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76화 (76/250)

76화

공원에서 나온 일행은 거리 한쪽에 있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사토라는 자신의 입맛에 가장 맞는 곳이라며 소개했다.

송아지 고기를 다져 빵가루를 입혀 튀긴 슈니첼.

일본의 돈가스와 유사한 요리에 전생과 현생의 기억이 오묘하게 교차한다.

전생의 기억 속에서 도련님을 통해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하인들이 자주 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기에.

식사를 이어가던 중, 사토라는 조심스레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안씨, 아까 그 미완성곡을 어떻게 채운 겁니까?”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

그의 표정에는 신비함마저 감돌았다.

나는 씹던 고기를 삼키고 사토라를 향해 담백하게 덧붙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전생의 기억 속.

전생은 단테의 신곡 속 카론의 모습을 보며 이 곡을 만들어냈다.

지옥으로 죽은 자를 데려가는 아케론강의 뱃사공 카론.

안개처럼 자욱한 선율은 저승의 강에 떠오른 안개이자, 망자들이 흘린 눈물이었다.

그렇기에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리는 선율은 기본.

게다가 고전은 큰 반전을 꾀하기보다는 기존의 음색을 그대로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에 곡은 노를 젓는 것처럼 규칙적인 선율을 내뱉어야 한다.

전생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나는 곡을 들음과 동시에 괴테의 작품이 떠올랐다고 답했다.

무척이나 낮은 선율을 들으니 마지막이 아닌, 첫 번째였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사토라는 내 말에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과연… 그렇게 하면 곡의 시작이 무척 낮았던 것이 설명이 되는군요.”

사토라는 내 말에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는 듯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비교적 밝은 선율인 <천국> 뒤에 우울한 분위기의 미완성곡이 들어간다는 정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것을 완전히 뒤엎는 내 의견은 마치 창작자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던 선율을 만들어냈다고.

학계의 정설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다 완성에 가까운 선율을 펼쳤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레일라도 내 연주에 감탄하다 못해 하고 싶은 제안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안씨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토라의 목소리가 무척 진지했다.

식사를 마친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서는 기대감과 함께 묘한 도전 의식이 느껴졌다.

“하르모니아 측에서 미완성곡을 이안씨에게 맡겨 새롭게 재탄생시키고 싶다더군요.”

사토라의 말에 어머니가 옅은 탄성을 뱉었다.

큰아버지도 이 정도의 대우는 해줄 줄 몰랐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토라는 하르모니아 측의 생각이라고 밝혔지만, 자신이 가장 크게 동조하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말에서 그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곡이라고 생각했고요. 이안씨가 원한다면 자작곡 앨범 리스트에도 올릴 수 있도록 내부 합의를 마쳤다고 합니다.”

전생이 죽으면서 잃어버리게 된 곡을 내 손을 재탄생시킨다.

<영감> 작업을 마치며 새로운 곡 구상을 하던 나에게는 무척 좋은 제안이었다.

이미 전생의 기억에 더불어 연습실에서 연주하면서 머릿속에 오선지가 채워진 곡이었으니까.

만약 제대로 만든다면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하여 앨범에 수록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지금까지 만든 곡들 중 굉장히 독특한 선율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낮은 음색이 특징인 살리에리의 피아노로 연주한 <질주>보다 더욱 묵직하고 낮은 선율을 자랑하는 곡.

자작곡 리스트에 들어간다면, 새로운 느낌의 연주를 선보일 수 있을 테지.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다고.

아니, 하고 싶다고.

“좋습니다. 그 곡도 함께 진행하도록 하죠.”

일곱 번째 곡, <죽음>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

“정말. 보면 볼수록 놀라운 곡들이군요.”

악보를 보던 레일라는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그동안 내가 만든 6개의 자작곡.

그녀는 악보를 볼 때마다 각기 다른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다채로운 발상을 할 수 있는 거죠?”

본래 작곡을 하면 그 사람 특유의 기운이 감돌기 마련이라고.

그것이 악보를 봤을 때 어떤 것을 참조했는지, 누가 곡을 썼는지 유추하는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내가 쓴 곡은 다르다고.

