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8화 (8/250)

8화

7만 회.

수석님 방송에 참여하고 난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조회 수가 뻥튀기되어 있었다.

분명 업로드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도 조회 수가 두 자릿수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올린 영상이자, 큰아버지께 보여드리려고 연습하면서 찍었던 에튀드 13번.

지금 보면 그저 부끄러울 수준인데다 편집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촬영 버튼을 누르고 끊는 모습까지 그대로 나오는 영상이었다.

편집하는 성의도 없냐는 타박을 들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오직 내 연주에만 집중했다.

깨끗했던 댓글 창에 수백 개의 댓글로 범벅이 될 정도로…

ㄴ 성지순례 오신 입덕러 분들 좋아요 한 번씩 누르고 가세요.

ㄴ OMG. That’s insane.

ㄴ 클래식을 잘 모르지만, 이 노래가 좋다는 건 알 것 같음.

ㄴ 기다려 커버도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만만치 않네…

ㄴ 빨리 영상 더 올려주세요 ㅠ 현기증 날 것 같단 말이에요.

ㄴ 신청곡 쓰면 올려주시나요?

댓글들을 차분히 읽어가니 변화를 실감했다.

많은 이들이 이제 나를 알아볼 수도 있겠다고.

실제로 이미 많은 이들이 나에 대한 정보를 탐색한 지 오래였다.

ㄴ ㄷㄷ 박현철 마에스트로 조카였네.

ㄴ 아 뭐야 재능충이었어?

ㄴ 아버지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면 저 정도는 해야지.

ㄴ 다들 재능충, 유전빨이라 하는데 저 정도면 재능으로도 커버 못 침. 절대음감처럼 음을 느끼는 건 재능이지만, 스킬은 노력해야 익힐 수 있음. 바이올린 하면서도 피아노 엄청 쳤나 봄.

일부러 큰아버지와 아버지 얘기를 빼고 방송을 했는데도 사람들은 가족들의 정보를 술술 꺼냈다.

대한 오케스트라 수장의 조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아들.

어릴 적부터 짓눌러온 무거운 중압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오묘한 느낌이었다.

지금껏 느꼈던 감정이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발악이었다면, 이제는 그분들만큼이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그 열망은 이번 방송으로 인해 더욱 확실해졌다.

오르는 조회 수와 댓글 반응에 절로 심장이 뛰었으니까.

아직 한참 멀었겠지만,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향하는 길에 한 발자국 정도 나아간 것 같았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업로드해야겠어.’

업로드한 영상에 달린 댓글과 늘어나는 조회 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다가오고, 사람들은 그것에 맞춰 자신들의 이야기를 내려놓는다.

그렇게 즉각적인 소통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좋았다.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현실적으로 유명해져야 한다.’

내가 다짐한 명제.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명제의 목표를 넘어서 무언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마치 그보다 더 상위에 있는 성취감이 달성됐다는 듯.

더욱 무언가 하고 싶다는 의지가 타올랐다.

악보를 찾는 손이 더욱 빨라졌다.

***

영상 촬영을 위해 시간을 쏟아서 그런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몇 주나 남아있었던 콩쿨날이 오늘로 바짝 다가왔다.

수없이 반복했던 에튀드.

오선지를 준다면 셈여림표까지 쓸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에 악보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 악보를 연주로 선보일 차례였다.

제7회 동서 피아노 콩쿨.

콘서트홀 입구에 붙은 커다란 플래카드가 약하게 흔들렸다.

로비에는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물론 같이 온 학부모까지 인산인해였다.

누군가는 악보를 뚫어져라 보기도, 누군가는 투명한 피아노가 있다고 상상하는 듯 허공에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에 반응하듯, 나도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움직였다.

머릿속에 있는 악보에 음표들이 차례로 채워지는 느낌이 감돌았다.

어머니는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과거 당신께서 올라간 콩쿨 기억을 떠오르는 듯, 이전에 내가 나갔던 바이올린 콩쿨을 떠올리시는 듯.

많은 감각이 교차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안아. 손이 저리거나 하진 않아?”

“네.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내 손을 지그시 잡았다.

평생 바이올린만 켠 탓에 굳은살이 가득한 왼손.

어머니는 한참 그 굳은살이 박힌 부분만 매만졌다.

문득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어머니 눈에는 기대감과 함께 안쓰러운 감정이 묻어났다.

전공을 바꾸고 학교를 그만둔다는 말에 어쩌면 아버지보다 더 걱정을 하셨을 테니까.

아들이 스스로 힘든 길을 간다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랴.

나는 어머니의 뜻에 화답하듯 어머니의 손을 슬며시 감싸 깍지를 꼈다.

내 마음을 알아챈 듯 어머니도 배시시 웃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그 따뜻한 분위기를 불청객이 깨뜨렸다.

“어머 은희야~ 웬일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여성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부산스런 털로 몸을 감싼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꽤 친한 듯 웃어 보였다.

어머니는 잠깐 못 알아본 듯 자세히 보시더니 이내 놀란 듯 소리쳤다.

“너 선미니?”

최선미.

어릴 적에 몇 번 들었던 이름이었다.

