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73화 (73/250)

73화

비엔나 하르모니아 음반사.

클래식 업계에서는 그 이름을 빼놓고 역사를 논할 수 없었다.

19세기 말부터 생성되어 세계 제1차 대전을 거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클래식의 산증인.

모든 클래식 음반사는 하르모니아에서 파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

쇼팽 콩쿨의 우승자인 마쓰모토 사토라와 전속 계약을 한 곳이기도 했다.

사토라가 오스트리아로 돌아오자마자 음반사를 찾은 것은 이안 때문이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시사회가 끝나고도, 호텔로 돌아와서도, 오스트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조차도.

사토라의 머릿속에서는 이안의 연주가 떠나가지 않았다.

무언가 단단히 홀린 것처럼.

당장 오스트리아에 가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하고 싶었다.

예정 휴가보다 하루 앞당겨 음반사에 복귀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사토라는 곧장 음반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토라 씨. 고향은 잘 다녀왔습니까?”

대형 회의실.

하르모니아 음반사를 움직이게 하는 존재들이 다 모여있었다.

최종 결정권자인 사장을 비롯해 사운드 디렉터와 작곡가까지.

사토라가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불러모은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야기길래 휴가도 하루 남은 분이 저희를 소집하셨습니까?”

사장이 빙긋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가벼운 표정과 말투지만 표정에서는 어떤 때보다 진지한 기색이 역력하다.

쇼팽 콩쿨 우승자 정도의 실력자가 긴급회의를 소집할 정도라면 무언가 있을 테니까.

“여러분 모두 한국의 박이안 피아니스트를 잘 아실 겁니다.”

사토라의 말에 회의실에 있던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빈 필의 사랑마저 독차지한 사람.

이미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안의 소식을 모르는 클래식 업계는 없었다.

이안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에 사람들이 몸을 앞당겼다.

“이안 씨에게 우리가 음반 제작을 제안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토라는 시사회에서 보고 온 것들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예 피아니스트가 거장 애니메이션의 OST를 만드는가 하면, 그 자리에서 펼친 즉석곡은 즉석곡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게다가 배기음에 선율을 섞는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이뤄낸 장본인이라고 덧붙였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하르모니아에서 음반을 낼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어필했다.

강렬한 의견에 대부분 인원이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주목하고 있던 한 여인이 사토라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작곡 실력이 대단한 신예 피아니스트의 자작곡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군요?”

회의실 한 켠에 앉아있던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크서클이 짙게 깔린 눈.

하지만 동공만큼은 열기에 가득 찬 여인.

“그렇습니다. 레일라 씨.”

레일라 베버.

하르모니아 음반사에서 나오는 모든 선율을 주무르는 총괄 사운드 디렉터.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고선 빛을 볼 수 없었다.

음침한 성정 때문에 업계에선 ‘괴짜’라고 하지만, 실력 하나는 업계 최고.

그녀가 선택한 곡은 항상 세계를 울렸고, 그녀가 택한 음악가는 꼭 높은 자리에서 연주를 펼쳤다.

레일라가 주목한다는 것만으로도 클래식 업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그녀는 클래식계에서도 알아주는 존재였다.

“안 그래도 사토라 씨에게 듣고 싶었습니다. 지금 신문에서 난 이야기가 사실인지.”

일본 시사회에서 있었던 일은 벌써 바다를 건너 전해진 지 오래.

특히 즉흥곡을 펼쳤다는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떠들썩했다.

요한나의 시사회 감상 인터뷰 때문에 서양에서도 큰 화제를 몰았다.

유심히 듣지 않았다면 그것이 즉석에서 만든 곡인지 몰랐을 것이라고.

그렇게 수준 높은 곡을 곧바로 만들어낸 이안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예. 저도 이안 씨가 그 자리에서 곡을 만들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만큼 비범한 존재이니 우리가 가장 먼저 접선해야 한다고.

