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그게 뭔데?”
“뜨거운 거.”
어차피 뜨거운 건 다 똑같지 않나……?
래화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얼마나 안이한 판단이었는지, 몸으로 직접 뼈저리게 교훈을 얻으리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흔쾌히 동의하자, 권이태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뭔가 미심쩍은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그는 어딘가 음흉한 표정으로 웃었다. 못된 장난을 꾸미는 아이 같은 웃음이었다.
래화는 지금이라도 핫젤이란 걸 쓰지 않겠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잠깐 망설이는 사이, 권이태는 통을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더니 래화의 음부 위에 젤을 쭉 짜냈다.
꾸직꾸직 흘러나온 젤이 체모가 희미한 음부의 틈 사이에 뿌려졌다. 미지근한 액체의 감촉이 이상했다.
음부에 옅은 분홍색 젤을 잔뜩 얹어 놓고, 권이태는 잠시 자신이 만든 광경을 구경했다. 그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야한데.”
“…….”
그 말을 하는 순간 그의 성기가 조금 더 고개를 치켜올렸다. 숫제 아랫배에 달라붙을 기세로 빳빳해진 모습에 래화는 마른 침을 삼켰다. 왠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이태는 콘돔을 씌운 성기 위에도 젤을 뿌린 다음, 귀두를 질구에 가져다 댔다. 예민한 살에 닿는 두툼한 감촉이 긴장되었다. 래화는 발끝을 움츠리며 속삭였다.
“천천히 넣어 줘…….”
그 말만으로는 부족한 거 같아서, 한마디 더 붙였다.
“살살……. 알았지?”
약속까지 받아 내려 하니, 권이태가 미간을 좁혔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래화야. 넌 말을 하면 안 돼.”
“왜……?”
“말하면 너무 꼴려.”
그러면서 갑자기 성기를 쑥 밀어 넣었다.
“아!”
래화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크게 떴다. 잔뜩 빨리고 젤까지 뿌려서 흥건하게 젖은 상태인데도 버거웠다.
굵은 성기가 좁은 틈을 힘겹게 비집고 들어왔다. 질구가 한계까지 팽팽하게 벌어지는 느낌에 저절로 몸이 떨렸다.
깜짝 놀라서 밑을 확인해 보니, 겨우 삼분의 일 정도만 밀어 넣은 상태였다. 다 넣지도 않았는데 벌써 배가 꽉 차서 터질 것 같았다. 나머지도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 암담했다.
대체 저번에는 어떻게 넣었지…….
덜컥 겁이 나서 손으로 아랫배를 더듬어 보았다. 약간 불룩하게 튀어나온 느낌이 들었다.
“후우…….”
권이태는 눈을 질끈 감고 만족스러운 숨결을 뱉어 냈다. 사납게 찌푸린 눈매에 담긴 눈동자는 초점이 살짝 풀려 있었다.
그는 울먹울먹한 얼굴의 래화를 보곤 손바닥으로 아랫배를 살살 쓸어 주었다. 달래는 손길에 래화는 얼른 죄책감을 유발할 만한 말을 꺼냈다.
“젤 썼는데도 아파…….”
가만히 있으라고,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이 상태로 얌전히 기다리라며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러자 권이태는 슬며시 입매를 끌어올려 웃었다.
“큰일 났네…….”
묘하게 느려진 어조로 중얼거린 그가 앓는 소리를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빨리 좋아져야 할 텐데, 읏…….”
핫젤이란 걸 쓰면 조금이라도 수월할 줄 알았더니, 효과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성기를 넣을 때나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
뭔가 야릇한 느낌이 피어났다. 옅은 열감이었다. 점차 따끈따끈해지는 감각에 이래서 핫젤인가 싶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이쯤 하면 됐다 싶은 즈음에도 계속 멈추지 않고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밑이 강하게 아려 왔다.
“이거……, 이거, 이상해…….”
“뭐가?”
“너무 뜨거운 것 같은데……?”
예상을 넘어서는 열감에 겁먹은 눈으로 권이태를 보았다. 권이태가 슬근슬근 성기를 얕게 치대며 물었다.
“아파?”
래화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프다기보다는…….
“간지럽고 뜨거워.”
그렇게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허리를 살짝 흔들었다. 점차 안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이 커져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긁어 줘야겠네.”
권이태는 안으로 느릿하게 나머지 부분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커다란 것이 서서히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에 손끝이 하얘지도록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간지러움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점막에 느리게 마찰이 일어날 때마다, 작은 불개미가 살점을 깨무는 것처럼 간질간질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른 풀잎에 불길이 옮겨붙듯 금세 강해지는 느낌에 눈앞이 핑핑 돌았다.
“이상해……. 이거 왜, 왜 이래?”
씻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질거리는 감각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래화는 허덕거리면서 잘못된 상대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 하으, 어떻게 좀 해 줘어…….”
