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기립 박수가 터져나온다.
특히 큰아버지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에 함께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일어나 있었다.
곡을 통해 ‘현철’이라는 인물을 더욱 이해했다는 듯.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동요가 일렁였다.
나 또한 그런 감정 때문에 뭉클한 미소를 내비쳤다.
‘염라의 삶을 느꼈구나.’
강렬하게 내리치는 선율과 함께 전개되는 오묘한 높은음.
홀로 3악장을 채우며 생각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
인자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신 분이셨으니까.
하지만, 큰아버지의 모습을 오래 본 나로서는 그것이 못된 모습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표현이 서툰 것이라는 것.
그래서 더욱 직설적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피아노 선율만 채운 건 신의 한 수였지.’
기존의 협주곡에서 벗어난 선율.
피아노 하나만 전개되는 선율은 마치 나와 큰아버지 둘이서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곡을 통해 염라가 투영된 나였기에.
홀로 흘러가는 피아노 선율은 마치 염라가 자신의 인생을 직접 바라보는 식으로 전개된다.
자신에게마저 엄했던 큰아버지의 인생이 고스란히 펼쳐지는 연주.
마치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일대기에서 과거의 후회를 반성하고 되짚어가는 것처럼.
큰아버지의 지휘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아마 사람들은 그 모습에 더욱 매료되었겠지.
<염라>라는 곡에 담긴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본 사내의 화답.
큰아버지의 표정을 본 일부 단원이 남몰래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지.
매번 인상을 찌푸린 채 광선을 쏠 것 같은 눈빛이었는데.
<세월>을 지휘하는 내내 큰아버지의 표정은 맑은 미소가 떠있었다.
마치 후련하다는 마음을 그대로 내비치듯.
그랬기에 건반에 올라간 내 손이 더욱 묵직해졌다.
<염라>의 마지막은 그 후련함을 바라온 마음에 잔잔한 선율로 장식했으니까.
큰아버지는 높게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관객마저도 지휘를 하는 듯,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큰아버지가 백스테이지 한 켠으로 손짓을 하자 다니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지휘봉을 증여하며 앞으로 대한을 이끌 사람을 소개하는 의식.
지휘봉을 건네자 관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내왔다.
자연스럽게 큰아버지와 나는 백스테이지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처럼.
다니엘의 손길에 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됐다.
‘완성도 높은 제스처.’
백스테이지에서 보니 다니엘의 지휘가 훨씬 잘 보였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뒤를 돌고 있는 상태일 테니까.
그의 지휘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도 꽤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지휘는 단순히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악기 이외에 소리를 낼 수 없는 오케스트라이기에.
지휘자의 행동은 하나하나 언어가 된다.
지휘자가 동작을 크게 하면 크게, 동작이 작으면 작게라는 의미.
다니엘의 지휘는 그 언어를 연주자뿐만 아니라 객석의 대중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오케스트라 곡을 안내하는 목자처럼.
거대한 임무를 맡은 듯 결연함마저 묻어나온다.
‘큰아버지가 인정할만하네.’
지휘를 이어가는 다니엘의 모습은 묘하게 큰아버지와 닮아있었다.
큰아버지가 그랬듯, 숱한 엘리트들 사이에서 걸어온 발걸음을 표현하듯.
그의 온몸에서 퍼져나오는 강렬함이 지휘봉 끝에 맺혀 흔들린다.
아마도 저 모습에 큰아버지가 인정을 했겠지.
그 인정에 힘입어 다니엘의 지휘를 본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새로운 마에스트로를 환영하는 기운이 물씬 풍겼다.
옆에 있던 큰아버지도 만족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앞으로 상부상조할 것이 많을 거다.”
후대를 향해 내뱉는 말.
큰아버지의 말에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라면 큰아버지가 닦아놓은 대한 오케스트라를 더 높은 자리로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세계에 명성이 자자한 오케스트라이지만, 그보다 더욱 위로.
보다 더욱 명확한 기운으로 세계를 움직일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나와도 마주치는 일이 많아질 테지.
“그리고…”
매번 호령하듯 터져 나오던 음성이 자꾸만 흐려졌다.
마치 거대한 숙원을 앞둔 사람처럼.
“... 고맙다.”
어렵사리 내뱉은 큰아버지의 입가엔 그제야 편안한 미소가 폈다.
어쩌면 그동안 큰아버지는 ‘안’ 웃은 게 아니라 ‘못’ 웃은 게 아닐까.
<염라>를 작곡하면서 거장의 삶을 유추하던 나였으니까.
당찬 큰아버지의 이면에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곡을 하신 거겠지.’
내가 자작곡에 하고픈 이야기와 감정을 내려놓았듯.
큰아버지도 같은 마음이라고 했으니까.
그것을 대변하듯 <세월>을 듣고 보면서 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펼쳐지는 현악의 선율은 그동안 느꼈을 긴장감을.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관악의 선율은 남몰래 고뇌했을 회한을.
사람을 보기 위해선 그 친구를 봐야 한다 했던가.
큰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였을 음악을 보니 그 어떤 때보다 큰아버지와 가까워진 기분이다.
“선생님,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물끄러미 큰아버지를 바라보는 동안 1부 공연을 끝낸 다니엘이 들어왔다.
이제 2부에는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듯 다니엘의 지휘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내 연주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다소 냉소적이던 표정이 한층 풀려있었다.
“잘 들었습니다. 이안 씨. 무척 수준급의 연주였습니다.”
“다니엘 씨의 지휘도 무척 좋았습니다. 예술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더군요.”
나와 다니엘 사이에 짧은 소감이 오갔다.
