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12시간.
오전부터 시작했던 후시 녹음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길고 긴 여정.
자리에 있던 스태프들이 경외감에 박수 세례를 보냈지.
하지만, 나에게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마쳤다는 후련함.
그리고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감.
그 어떤 기회보다도 기대한 기회였으니까.
청악 콩쿨을 나갔던 것이 엊그제 같았다.
연주회 기회를 위해 나섰던 콩쿨.
청악 콩쿨에서 당당하게 우승을 거머쥐고 연주회를 진행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리라.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원하는 커리어일 테니까.
연주회로 명성을 쌓아 독주회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청악이 손을 들어준 덕에 내 계획은 예상보다 더 빨리 진행됐다.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만들어뒀던 여러 개의 발판들.
콩쿨에서 우승을 하여 자리를 마련하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곡을 연주하며.
연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직접 감동을 전달한다.
이번 독주회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한데 모으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박이안 피아노 독주회.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펼치는 특별한 이벤트.
이벤트를 준비하는 첫 시작은 연주곡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 집을 찾은 방문객이 현관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잘 지냈어요?”
파스텔 블루톤 코트를 걸치고 온 그녀.
청악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 미성이었다.
최 팀장의 힘이 더해져 이번 독주회 디렉터를 맡은 사람.
기획에 대한 그녀의 열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렬했다.
연주곡을 추천해주는가 하면, 어떤 식으로 곡을 배치해야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그녀 덕에 머릿속에 떠오르던 여러 가지의 곡들이 차례대로 정리됐었지.
미성은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기대하는 듯 특유의 눈웃음을 보였다.
“어떤 곡을 연주할 건가요?”
나는 대답 대신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미리 정리해둔 연주곡 리스트.
처음은 간단한 애피타이저와 같은 에튀드들로.
본식으로 소나타를 비롯한 주류 클래식 곡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독주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인터미션을 지나면서 독주회의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된다.
“클래식과 현대의 합작이라.”
리스트를 보던 미성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대부분 독주회의 구성은 비슷했다.
연습곡들의 향연으로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거나, 독특한 해석이 담긴 교향곡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것.
나는 그 모든 것을 하되, 다른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덧붙였다.
“정말 이안 씨만 보여줄 수 있는 무대네요. 다른 아티스트들도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그 색체를 극복하지 못하곤 했죠. 하지만 이미 이안 씨는 두 분야 모두에서 증명된 사람이잖아요?”
찢을 듯한 고음을 부르는 소프라노들도 가요를 부르면 휘청거리기 마련이다.
같은 노래라고 할지라도 목을 사용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니까.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클래식 피아노, 재즈 피아노 등, 세분화되어 있는 피아노를 모두 섭렵하는 것은 어려운 일.
그렇기에 미성은 2부 현대곡들에 대해 기대를 거는 듯했다.
유라의 기다려 커버 연주곡을 비롯하여 피스와 협업한 가요, 강 감독님의 영화 속 피아노곡들까지.
이번 독주회는 그동안 내가 쌓아 올린 것을 점검하는 전환점이자,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무대.
그렇기에 피아노를 잡고 지금껏 했던 곡들이 고스란히 연주곡 리스트들에 실렸다.
‘시간이 참 빠르구나.’
전생의 기억을 찾았을 때가 봄이었던가.
2학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쯤이니 맞을 테지.
더운 여름에도 연미복을 입고 콩쿨에 출전해 땀을 흘리기도 했고,
생각보다 차가운 가을바람에 소속사로 출발하기 전에 긴팔을 꺼내 들기도 했지.
그러다 어느덧 겨울에 접어들었고, 그 겨울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번 독주회는 1년이라는 시간을 갈무리하고, 그동안 있었던 변화를 체감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콩쿨 준비를 하고, 꾸준히 유튜브에 연주 영상을 올리면서, 여러 협업들을 진행했던 것들에 대한 변화.
물론 유튜브 댓글과 조회 수만 봐도 변화를 체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루키 무대와 갈라쇼에 오르며 느끼게 된 것.
직접 관객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까.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을 천천히 다독였다.
지금 해야 할 것은 관객의 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수가 얼마나 되었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 꺼내놓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안 씨. 마지막 곡이 특이하네요?”
미성이 리스트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녀 또한 독주회 기획을 담당하면서 내 연주를 모두 들었을 터.
그 사이에 마지막 곡 이름은 생소할 테지.
<환생>.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 곡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혹시 재즈 피아노곡 <환생>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녀는 국내 가수가 발표한 곡을 먼저 떠올렸다.
그 노래 또한 재즈 피아노 감성에 맞춰 가사를 입힌 것이었지.
미성의 표정에 묘한 아쉬움이 서렸다.
그녀도 그 노래를 좋아한다는 듯.
재즈 선율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를 살짝 한 것 같았다.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미성의 시선에 툭.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말을 내뱉었다.
“제 자작곡입니다.”
전생의 내가 죽기 직전.
마차에서 몇 번이고 되뇌어봤던 그 악보.
자신의 첫 독주회에서 처음으로 연주하고자 했지만, 연주하지 못한 곡.
제목조차 남기지 못했던 비운의 곡이었다.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보이는 그녀를 위해 나는 자연스레 건반에 손을 올렸다.
준비 동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악보가 뇌리에 새겨진다.
처음으로 빛을 볼 것이라는 두근거림으로 악보를 이룬 음표들이 옅게 떨리는 상상이 펼쳐진다.
***
사실 이안의 작곡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미성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
자신도 지휘를 배우면서 기본적인 화성악과 배치에 대해 수학하지 않았던가.
자퇴생이라지만 본래 이안은 한국대에 몸담았던 학생이었으니까.
