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이안. 그를 불러오게!”
혹 무대에 올랐던 것을 들켰던 것일까.
이안은 도련님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비밀 음악실.
이안이 하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공간이었다.
가면까지 쓰고 마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지난 공연을 대신했던 한 귀족이었다.
그는 이안에게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베토벤 선생이 지난 연주를 보고 나에게 요청해왔다네. 자신의 곡을 봐달라고. 하지만 내가 답장을 어떻게 하나! 어서 자네가 의견을 내보게.”
귀족의 말에 이안은 조심스레 서신을 받아들었다.
붉게 찍힌 인장.
그분의 표식이 분명했다.
악성(樂聖).
음악의 성인이라 불리던 베토벤의 이명.
이미 그의 곡은 오스트리아에 정평이 나 있었고, 숱한 교향곡이 교회에서 울려 퍼지지 않았던가.
이안 역시 하데스로서 피아노에 앉아 그분의 곡을 몇 번이나 연주했던가.
그런 그가 청력을 잃었다는 소식에 사교계에서는 신이 질투하였다는 말이 오갔지.
그런데 ‘자신의 곡’이라니.
이안은 귀족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베토벤이 청력을 잃었을 텐데 어찌 곡을 썼다는 말인가.
인간이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친애하는 경에게.
지난밤 뛰어난 연주를 선보였다고 들었네.
귀가 멀어 그대의 연주를 직접 듣지 못한 나를 용서하게.
하지만 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네의 연주는 화려하면서도 정제되었다더군.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말일세.
그래서 젊은 자네의 귀와 손을 빌리고자 이렇게 서신을 보내네.
새로운 곡.
서신에는 새롭게 쓴 곡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기본적인 연주도 겨우 하는 귀족이 거장의 악보를 고칠 힘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으슥한 밤에 찾아온 것이겠지.
자신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귀족과 달리, 이안의 머릿속이 환해지고 심장은 벌렁거렸다.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거장의 손때가 묻은 악보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 감정에 취해 이안은 삼일 밤낮을 지새워 악보를 살폈다.
청력을 잃은 자가 썼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악상들이 양피지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만약 귀가 들리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완성했을지 궁금할 정도로.
하지만, 이번에는 전적으로 베토벤이 믿음을 보였기에.
이안은 거침없이 펜촉을 움직였다.
Allegro ma non troppo
빠르게 하지만, 빠르지 않게.
이중적이면서도 애매한 셈여림 지시들에서는 베토벤의 걱정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오묘하게도 그러한 시도들 덕분에 곡은 굉장히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선을 넘지 않고 아슬하게 건너는 것처럼.
베토벤의 곡은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이안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식음을 마다하면서 곡을 완성한 끝에.
‘완성했다.’
이안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아랑곳하지 않고 도련님에게 달려갔다.
도련님은 그에게 스프를 건네주며 서신을 친우에게 보냈다.
과연 어떤 곡이 탄생할까.
이안은 베토벤의 서신이 다시금 자신에게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귀족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돌아온 영광을 독식하며 이안에게는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베토벤이 무대에서 지휘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하인에게 그런 귀한 자리에 갈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던 이안 로크실트는 자신의 의견이 적절하게 반영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아냐고?
내 손에 쥐어진 현대의 악보.
그 속에 그려진 음표에는 전생의 이안이 작성한 모든 피드백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
전생이 처음 받은 베토벤의 악보는 사실 완벽에 가까웠다.
혼자서 적은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수준.
과연 성인(聖人)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했다.
차례대로 적힌 화음들과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게끔 만드는 지시어들의 향연.
합창을 만드는 성악가에게 제시한 악센트와 어투까지.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유려한 선율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 정직한 화음으로만 전개된 탓에 곡이 단조로워 보였다.
전생의 이안은 그런 곡에 불협화음들을 집어넣었다.
튀어나온 불협화음들이 다른 악기의 불협화음과 섞여 새로운 화음을 탄생시킬 수 있도록.
전생이 작성했던 악보가 이제는 내 손에서 펼쳐진다.
‘아이러니함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화음.’
Allegro ma non troppo.
전생이 일러줬던 것처럼 아이러니한 선율로 시작하는 1악장.
정갈한 트레몰로의 선율이 라운지를 가득 울린다.
마치 종을 울린 것처럼.
유리에 반사된 소리가 더욱 웅장해진다.
un poco maestoso.
점차 웅장하게라는 뜻에 걸맞게 선율이 강해지면서도 연속되는 피아니시모의 명령 아래에 여리게 진행된다.
마치 살금살금 다가가는 고양이의 발걸음처럼.
스타카토로 형성된 반복되는 화음에 마음을 졸이듯.
마치 걱정을 가득 안은 사람의 마음처럼 음색이 나아간다.
‘들뜬 마음이지만, 그렇지 않게.’
마치 도입부의 명령처럼 나는 감성을 자제하며 곡을 진행시킨다.
그래야 나중에 터져나오는 환희가 더욱 빛날 것이기에.
음표들이 오선지를 따라 점진적으로 주행하는 것이 머릿속에서 형형한다.
마치 유라의 곡과 피스의 곡을 연주했을 때처럼.
