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살리에리의 피아노를 어디로 옮길지에 대한 이야기도 큰 화두였다.
귀중한 유물에 가까운 물건이니 보안이 잘 지켜지는 곳이면서 제대로 된 녹음을 펼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 자리는 큰아버지가 마련했다.
‘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습실.’
본디 모든 오케스트라는 연습실을 가지기 마련이다.
매번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습실은 특이점이 하나 있었다.
클래식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오케스트라급 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녹음실.
해외에서는 이미 수차례 음원을 발표하는 클래식 음악계를 따라가고자 했던 큰아버지의 세심함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장소에 대한 회의를 하면서 서천 그룹도, 팰리스 호텔 측도 모두 긍정표를 던진 유일한 곳.
지금 내 눈앞에서 살리에리의 피아노가 세팅되고 있었다.
“분위기가 장난 아니구나.”
큰아버지가 어수선한 연습실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녹음 준비가 한창인 엔지니어는 기본, 피아노를 옮기기 위한 서천 그룹의 경호 인력까지 대동한 상태였다.
거기다 팰리스 호텔에서 온 경호 인력까지 가세하자 분위기는 무척 엄중해졌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호텔 담당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안 씨. 경영지원팀 요시다라고 합니다. 지배인님께서 직접 오지 못해서 무척 아쉽다고 전하셨습니다.”
아마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겠지.
지배인은 팰리스 호텔의 총책임자.
우두머리가 자리를 비울 순 없는 노릇이니까.
요시다는 지배인이 여전히 그 일로 고마워하고 있다고.
일본으로 오면 언제든지 호텔로 와달라고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 또한 그의 말에 화답했다.
“애니메이션 시사회 때 이용하도록 하죠.”
요시다는 좋은 생각이라며 박수를 쳤다.
벌써부터 애니메이션 소식에 관심이 뜨겁다고.
1차 예고편이 나오면서 일본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도 미우의 애니메이션에 주목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한 번 더 꼭 와달라는 요시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치열이 세팅이 완료되었다는 말을 건넸다.
‘다시 만나 반갑다.’
나는 살리에리의 피아노 겉면을 스윽 어루만졌다.
피아노의 빛깔은 오래된 듯 바랬지만, 느껴지는 아우라는 여전히 범상치 않은 면모를 보였다.
피아노에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발견한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진 악보도 피아노 음색에 맞춰 재정립되기 시작한다.
이전보다 낮은 선율로, 보다 강렬한 악센트를 만들 수 있는 자리가 떠올랐다.
<질주>의 선율을 더욱 강하게 바꾸고 있던 찰나.
대한 오케스트라의 현 수장, 다니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살리에리의 피아노이군요.”
피아노에 대해서 묻는 다니엘의 태도가 사뭇 공손했다.
미처 상상하지 못한 물건이 왔다는 듯.
다소 날카로워 보이던 다니엘의 인상이 오늘따라 굉장히 순해 보였다.
피아노를 처음 본 아이처럼.
그의 눈망울에는 묘한 호기심이 곁들어져 있었다.
“한번 건반을 눌러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하다는 듯 나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조심스레 낡은 의자에 앉은 다니엘은 한참 동안 건반만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가락을 올렸다.
건드리면 톡 터져버릴 풍선을 건드리는 듯.
다니엘의 손길에는 조심스러움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
건반을 누르자 내가 원했던 묵직한 선율이 연습실에 퍼져나갔다.
다니엘은 전율이 인다는 듯.
얕은 몸서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걸 다룰 예정이란 말입니까?”
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기존에 알던 피아노 소리와 너무나도 다르다고.
도리어 이질적인 느낌이 난다며 덧붙였다.
“이걸 그렇게 연주하셨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큰아버지를 통해 살리에리의 피아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검색해보았다고.
그와 동시에 내가 펼친 연주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이런 선율에 연주를 할 생각을 다 했냐는 듯.
다니엘의 표정이 무척 흥미롭다는 듯 바뀌었다.
비록 잠깐 들었지만, 어색한 느낌에 어떻게 연주를 이어갈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영상 속 내 모습은 이미 모든 것을 통달한 듯 보였다고 감탄했다.
“이 피아노를 사용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애써 담담하게 전하는 목소리였지만, 다니엘의 목소리엔 기대감이 물씬 느껴졌다.
“일반적인 피아노로는 낼 수 없는 저음을 갖고 있거든요.”
살리에리의 피아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니엘은 피아노 건반을 몇 번 더 쳐보더니 내 뜻을 이해하겠다는 듯 소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이내 음색에 조금씩 적응한 듯 자신의 감상을 털어놓았다.
굉장히 안정감 있는 저음이라고.
보통 피아노의 저음은 무척이나 음산하고 우울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살리에리의 피아노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내가 살핀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게 일반적인 피아노의 낮은음은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낼 것 같은 묵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조율해도 그 본질적인 음색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리에리의 피아노는 달랐다.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맑은소리를 가지고 있지.’
살리에리의 피아노에서 펼쳐지는 선율은 단순한 묵직함이 아니었다.
배기관에서 떨리는 음색이 곧 배기음을 만들어내듯.
