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하 키치웨딩-53화 (53/132)

53화

기묘한 의뢰였다.

부모는 용병 업계에 뛰어든 아들을 지켜 달라고 요구했다.

조건은 지속적인 감시와 보호, 그리고 아들의 행적에 대한 정기 보고. 모든 것은 타겟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리에 진행.

매년 거금을 지불할 테니, 몰래 아들을 살펴 달라는 특이한 의뢰를 슈미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이 정도로 극성스럽고 돈 많은 부모가 아들이 위험한 직업을 선택하도록 내버려 뒀다니 말이다.

보통 위험한 것도 아니고,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는 용병 일이었다. 일반적인 부모라면 강제로라도 집에 데려가려 할 텐데, 그의 부모는 한 발짝 떨어져 적당히 관망하길 택했다.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굳이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돈만 받으면 끝이었다. 남의 집 복잡한 가정사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의뢰인에게 받은 ‘권이태’의 사진과 영상을 보고, 배우나 할 것이지 왜 용병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을 뿐이었다.

의뢰를 편하게 수행하기 위해, 권이태에게 데저트로 들어오라는 오퍼를 보냈다.

하지만 권이태는 오퍼를 받기도 전에, 이미 다른 PMC 업체와 계약하고 아프간으로 가 버린 뒤였다.

미군 철수 이후, 병력을 대체하기 위해 아프간에는 PMC 용병들이 많이 투입된 상태였다. 제대로 된 경력도 없는 권이태가 멀쩡한 업체와 계약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업계에서도 쓰레기 같기로 유명한 곳과 계약했고, 총알받이로 버려지는 지역에 투입되었다.

권이태를 구하기 위해, 최정을 데리고 그가 투입되었다는 지역으로 향했다.

“거기로 간다고? 이미 다 죽었을 텐데?”

현지 군인은 얼마 전에 그곳에서 교전이 벌어졌고,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다. 슈미트는 미간을 깊게 구겼다. 반항기 도련님을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지고 있었다.

불안함을 느끼며 권이태가 파견된 위치에 도착했으나, 죽은 자들의 마을은 인적 하나 없이 고요했다. 오직 시체 썩는 내만 가득할 뿐이었다.

의뢰 실패에 무게를 기울이던 때였다. 나무 위에서 웬 남자가 뚝 떨어지며 슈미트를 제압했다.

슈미트는 제 목에 닿은 칼을 확인했다. 날이 빠진 칼은 피가 말라붙어 검붉었다. 시체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몰골의 남자가 유난히 새까만 눈을 하고서 무어라 말했다.

잔뜩 쉰 목소리로 내뱉는 언어는 아마도 한국어인 듯했다. 최정에게 눈짓하여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그러자 총을 조준하고 있던 최정이 황당한 얼굴로 답했다.

“먹을 거 있냐는데요……?”

권이태는 살아남았다.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고, 함께 투입된 용병들은 죄다 죽었지만, 그는 끝까지 적들을 사살하며 버텼다.

그러나 전투에 처음 투입된 이가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간 끌기용으로 쓰고 버리는 패인지라 지원군도 오지 않을 상황이었다.

죽음이 당연하건만, 권이태는 시체 속에 몸을 숨겨 살아남았다. 기어코 목숨을 건진 후에는 마을에서 썩은 음식을 먹으며 버티다가, 슈미트와 최정을 발견하곤 강도질을 시도한 것이다.

그게 권이태와의 첫 만남이었다.

정식으로 데저트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 권이태는 미친놈처럼 굴었다. 남들이 다 피하는 위험한 의뢰만 골라 맡아선, 오늘 당장 죽어도 상관없을 놈처럼 날뛰었다.

부잣집 도련님이 제대로 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슈미트는 그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최정과 메이를 붙여 줬다.

“어떻게든 목숨만 살려 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서포트로 붙은 최정과 메이가 권이태에게 호감을 품은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은근히 권이태와 함께하는 임무를 즐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메이는 직접 권이태의 통신용 닉네임까지 지어 줬다. 케이는 제이랑 비슷하고, 리는 촌스럽고, 테이는 테디 베어 같으니까 태이로 하자며 별명을 붙여 주었다.

셋이 뭉쳐서 위험한 의뢰만 도맡아 번번이 성공해내니, 어느새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팀이 되었다.

이쯤 되니 슈미트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와 왜 친해진 거죠?”