내가 만든 곡을 치는 것 같이.
전생의 기억 또한 수없이 교차한다.
슈베르트에게 해석에 대한 감사를 들었을 때, 베토벤이 자신을 향해 조언을 구했을 때.
수많은 환희로운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진정할 때였다.
이 곡의 의미는 단순한 환희가 아니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었지.’
숱한 세월을 지내오면서 곡도 많은 변천사를 겪었다.
전생이 기억하길, 베토벤의 필체는 악필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옮겨적는 과정에서 많은 변천사를 겪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찬양하는 듯 펼쳐지는 합창에 독재자를 찬양하는 곡으로 쓰이는 흑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연주는 그러한 사적인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은 연주니까.
Freude, Tochter aus Elysium
환희여, 낙원의 딸들이여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eilt;
신성한 그대의 힘은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환희의 송가>.
모든 인류의 우애를 찬양하고자 했던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작품.
베토벤은 실러의 시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곡의 초기 모델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도입부 구절을 본인이 직접 쓸 정도였으니까.
같은 하늘 아래 모두가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감.
아무리 가혹한 현실이라도 우애를 통해 이겨나가는 모습에서 실러는 환희를 느꼈겠지.
그 이야기에 음색이 더해지자 실러가 의도했던 찬양감이 더욱 올라간다.
그러나 베토벤은 단순한 찬양곡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실러가 쓴 가사에서도 명시하듯.
자신의 곡 아래에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의지가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지.
누군가 그러더군. 말로에 고생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럴 수 있겠나. 신께서는 지금도 나에게 음악을 하라고 속삭이시는데.
내가 할 일은 그것을 음악으로 옮기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전하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편지에 덧붙인 베토벤의 솔직담백한 말.
교회의 의뢰를 받아 작성하면서도 베토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곡에 고스란히 녹여뒀다.
오십이 넘은 베토벤에게 합창 교향곡은 누군가를 찬양하기 위한 곡이 아니었다.
감사.
음악적 재능을 내려주신 신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곡을 감상해주는 사람들을 향한 것.
그러니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도 지휘를 하려고 무대에 올랐었지.
열정에 불탔던 베토벤을 향해 찬사를 날리듯.
전생과 내 의지가 가득 담긴 손가락이 하이라이트를 연주한다.
과하지 않고 소담하게.
활기찬 환희 대신 흐뭇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환희로.
차분한 감정을 잡기 위해 전생의 심장이 천천히 뛰었다.
녀석이 그리워했던 그 곡.
죽는 순간까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고 궁금했을 터.
그 곡이 지금 내 손에서 피어나 라운지를 채우고 있었다.
‘행복하다.’
나와 전생이 동시에 속삭였다.
이 곡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
내 속에서 하나의 생각이 꿈틀거린다.
언젠가 나를 위해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연주할 것이라고.
***
성호는 이안의 연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연주는 지난번 봤던 것보다 훨씬 농익어 있었으니까.
자신이 말했던 오른손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그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힘을 주어 음색을 표출했다.
그 사이에 이안이 보여주는 표현은 성호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면서도 금세 수긍하게 만들었다.
<합창 교향곡>.
세간에서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을 그리 불렀다.
신과 천사를 향해 찬양하는 웅장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이안은 그런 웅장함을 피아노 하나로 펼쳐내고 있었다.
그런데 미묘한 한 가지.
다른 기운이 성호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가득 채웠다.
‘그동안 들었던 베토벤 9번과 달라.’
찬양을 위한 특유의 웅장함이 특징인 곡.
웅장함이 몰아치는 것은 같았으나, 그 느낌이 무언가 달랐다.
마치 커다란 물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 작고 사소한 것에서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처럼.
그동안 성호가 들었던 9번 교향곡은 허례허식으로 차 있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이안의 연주는 간결했다.
‘날것 그대로의 연주를 보는 것 같아.’
본래 연주에는 자신의 해석과 표현이 깃든다고 했던가.
하지만 지금 이안이 선보이는 연주는 정반대의 느낌을 자아냈다.
도리어 핵심에 진입할 수 있도록.
찬양과 신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거둬내면 지금 듣고 있는 연주가 탄생할 것 같았다.
마치 이안이 9번 교향곡의 창작자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연주는 도리어 꾸밈이 없어서 좋았다.
개인의 해석으로 둘러싸인 것이 아닌, 곡 자체에 이안의 해석이 담긴 것처럼.
그 무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성호는 오랜만에 음악을 감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성호에게 음악이란 비평의 대상이었으니까.
타인에게는 물론 자신에게조차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던가.
무언가 부족하니 더 채워야 한다고, 그러니 더욱 노력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안의 연주는 성호가 보기에 손댈 곳이 없었다.
오히려 손대고 싶지 않을 정도.
‘이번 콩쿨은 질 것 같다.’
성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평소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봤겠지만, 그 모든 것이 의미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50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이안의 손가락이 마지막 건반을 누르는 것을 느낀 그는 자연스레 일어나서 박수를 치려…
잠깐.
눈을 뜬 순간 정신을 차린 성호는 급하게 자리에 앉았다.
현실감이 몰아치자 깨달았다.
이안의 독주회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