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84화 (84/250)

84화

우와아아아아!!!

짝짝짝짝

찰칵-찰칵

독주회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곡.

<환생>의 연주를 마치자 환호성과 함께 수많은 소리들이 섞여 무대로 흘러들어온다.

마치 참고 있던 감성을 쏟아내듯.

사람들의 환호가 넓은 오페라극장을 크게 울렸다.

1층에서 6층까지.

붉은 벨벳으로 장식된 의자에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비친 샹들리에 빛이 반사되어 내게로 꽂혔다.

내가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자 환호성이 한 차례 커진다.

툭툭

피아노에 놓여있던 마이크를 점검하자 우레와 같던 함성이 순식간에 멎어 들었다.

지난 독주회 때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가 일제히 내게로 집중된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피아니스트 박이안입니다.”

재차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다시 한번 더 열렬한 환호성이 극장을 가득 메웠다.

무대 앞에 놓은 프롬프트에도 독주회에 대한 실시간 댓글 반응이 올라왔다.

ㄴ 시작부터 미쳤다.

ㄴ أغنية جيدة جدا

ㄴ 이게 자작곡이라고?

ㄴ OMG :) This is Ian.

ㄴ 심지어 이게 처음 작곡한 자작곡이라는데… 이래서 천재 피아니스트구나.

게다가 실시간 시청자 수는 5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인기 유튜버의 평균 라이브 시청자 수가 1만인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5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일제히 내 연주를 듣고, 보고 있었다.

지금 극장에 있는 2천여 명의 관객까지 합치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연주를 듣고 있다는 말이겠지.

게다가 카라얀 광장에 보고 있는 사람들도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나리라.

‘극장 측에서도 상황을 이해하는 듯했지.’

본래 카라얀 광장에서 스크린을 띄우는 것은 4월 중순 즈음 따뜻해지고 나서였다.

아직은 일교차가 심한 3월 초 무렵.

광장에서 연주를 감상하기엔 꽤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실컷 독주회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자리가 없다고 돌려보낼 순 없는 노릇.

극장 측에서는 이번 독주회의 인기를 고려하여 내 뜻을 반영하기로 했다.

“바깥에 계신 분들, 아직 추운 날씨인데 불구하고 연주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깥에서 함성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엄청난 방음 시설로 무장한 오페라극장일 텐데, 두꺼운 방음문을 뚫고 함성 소리가 들려올 정도라니.

광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환생>은 저의 첫 시작이자, 피아노를 시작한 저를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하여 만든 곡입니다.”

나는 방금 연주한 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다.

다시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과정을 겪었다고.

그 상황에서 느꼈던 절망과 고뇌, 그리고 그것을 환희로 바꿨던 과정.

몇몇 사람들이 내 말에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나와 비슷한 처지를 겪었던 사람들이겠지.

자신들 또한 그랬노라고.

대단하다, 부럽다, 신기하다,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한 눈빛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쏘아졌다.

“두 번째로 들려드릴 곡은 지금 저를 많이 도와주고 계신 전 대한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셨던 박현철 선생님의 인생이 담긴 <염라>입니다.”

내가 구석에 대기 중이던 큰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자, 이번에는 큰아버지를 향해 함성과 박수 소리가 옮겨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울 법도 하건만.

큰아버지는 곧바로 허리를 숙이며 여유로운 기색을 선보였다.

큰아버지 또한 그때의 기억이 살짝 떠오른다는 듯, 손가락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은퇴식 무대에서 나와 큰아버지의 무대로 펼쳤던 곡.

이번에는 나 혼자만의 연주로 사람들 앞에 선다.

“다시 한번 더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며, 앞으로 이어지는 곡도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멀끔한 인사를 건넨 후.

응원하는 박수 세례를 받으며 피아노 앞에 자리를 옮겼다.

건반에 손을 올리기 무섭게 시끌벅적하던 극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2천여명이 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고요함.

사람들의 숨소리만 간간이 퍼지고 있었다.

카메라를 든 채 내 연주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에게 해줄 것은 하나.

머릿속에 가득 펼쳐지는 <염라>의 악보를 재현하고, 그 감성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겠지.

***

<염라>.

대한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의 인생이 담긴 곡.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단둘이서 펼치는 연주는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그 탓에 지금도 음악계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며 여러 사람들에게 감명을 선사하고 있었다.

레오 또한 감명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현철의 은퇴 연주회와, 새로운 대한의 마에스트로, 다니엘의 지휘를 모두 봐왔던 레오였기에.

