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3화 (3/250)

3화

환희(歡喜).

내 속의 누군가가 기뻐하고 있었다.

가면도, 베일도 없는 탁 트인 방 안에서 음표들이 날아다니듯 선율이 퍼져나간다.

정전기가 일듯, 건반을 누를 때마다 소리가 뇌리에 깊게 새겨진다.

은은하게 울리는 음색이 다음 차례가 누구라는 것을 알려주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선율이 차례대로 펼쳐졌다.

움츠러드는 느낌 따윈 없었다.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날뛰었다.

‘마법 같아.’

단순히 전생이 기억하는 악보를 보는 기분이 아니었다.

마치 허공에 돌다리가 생겨나가고, 그 돌다리를 건너면 건널수록 새로운 돌다리가 생겨나는 것처럼.

연주를 진행하면 할수록, 떠오르는 감정들과 생각들이 가상의 오선지에 맺힌다.

곡의 기원부터 표현 방식, 어떻게 연주를 이어가야 하는지까지 알려주듯, 머릿속의 악보가 차례대로 흘러간다.

악보를 재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곡에 담긴 이야기를 고스란히 펼치기 위한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슬픈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느릿하고 암울하게, 기쁜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빠르고 경쾌하게.

가상의 오선지 속에 음표를 포함한 수많은 악상 기호들이 맺혀 있었다.

그것을 고스란히 펼치려는 손길에 나는 그동안 펼쳤던 연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이게 진짜 연주구나.’

전생이 보여주는 연주는 단순한 연주가 아니었다.

무언가 건네는 듯한 묵직함.

단순히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그 속에 무언가를 담아서 상대방에게 던지듯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에 의지가 가득 담겼다.

소리에 반응하듯, 바른 소리를 맞이한 손가락에 힘이 풀리며 곧바로 다음 의지가 건반에 전해진다.

다음 음표를 어서 쳐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음을 이어가는 멜로디.

그동안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듯 딱딱하게 연주를 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열정적인 환희에 반해 내 몸은 그 열망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바이올린과 차원이 다르구나.’

같은 음악이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피아노를 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음표를 현현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그러나 직접 연주해보니 차이점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왼손은 매끄러웠다.

바이올린의 현을 제대로 누르고, 빠르게 바뀌는 선율을 따라잡기 위해선 왼손의 유연성은 필수였다.

그러나 오른손이 문제였다.

음을 나타내기 위해 손에 강약을 조절하는 것은 있었지만, 활을 쥐던 손은 전생의 의지만큼 크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치 가고 싶은 마음은 출중하나, 걸음마가 온전치 못한 아이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보는 완벽에 가깝지만, 손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 정도로 힘을 줘야 할지, 얼마나 손가락을 펼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부채처럼 활짝 펴져야 할 손이 자꾸만 움츠러 들며 잘못된 음을 눌렀다.

그럴 때마다 리듬 게임에서 노트를 놓쳐 경고음이 들리는 것처럼.

잘 그려지던 상상 속의 음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인지 붉은색으로 변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왜일까.

‘멈추고 싶지 않아.’

내 본능이 속삭였다.

실수투성이 연주임에도 몸에서 활기가 넘쳤다.

전생의 기억도 있지만, 그 기억이 알려준 연주에 대한 철학.

마치 갈피를 잃은 나에게 앞으로의 길을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

평생 바이올린을 잡았던 손이지만, 피아노의 울림통이 나를 감싸듯 따스함을 내뱉었다.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

문득 이렇게 나아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걱정에 전생의 기억은 응원이라도 하듯 선율을 펼쳤다.

괜찮다고.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라고.

전생의 심장이 뛰듯, 내 심장도 덩달아 같이 뛰기 시작한다.

전생의 이안이 창 너머에 들려온 음악에 새로운 감각을 깨달았듯.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었던 내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선율에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듯.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감성을 전달해주고 싶어졌다.