빈말로도 성격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자였다. 친해진 이유를 물으니, 최정과 메이는 둘 다 비슷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어……. 그 새끼가 일할 땐 존나 멋있긴 하죠?”

“슈미트도 태이랑 같이 임무 한번 해 보세요.”

하여 호기심에 슈미트도 현장 업무를 함께 나가 봤고, 4명이 처음으로 합을 맞춰 일했다. 그때 넷이서 치러 냈던 전투는 아직까지도 PMC 업계에서 전설로 회자되곤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슈미트 또한 권이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수십만 달러의 의뢰마저도 마다하고 권이태를 선택할 정도로 관계가 발전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단순한 호감만으로 깊어진 관계가 아니기에 더욱 무거운 것이리라.

자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그를 아꼈고…… 또한 연민했다.

“당신 부모가 내게 연락했습니다.”

슈미트의 말에 권이태가 재깍 반응했다.

“무슨 개소리야. 나 부모 없는데.”

“정정하죠. 당신과 일부 혈연적 관계를 공유하는 존재들이 내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

“결혼에 대해 묻더군요.”

권이태가 미간을 좁혔다. 남자 십여 명을 두들겨 팰 때도 잠잠하기만 하던 눈빛이 처음으로 사납게 일렁였다.

“그들이 이래화에 대해 알고 있어요.”

“네가 말했어?”

“그럴 리가요.”

딱딱한 어조로 자르듯 답한 슈미트는 입술을 다물었다. 권이태의 목에 새겨진 뱀 문신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는 법이에요. 특히 당신이 한국에서, 그것도 이래화의 곁에 머무른다면 높은 확률로 그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겠죠.”

“…….”

“지금 이 문제에 관해서 이성적이지 못한 듯하니, 내가 대신 이성적인 말을 하겠습니다.”

슈미트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담담하게 질문했다.

“이래화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무슨 뜻이야.”

“당신이 평생을 혐오해 왔던 것들과 맞닥뜨려야 할지 모르는데도?”

권이태에게 가장 예민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조금 건드려야 할 것 같았다.

필요 이상으로 그를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감정을 담지 않은 이성적인 어조로 말했다.

“이번에는 심장이라도 떼 달라고 하면 어쩔 겁니까.”

“…….”

권이태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검은 눈동자가 소름 끼치도록 고요한 정적으로 가라앉았다.

익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오히려 얌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욕이라도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이 없어서 의외로웠다.

슈미트를 응시하던 권이태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는 불만 붙이고 피우질 못한 담배를 피 웅덩이 속으로 던졌다.

슈미트는 그와 함께 핏물에 젖어 꺼지는 담뱃불을 지켜보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래화가 마카오행을 선택하길 바랐어요. 그녀 때문에 당신이 한국에 갇혀 있는 게 이해되질 않아서요.”

권이태를 망가뜨린 곳이었다. 그가 한국에 가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슈미트는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그녀를 좋아하나요? 당신 인생을 전부 걸 만큼.”

지저분한 아스팔트 바닥 위로 핏물이 느릿느릿 뱀처럼 기어갔다. 붉은 뱀처럼 뻗어 나가는 핏줄기를 공연하게 지켜보던 권이태가 중얼거렸다.

“……모르겠는데.”

던진 질문에 비해 맥 빠질 정도로 가벼운 대답이었다. 슈미트는 눈썹을 찌푸렸지만, 그를 탓하진 않았다. 다만 좀 더 생각하도록 기다려 주었다.

“그냥 나는.”

한참 만에 조그만 한마디를 내놓고, 권이태는 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말하기 위해 고심했다.

“걔를 혼자 못 놔두겠어.”

아마 이것이 감정적인 문제에 서툰 권이태가 현재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이리라.

역시 세상일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원했던 이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꼴을 보며, 슈미트는 쓴웃음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권이태가 긴 숨을 뱉었다. 그는 제 목덜미를 한 번 쓸어내고서 나직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그쪽은 어차피 한국 온 김에 정리하려고 했어. 이제 거기도 오늘내일하는 나이일 텐데, 죽기 전에는 결판내야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솔직히 왜 아직도 나한테 미련을 못 버리는지 이해 안 가긴 하는데.”

권이태는 끝 모르고 흘러가던 핏줄기를 발로 짓밟았다. 검은색 스니커즈의 고무 밑창에 핏물이 찐득하게 엉겨들었다.

“내가 자기 아들 죽인 거 뻔히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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