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일주일 전.
수석님과 촬영 컨텐츠 회의를 할 때였다.
이제 와서 쳐보는 하농, 체르니.
K-piano. 케이팝을 피아노로!
우리 학교는 이런 것들을 배워요.
전공생이 피아노 기본을 쳐보는 컨텐츠부터, 가요를 피아노로 치는 것, 자신이 다니는 음대를 설명해주는 컨텐츠까지.
수석님은 3번 컨텐츠를 원하시는 듯했다.
한국대 기악과 학생의 말이라면 수많은 수험생들이 관심을 가질 테니까.
하지만 곧 자퇴를 생각했었기에, 그 컨텐츠는 겸허하게 거절했다.
대신 2번. 케이팝 가요를 피아노로 재현하는 컨텐츠를 선택했다.
그에 맞춰 수석님은 자신이 생각해뒀던 가요를 말했다.
유라의 ‘기다려’.
오케스트라 반주의 화려한 곡에 신나는 댄스 멜로디까지.
한동안 음악 차트의 1위 자리를 차지했던 것만큼 큰 인기를 가진 곡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아이돌이니 국내외 인기가 많은 수석님 채널에는 알맞은 곡이리라.
걸출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내 실력을 보이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클래식 장벽을 뛰어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해서 골랐다.
또, 음악 자체가 피아노로 탄생했을 때 듣기 좋았다.
아니, 연주할 때 떠오르는 머릿속 오선지의 선율이 내가 후보곡으로 둔 노래들 중 가장 선명했다.
“좋아요. 이안 씨의 능력을 맘껏 펼쳐봐요.”
수석님이 온전히 나를 믿는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셨지…
나 또한 그에 응답하듯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학교에서 기본적인 화성학과 대중음악 이론을 배웠기에 음을 따내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악보가 그려지며 선율을 만들어 냈으니.
본능적으로 떠올린 악상을 연주로 옮기기만 하면 그만이리라.
하지만, 가요는 일반적인 클래식과 다른 점이 많았다.
쉴 새 없이 변칙되는 박자와 한 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엇박자들.
클래식에 정통한 전생의 기억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아직 피아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내겐 그 선율을 모두 펼치기엔 역부족.
그로 인해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바이올린이었다.
‘바이올린으로 감각을 찾아가자.’
평생에 가까울 정도로 손댔던 바이올린.
전생의 기억도 있었지만, 몸에 체득된 본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피아노보다 빠른 속도로 선율을 찾아가는 것은 물론 변주도 쉽게 이뤄진다.
맞지도 않는 턱받침을 반대로 하여 오른손으로 바이올린 현을 누르는 연습을 하자 손가락이 묘하게 풀리는 기분이었다.
왼손잡이용 바이올린이 아니라 턱이 나무 상판에 그대로 닿아 연습을 끝내면 턱이 아팠지만, 빠르게 익숙해지는 모습을 생각하면 도리어 상쾌했다.
며칠 연습하자 오른손의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웠으니까.
게다가 이점은 하나 더 있었다.
‘아르페지오와 트릴. 바이올린과 비슷한 음색이 나.’
연달아 이어진 음계를 빠르게 쳐 화음을 만드는 아르페지오와 두 개의 음을 빠르게 반복하는 트릴.
두 가지 주법을 사용하자 바이올린의 주법처럼 반복적이고 화려한 기교가 펼쳐졌다.
특히 댄스곡이었던 기다려를 나타낼 때 빠른 박자를 소화하는 데 제격인 두 주법.
마치 기존의 소리가 맞닿아 하나가 되듯.
내 손안에서 오선지가 채워지는 경험은 새로운 기쁨이었다.
매번 강요되는 곡을 연주했던 전생이니까.
마치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이게 콩닥거리는 심장.
어서 연주를 더 해달라고.
함께 아름다운 연주를 해보자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눈을 감자 일주일의 시간 동안 만들어 낸 가상의 오선지가 떠오른다.
어떤 연주를 펼쳐야 할지 알려주는 것처럼.
악보에 맞추듯 손가락을 움직이자 해당하는 음표들이 밝은 빛을 내며 맞게 연주했음을 알려준다.
다음, 또 다음. 계속해서 건반을 누를 때마다 음표는 곡조가 되고, 곡조는 선율을 이룬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연주.
어느덧 내 손가락은 악보를 고스란히 답습하며 악상을 펼치기 시작한다.
***
은미가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어떻게 클래식을 대중들이 가깝게 느낄 수 있느냐였다.
많은 사람들의 자문을 구하고 젊은 단원들에게 직접 물어가며 도달한 결과는 하나.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어렵게 생각하는구나.’