이어나가던 선율이 오선지의 마지막 음표에 닿았다.

만족감과 함께 확신이 섰다.

내 진심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은 피아노라고.

그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연주에 빠진 사이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음악실을 나가려고 몸을 돌린 그 순간.

아버지가 내 연주를 다 들었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서 계셨다.

“이안아…”

***

처음에는 단순한 연주인 줄 알았다.

아버지인 자신을 따라 어린 시절 피아노에 손댄 적이 있었으니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다른 악기를 연주해보며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는구나.

단순히 그런 이유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곡이 나아갈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자신을 따라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쳤던 아들이니까.

기초를 배우는 데 피아노만 한 것이 없어서 아들 또한 꽤 오랫동안 피아노를 잡았다.

그러니 기본적인 소양은 다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수철의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는 기본적인 소양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옅게 들려오는 트레몰로에서는 간드러짐이 느껴졌고, 급변하는 박자와 템포에서도 끊김 없이 나아갔다.

유려하게 펼쳐지는 선율은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향연이었다.

알 수 없는 낯섦에 그는 몸을 일으켜 2층으로 향했다.

‘이 정도는…’

실제로 보고 있음에도 수철은 믿기지 않았다.

마치 꿈이라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안의 연주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버지가 들어왔는데도 연주에 심취한 듯.

경첩음이 꽤나 크게 울렸을 텐데도 이안의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온몸으로 음악을 느끼듯 이안의 몸이 자유롭게 하늘거렸다.

‘분명히 부족한 실력인데, 감정 표현이.’

가까이에서 들은 이안의 연주는 부족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마음이 급한지 자꾸만 박자를 틀리기도 했고, 빠르게 진행되는 음표의 선율에서는 실수도 잦았다.

본래 피아노를 치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였다.

그러나 수철은 연주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에 자꾸만 매료됐다.

마치 그러한 단점들이 모두 의도된 것처럼.

군데군데 빨라지는 박자는 벅차오르는 희열을.

음표의 선율에서 튀어나오는 불협화음은 들뜬 아이가 급하게 뛰다가 넘어지는 것 같았다.

수철이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지금 듣고 있는 곡의 정체를 몰랐다면.

실수마저도 의도라고 생각하고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마치 환희에 찬 아이가 발작을 하며 뛰다가 넘어졌음에도 다시 몸을 일으켜 뛰노는 것처럼.

아들의 선율은 누구보다 자연스러웠다.

세계 무대에서 연주를 선보이려면 실수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악보를 재현하는 능력만 본다면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비슷하리라.

그러나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각자가 연주하는 느낌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었다.

어느 손가락에 강세를 두는지, 셈여림표를 얼마만큼 반영하는지, 스타카토와 트레몰로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등등.

미세한 차이가 곡의 감정을 좌우하고, 그 감정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피아니스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이안의 실력은 분명 피아노 전공생과 비교하면 다소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안의 연주는 이미 정상급 피아니스트가 보여주듯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휘어잡고 있었다.

‘바이올린으로도 좀처럼 하지 못했던 녀석이…’

수철은 최근 이안의 바이올린 연주를 기억하고 있었다.

협주곡 실기고사 때문에 집안에서도 연습을 하곤 했었으니까.

그때마다 그가 느낀 감각은 하나였다.

‘너무 기계적이야.’

마치 시험을 위해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듯.

이안의 연주는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하고 형식적인 면모가 강했다.

국내 최고 대학에 입학한 아들의 실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직 이안의 연주 실력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피아노를 잡은 아들의 연주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실수로 눌린 건반에 음들이 튀어나가듯 이상한 소리를 내고, 불협화음에 본능적으로 미간이 좁아졌지만, 연주가 끝났을 때는 그러한 실수 대신 은은한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그 묘한 감정선에 덩달아 아버지인 수철도 내심 가슴이 뛰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피아노는 단순히 건반을 누른다고 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손가락을 세워서 연주하느냐, 손가락을 눕혀서 연주하느냐.