어머니의 대학 동창이자 같은 플루티스트, 그리고 라이벌.

사실 라이벌이라는 단어도 사용하기 민망했다고 들었다.

항상 1위를 차지한 어머니 때문에 그녀는 만년 2등 자리라고 했으니까.

주변인이 이야기하길, 그녀가 어머니보다 나은 것은 재벌가와 결혼했다는 것 정도.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그녀는 그리 춥지 않은 날씨에 털 달린 코트를 입고 있었다.

목에는 로즈골드로 된 목걸이가 반짝이고, 선글라스 옆에 박혀있는 하얀 건 설마 다이아몬드인가?

하지만 그러면 뭐 하나.

워낙 성격이 드세고 참는 것을 못해서 남편의 얼굴에 먹칠을 하기 일쑤인데.

그나저나 아줌마가 여기 왔다는 건…

“아… 안녕하세요.”

“어머 지현아! 못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숙녀가 됐네?”

어머니를 향해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는 내 또래의 여자.

단정한 원피스 차림에 긴 생머리, 앞머리가 길게 덮여 그녀의 눈을 보기 힘들었다.

선미 아줌마의 딸인 서지현.

동갑내기 친구이자 피아노를 같이 배웠던 지현은 대학교까지 피아노를 전공할 정도로 열의가 강했다.

내가 학창시절 때 바이올린 콩쿨에서 이름을 날렸다면, 지현은 피아노 콩쿨에서 이름을 날렸었다.

다만 항상 2등에 그쳐 1등을 하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선미 아주머니가 아쉬운 체를 많이 했지.

“지현이도 콩쿨 참여하는구나? 우리 아들도 그래.”

흠칫.

아주 잠깐이지만 지현의 표정에 묘한 기운이 깃들었다.

집중해서 보고 있었던 나 말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

지현은 그 표정을 지우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의 재회로 훈훈하던 사이.

난데없이 날린 아줌마의 말이 분위기를 깨뜨렸다.

“은희 너도 고생이 많다. 갑자기 아들이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고. 이제 성인이라 편할 것 같더라니 갑자기 웬 고생이니?”

농담을 하듯 툭툭 내뱉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시커먼 의도가 가득해 보였다.

마치 누군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일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곤 했다.

누가 봐도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해서 하는 말.

남들 험담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인 것은 어릴 때부터 알았다.

지현이 때문에 같이 만나게 되는 날에는 자신이 오늘 들른 매장의 대우가 어쨌느니, 자신은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느니.

어머니가 차를 마시며 얼마나 많은 험담을 들어왔던가.

어쩌면 그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어머니가 유일했겠지.

워낙 부드럽고 쓴소리를 하지 않는 성격이시니까.

그런데 아무리 부드럽게 대했다 해도 면전에다, 그것도 아들이 있는 옆에서 험담을 할 줄은 몰랐다.

괜히 어머니가 상처라도 받았을까 봐 시선을 돌렸는데…

어머니는 도리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고생이야?”

“엉?”

“아들 하고 싶은 거 하는데 왜 고생이냐구. 난 이렇게 데이트도 하고 좋은데?”

어머니가 깍지 낀 손을 올리며 말했다.

진심으로 행복한 듯 맑은 웃음을 보이면서 말이다.

문득 나는 한 가지 진리를 떠올렸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듯 강직한 아버지가 어머니의 말발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지는 사실을.

순수한 웃음을 본 선미 아주머니가 배 아프다는 듯 입술을 씹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고생이 아니긴~ 이 바닥에 학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잖아.”

“학교가 무슨 대순가. 나도 학교보다 집에서 더 많이 연습했는걸. 우리 아들도 그런 거 아닐까?”

“그… 그렇긴 하지.”

인정하기 싫다는 듯 눈에 힘이 들어갔지만, 아줌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흔들리는 동공을 보니 분명 만년 2등만 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게 틀림없었다.

고통을 잘근잘근 씹으려는 듯 아줌마의 입술에 가해지는 힘이 커졌다.

아들인 내가 보기에도 다 느껴지는데, 어머니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들이 알아서 잘하니까 오히려 편한걸? 이제 스무 살도 넘었고 어른이잖아. 내가 이래라저래라할 때는 지났지. 안 그래?”

본인께서는 열심히 참고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목에서 올라오는 붉은기는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이 쳐놓은 덫에 자신이 걸렸다는 사실에 창피하면서도 화가 난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는 한껏 올렸지만, 크게 움직이는 배.

다행히 이내 그녀의 피부가 본연의 색으로 돌아왔다.

덥다는 듯 손사래를 치던 아줌마는 지현에게 카드를 건넸다.

“지현아? 엄마 얘기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커피 좀 사오렴.”

“네. 같이 갈래, 이안아?”

같이?

왜?

전날 봤던 채팅창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오르듯, 내 머릿속에서도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워낙 조용히 지냈던 탓에 먼저 그런 제의를 할 줄은 몰랐다.

“다녀와. 엄마랑 아줌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마시고 싶은 거 맘껏 주문하렴, 이안아. 딸? 내 건 뭔지 알지?”

카페는 한 층 아래에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던 찰나.

“부럽다.”

지현이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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