지금도 그는 미완인 곡을 완성에 가깝도록 만들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사토라의 말에 레일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일라 또한 이안의 종횡무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정통 클래식을 재현한 듯한 <환생>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오케스트라에서 펼쳤던 <염라>, 광고에 사용된 <질주>와 사토라가 언급한 <환상>과 <추격>까지.

“1년 만에 이러한 성과를 이룬 청년입니다. 이안이라면 어떤 열매보다 아름답게 영글고, 더 나아가 씨를 뿌릴 우량주라고 확신합니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이안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었다.

클래식 커뮤니티에서 화두에 오르는가 하면, 여러 음악가들이 이안의 곡을 커버하곤 했으니까.

그러한 관심들이 음원에 꽂힐 것이라고.

그 어떠한 사람보다 하르모니아에게 어울리는 인재라고 덧붙였다.

사토라의 이야기를 듣던 레일라는 손깍지를 낀 채 사토라를 바라봤다.

“사토라 씨가 말한 곡에 더해 이안 씨와 함께 협업하여 곡을 추가하면 되겠군요.”

레일라의 말을 시작으로 이안의 자작곡 앨범에 대한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아직 앨범에 들어갈 곡이 충족되지 않았지만, 이안의 실력 정도라면 순식간에 채울 것이라고.

작곡가들 또한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하다가 이안의 발자취를 보곤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불과 몇 달 만에 5개의 곡을 만들어낸 천재였으니까.

디렉터와 작곡가, 최종 승인권자인 사장까지 모두 긍정표를 던졌다.

확신에 찬 레일라는 사토라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연락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사토라는 말 대신 자신 있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벌써부터 음원으로 만들어질 이안의 연주를 기대하며, 사토라의 가슴이 쉴 새 없이 벌렁거렸다.

***

“연주가 참 듣기 좋아서.”

어머니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듯 올라왔노라고.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투지만, 어머니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랐다.

맑은 눈망울이 오늘따라 우수에 찬 듯 우울해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실.

‘어머니는 내가 연주 중일 때는 안 들어오시지.’

연주 중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고.

평소에 연주를 할 때면 들어오기는커녕 노크도 잘 안 하시는 분이었다.

미우와 강 감독님이 방문했을 때도 연주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어머니셨기에.

무언가 있다는 확신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애써 성정을 내비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시사회 때 들었던 곡 같은데, 새로운 자작곡이니?”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층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활기찬 기색이 역력하다고.

무척 기쁜 감정을 담은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 말대로 이것은 환희에 젖은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니까.

“<영감>. 이번 곡의 제목이에요.”

나는 곡의 탄생 배경을 잠깐 설명했다.

다른 것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연주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

시사회에서 펼쳤던 <환상>에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표정을 보였던 것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어머니가 느낀 활기찬 느낌은 그러한 선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감>…’

차근히 내 말을 듣던 어머니는 작게 제목을 중얼거렸다.

내 말에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힘든 듯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혹 이번에 맡은 독주회 때문에 그러실까.

숱한 무대에 올라본 어머니겠지만, 독주회가 주는 압박감은 여타 공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클 테니까.

특히 오랜만에 제의받은 독주회라고 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독주회 제안에 문제 있으세요?”

아니야, 괜찮아.

어머니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 표정이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수차례 거울 속에서 봤던 표정.

떠올리기 싫은 예전의 내 표정이 어머니에게 고스란히 옮은 것 같았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의미를 잃었을 때 그 얼굴…’

바이올린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을 때 마주했던 표정이다.

가능성을 넘봤던 눈에는 총기가 사라지고, 자신감을 잃어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

애써 입꼬리를 올리지 않으면 자연스레 쳐져서 울상인 모습까지.

어머니는 계속 웃으려고 노력하는 듯했지만, 곡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보였던 표정은 분명 무언가 의심할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어머니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이기 이전에 그녀 또한 플룻을 연주하는 사람.

나와 같은 예술가였으니까.

아마 음악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것일 테지.

하지만, 어머니 나이에 저렇게 심히 고민을 하시는 거면…

“혹시 은퇴하고 싶으세요?”

“... 어떻게 연주를 이어갈지 모르겠거든.”

