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6화 (6/250)

6화

“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주지 않을래요?”

수석님이 악수를 건네듯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눈빛이 좋은 원석을 발견했다는 듯 빛난다.

“오케스트라 단장의 조카이자 피아니스트의 아들, 한국대 재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의 피아노 사랑! 클래식에 관심 많은 구독자들이 꽤 많은 흥미를 보일 것 같은데요? 출연한 뒤에, 이안 씨도 얻어갈 것이 있으면 잘 챙겨보고.”

수석님의 머리에서 수많은 키워드가 조립되는 것이 느껴졌다.

피아노의 대가이자 이제는 베테랑 유튜버의 삶을 사는 그녀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리라.

확신에 찬 말투로 제안하는 목소리에 신뢰감마저 느껴졌다.

97만 유튜버와 합방이라니.

동시에, 오감을 뛰어넘은 이 오선지가 알려주는 선율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더 확신했다.

세계에서 가장큰 공연장이 5만석이 넘는데, 약 97만 명 앞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아닌가.

더군다나 이제 막 계정을 만들어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는 어느 때보다 달콤한 제안이었다.

거대 유튜버를 통해 성장하는 초급 유튜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단순히 TV에 나오는 것보다 인증된 맛집 프로그램에 나온 가게가 더 대박이 나듯.

수석님의 채널은 나에게 맛집 프로그램 같은 것이었다.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석님의 손을 잡으려고 하던 그때.

문득 큰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매서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큰아버지의 얼굴.

나와 수석님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짙은 눈썹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가 연주 전보다는 누그러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큰아버지의 표정은 딱딱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이안 씨는 겸손하군요. 안 그런가요, 단장님?”

수석님이 너스레를 떨며 큰아버지를 바라봤다.

나 또한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다.

연주를 재주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큰아버지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곰이 재주 부리듯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매체로의 전환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었다.

클래식의 정통성은 실제로 듣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니까.

수석님도 나를 향해 제안하기 전, 큰아버지가 꽤나 불편하게 생각하실 것을 염려한 모양이었다.

답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듯 큰아버지는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큰아버지는 크게 상관 안 하실 거예요.”

무언의 긍정.

큰아버지가 대답을 한 것도, 고개를 젓거나 끄덕인 것도 아니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나와 수석님을 빤히 쳐다볼 뿐.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본래 이런 상황에서도 호통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 말을 잇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굳은 표정을 보아 큰아버지도 완전히 나를 인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내가 아는 큰아버지는 내가 실패한다고 해서 신경 쓸 분이 아니셨다.

그럴 줄 알았다고 넌지시 넘겨버리시겠지.

나는 수석님의 손을 잡았다.

“네, 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에 반드시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

자퇴원서.

내 손에 들린 서류의 이름.

맞다.

나는 오늘로 학교를 떠난다.

이미 지도 교수님의 도장은 받았기에.

남은 것은 학장님의 도장뿐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조직도가, 다른 한쪽에는 학생들이 타낸 트로피들이 나열된 방.

내게는 익숙한 학장실이었다.

그리고 학장님 앞에는 자개 명패가 반짝였다.

‘한국대 음악대학장 - 이호창’

현직 한국대 음대 학장이자 큰아버지와 같은 쥴리어드 스쿨 동기.

이름을 날리며 활동하지 않을 뿐, 그 또한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 자퇴 소식을 더욱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큰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분이셨기에 아무래도 남들보다 학장님을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큰아버지가 엄격의 교과서라고 한다면, 교수님은 온화의 교과서였다.

친구 같은 장난기로 학생들을 토닥이거나 아빠 같은 따뜻함으로 문제를 경청해주시는 교수님.

오죽하면 한국대 음대는 담당 교수보다 학장이랑 친해지기 쉽다는 말이 돌까.

“정말 이게 최선이야? 확실해?”

학장님이 드라마 대사 어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

장난투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의 목소리 한 켠에서는 우려가 잔뜩 묻어나왔다.

학교.

기본적인 교육기관이니까 분명 배울 게 없진 않을 테지.

학교 안에서 유명해질 방법도 분명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껏 다녀본 학교는 나에게 새장 같은 곳이었다.