썩은 동아줄을 붙잡는 꼴임을 모르고 저지른 짓이었다. 불행히도 권이태는 이럴 때만 말을 아주 잘 들었다. 그는 매우 순종적인 태도로 래화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이거 긁으면 괜찮아져.”
“흣, 그래? 그럼 빨리이…….”
긁으면 괜찮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래화는 금방 괜찮아지리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 권이태가 아래를 빨아 줘서 한껏 열 오르게 만들어 놓았던 탓일까. 흐물흐물해진 점막에 젤은 빠르게 스며들었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효과를 발휘했다.
래화는 손과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결국 권이태의 팔뚝에 손톱을 박으며 끙끙거렸다.
“너무 뜨겁고 간지러워…….”
“으응, 자기야. 걱정하지 마. 내가 긁어 줄게.”
굵직한 성기가 뿌리까지 박혔다. 매끈한 사타구니가 젖은 음부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곤 다시 길게 뽑혀 나갔다가, 또 천천히 안으로 끝까지, 깊게 쑤셨다.
느리지만 정확한 움직임으로 푸욱, 푸욱, 안쪽 깊은 곳에 닿도록 쑤실 때마다 래화는 짧게 잘린 숨을 뱉어 냈다.
아까까지만 해도 넣고 있는 것조차 힘들어서 허덕거렸는데, 지금은 굵직한 살덩이가 들어올 때마다 눈앞에 별이 튀었다.
“나, 세게, 하으, 으응, 더 세게 해 줘, 아…….”
열기가 잔뜩 밴 간지러움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그냥 마구 쿵쿵 쑤셔 줬으면 좋겠는데, 저번처럼 그렇게 막 해 줬으면 좋겠는데…….
잔뜩 달아오른 몸에 주어지는 자극이 부족했다. 래화는 느긋하게 허리를 움직이는 권이태를 재촉했다. 아래를 바짝바짝 조이며 제가 먼저 엉덩이를 치켜들었다가 내렸다가 해 댔다.
안달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래화를 두고, 그는 안쪽을 시원스레 긁어 주는 대신 손가락으로 뾰족하게 솟은 유두를 꼬집으며 괴롭혀댔다.
“으, 으으, 흣, 가슴, 싫어, 하으, 하악……!”
빨리 아래를 쑤셔 줬으면 좋겠는데, 애꿎은 가슴만 괴롭히니 너무 괴로웠다. 얕은 절정이 잔뜩 달궈진 몸을 애매하게 쓸어 냈다.
“아아……!”
가느다란 신음과 함께 몸을 파르르 떨자, 여태 미적미적 움직이던 성기가 힘 있게 안쪽을 쳐올렸다. 퍽, 하고 세게 때리는 감각에 눈을 크게 떴다.
괴롭던 소양감이 한순간에 밀려나면서, 밑에서 뭔가 조록, 하고 물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한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힉…….”
급하게 숨을 들이켜며 뒤늦은 신음을 토해 내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권이태가 마구잡이로 허리를 흔들었다.
신음할 새도 없이 몸이 엉망으로 뒤흔들렸다. 둥글고 굵직한 귀두가 가장 깊은 곳을 쿵쿵 쳐올렸다.
발정 난 짐승도 이만큼 붙어먹진 않겠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움직임이었다. 몰아치는 행위에 래화는 정신 못 차리고 질질 끌려갔다.
기다렸다는 듯 끊임없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절정에 온몸이 발발 떨렸다. 신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헐떡대다가 다 풀어진 혀로 겨우 애원했다.
“아, 처, 천처니, 주, 죽으 거 같……, 아읏! 아…….”
“후으, 아까는 빨리 하라더니…….”
“아니야, 나, 시, 싫어, 안 돼, 주, 죽어, 아악……!”
“흣, 하아, 이렇게 다 싫어서, 응? 우리 자기, 어쩌지…….”
걱정하는 시늉만 낼 뿐, 허리 아래의 움직임은 더욱 격해졌다. 밑이 뜨거워지다 못해 고장 난 것 같았다.
커다랗게 뜬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애처롭게 버둥거리던 다리가 꼿꼿해지는 순간, 래화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술을 벙긋 벌렸다. 한껏 허리를 휘었다가, 다시 침대 위로 툭 떨어져 온몸을 발발 떨었다.
“래화야, 후으, 이거 봐……. 너 또 싼다, 지금…….”
싸는 줄도 몰랐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아래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에서 삼키지 못한 침이 흘렀다.
감각 신경이 고장 난 것처럼 계속 쾌감을 보내기만 했다. 제발 잠깐이라도 자극이 멈췄으면 좋겠는데, 끝없는 절정이 이어졌다. 황홀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쾌감이었다.
“여기 쑤셔 주니까, 큭, 하아, 좋아 가지고 꽉꽉 물어 대는데…….”
자지러지는 래화를 보며 권이태가 새까만 눈으로 웃었다.
“안 쑤셔 주면, 내가, 응? 남편 자격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