫어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그냥 죽이고 싶다고 말해라.

쯧쯔 혀를 차던 최정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말해 주었다.

-근데 쟤는 순하게 생겨서 나쁜 짓 안 할 거 같은데.

“원래 저런 놈들이 더 무서운 법이야.”

-그런가? 네 말 듣고 보니까 눈에 은은한 광기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대놓고 광기 흐르는 권이태만 봐서 잘 모르겠다며 최정이 낄낄 웃었다. 혼자 웃도록 내버려 두고, 권이태는 미간을 깊게 좁혔다. 위치 추적 장치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래화한테 도청기도 달았어야 했는데.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심각한 표정을 하던 이래화가 갑자기 미소 지었다. 기분 좋아 보이는 작은 미소였다.

이래화는 웃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저도 몇 번 보지 못했는데, 사촌 오빠 앞에서 방긋거리는 모습을 보니 속이 뒤틀렸다.

그놈의 사촌 오빠가 넋이 나간 눈으로 이래화의 미소를 쳐다봐서 더더욱.

“씨발, 사촌은 무슨.”

사촌이라고 생각하는 쪽은 이래화뿐인데, 그걸 몰랐다. 권이태는 테이블 위의 차키를 잡아챘다. 마시던 컵과 쟁반을 반납하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냐.

“차 가져와서 이선우 들이박으려고.”

-그러지 말자…….

진담 반, 농담 반인 말에 최정이 질색했다. 권이태도 말만 그러했고, 정원에 서서 안을 바라보았다. 정원에서는 카페 내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선우 경호원 데려온 거 같은데. 11시 방향.”

-확인.

아까부터 계속 느껴지던 시선의 위치를 알려 주고, 다시 이래화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

잠깐 사이에 뭔 일이 있었는지, 이선우는 이래화의 손을 붙잡은 채 뭐라고 떠들어 대는 중이었다.

이래화가 날 선 눈으로 이선우를 바라보며 무어라 말했다. 입 모양으로 추측하건대 손을 놔 달라고 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선우는 놔주기는커녕, 오히려 꽉 움켜쥐었다.

오른손이었다.

누군가 얼음을 뾰족하게 갈아서 박아 넣은 듯, 머리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권이태가 슬링 백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이래화는 이선우한테 커피를 부어 버렸다.

-와…….

마찬가지로 이선우를 주시하던 최정이 이어셋 너머에서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또쀼다, 또쀼.

자기가 지어 준 또라이 부부라는 별명을 외치며 최정은 크캭캭 웃어 댔다. 이래화가 거의 커피로 싸대기를 때리듯 찰지게 부어 준 덕분에, 이선우는 정신 차리고 손을 놓았다.

권이태는 곧장 이래화의 오른손을 확인했다. 피부가 연해서 붉은 자국이 남았다. 발긋하게 물든 손이 안쓰럽게 경련했다.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일까.

이래화의 호흡이 점차 불규칙해졌다. 동그란 가슴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래화는 떨리는 손을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장 먼저 권이태가 앉았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

그 순간 느낀 감정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어떤 폭력적인 충동을 느낀 것은 확실했다.

약하고 여린 것의 목을 물어뜯고 싶었다. 바들바들 떨면서 저를 애타게 찾는 눈동자를 핥고 싶었다…….

지저분한 만족감에 젖은 채 이래화와 이선우가 서 있는 유리창 앞으로 다가갔다. 투명하고 얄팍한 유리의 벽을 똑똑 두드려 이래화를 불렀다.

그녀의 눈 위로 피어나는 안도감을 배부르게 만끽하며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너무 감동적이다. 뺨도 때려 봐.”

저만 두고 가 버린 줄 알았는지, 전화를 받은 이래화의 목소리에 희미한 물기가 어렸다.

-왜, 왜 먼저 나갔어……. 옆에 붙어 있어야지……. 나한테 뺨이나 때리라고 시키고…….

“무슨 소리야. 지금 바로 서비스 들어갈게. 차 가져와야겠다.”

오늘 가져온 SUV는 이선우에게 교통사고를 선사해 주기에 아주 적절했다.

“오빠 분 전치 몇 주로 만들어 줄까?”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 성실하게 질문하니, 이래화가 입술을 벌렸다.

도톰한 입술 사이로 보이는 작은 혓바닥이 제법 맛있어 보였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다정히 말했다.

“자기가 원한다면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고. 환경에 도움 되고 괜찮겠네. 식목일 지나서 아쉽다, 그치?”

살살 농담을 던지니, 이래화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픽 웃었다.

-그 식물이 아니잖아…….

그녀의 목소리에 기운이 조금 돌아왔다.

-사고 치지 마. 굳이 피곤한 일거리 만들 필요 없어.

“으응.”

고분고분 대답하며 구석구석 살폈다. 호흡도 다시 정상이고, 안색 또한 괜찮다. 완전히 안정된 것을 확인한 권이태는 고개를 까닥였다.

“지금 안으로 들어갈 테니까 울지 말고 있어.”

-안 울어. 내가 나갈게.

전화가 끊어졌다. 이래화는 잠시 권이태를 흘기듯 보았다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이선우가 허둥지둥 뒤쫓아 나왔으나, 이래화는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또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며 헛짓거리를 하려 들었다.

“래화야…….”

이래화를 붙잡아다 제 등 뒤로 보냈다. 이래화는 잡아끄는 대로 얌전하게 따라오더니, 권이태의 뒤에 숨어서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콱 깨물고 싶었지만, 그녀의 사회적 위신을 고려하여 참아 주었다.

이선우는 많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이래화를 바라보았다. 제가 한 짓을 생각하면 당장 돌바닥에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아주 개념이 없었다.

권이태는 그의 앞을 막고 서서 건들건들하게 말했다.

“적당히 하시죠, 사촌 오빠.”

“……호칭 정도는 똑바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예에, 이선우 씨.”

이래화 기준으로 사고 안 치고 적당하게…….

‘적당하게’를 속으로 되뇌며, 꼴에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이선우에게 씩 웃어 보였다.

“신혼부부 그만 괴롭히고, 이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선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권이태를 노려보던 눈동자가 느릿하게 이래화를 향해 움직였다. 파충류의 것처럼 징그러운 움직임이었다.

“래화야. 아직 너한테 할 이야기 더 남았어.”

“난 없어.”

이래화는 담담하게 받아쳤다. 그러나 이선우는 끈덕지게 이래화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이든 저지르겠다는 듯, 맹목적인 눈빛이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한마디 던지려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궁금하지 않아?”

“오빠, 그만해. 회장님은…….”

“아니.”

이선우는 이래화가 절대 무시하지 못할 말을 꺼냈다.

“네 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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