두 인재의 소통을 흐뭇하게 쳐다보듯.
큰아버지의 눈길에는 묘한 따스함이 들어있었다.
다니엘은 <세월>과 <염라>에 대한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곡 자체도 좋았지만, 협주곡에서 관현악을 제외하고 피아노 독주를 선보이는 것은 처음 들었다고.
피아노를 향해 열띤 지휘를 펼치는 모습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염라>는 이안 씨의 작품이라 들었습니다.”
그는 내 연주는 물론 작곡에도 큰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처음엔 형식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것이 고정 관념이라 생각했을 정도로.
심리 변화가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곡조에 큰아버지의 역사가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욕심이 난다고 했다.
1대 지휘자인 큰아버지에 이어 2대 지휘자가 된 자신이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 일.
헌정곡.
선대에게 바치는 곡이자, 그 유지를 이은 곡을 만들고 싶다고.
그렇기 위해서 큰아버지의 인생이 가장 잘 담긴 내 연주를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이안 씨의 3악장, <염라>를 초석으로 헌정곡을 짓고 싶습니다.”
***
다니엘은 자신의 첫 정기연주회에서 곡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첫발을 내딛는 다짐이자 본인의 의지를 담고 싶다고.
선대 마에스트로인 큰아버지의 인생사를 담음과 동시에 ‘음악가의 삶’이라는 더 큰 대주제를 주제로 곡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외로이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내가 작곡한 연주의 감성을 그대로 이끌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다니엘의 다짐을 들은 내 심장이 여전히 세찬 박동을 보냈다.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다니엘이 먼저 제안할 줄은 몰랐는데.’
처음 다니엘을 마주한 소감은 얼음으로 만든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었으니까.
마치 큰아버지 앞에서 처음 연주를 선보였을 때처럼.
다니엘의 모습은 강직함 그 자체였다.
그랬기에 그가 곧바로 내 독주를 활용하고 싶다는 반응은 무척 의외였다.
다니엘의 생각대로 헌정곡이자 협주곡으로서 재탄생된다면 그 위상은 자연스레 올라가리라.
‘게다가 무려 대한 오케스트라니까.’
아시아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대한 오케스트라 아닌가.
큰아버지의 은퇴는 이미 국내는 물론 해외 클래식계에서도 뜨거운 화두에 오른 상태.
큰아버지의 곡, <세월>이 벌써 조명받고 있었다.
그에 더불어 <염라>에 대한 평도 존재했다.
백부와 조카의 만남.
기존의 클래식에서 벗어난 <세월>의 3악장, <염라>.
둘이서 꾸민 무대지만, 둘은 하나가 된 듯 연주를 이어간다.
오직 지휘자만을 위한 연주를 펼치는 피아니스트와 피아노만을 위해 지휘를 펼치는 지휘자.
마치 한 사람의 일대기를 마주하는 사람 같지 않은가.
마에스트로의 지휘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에게도 관심이 쏠려…
한 외신은 내가 느꼈던 것과 동일한 평을 내놓았다.
아마 큰아버지는 이것 또한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
수십 년간 대한을 지켜온 마에스트로의 혜안이 적중한 순간이었다.
곧바로 연주를 펼친 나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어났다.
동양에서 뛰어난 성과를 자랑하고 있던 청년이라고.
빈 필에서도 주목할 정도로 천재 중의 천재이자,
유튜브에서도 클래식 매니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이미 예정된 수순처럼 빠르게 정보들이 인터넷상에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새로운 시작.
처음으로 나서는 국제 콩쿨까지 어느덧 한 달 남짓 남겨두고 있었다.
레오나 선생님이 항상 강조했던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소통.
점차 클래식계에서도 내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콩쿨 참여는 나에게 큰 발돋움판이 될 것이다.
‘유수의 실력자들이 올 테니까.’
아시아 월드 피아노 콩쿨.
도쿄에서 벌어지는 본선에 아시아에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일 터.
아마 그중에서도 최고를 뽑는 경쟁이 벌어질 테지.
하지만, 나에겐 경쟁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천재라고 정평이 나거나, 끊임없는 노력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예술가.
그들이라면 같은 곡이라도 자신만의 해석이 가미된 연주를 펼치리라.
내겐 그게 더 중요한 주제였다.
각자의 해석들은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테고, 그러한 영감은 새로운 곡의 탄생으로 이어질 테니까.
그리고 콩쿨에서 내가 보여줄 것은 단 하나.
‘내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가 더 잘하고, 더 못하고는 이제 중요치 않다.
나는 그저 내가 생각한 바를 건반에 녹일 뿐.
세레나데의 암울한 사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낮은 선율에 힘을 줬던 것처럼.
전쟁 용사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경건하게 오른손을 등에 붙였던 것처럼.
<염라>를 통해 큰아버지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해 곡을 썼던 것처럼.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대방도 잘 받아들이게끔 다루는 것뿐이다.
‘어떤 곡을 펼칠까.’
이번 콩쿨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펼쳐야 한다.
전생의 기억보다 더욱 오래된 시기.
하지만, 기억 속에 당대의 음악들이 남아 있었다.
고전이 지금에 와서 교과서적인 클래식으로 남아 있듯.
당대에는 그 이전의 사조가 더욱 교과서적으로 남아 있었으니까.
전생의 기억에 힘입어 서가에 손가락을 올리려던 찰나.
책상에 둔 휴대폰이 진동을 일으켰다.
아버지의 전화.
전화를 받자 나긋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난데없는 제안에 미간이 꿈틀거렸다.
“... 진심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