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무대를 끝내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군데군데 기립 박수를 쳤지만, 그중의 두 명은 어머니와 아버지였으니 실제 감명을 받아 기립 박수를 친 사람은 더욱 적으리라.
그러나 나는 수천 개의 좌석에 펼쳐진 사람보다 앞쪽에 앉은 소수의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일부는 휠체어에 앉아, 일부는 케인을 짚고.
한 노장께서는 겨우 케인에 몸을 지탱한 채 서서 박수를 보냈다.
그들의 모자와 옷에는 하나같이 무공훈장이 박혀 있었다.
심히 떨리는 탓에 박수조차 치지 못하는 용사들.
나는 그분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연주에 이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감사 표시.
이 곡은 그분들을 위한 헌정곡이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신 듯 참전용사 분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왼손을 위한 프렐류드와 녹턴.
슬픈 사연이 담긴 곡이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팔을 잃어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었던 피아니스트의 이야기.
과연 그 사람을 살아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피아노라는 삶의 의미를 잃었을 텐데.
감히 전쟁을 겪은 분들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내가 느꼈던 아이러니를 참전용사분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먼저 죽은 전우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현실.
그럼에도 용사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겨진 수명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그 사이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며.
외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놓지 않았듯, 참전용사들도 삶을 놓지 않고 살아오셨기에.
그분들의 마음을 가장 울릴 수 있는 곡일 테지.
무대에서 내려오자 출입구에 서 있던 진석이 나를 가장 먼저 반겼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수고했어. 진짜 멋진 무대였다.”
진석의 축하와 함께 다른 단원들도 이어 축하의 한마디를 보냈다.
저만치서 나를 바라보던 현철도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데뷔 무대.
그제야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수천의 사람을 앞에 두고도 흥분하지 않았던 심장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전생의 심장도 무사히 내려왔다는 것을 축하하듯 잔잔한 박동을 보내왔다.
녀석의 박동은 잔잔했지만, 무언가 홀가분한 듯 가벼웠다.
아마도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느끼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지 않을까.
전생도 내가 성장함에 따라 성장한 듯 무대에 올랐다고 해서 흥분하지 않았다.
조금씩 무대에 대한 평정심을 찾아가듯 어른스럽게.
나와 함께 더 좋은 무대를 만들려는 듯 아까처럼 박동을 메트로놈처럼 정립했다.
나를 향해, 또 전생을 향해 수고했다는 의미로 가슴을 토닥였다.
“화이팅입니다!”
나 또한 무대로 향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향해 응원을 보냈다.
차례대로 사람들이 나아가 자리에 착석했다.
백여 명에 이르는 단원들이 부채꼴로 앉자 검은 물결처럼 보였다.
그들은 차례대로 군대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행진곡과 호국영령을 위로하는 헌정곡들을 연주했다.
내 연주를 시작으로 참전 용사분들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일부는 눈을 감으면서 연주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표정.
나를 비롯해 큰아버지,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노인들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피었다.
짐을 챙겨 나가려는데 휴대폰에 무수한 부재중 전화가 떠 있었다.
마침 확인하려는데, 다시 걸려오는 전화.
한유라.
그녀였다.
작곡가와 이야기를 해보고 다시 연락을 준댔는데.
전화를 받자 유라는 빠르게 본론을 얘기했다.
“작곡가가 이안 씨를 만나고 싶대요.”
***
작업실은 열기로 한창이었다.
녹음실에 있는 유라와 컴퓨터와 악보들 앞에 앉아있는 남성.
신날 정도로 빠른 템포의 반주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까닥이며 박자를 맞추고 있을 정도.
유라의 입가엔 웃음기가 맺혀있었지만,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가사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는 듯.
작은 체구의 유라였음에도 목소리만큼은 풍성한 아우라를 자랑했다.
나를 발견한 유라가 손을 흔들자 남성이 의자를 돌려 나를 향했다.
짧은 머리칼에 노란 뿔테 안경을 쓴 남성.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작곡가 피스라고 합니다.”
유라에게 소식은 얼핏 전해 들었다.
본래 타이틀곡을 만들기로 했던 히트곡 제조기라고.
오는 길에 검색해보니 놀라울 정도였다.
아이돌 노래에 관심이 없던 내가 아는 노래들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서 탄생한 곡들이었다.
음악 방송 10주 이상 1위를 달성한 곡은 물론, 3사 방송사 트리플 크라운까지.
아이돌 노래에 관심이 없던 나도 그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녹음실에서 나온 유라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이번 앨범은 더블 타이틀로 갈 예정이야.”
더블 타이틀.
말 그대로 타이틀곡을 두 개로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에 맞춰 음원의 색깔도 두 가지로 만들어 서로 대비되게 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나는 클래식과 발라드풍의 잔잔함으로, 다른 하나는 댄스와 팝이 가미된 신나는 분위기로.
처음에 피스는 우려를 표했다고 했다.
“이안 씨의 곡은 제가 들어도 훌륭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타이틀곡이라는 것은 단순히 곡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앨범에 들어갈 재킷 촬영을 해야 하고, 뮤직비디오도 찍어야겠지.
게다가 아무리 이안에게서 곡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믹싱하고 디렉팅하는 것 또한 경제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리라.
이미 예산이 할당되어 있을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 유라는 무척이나 자신 있었다.
“그건 내가 대표님을 설득했어.”
유라는 기분이 좋은 듯 싱긋 웃었다.
대표에게 내가 편곡한 곡을 들려줬다는 것이다.