레일라는 모든 곡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감성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수많은 음색의 향연을 보는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안씨의 연주가 더욱 기대되네요.”

레일라는 악보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동안 만들어온 곡들에서 천재성이 보인다고.

<환생>에서는 제목처럼 새로 태어난 존재의 활동성이 느껴지고, <염라>는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마주했던 대한의 마에스트로를 마주하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환상>과 <추격>에서는 애니메이션에서 본 환경을 펼쳐낸 것 같다고, <질주>는 배기음과 콜라보한 천재성이 악보에도 묻어난다는 말을 덧붙였다.

앨범에 수록될 예정인 <영감>의 악보를 보곤 사토라가 일본을 다녀와서 자신들을 불러 모은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마치 이안씨는 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 것 같군요.”

레일라가 나를 향해 넌지시 건넨 말.

나는 <죽음>의 오선지를 채우는 중이었다.

하르모니아 음반사와 협업한 앨범에 들어갈 두 번째 곡.

레일라는 내가 아이디어를 짜내서 곡을 만드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악상을 고스란히 펼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죽음>은 전생의 기억과 더불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를 표현하는 곡.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연이어 펼쳐지는 다섯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죽음>의 핵심이었다.

감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선지에 음표가 맺히기에.

이미 <죽음>의 악보는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

눈을 감는 것만으로 가상의 악보가 떠오를 정도이니, 눈을 감고 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자연스러우리라.

하지만, 이렇게 악보로 만드는 이유는 음반사에 자료 제출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 음악을 직접 연주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녹음이 내 연주를 듣고 싶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악보를 만드는 것은 내 음악에 자신의 색채를 더하고픈 예술가를 위한 것이었다.

유튜브에 내 자작곡을 커버하는 사람처럼.

그들을 통해서 내 연주가 한 번 더 입소문을 탈 수 있을 테지.

차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접하게 하려면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전생에는 하지 못하던 일이니까.’

비엔나에 와서 부쩍 전생의 기억이 많이 흘러들어온다.

전생의 나는 하인이었지만, 로만에게 천재성을 인정받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존재.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서 하인이 주인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생의 기억 속에 수많은 곡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펼칠 순 없었던 것.

기억에는 들어 있지만,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곡들이 떠올라서일까.

묘한 아쉬움에 <죽음>을 완성하는 내 손길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레일라는 나를 향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안씨처럼 미완성곡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곳이 있는데. 혹시 만나볼래요?”

***

마크 듀셀.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클래식 주간지 ‘클래식 타임’ 소속 기자였다.

오랜 성과와 노하우로 편집장 제의까지 받은 인물.

하지만, 마크는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며 편집장 자리까지 거절하고 기자로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그 열정 탓일까.

마크는 오스트리아는 물론 전 세계 클래식 정보를 가장 빨리 섭렵하는 소식통이었다.

빈 필 오케스트라가 한국 피아니스트에게 관심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

그런 마크에게도 이안은 베일에 싸인 존재였다.

‘취재 일정을 잡는 게 이렇게나 어려워서야.’

지금껏 못 할 취재는 없다고 자부한 마크였다.

하지만, 이안의 인터뷰를 받아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연락이 닿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비엔나 하르모니아에서 이안의 앨범을 제작할 것이라는 소식에 그는 곧장 하르모니아를 찾아갔다.

직접 이안을 만나진 못했지만, 이안이 하르모니아와 협업한다는 소식만으로 큰 건이다.

게다가 사실 확인과 함께 이번 프로젝트의 놀라운 점까지 발견했기에.

다음 취재처로 향하는 마크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미완성곡을 완성하는 작업이라니!’

로만 슈트라우저의 앨범.

신곡을 모티브로 만든 곡들은 특유의 다채로움으로 주목 받곤 했다.

일부 클래식 학계에서는 베토벤과 더불어 로만 슈트라우저가 고전의 끝과 낭만의 시작에 걸친 과도기 세대 음악가라는 의견을 내놓을 정도니까.

로만의 신곡 시리즈의 미완성곡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또다시 클래식계가 발칵 뒤집히리라.

마크는 애써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난 베토벤 250주기 때 뵙고 처음이네요.”