겉에서 보기엔 건반을 무심하게 툭 건드리는 것 같아 보여도 연주자는 손가락 마디마다 힘을 달리하여 선율을 조절한다.

분명 아들은 기본기만 배우고 바이올린을 잡았기에 그런 다채로운 스킬들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아들의 손길은 말로 형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했다.

물살에 파형만 겨우 일으킬 정도로 약하게, 손으로 자라난 풀잎들을 스치듯 가볍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듯 있는 힘껏.

의도를 정확히 아는 듯한 손가락 세례에 음악이 생명을 얻고 춤추고 있었다.

***

“어떻게 한 거야?”

그 한마디에서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모든 연주를 듣고 계셨다는 것을.

이 정도의 수준은 본래 아들이라면 할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을 피아니스트인 아버지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어요.’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할 순 없었다.

진실이어도 아버지는 믿지 않으실 테니까.

“피아노 전공 친구 치는 거 어깨너머로 보고 연습했어요.”

아버지의 표정이 잔잔하게 떠올랐다.

아버지도 피아니스트이기 이전에 음악가이실 테니까.

어쩌면 나보다도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차이점을 더 잘 알고 계실 터였다.

바이올린은 최대 4개의 현에서 선율을 뱉지 못한다.

하지만, 활을 쥔 세기와 보잉의 속도, 오른손은 물론 왼손에 진동을 주어 음을 떠는 비브라토까지 활용하면 소름 돋도록 다채로운 음악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

피아노는 비브라토만 낼 수 없다는 점을 빼면 바이올린보다 많은 선율을 표출할 수 있었다.

무엇이 더 낫다 할 수는 없었다.

피아노는 피아노만의,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만의 매력이 존재했으니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노력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것은 전공의 영역이었다.

아버지의 눈망울은 내게서 그 감정선을 건드리는 경지를 봤다는 듯한 작게 떨리고 있었다.

장본인인 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아버지 또한 믿기 어려우셨겠지만, 본 것은 실체였으니 더 이상의 의문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 콩쿨 준비는 잘하고 있니?”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에 의문점을 채워 넣으신 아버지는 그 뒤에 말씀하셨다.

말도 안 되는 연주에 바이올린보다 피아노에 집중했을까 봐 우려하시는 걸까.

며칠 뒤면 열릴 전국 콩쿨.

나는 당당하게 바이올린 부문 예선을 통과해서 곧 본선을 앞두고 있었다.

중요한 자리기에 평소보다 신중을 기했다.

큰아버지께서 후원하신 만큼 성과를 보여야 하는 결선의 장이자, 내가 단순히 큰아버지의 가족이라서 후원을 받는 것이 아닌 실력으로 후원을 받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본선에서 악기를 바꾸진 못하겠죠?”

“그렇지. 예선을 바이올린으로 통과했으니까.”

설마.

아버지의 표정이 차마 내뱉지 못한 단어를 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걱정이 묻어나왔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생각한 답을 내놔야 했다.

“그럼 본선을 포기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잠깐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우려와 함께 방금 들었던 연주에서 가능성을 엿본 듯 작은 기대감이 아버지의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 아버지께 나는 확신에 찬 말을 건넸다.

“이젠 가짜 연주 대신, 진짜 연주를 하고 싶어서요.”

단순히 전생의 기억이 피아노를 잘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보여준 덕에 나는 피아노 선율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보았다.

내가 아무리 바이올린을 잘 켠다 한들, 바이올린으로 그 무언가를 선보일 수 없다면, 죽은 연주자일 뿐이다.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두 심장이 공명했다.

“앞으로 피아노를 치고 싶어요.”

아버지는 말 대신 표정으로 우려를 내비쳤다.

어떻게 하려고?

직접 말로 표현하시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해결책이 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