처음에 내키지 않아 했던 대표도 곡을 듣고는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유라는 가이드 녹음도 하지 않은 곡을 대표가 컨펌한 것은 처음이라며 나를 독려했다.
피스도 곡을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
한창 의문이 들 참에 피스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만들고 싶은 음원이 있습니다. 그 곡에 이안 씨의 연주를 넣고 싶어요. 오늘은 그 때문에 말씀드린 겁니다.”
피스의 제안은 의외였다.
곧바로 같이 작업을 하자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편곡한 피아노에서 방향성을 찾았다고.
그래서 내 피아노 연주를 음원에 넣고 싶다고 했다.
히트곡 제조기인 피스의 제안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그러나 지금은…
“콩쿨 준비 때문에 힘들 것 같습니다.”
단호한 내 대답에 피스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나 그의 사정을 고려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어느덧 콩쿨 예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으니까.
이미 애피타이저 무대에 많은 시간을 쏟았기에 콩쿨 예선 준비를 하려면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유튜브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아마 대중음악에 손을 벋는다면 그 소통은 배가 될 테지.
하지만,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였다.
내 최종 목적지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지, 단순히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번 콩쿨은 이전 콩쿨보다 규모가 크고 내가 계획 중인 길에 대한 중요한 카드가 될 예정이었다.
국내를 넘어 국외 콩쿨을 나가기 위한 자격.
그 티켓이 이번 콩쿨에 달려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콩쿨을 내려놓고 당장 대중음악을 선택할 순 없었다.
한참 동안 작업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피스가 자신의 아름다운 계획이 무너졌다는 듯 아쉬운 기색을 내보였다.
새로 그 자리에 어떤 것을 넣을까 고민하는 피스에게 나는 작은 가능성을 던졌다.
“당연하죠. 클래식 음악이 갖는 특수성도 있을 테니. 그렇다면, 콩쿨이 끝날쯤에 연락 드려도 될까요?”
***
청악(淸樂) 악기사.
세계 피아노 장인들이 유일하게 인정한 아시아 피아노 제조 업체였던가.
내가 지금 사용하는 피아노도 청악 악기사의 제품이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품질로 피아노 제조 업계의 탑을 달리는 곳.
그런 위치에 있는 기업이 주최하는 콩쿨이 바로 청악 콩쿨이었다.
주최사의 위치만큼, 콩쿨의 입지도 상당히 높았다.
어마어마한 후원은 물론 해외 피아니스트들도 관심을 가질 정도니까.
게다가 주최사가 악기사인 만큼, 그 혜택도 남달랐다.
우승자에게는 기본적인 트로피와 더불어 그랜드피아노를 상품으로 내걸 정도니까.
하지만, 이미 피아노가 있는 나에게는 다른 상품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연주회 출연 자격 부여.
피아니스트에게 커리어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그 주최사가 무려 국내 최고 악기사.
많은 클래식 팬들은 물론 피아니스트를 후원하고자 하는 큰손도 많이 찾으리라.
그런 기회를 내가 놓칠 순 없었다.
그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연주를 선보여야지.
나는 책장에 있던 악보를 하나 꺼냈다.
이번 콩쿨은 이전과 달리 예선이 지정곡이었다.
평균율 클레이버곡집.
.
서양 고전 음악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 바흐의 곡이었다.
괜히 음악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습곡으로 사용되는 곡들의 완성도가 높아 전공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으니까.
악기사에서도 콩쿨곡으로 한 이유가 이것일 테지.
바흐는 책을 남기며 의도까지 명시했다고 한다.
‘젊은 음악학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또 어느 정도 음악을 익힌 자들에게는 여가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현대의 음악학도들이 들었다면 책상을 엎었을 법한 말이었지만, 전생의 기억에 더불어 책을 이해하자 어느 정도 그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전생 또한 바흐의 연주로 보냈던 기억이 생생했다.
평균율이라는 제목으로 불린 이유는 화음의 조성을 정확히 정립한 의미도 있었으니까.
악보를 지긋이 살피자 마치 복사를 하듯 머릿속에 오선지가 그려진다.
전생도 수없이 연습했던 바흐의 곡.
그에 힘입어 나는 천천히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단순한 음계의 나열.
피아노의 기초인 하농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정직한 음계.
미묘하게 어긋난 화음 없이 깔끔하게, 동일한 음으로 전개되는 선율은 무척이나 간결하다.
하지만, 이내 나는 알아차렸다.
이것이 왜 도움이자 즐거움인지.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이 어느 순간에 점점 빨라진다.
음표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화음이 쌓이고 그에 따라 음색이 더욱 다채로워진다.
이러한 기본적인 체계를 바탕으로 베토벤의 에튀드가 탄생했을 것이고,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그려졌겠지.
피아노를 배워가는 내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음의 계단이 서서히 펼쳐짐에 두근거리고, 피아노를 통달했던 전생은 그 선율에 향수와 체계를 느낀다.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바흐의 가르침이 나와 전생, 둘에게 동등하게 떨어진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 것 같았다.
곡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도리어 그 탓에 어떤 부분을 살려야 콩쿨에서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될 정도.
어쩌면 이 부분까지도 악기사는 예측했을지도 모른다.
악보를 차근히 바라보던 중이었는데…
띵동.
집안에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손님에 대한 이야기도 딱히 들은 바가 없었기에 방문자를 직접 확인해야 했다.
음악실을 나와 현관으로 향했을 즈음,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렸다.
‘누구지?’
문을 열자 몰래 온 손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