은미를 비롯해 클래식계에 깊게 발을 들인 사람들은 기본적인 음악가는 꿰고 있었다.
바흐, 슈베르트, 쇼팽, 하이든…
그들이 어떠한 사조를 가졌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곡을 만들었는지 알고 있어야 곡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행진을 하는 분위기’라고 해서 무조건 화려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중세시대 말을 탄 병사들의 행진일 수도 있고, 탱크와 장갑차들이 일으키는 요란한 행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전쟁에서 패배한 패잔병들이 일 열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행진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은미는 항상 컨텐츠를 기획할 때 이러한 배경 사실을 몰라도 충분히 알 법한 상황을 바탕으로 컨텐츠를 꾸몄다.
이번에 이안이 맡게 된 컨텐츠도 같은 이치였다.
굳이 어려운 클래식 곡을 가져와 연주를 잘한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닌.
대중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했으면 싶었다.
유라의 ‘기다려’를 추천한 이유도 그 때문.
자신의 구독자 대부분이 알만한 노래이기에.
그리고 오케스트라 반주로 시작하여 클래식 전공인 이안이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기에.
반백 년 동안 음악을 붙잡았던 그녀가 생각한 나름의 배려였다.
그런데, 이안의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다.
‘대박이다.’
은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렸다.
이안이 연주를 시작한 지 30초도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그려나가듯.
이안의 손가락이 건반을 일제히 누르자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음색이 펼쳐진다.
강렬한 댄스곡의 전주를 표현하려는 듯 시작부터 8개나 되는 음이 일제히 튀어나간다.
은미의 머릿속에 저절로 악보가 스쳐 지나갔다.
셋잇단음표에 따라 순식간에 펼쳐지는 음표들.
현란한 타건법에 은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란 것은 은미뿐이 아니었다.
장내에 있던 스태프들과 감독들, 심지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까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ㄴ ???
ㄴ 원래 바이올린 전공이라 하지 않았음?
ㄴ ㄷㄷㄷㄷㄷㄷ 뭔데 실력
ㄴ ㄴㅇㅁㅇㄱ
이미 실시간 채팅창은 불이 나고 있었다.
읽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
그러나 읽을 필요는 없었다.
댓글의 반 이상이 놀라움에 물음표를 치거나 초성으로 이뤄진 감탄사뿐이었으니까.
이안의 연주가 격해지면 더욱 빠르게, 연주가 느려지면 은은하게.
마치 이안이 채팅창을 지휘하듯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가 연주에 따라 변화했다.
‘분명 실력은 학부생들 중에서 조금 잘하는 수준인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 정도 연주는 학부생이라면 가능한 수준이었다.
피아노 연주의 기본인 아르페지오조차 못한다면 피아니스트를 꿈꾸면 안 되는 수준이리라.
그건 기본이 아니라 연습을 안 한 수준일 테니까.
그러나 순간 그녀는 떠올렸다.
이안의 본래 전공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을.
워낙 현란하게 움직이는 양손 때문에 그녀는 이안이 날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날 때부터 피아노를 깨쳤다고 해도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오랜만에 은미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본래 전공도 아니고, 겨우 일주일 시간을 주어 만들어 낸 무대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수를 하더라도 처음 방송 출연이라 긴장해서 그렇겠지 하며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안의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그 생각이 한순간에 구겨졌다.
그녀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제대로 듣지 않으면 그것이 도리어 모독이다.
마음 놓고 감상하려고 했던 생각이 달아났다.
‘스킬도 특별한 게 없어.’
이안의 연주는 지극히 기본에 가까웠다.
여느 피아니스트들이 그렇듯 손가락은 가볍게 흩날리듯 건반을 건드린다.
여유가 넘치듯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세워 압력을 최소화하거나, 손가락을 눕혀 음에 진한 기운을 담는다.
모두 피아노를 전공으로 선택했을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들이었다.
그녀도 피아노를 수학할 때 배웠던 것들 아닌가.
그런데 이안은 이미 그러한 수학 시기를 지나 현실과 맞닿은 존재 같았다.
풍파를 맞닥뜨린 사공이 돛을 펴고 접는 것만 활용해서 파도를 이겨내듯.
그의 연주는 그러한 기본들이 다채롭게 쌓여 새로운 느낌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숱한 기본 사이.
은미는 미묘하게 다른 이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을 느꼈다.
심지어 자신도 내본 적 없는 듯한 소리.
은미의 머릿속이 비상하게 돌아갔다.
그동안의 노하우들을 전부 훑고 뒤진 후에야 그녀가 느꼈던 기묘함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처럼!’
설마.
하지만, 은미의 생각은 확신에 가까웠다.
아직 전공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안에게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이 편했으리라.
