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하 키치웨딩-62화 (62/132)

62화

데저트는 민간 군사 기업 중에서 가장 큰 회사는 아니지만, 가장 유명한 회사였다.

그곳에 속한 인물들이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덕분이었다.

본래 실력 좋은 1)건스미스였다가, 온갖 기계를 개조하기 시작하면서 용병 업계에 들어온 최정.

정보상으로 일하다가 좀 더 재밌고 위험한 일을 찾아 용병이 된 메이. 독일 귀족 혈통인 주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쟁 회사를 차린 슈미트.

그리고 성년이 되자마자 용병 업계로 뛰어들어 온갖 의뢰를 처리해 낸 권이태.

하나하나가 업계에서 영입하고 싶어 탐내는 인물들뿐이니, 주목받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네 사람이 함께 맡은 의뢰는 불패의 신화를 기록해 왔다. 의뢰인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넷을 고용하여 일을 맡기고 싶어 했다.

만일 불가능하다면, 권이태만이라도 데려가길 원했다. 특히 레드존, 위험 지역에서 수행하는 의뢰는 권이태만큼 확실하게 도맡아서 해결해 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권이태를 고용하는 비용은 매번 갱신되어서, 현재 업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인물이 되었다.

그런 네 사람이 죄다 한국으로 향했으니, 업계에서는 제법 화제가 되었다. 권이태가 한국에 갔다는 이유 하나로 혹시 한국이 휴전을 끝내고 북한과 전쟁을 시작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권이태가 한국 같은 평화로운 지역에 갈 리가 없으니까.

한국에 가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권이태의 행보는 예측 불가였다. 메이는 그가 처음 제게 부탁했던 일을 떠올렸다.

“나 한국에서 일하고 싶으니까 정보 흘려 줘.”

뜬금없이 대산 건설의 이래화라는 사람이 지금 경호원을 구하고 있으니까, 그쪽이 저한테 오퍼를 넣을 수 있도록 정보를 흘려 달라는 것이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긴 했지만, 하면서도 얼떨떨했다. 하도 믿기지가 않아서 이거 저한테 장난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권이태한테 워낙 온갖 장난을 다 치던 메이였다. 별 희한한 짓을 다 해 대서 얻어맞을 뻔한 적도 있던지라, 권이태가 드디어 제게 복수하려고 이런 장난을 치나 했다.

하지만 진짜로 의뢰를 받아다 한국으로 가 버린 걸 보고, 메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지랄병이 이제 뇌에까지 퍼졌다고 말이다…….

저러다가 말겠거니 했는데, 권이태는 점점 더 이상해졌다. 급기야는 최정과 메이, 슈미트까지 합류해서 이래화를 경호하도록 했다.

이래화는 20억이라는 보수를 내걸었다. 개인이 내거는 보수치고는 분명 큰 금액이지만, 데저트에서 가장 유명한 네 사람을 동시에 고용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사실 의뢰가 끝나고 잔금을 받더라도, 권이태한테는 오히려 손해가 날 수준이었다. 그가 1년 동안 맡았을 다른 의뢰의 기회비용을 고려해 본다면 더더욱 말이다.

여러모로 손해만 보는 의뢰인데도, 권이태는 여태껏 임했던 그 어떤 의뢰보다 열성적으로 나섰다. 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진짜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권이태는 이래화 때문에 평생 감춰 왔던 비밀을 드러내겠다고 결심했다.

메이가 여태 권이태에게 갖가지 장난을 쳐 댄 이유는 물론 재미도 있지만, 그가 모든 일에 무감하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웃고, 화내고, 짜증 내는 척하지만 전부 시늉에 불과했다.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를 제외하곤, 권이태는 결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언제나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진 사람처럼 무감한 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여 메이는 일부러 권이태에게 더 많은 장난을 쳐댔다. 그가 비뚤어진 분노가 아닌,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년간 별별 짓을 다 해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한국에 와서 보게 되었다. 전부 이래화와 가짜 결혼을 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

메이가 작업실로 사용 중인 한남동의 오피스텔에 모인 네 사람은 한참 침묵했다. 방금 권이태가 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메이는 멍하니 입술만 벌렸다. 회의하면서 먹으려고 탁자에 쌓아 뒀던 과자 탑은 건드려 보지도 못했다.

“……미안.”

권이태가 짧은 사과를 뱉었다. 그의 사과에 슈미트는 팅, 하고 지포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얇은 시가에 불을 붙인 슈미트가 연기와 한숨을 함께 뱉었다. 말이 없는 슈미트를 대신해 최정이 입을 열었다.

“본가로 돌아가는 거면, 앞으로는 용병 일은 못 하겠네.”