기본적인 소양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한 교육과 스스로 발전했기에 유라의 곡을 커버할 정도로 실력이 됐겠지.
미성의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천재성에 노력을 끼얹은 실력.
하지만, 미성의 눈앞에서 펼쳐진 연주는 그녀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감성이지?’
마치 물길처럼 선율이 흐른다.
유명 뉴에이지 거장의 연주를 연상케 하듯.
이안의 연주는 유려하면서도 군데군데 커다란 화음을 떨어뜨렸다.
잔잔한 화음에 매료되어 미성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쭉 뻗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듣기 위해.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이안의 선율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연주구나.’
뉴에이지.
현대의 피아노는 커다란 형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목적으로 명상곡에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어떤 형식이든 간에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있었다.
미성은 이안의 연주가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가 선보이는 선율은 파동 없는 호수처럼 잔잔했으니까.
자장가처럼 편안한 주행에 미성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부드러운 음색을 이어가던 와중, 그녀는 무언가 이상함을 탐지했다.
곡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아날로그 스타일을 어떻게?’
처음 그가 선보인 연주는 무척 간결하여 뉴에이지 같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감상하기 좋을 정도.
하지만, 찬찬히 곡을 그려가며 듣는 미성의 머릿속에 펼쳐진 악보는 현대의 것과 매우 달랐다.
그가 만들어낸 곡은 짙은 고전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어떻게 된 것일까.
가만히 그 이유를 찾던 미성은 머릿속에서 그려낸 악보를 보고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형식.
클래식의 정수에서 나오는 교과서적인 분위기가 이안의 곡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론도, 푸가, 세도막, 바리에이션 등.
그중 고전파에서 정립이 되어 가장 중심이 되는 형식…
‘소나타.’
하이든, 베토벤, 모차르트.
비엔나의 3대 거장들의 손에서 정립된 피아노 소나타 형식.
괜히 베토벤의 죽음이 고전파의 끝으로 지정된 게 아니다.
이후로 감정이 중요시되는 낭만파를 거치며 형식의 구애를 벗어난 것은 새로운 사조로 떠올랐지만, 형식이 흐트러졌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클래식 학계에서는 뉴에이지를 클래식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뉴에이지가 보여주는 선율은 새로운 클래식이 아니라고.
그저 쉽고 잔잔한 연주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이안의 연주는 둘의 장점만 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클래식의 형식미에 뉴에이지의 간결함을 자연스레 섞어뒀어.’
소나타 형식에서 가요 형식, 미뉴에트에서 론도 형식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형식을 잘 아는 미성의 귀에는 무척이나 정갈한 소나타로 보였다.
하지만, 음악은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예술.
고전 소나타를 아는 미성에게는 이안의 연주가 작품처럼 보이겠지만, 형식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그저 솜씨 좋은 연주로 보이리라.
모르는데 알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안의 연주는 길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클래식이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고전 느낌이 물씬 풍기는 형식미를 유지하되,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될 수 있도록 간단하게.
기분 좋게 펼쳐지는 곡조에 미성은 자신도 모르게 매료되었음을 깨달았다.
분명 잔잔한 마음으로 감상하던 그녀였건만, 지금은 벅차오름에 자꾸만 입이 벌어져 있었으니까.
‘혹시 이게 앞으로 클래식이 나아가야 할 길일까?’
마에스트로서 항상 떠오르는 생각.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들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 편곡을 해보기도 하고, 악기를 바꿔보기도 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아무리 곡에 자신만의 해석이 들어간다고 해도 곡의 골조는 바뀌지 않았다.
미성이 손댄 곡에는 그녀의 특색이 드러났지만, 신선함은 없었다.
그에 반해 이안의 곡은 특색이 드러나면서도 형식을 합친 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뚜렷한 색깔에 모든 것을 통달한 것에서 나오는 것 같은 신선함.’
미성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문득 그녀는 이안이 자신의 해석에 대해 피드백했을 때를 떠올렸다.
불협화음들의 선율을 한데 모아 새로운 화음을 창작해내자고.
독특한 발상에 미성은 이안의 신인다움이 물씬 흘러나오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떠올려보니 신선함보다 노련함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마치 어떻게 연주하면 어떤 느낌을 낼 수 있고, 페달을 달리하면 어떤 선율을 뽑아낼 수 있을지 아는 듯.
초연(超然)한 이안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거기다 레지타티브의 선율까지.’
웅장한 반주를 발판 삼아 노래하듯이 흘러나오는 선율은 마치 가요를 연상케 했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담은 것처럼.
생명이 태동하듯 작게 울리던 선율이 안단테를 거치며 더욱 빨라지더니 이내 개화(開花)하듯 크게 펼쳐진다.
그에 따라 팔을 넓게 펴서 사용하는 이안의 모습은 이야기꾼을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클래식, 가요, 오페라, 뉴에이지.
여러 종류의 특색이 섞이면서 문제가 생길 법도 한데.
이안의 연주는 그 속에서 새로운 색채를 발견해낸 것처럼 오묘하게 흘러간다.
“... 이런 곡입니다.”
연주를 끝마친 이안이 짧게 말했다.
그제야 미성은 정신을 차리고 그가 건넨 악보를 살폈다.
미성의 머릿속에서 떠올린 악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니, 군데군데 어떤 기교를 보일지, 어떤 손가락에 힘을 가해 느낌을 살릴지까지 적어뒀으니 이안이 한 단계 앞이리라.
어지럽게 뒤섞인 글자들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미성의 눈을 자꾸만 크게 만들었다.
‘말도 안 돼.’
한참을 생각하던 미성이 내뱉을 수 있는 감탄사는 그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