살리에리의 피아노도 배기음처럼 떨리는 음색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처음에 콩쿨곡이었던 스카를라티의 곡을 연주했을 때.
그가 연주하던 하프시코드의 음색과 닮았다고 생각한 이유와 같았다.
마치 오르간처럼 울리는 선율.
관악기와 같은 선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리에리의 피아노가 필요한 이유였다.
내 설명을 듣던 다니엘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들었으니, 이제 어떤 선율이 나올지 기대된다는 듯.
응원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하나 더.
다니엘이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아, 그리고 선생님의 헌정곡을 곧 발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든 부분.
제 3악장 <염라>를 초석으로 곡을 쓰고 싶다고 했지.
다음 주에 있을 정기 연주회에서 곡을 공개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 큰아버지는 물론 나 또한 꼭 초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큰아버지가 인정한 인재.
그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펼쳤을지 궁금해졌다.
“이안 씨. 녹음팀은 이제 준비 끝났습니다.”
서천 그룹에서 온 엔지니어들이 사인을 보내왔다.
하지만 아직이다.
살리에리의 피아노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었다.
미세하게 어긋난 음색을 바로잡아줄 사람.
호텔에서는 즉석으로 연주한 것이라 생략했지만, 녹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
보다 깔끔한 연주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 있었다.
똑똑똑.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호팀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등장한 노장은 곁에 있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게 다가오며 기염을 토했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조율 도구를 잔뜩 담은 공구통을 들고 온 조율사.
연주를 하기 전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
‘볼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단 말이지.’
조율사는 이안을 보며 속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처음부터 그와의 만남은 범상치 않았다.
피아노를 배운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청년이 거장 피아니스트처럼 조율에 엄청난 신경을 기울였으니까.
게다가 그 선율은 조율사도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오래된 선율.
그뿐만일까.
독주회 곡을 치면서도 시시때때로 조율을 바꾸자는 제의를 한 사람이지 않던가.
그때만 생각하면 마치 베일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자다가도 전율이 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배로 많은 피아노를 조율해달라니.
60년 조율 인생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거기다.
‘인생 2회차라고 해도 믿겠구먼.’
조율 63년 차도 처음 접하는 200년 된 피아노.
기본적인 구조는 비슷할 테지만, 재료의 노후화 정도에 따라서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달라진다.
제 기능을 잃은 부품은 교체해야 하고, 분리하여 다시 조립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테지.
숱한 조율 경력에도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건만.
이안의 인도는 순식간에 그 갈피를 잡아주었다.
마치 처음부터 골동품의 구조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듯.
이안의 요청 아래에 조율이 시작되자 조금씩 어긋나있던 음색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율의 갈피가 잡혀가던 중.
조율사가 곡에 대해 질문했다.
“어떤 곡을 칠 겁니까?”
조율은 단순히 음의 높낮이를 조정하는 작업이 아니다.
현의 떨림을 조절하여 그 소리를 달리하는 고난이도의 작업.
그리하여 일부러 떨림을 강화시킬 수도, 반대로 떨림을 약화시킬 수도 있었다.
그 미세한 차이로 가락이 달라지는 것은 천지 차이.
독주곡을 펼칠 것이라면 뚜렷한 음색으로 제대로 된 선율을 내뱉어야 할 테고, 협주곡이라면 음색이 뚜렷하되 관현악에 어울릴 법한 음색에 맞춰 조율을 해야 한다.
조율사의 말을 곧장 알아들은 이안이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안이 엔지니어에게 배기음을 요청하자 스피커에서 이내 활기찬 배기음 소리가 퍼져 나왔다.
듣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진한 소리.
거기에 이안은 질세라 연주를 시작한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선율이 진행될수록 조율사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런 연주가 가능하다고?’
그동안 조율사는 배기음을 자랑하고 다니는 운전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소리에 민감했던 그였기에.
그리 좋은 소리도 아닌 배기음을 과장해서 내놓고 다니는 치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자신이 환경 오염 주범이라고 광고하는 것인가.
딱 거기까지가 조율사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연주를 들으니 그동안의 생각에 금이 가듯.
경탄함에 조율사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배기음을 소리로 느끼는 것인가?’
절대음감.
지금이야 기술이 좋아져서 기계를 놓고 조율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청년이었을 때만 해도 절대음감은 조율사에게 반 필수적인 감각이었다.
본능으로 느끼는 것이라 누군가에 따로 배울 수도 없다.
오로지 본능에 직결된 감으로 음색을 느끼고, 어떤 음인지, 몇 헤르츠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것은 절대음감이란 재능을 타고난 사람에게도 고난이도였다.
분명 그럴 터인데.
이안은 배기음을 단순 소음이 아닌 다른 악기에서 내는 소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통 재능이 아닐세 그려.’
조율사가 속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배기음으로 협주를 진행하는 것처럼.
매끄럽게 진행되는 이안의 연주를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한 켠으로는 어떤 음색을 원하는지 알겠다고.
배기음에 합쳐지면서도 피아노 자체의 조율 차이로 벌어지는 음색의 틈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안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간단한 연주를 마친 이안이 조율사를 빤히 쳐다봤다.
열의 넘치는 청년의 요청에 보답하기 위해.
조율사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공구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