자유보다 의무가 많은 곳.

학점도 채워야 하고, 과제도 해야 하며, 졸업 요건도 맞춰야 한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 쓸 바에야 혼자 연습해서 콩쿨 한 번 더 나가는 게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향하는 길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앞으로는 뭐 하려고.”

“콩쿨 준비해야죠.”

고작 그런 이유로?

입은 가만히 있었지만, 그리 얘기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 대단한 뜻을 가져서, 아니면 특별한 제안을 받아서 자퇴하는 줄 안 모양이었다.

“너 학교 나가면 콩쿨 추천서는 어떻게 하려고!”

“아버지께 써달라고 하죠. 안 된다고 하면 큰아버지께 부탁드려도 되고요.”

거침없는 나의 언변에 학장님은 잠깐 움찔거렸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는 듯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우리 학교 피아노가 연습하기 얼마나 좋은데.”

“저희 집에 있는 것만 할까요?”

아무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연습용으로 사용하는 피아노일 텐데.

“친구들이랑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도…!”

“저 아싸라서 그런 거 몰라요.”

이미 협주 중 연주를 뜬금없이 멈춘 학생으로 낙인이 찍혔는데.

퍽이나 다가오는 학생들이 있겠다.

이쯤 되니 학장님도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현철이는 뭐라고 하던데?”

“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그 양반이?”

지금껏 대화한 것 중에 가장 놀랐다는 눈치였다.

얼마나 당황하셨으면 안경까지 고쳐 쓸 정도였으니까.

아마 수석님보다 더욱 오래 큰아버지를 아셨을 테니 그 불같은 성격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도리어 학장님은 큰아버지의 의중을 이해했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학장님은 담담한 어투로 말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꾸욱.

자퇴 서류에 학장님의 인감도장이 찍혔다.

아, 그러고 보니 전공을 피아노로 바꿔서 콩쿨에 나간다는 말은 빼먹었다.

***

“콩쿨을 준비한다고요?”

메이크업이 한창인 수석님이었다.

지난번에는 워낙 편한 옷을 입은 탓에 등산을 다녀온 주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베이지 원피스에 화장까지 한 상태였다.

고고한 자태가 마치 귀부인 같았다.

“이안 씨도 메이크업 좀 받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흑역사 생기고 후회하지 말아요.”

수석님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그녀 또한 첫 인터뷰에서 혼자 메이크업을 했다가 평생의 흑역사로 남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는 내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연주자인데 얼굴이 중요할 필요가 있나요.”

담담한 나의 반응에 수석님은 고백을 받은 소녀처럼 숨을 멈췄다.

이내 그녀는 내 말이 맞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트로피가 정말 많으시네요.”

“이젠 유튜브용 인테리어일 뿐인걸요.”

스튜디오 벽면에 설치된 선반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트로피들이 깔려있었다.

가히 금빛 향연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정갈한 모습이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을 수 있구나.

그러나 수석님은 트로피에 시선도 주지 않았다.

“이젠 저쪽을 채우는 게 목표예요.”

수석님이 가리킨 쪽에는 다른 선반이 있었다.

꽉 찬 트로피들의 세례와 달리, 작은 선반에는 실버 버튼 하나만 놓여 있었다.

반백 년 이상을 한 가지에 몰두했다면 그 이외의 것은 눈길이 안 가기 마련일 텐데.

수석님은 새로운 도전을 즐기기라도 하듯 버튼을 향한 눈빛이 활기찼다.

그녀의 진심은 스튜디오에 모인 사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감독님~ 조명 앵글 살짝만 내려주시고 세기를 조금 낮춰주세요!”

맑고 힘 있는 수석님의 목소리에 감독이 발 빠르게 조명을 조정했다.

조명 감독뿐만 아니라 카메라와 음향까지 모두 전문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인력이 있음에도 수석님은 멈추지 않았다.

카메라 앵글을 모두 손수 확인하는가 하면 능숙한 듯 송출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다.

카메라에 담기는 자신의 모습은 물론, 내가 보이는 모습까지.

수석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전문 방송 PD로 보일 정도였다.