잠깐 말이 없던 어머니.

쑥스러운 듯 그녀는 길게 내려온 머리칼을 배배 꼬며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한 켠이 빈 것 같다고.

그래서 독주회 제안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무대를 채워야 할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주에 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주변 지인에게 묻자니 천하의 전은희가 음악에 감을 잃었다는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할 것 같았다고.

그동안 연주가의 길만 걸어오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생각이라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머니도 큰아버지처럼.

거장에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느끼는 외로움일 테지.

나 또한 느꼈던 감정이었다.

음악계의 별인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내가 음악에 흥미를 잃었다고 얘기하면 주변에서 뭐라 얘기할까.

아마 어머니의 표현대로 내 주변에서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했겠지.

그만한 환경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며.

까맣게 타들어 가는 속은 모르면서…

“이안이 너라면 이 마음을 제일 잘 알 것 같아서.”

어머니가 조금은 후련하다는 듯 풀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어머니의 상황을 잘 알기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순간, <영감>의 악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연주를 진행하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이번 곡이 굉장히 독특하다고요.”

오른손으로 건반을 일제히 누르자 피아노가 소리를 토해낸다.

버금 7화음.

하나씩 들으면 이 또한 아름다운 선율이지만, 다른 화음과 맞추면 어긋나기 십상인 소리.

어머니도 무척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화음들은 다른 섞이기 무척 힘든 화음이라는 것.

하지만, ‘힘든 것’이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악보를 봤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겠죠. 하지만, 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버금 7화음에 일반적인 평화음들이 섞이자 어긋나는 소리가 완화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던 선율이 이음매 역할을 한 화음 덕에 하나의 선율로 만들어진다.

악보와 건반을 번갈아 보는 어머니의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상상하지 못한 조합이라는 듯.

어머니의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어느덧 연주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고 완전히 어우러진 선율이 음악실에 감돈다.

“정해진 길만이 길은 아니지만, 애써 다른 길을 간다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겠죠.”

바이올린을 포기하고 피아노를 잡았던 그때처럼.

내가 큰아버지에게 당당하게 가서 연주를 펼쳤을 때처럼.

다른 시선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콩쿨 우승을 차지했을 때처럼.

그렇게 원하는 대로 나아가고 책임지면 된다.

마치 모든 이가 원하는 대로 영감을 그려내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처럼.

연주를 마친 내가 어머니를 향해 돌아섰다.

“어머니가 하고 싶은 걸 하세요.”

내가 하고 있기에.

또한 내가 한 것처럼 어머니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에 전할 수 있는 말.

내 말을 들은 어머니의 얼굴이 전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음… 원래 사업에 관심이 있었는데, 확실치는 않아.”

한때 꿈이었다는 듯.

어머니의 입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나왔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기용품 사업을 생각했노라고.

큰아버지와 함께 신예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한다거나, 프랜차이즈 식당에 대한 사업도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모두 현실적인 문제들로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한 아이디어는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요즘 다시 생각나는 건 음반 제작 사업이야.”

어머니는 예전에 생각만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정보들은 그저 ‘생각만’ 수준이 아니었다.

국내 클래식 음반 제작사가 미비하다는 점.

나 또한 클래식을 배우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었다.

실질적인 홍보 수단이나 수익이 마땅치 않으니 국내 클래식 인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겠지.

어머니 또한 해외에서 전문 음원을 낸 적은 있어도, 국내에서 전속으로 계약을 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후원체가 아니라 예술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을 한다면.

그 시너지가 무척 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업하시면 제가 가장 먼저 투자할게요.”

단순히 어머니라서 한 말이 아니다.

<영감>을 들으면서 어려운 화음의 조합을 깨달았다면 어머니 또한 상당한 청음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

그 안목으로 음반을 제작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

어머니는 내 말에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든든하다고.

단순히 투자체가 아닌, 조언을 건넨 예술가로서 믿는다고.

자신감을 회복한 어머니의 눈빛이 이전보다 훨씬 강렬하게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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