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아직도 박수 세례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이 정도로 큰 박수가 터져 나올지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아버지의 코칭 아래, 디테일이 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반영했다.
완벽하다기엔 부족하지만, 아버지 특유의 운지법도 익혀 무대에서 구현해낼 수 있었다.
그 덕에 더욱 홀가분할 테지.
<슈베르트 소나타 20번>.
슈베르트가 인정한 전생의 해석과 아버지의 기교가 합쳐지니 곡이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해졌다.
하지만, 그 사이에 부족함을 느꼈던 나는 내 생각 한 스푼을 끼얹었다.
‘마치 과거의 나처럼.’
전생은 이 곡을 연주할 때 어두운 밤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새의 공포를 떠올렸다고 했다.
나에겐 그런 공포가 언제였을까.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바이올린을 켜는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내 인생의 전부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을 내려놓는 것은 도전임과 동시에 그동안 쌓아온 탑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일이리라.
하지만, 나는 다시금 나만의 탑을 세웠다.
오케스트라에서의 인정, 수석님의 방송 출연, 첫 콩쿨에서 순위권 달성까지.
어둡고 암울하기만 할 것 같았던 나의 앞날이 조금씩 밝아진다는 것.
은은하면서도 뭉클한 감정이 곡에 스며들자 손가락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곡에 감정을 넣는다는 것을 이해한 지금.
내 머릿속에는 조금씩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슈베르트에게 인정받았던 전생의 이야기가 현대에는 나의 이야기로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
절망처럼 강조되는 낮은음에 내 암울함을 싣고, 인정받았다는 기쁨을 더한다.
차근히 나아가는 음표들에 내 이야기를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이번 콩쿨의 업적이었다.
“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구나.”
아버지가 인파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피아노 콩쿨인 만큼, 피아니스트인 아버지를 아는 사람도 상당했다.
내가 다가가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종이와 펜을 건넸으니까.
아직 사인을 못 받았다는 듯, 아버지를 따라와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한 발자국 물러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미니 팬사인회가 시작됐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한 청년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주은미 피아니스트님 유튜브에 나온 분이시죠?”
내가 조심스레 맞다는 의사 표현을 하자,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에 사인이라 할 것이 없었다.
박이안.
정직하게 써 내려간 이름이 종이에 조그맣게 새겨졌다.
그럼에도 청년은 기쁜 마음으로 종이를 받아들었다.
“연주 정말 잘 들었어요. 구독도 하고 있으니까 다음 영상 꼭 올려주세요!”
홀가분한 표정으로 가는 청년의 모습에 기분이 얼떨떨했다.
처음으로 나를 알아본 사람이리라.
온라인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과 현실에서 이름이 불려 사인을 받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였다.
직접 팬을 만났다는 두근거림.
내가 짜둔 로드맵이 점차 성공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콩쿨 연습을 하면서도 유튜브 업로드를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혔다.
겨우 팬들의 요청을 모두 이뤄주고 온 아버지는 표정이 초췌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내 얼굴을 본 아버지는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이번에는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아버지의 눈빛에 가능성이 어렸다.
무대에서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버지는 놀라운 듯 입을 벌리고 계셨다.
연습 때마다 살펴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는데도 무대에서의 모습은 색다르다는 표정.
그리고 짧은 기간에 기술을 어느 정도 완성한 것에 대한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1위 하는 거 아냐?”
“자네가 장담하나? 껄껄”
너털웃음을 보이며 다가온 노인.
노인은 백발이 무성한 머리칼과 중후한 느낌의 갈색 블레이저 입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이지만 나도, 아버지도 놀라지 않았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버지의 한 마디에 둘의 관계가 정리됐다.
“스승님.”
김종수 선생.
아버지의 영원한 스승님이었다.
현재는 은퇴를 하고 제자 육성을 위한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고.
허리는 여전히 곧았지만, 얼굴과 손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그의 나이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곧 여든을 바라보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미소는 인자했다.