수석님은 이내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 방송 시작하시죠!”

카메라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머리 위로 손가락을 뻗었다.

3… 2… 1.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

“전 세계에 있는 멜로디분들! 안녕하세요. 오늘 만나볼 친구는 바로 한국대 음대 기악과에 재학 중인 박이안 학생입니다.”

ㄴ 헐 잘생겼다.

ㄴ 얼굴에 재능까지 있네. 부럽다.

수석님이 인사만 했을 뿐인데 프롬프터 모니터에 실시간 채팅이 순식간에 밀려 들어왔다.

엄청난 속도로 생성되고 사라지는 채팅에 수석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대 기악과! 우리나라 최고 음대죠.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바이올린 전공생이었던 이안 학생이 이번에는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연습 중이라는데요. 지금은 두 가지 악기를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다고 합니다.”

ㄴ ㄷㄷㄷㄷㄷ…

ㄴ 두 개 쓰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거임?

ㄴ 여러 개 악기 다루는 건 쉽지만, 수준급으로 다루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특히 바이올린이랑 피아노는 연주법 자체도 다르고, 아주 작은 차이로 곡의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원래 악기 한 종류 손에 익는 것도 힘들어요. 그런데 두 가지나 한다는 건 둘 다 제대로 안 하거나 허풍인 듯.

ㄴ 진지충 나가

즉각적인 답변들.

라이브 방송이 주는 신선함이었다.

순식간에 채팅창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는 의견과 오늘 연주 기대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아이 싸우지들 마시고 이따 직접 들어보시면 되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실 거죠?”

수석님의 유들유들한 말솜씨에 댓글 창이 조금씩 변화한다.

게다가 수석님이 작게 눈짓하자 댓글 창을 관리하는 PD들이 과한 욕설이나 반복되는 채팅을 빠르게 제재했다.

채팅창이 조금씩 느려지자 기회를 본 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어,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정정이 필요할 것 같네요.”

“어떤 건가요?”

주어진 대본에 벗어난 내용.

하지만 수석님은 당황하기는커녕 정말 그 소식이 궁금하다는 듯, 본래 이렇게 질문하기로 되어있었다는 양 능청스럽게 물었다.

“원래 한국대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자퇴했거든요.”

채팅창에 수없이 올라오는 갈고리.

순식간에 채팅창은 물음표로 도배됐다.

수석님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

잠깐이지만 의문 가득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베테랑답게 재빨리 웃음을 머금고 진행을 이어갔다.

“호. 몰랐던 사실이네요. 그럼 라이브 채널 제목 좀 바꾸고. 자, 자세한 건 이따가 이야기하고, 빠르게 연주부터 들어볼까요? 아이돌 커버를 준비하셨다고요?”

“네. 유라 님의 ‘기다려’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ㄴ ??? 댄스곡을 클래식으로?

ㄴ 상상이 안 가는데?

ㄴ 그래도 기대된당.

“좋아요! 감독님! 이거 반응 좋으면 음원으로도 출시하죠?”

“네에!”

수석님이 장난스레 던진 질문 한 마디.

하지만 감독의 대답이 옅게 전파를 타고 넘어가자 채팅창이 다시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 게스트의 연주를 음원화하여 게시했던 터라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나온 즉시 스트리밍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럼 이안 학생? 준비해주실까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름난 가수, 유라의 곡이었다.

10대에 데뷔를 하여 서른을 바라보는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유라.

청순, 상큼, 섹시, 성숙 등, 여자 아이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컨셉을 모두 섭렵하고 이제는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다져가는 사람이었다.

그중 ‘기다려’는 사랑하는 이에게 내가 고백하러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선전포고를 하는 듯한 가사로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곡조에 터지듯이 반복되는 ‘기다려’라는 가사 때문에 한 번 들은 사람들도 쉬이 빠져들 수 있는 멜로디였다.

‘기다려’.

방송을 보는 사람 대부분이 알 법한 노래.

내가 관심을 받을 수 있게끔 노래를 선정해준 수석님의 배려였다.

그 배려에 보답하듯.

내 손이 피아노 건반을 빠르게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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