“그렇지.”

“너 한국 간다고 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마 권이태 본인도 몰랐을 테다. 최정과 메이는 복잡한 기분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대로 권이태와 완전히 인연이 끊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의 본가는 분명 용병이었던 권이태의 과거를 지우려 들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용병 나부랭이들과 어울리는 일도 허용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권이태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이래화 경호는 그대로 가는 걸로 하고, 새로운 의뢰 하나만 더 하자.”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슈미트가 시가를 재떨이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의뢰를 맡기려는 건가요? 우리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더 있을지.”

슈미트의 말대로, 더 이상 용병들이 할 만한 일이 없었다. 이제 권이태는 혼자서도 이래화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나 도와줘. 앞으로 할 일에 너희가 필요해.”

권이태는 메이가 탁자 위에 쌓아 놓은 과자 탑을 툭 쳤다. 납작한 네모 모양의 커피 맛 과자로 쌓은 탑은 빈틈없이 튼튼했으나, 그의 손가락질 한 번에 와르르 무너졌다.

부실 공사라도 한 듯이 요란하게 무너지는 과자 탑을 지켜보던 권이태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대산 건설.”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먹을 거야.”

***

딱!

경쾌한 소리가 잔디밭 위로 시원하게 쏘아졌다. 완벽한 자세로 골프채를 휘두른 이정환은 홀컵 안으로 쏙 굴러 들어가는 골프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따라 날씨도 선선하고, 게임도 술술 잘 풀렸다. 오랫동안 신경을 긁던 일도 멋지게 해결되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늘집은 다른 골퍼들 없이 한산했다. 기념적인 날을 위해 골프장을 하루 통째로 빌린 덕분이었다.

“박 실장, 자네가 정말 큰일 해 줬어. 내 자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니까.”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정환은 껄껄 웃으며 시원한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흡족한 눈으로 그늘집에 걸린 TV를 바라보았다.

TV에는 이래화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중이었다. 앞선 다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십 위주의 싸구려 프로그램이었다.

박 실장이 가져다준 태블릿 PC에 뜬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서도 실시간으로 기사가 계속 쏟아졌다. 잔인할 정도로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을 주욱 훑으며 이정환은 미소 지었다.

침착한 척하지만, 동요가 고스란히 느껴졌던 이래화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내기는 자신의 승리였다.

이정환은 과거 건방진 말을 내뱉던 권이태를 떠올렸다. 그놈은 스위트룸을 엉망으로 엎어 놓고 나서 저에게 이죽거리며 제안했더랬다.

“저랑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그가 말한 내기는 ‘진실’이었다. 권이태는 그때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혹여나 그가 정말로 진실을 밝혀낼까 봐, 이정환은 더욱 초조했다.

하지만 이제 내기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다. 아예 진실을 파헤칠 수가 없게 되었으니까.

앓던 이가 빠진 기분으로, 이정환은 연신 웃음을 흘렸다. 그가 기분 좋게 다시금 태블릿을 들여다보던 때였다.

“……?”

이정환은 제 눈을 의심했다. 처음에는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코 아니었다.

인터넷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지워지고 있었다. 가장 댓글이 많았던 기사부터 순서대로 연이어서 삭제되는 광경은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기자들에게 넉넉하게 뒷돈 찔러 주면서 이래화에 관한 악의적인 기사를 작성하도록 부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내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뚫어져라 뉴스 탭을 보는데, 이래화 기사가 사라지는 와중에 속속들이 새로운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1보, 속보 따위의 머리말이 붙은 기사들은 제목이 하나같이 동일했다. 이정환의 얼굴이 굳어지는 동시에, 종전까지 TV에서 이래화에 대해 떠들던 여자 진행자가 당혹스러운 기색을 애써 감춘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일원 그룹에서 여태 존재를 숨겨 왔던 혼외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공식 입장을 통해 발표된…….”

이정환의 시선이 TV 화면에 붙박였다. 낯익은 남자가 숨 쉴 틈도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아우성치는 기자들을 사이로 무표정하게 걸어갔다. 검은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남자를 지키기 위해 취재진과 몸싸움을 벌였다.

경호원들이 터 준 길을 따라 일원 그룹의 본사로 향하는 남자는 평소와 다르게 매끈한 정장을 입고 머리도 깔끔하게 넘긴 모습이었다.

태생부터 재벌가의 후계자였다는 듯, 무감하게 앞만을 보고 걷던 남자가 문득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 순간 이정환은 화면 속의 남자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귀를 찔렀다.

“……일원의 권이태 씨입니다.”

1)총기 제작자. 총기를 수리하고, 개조와 설계, 제작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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