그렇기에 기술적으로 모자란 부분을 메꾸기 위해 이안은 바이올린을 들었을 테지.
그 덕에 이안은 아무나 구현해낼 수 없는 피아노 소리를 만들어 냈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음에도 원곡의 당돌함이 느껴질 정도로 통통.
마치 바이올린 현을 연속적으로 긋는 것처럼 피아노 건반이 빠르게 이어지며 그와 같은 소리를 낸다.
손가락이 건반 사이를 빠르게 옮기면 소리가 끊길 법도 한데, 이안은 그것을 위해 쉴 새 없이 페달을 밟았다 떼었다를 반복한다.
마치 온몸으로 피아노를 다루듯, 선율만큼이나 이안의 몸도 넘실거린다.
‘저렇게나 음악을 즐길 수 있구나.’
베테랑 피아니스트도 처음 연주하는 자리에선 급해지기 마련이다.
그녀도 한때 당황하여 박자를 놓쳤던 때가 있었으니까.
분명 이안도 당황할 법한데.
도리어 이안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 있었다.
수많은 스태프들과 보이진 않지만, 자신을 보고 있을 수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은미의 머릿속에 오케스트라 단원들 앞에서도 떨지 않고 연주에 임했던 이안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ㄴ ㅋㅋㅋㅋㅋ 은미쌤 지금 놀랐다.
ㄴ 은미좌… 침 닦으세요…
-선생님. 멘트!-
은미는 연주가 끝났음에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프롬프트 모니터에 스태프의 지시가 적히고 나서야, 스태프가 작게 속삭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은미는 흐르지도 않은 침을 닦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구 미안해요! 우리 멜로디들! 내가 정신을 못차렸다 그죠?”
은미는 최대한 평정심을 되찾고 진행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안을 마주하자 뛰는 가슴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껏 연주를 들어오면서 닮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만약 가능하다면 은퇴를 미뤄서라도 다시 피아노를 수학하겠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최대한 마음을 쓸어내렸다.
“아주 대단한 연주였어요! 연습 시간이 짧았을 텐데.”
“아닙니다. 그저 멜로디분들 잘 들으시도록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ㄴ 아니 왜 멘트에서 아저씨 냄새가…
ㄴ 이건 음원 각이다. 눌러라 얘들아.
“고생한 이안 학생을 위해 잠깐 쉬었다가 갈게요. 그동안 아쉬울 테니, 이안 학생 연주 다시 보고 계셔요!”
은미는 스태프가 보내는 화면 전환 사인을 보고 나서야 몸에 힘을 풀었다.
처음으로 방송사고를 일으킬 뻔했다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했다.
“이안 씨. 정말 멋졌어요. 이번 조회 수 대박일 거야.”
은미는 절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녀의 말에 이안은 멋쩍은 듯 목례를 하고는 자신이 찍힌 방송을 바라봤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탓에 보통 이쯤에 시청자들이 빠져나가기 마련인데, 오늘은 시청자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방송인들도 어찌 소문을 듣고 왔는지 찾아와 채팅창의 열기를 더했다.
ㄴ 소문 듣고 찾아왔습니다~
ㄴ 아니 이게 말이 되나…
ㄴ 이안 오빠 잘생겼어요 35트.
ㄴ 이건 음원 나와야 합니다. 다들 투표 ㄱㄱ
“이쯤에서 하이라이트 안 볼 수 없겠죠? 이안 학생. 아까 보니 채널이 있던 것 같은데.”
방송 막바지에 이르러서 은미가 말했다.
일명 ‘방송 키우기’.
이전에도 은미와 방송을 한 덕에 구독자를 모은 새내기 음악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시청자들은 이안의 채널을 아는 듯 방송 중간중간에 클립을 보내왔다.
“저희가 방송 전에 미리 구독자 수를 띄워놨어요.”
은미가 자연스레 송출 화면에 이안의 유튜브 페이지를 띄웠다.
박이안
구독자 3명.
이름 그대로 쓴 데다 프로필 설정도 하지 않아 ‘이안’이라는 하얀 글자만 있는 채널.
채팅창에는 아저씨 같다느니, 귀엽다느니 반응이 올라왔다.
보통이면 채팅을 읽으며 시간을 끌 테지만, 이번에는 은미도 궁금해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 멜로디들! 딱 10초 줄게요! 우리 힘을 보여주자구요!”
10초.
은미가 열 손가락을 차례로 접으며 시간을 쟀다.
채팅창에도 그것에 화답하듯 그녀의 손가락에 맞춰 숫자들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시간이 다 되자 은미는 곧바로 F5 버튼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잠깐 하얗게 깜박이는 화면.
다시 떠오른 화면의 숫자에 스태프들이 약한 경악성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