그러나 인자함 속에 어떠한 내공이 숨겨져 있듯, 뒷짐을 지고 은은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근엄한 호랑이의 자태처럼 보였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연락도 제대로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지 않느냐. 괜찮다. 이리 얼굴이라도 봤으면 되었지.”
나긋한 미소를 보이는 선생님의 모습.
곁에 있는 나마저도 경건하게 만드는 자태였다.
그저 노인이라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미묘한 아우라가 내 손을 절로 공손하게 만들었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자국에 꽃이 피어날 것 같은.
마치 신선을 보는 것 같았다.
“현철이는 잘 있느냐?”
담담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묵직했다.
큰아버지를 이름으로 부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수장을.
하지만, 그가 몸담았던 오케스트라를 얘기하자면 큰아버지의 오케스트라는 아주 작았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피아니스트.
위치는 주 수석님과 같은 자리였지만, 그 차이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18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오케스트라이자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들어낸 클래식의 결정체.
대한 오케스트라가 호랑이라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드래곤일 것이다.
말 그대로 전설.
심지어 선생님은 비유럽계 인종을 받지 않는 암묵적 룰을 깨게 만든 최초의 한국인 빈 필하모닉 단원이기도 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유럽식 정갈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뒤에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 거장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안이라고 했지. 손을 좀 줘보겠느냐?”
통성명도 하기 전에 난데없이 손을 줘보라는 말.
의아했지만, 나는 조심스레 손을 펼쳐 보였다.
선생님은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만져보거나 이리저리 뒤집어보는 것도 아닌, 그저 빤히 바라보는 것.
단지 그뿐인데도 마치 천적 앞에 선 사람처럼 몸이 약하게 떨렸다.
잠깐 쳐다보던 선생님은 짧게 말을 이었다.
“도화(桃花) 같은 손이구나. 꽃잎과 잎사귀를 모아 나무를 만들어냈어.”
선생님의 입가에 초승달 같은 미소가 떴다.
갑작스런 말에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했지만, 차근히 생각해보니 그분의 의중을 알 것 같았다.
비교적 작은 손.
피아니스트의 손은 큰 것이 유리하다.
그래야 넓은 건반을 빠르게 이동하되 넓은 화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내 손은 아버지와 달리 작은 편에 속했다.
전생의 기억도 그 점이 안타깝다는 듯 매번 아쉬운 기색을 내보였지.
그렇기에 실수도 잦았고, 전생의 실력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
마치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봤다는 듯.
선생님의 뒤편에 광배(光背)가 보이는 것 같았다.
“네 아버지만큼만 하거라.”
사뿐히 내려앉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무게감이 어렸다.
마치 지금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알려주는 듯.
내 심장뿐만 아니라 전생의 심장도 경건한 마음으로 두근거렸다.
가슴 속에 심어두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위대한 피아니스트.’
노련함과 노하우는 다소 부족하다.
하지만, 전생과 아버지의 가르침 아래에 실력의 향상 속도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럼에도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는 방식.
아버지만큼이라는 선생님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
거대한 회의실에 단 다섯 명만 있는데도 기운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묘한 경계심에 일반인은 숨이 막힐 정도.
그 사람들 사이, 종수도 있었다.
“이번 순위는 어떤 때보다 어려웠던 것 같군요.”
“그러게요. 콩쿨 참여 나이대는 똑같은데, 매년 더욱 성숙한 연주를 듣는 것 같아요.”
“몇몇 학생들은 이미 프로에 가까워졌다고 할만하더군요.”
시작은 참가자에 대한 덕담이었다.
한때 피아노계를 종횡무진했던 사람들의 말들.
그들의 고갯짓만으로도 큰 인정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표현이 좋았다는 것이 모든 무대가 완벽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계치가 많이 보이는 학생들이 많더군요. 이번 연주가 끝일 것 같은 학생들은 심사 선상에서 배제시켰습니다.”
“동의합니다. 곡의 수준과 완성도는 곧 앞으로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맞습니다. 17번 학생은 그런 의미에서 아쉬웠어요.”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이내 날카로운 비평들로 변했다.