“벌써 시간이 그리됐네요. 마크씨, 이번 기사도 기대하겠습니다.”

마크와 악수를 하던 여인이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클레어 와이즈.

그녀는 베토벤 재단의 운영팀장이자, 이번 비엔나 특별전의 총책임자였다.

기획 중인 특별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던 클레어는 이내 마크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마크씨. 하르모니아에 한국의 박이안이 와있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하하. 재단 측에서도 벌써 소식을 접하셨군요.”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은 상태일 터.

그럼에도 정보를 알고 있는 베토벤 재단의 저력에 마크도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정확한 소식은 모른다는 클레어의 말에 마크는 한 가지 소식을 건네주었다.

“로만 슈트라우저의 신곡 시리즈. 미완성곡을 완성하고 있다더군요.”

“슈트라우저의 미완성곡을요?”

클레어도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베토벤 재단 운영팀장급으로 올라간 그녀 또한 슈트라우저 가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베토벤과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슈트라우저 가문.

특히 청력을 잃고 여러 음악 가문과 함께 곡을 만들었던 베토벤이었기에.

과거 베토벤이 슈트라우저 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도 널리 퍼진 사실이었다.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어.

하지만, 마크는 기자 특유의 직감이 떠올랐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클레어의 표정에서 무언가 냄새를 맡은 것이었다.

“클레어? 이안의 소식에 무언가 떠오르는 표정인데,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역시 마크의 앞에서는 의중을 숨길 수 없네요.”

클레어는 생각을 들킨 듯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번 특별전에서 베토벤의 미완성 악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과거와 현대의 만남’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기획한 특별전의 메인 이벤트.

베토벤의 미완성 악보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3악장을 만들던 중 베토벤이 사망하며 미완성으로 남은 곡.

그동안 남아있는 스케치 자료나 베토벤의 작곡 일지로 여러 미완성 악보들을 복원해오던 베토벤 재단이었다.

하지만, 이번 곡은 베토벤 재단도 두 손 두 발 들게 만든 곡이었다.

재단이 소유한 원본 악보 이외에 그 어떤 정보가 없었던 것.

그 때문에 이번 특별전에 전시하는 악보들 중 유일하게 복원하지 못한 곡이었다.

클레어는 그 곡을 이안이 복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실소를 터뜨렸다.

“마크씨의 말을 들으니 더욱 궁금하네요. 하르모니아 측에 연락이라도 넣어봐야겠어요.”

클레어는 형식적인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크는 그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클레어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기자로서의 감이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번 것은 보통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슈트라우저 가문의 곡도 스케치가 많이 없기로 유명한데…’

클래식 기자로 살아온 인생도 어언 20년.

마크 또한 슈트라우저 가문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악상을 써놓은 스케치 자료 하나 남기지 않고 곡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한 가문 아닌가.

마크가 아는 바가 맞다면, 이안이 작업하고 있는 신곡 시리즈의 미완성곡도 자료가 거의 없을 터였다.

하르모니아 음반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진 않았지만, 레일라 디렉터가 기대해도 될 거라는 말만으로도 곡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성공리에 곡을 완성하고 있다고.

존재하지 않는 곡을 이안이 스스로 작곡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정말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베토벤의 미완성곡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다면?’

루트비히 판 베토벤.

클래식을 수학하는 사람, 아니, 클래식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도 이름은 아는 그 거장이다.

이번 특별 전시에 미완성 악보를 공개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흥미를 돋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곡을 완성하여 재탄생시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현대의 신예 피아니스트가 거장의 미완성곡을 완성하여 선보인다.

헤드라인만으로도 일반인은 물론, 클래식계 인사들의 시선이 집중되리라.

수백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곡이 세상에 공개된다는 것은 절대 가벼운 수준의 화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마크는 취재차 이안의 연주를 직접 들은 인물이었다.

빈 필의 마에스트로가 발걸음을 옮긴다는 사실에 이안의 첫 독주회에서 <환생>을 직접 들은 마크이기에.

그의 가슴 속에서는 확신이 가득 찬 심장 박동이 울렸다.

‘이건 특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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