마치 좋은 횟감을 찾아 사시미칼을 번뜩이듯, 그들이 작성한 평가지에 따라 학생들의 실력이 재단된다.
높은 점수를 준 이가 낮은 점수를 준 이를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
콩쿨과 별개로 일어나는 전쟁 같았다.
한참의 토의를 통해 순위권은 좁혀졌다.
문제는 1위의 자리.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을 우승의 자리로 올릴지 설전이 벌어졌다.
“5번 참가자는 거의 완성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수준은 동 나이대 아마추어보다 더 높고요.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저희 동서 콩쿨의 우승자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6번 참가자도 뺄 수 없습니다. 곡의 난이도는 5번 참가자가 더 높다 하더라도, 그 기교나 완성도는 6번이 더 높다고 판단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주는 아마 아마추어 중에서는 손꼽히는 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는 극명하게 갈렸다.
5번과 6번.
우식과 이안의 싸움.
2대 2로 갈린 표심에 한 심사위원이 종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심에 앉은 종수는 고뇌하는 듯 숨을 들이켰다.
그사이 한 심사위원이 치고 들어오듯 말을 붙였다.
“선생님, 6번 참가자가 선생님의 제자인 박수철 피아니스트의 아들이라 하던데요.”
묘한 긴장감.
심사위원의 말에 다른 심사위원도 조금씩 술렁였다.
종수와 수철의 친분은 업계 사람이라면 다 알 정도이지 않은가.
결정에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면 이번 심사는 편파 의혹이 불거질 수도 있었다.
잠깐 눈을 감던 종수는 이내 선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허허. 차 교수는 내가 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오.”
움찔.
분명 종수는 웃으며 말을 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깔리는 낮은음이 순식간에 회의실의 공기를 휘어잡았다.
말을 꺼냈던 차 교수가 몸을 떨었다.
“서… 선생님, 제 말은 그게 아니고…”
“어느 쪽이든 똑같지 않겠소. 동서 예술의 후원체가 정 회장이라는 것도 모르는 자가 없을 테니. 안 그렇소?”
종수가 깍지를 끼며 물었다.
이 콩쿨의 거대 후원자는 우식의 아버지인 정 회장.
심사위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종수는 천천히 일어나서 회의장을 걸어가며 자신의 말을 펼쳤다.
“두 예비 피아니스트의 실력은 비견하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한쪽은 맹렬한 기세로 선율로 만든 검을 휘두르고, 다른 한쪽은 오선지로 만든 방패로 온갖 역경을 막아내는 느낌이 들었지요.”
종수의 말에 심사위원들은 긍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적인 자리였다면 그저 둘의 실력을 높이 사고 싶을 정도의 연주였으니까.
그러나 경쟁의 세계에서 우위는 필요했다.
둘 중 한 명만이 우승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검과 방패라. 선생님은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종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는 높이.
콩쿨을 마친 사람들이 어디론가 분주히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저 어린 양들에게 매번 칼을 쥐여줬습니다. 피아노라는 훌륭하고 좋은 악기로 피 터지는 싸움을 일으켰지요.”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내려놓는 종수의 말에 심사위원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연주가 좋았느냐.
분명 객관적인 지표는 있겠지만, 주관적인 의견도 있으리라.
본디 음악은 자신이 느끼는 바로 즐기는 것이니까.
그 딜레마를 떠올린 듯 심사위원들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들이지요. 더 아름다운 빛을 보일 수 있는 원석을. 그리고 나는 오늘 그것을 보았습니다.”
종수가 창문에서 떨어져 심사위원석에 다시금 앉았다.
무언가 발표할 것만 같은 긴장되는 순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말을 내려놓았다.
“피 터지는 전쟁 속에서 노래하는 한 청년을요.”
빙긋.
종수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식을 옹호하던 심사위원도 종수의 말을 인정한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순위표를 채운 심사위원이 서류를 내밀었다.
“그럼 결정은 이렇게 하시도록 하죠.”
꾹. 꾹. 꾹. 꾹. 꾹.
콩쿨 판정에 동의한다는 심사위원들의 인감이 서류에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