그는 이안의 <염라>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두 알고 있는 존재였다.

‘이루 말할 수 없었지.’

박현철 마에스트로의 <세월> 중 3악장.

처음 레오가 맞이했던 <염라>는 벅참 그 자체였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가 단둘이서 눈을 맞춘 채 소통하며 연주를 이어나갔던 그때.

연주를 보던 레오조차 전율이 일렁일 정도였다.

‘한 사람을 위한 지휘는 처음 봤었지.’

마치 거울을 보고 지휘를 펼치는 것처럼.

맹렬하게 전개되는 선율은 박현철이란 존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지휘봉을 흔드는 현철의 모습이 더해지자 <염라>는 마치 무곡(舞曲)처럼 보였다.

박현철 마에스트로의 삶을 보여주는 춤.

레오 또한 지휘자로서 살아가고 있기에.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듯 옅은 미소를 띤 현철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장차 자신이 은퇴를 했을 때 저런 무대를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안과 현철이 펼치는 <염라>는 그야말로 성난 야생마 같았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이번 <염라>는 무척 고독한 느낌이 드는군.’

백스테이지 너머로 들리는 이안의 연주.

음색을 비교하라면 그때와 차이는 거의 없었다.

기존의 음계를 따라 펼쳐지는 선율은 여전히 성난 야생마를 연상케 했으니까.

하지만, 미묘한 빠르기와 셈여림의 차이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게다가 중후한 음색을 내뿜는 거장의 피아노 덕에 선율의 풍미가 더욱 강해졌다.

‘이안씨가 왜 미완성이란 타이틀을 제시했는지 알겠군.’

레오는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안의 의중을 알아챘다.

비엔나 하르모니아에서 출간한 이안의 앨범.

타이틀을 ‘미완성’에서 봤던 코멘트가 고스란히 떠올랐다.

직접 듣는 것이 제대로 된 음악의 완성이다.

이안의 연주를 그대로 펼쳐내고 있었다.

‘새로운 해석이 가미된 선율.’

<염라>는 빠른 선율에서 느린 선율로 바뀌는 것이 큰 특징인 곡.

매끄러운 전환은 베토벤의 변주곡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숱한 고난과 역경을 빠르게 헤쳐온 현철이 숨 고르기를 하듯 천천히 내딛는 선율.

하지만, 이안의 독주회에서 펼쳐지는 <염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쉬어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지침이 가득 묻어나는 음색.

터덜터덜 걸어가는 소리를 피아노로 나타낸 것 같았다.

‘혼자 듣고 있는 것이 그저 아쉽군.’

레오가 남몰래 혀를 찼다.

서버 폭주라는 초유의 사태에 선착순 티켓 배부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았던가.

레오도 독주회의 무대 총괄 디렉팅을 맡지 않았다면 들어오지 못했으리라.

클래식 독주회나 연주회의 관례를 잘 알던 레오에게는 무척 파격적인 행보였다.

보통 이러한 연주회에서는 관객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 유명 음악가를 초청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게다가 독주회에 초청된 손님은 독주회 주최자의 인맥을 증명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초청 손님만으로 ‘~가 주목하는 연주가’라는 타이틀로 인기몰이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전속 악단인 우리에게도 일절 특혜가 없었으니.”

모든 이에게 음악은 공평해야 한다.

이안의 강력한 주장 탓에 요한나를 포함한 모든 빈 필 단원이 얼마나 표를 구하기 위해 힘을 썼던가.

인맥을 위한 특혜도 마다해버리고 자신만의 독주회를 펼치는 이안의 모습은 레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제안을 거절했을 땐 그저 고고한 예술가인 줄 알았거늘…’

레오는 지난날을 잠깐 회상했다.

이안에게 수습 피아니스트를 권했던 때와 자신과 같은 마에스트로 클래스를 수학하자고 했던 때.

하지만 두 제안 모두 이안이 거절하지 않았던가.

빈으로 돌아가기 전날 방문했던 이안의 말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는 피아노를 하고 싶거든요.”

숱한 천재들은 자신의 악기에 대한 자존심이 무척 강하곤 했다.

다른 악기를 제안하거나, 다른 사조를 권했을 때 거부감을 일으키곤 했으니까.

레오는 이안이 그런 부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강력한 재능에 힘입어 자존심을 세우는 예술가.

거들먹거리며 고개를 빳빳이 드는 사람들을 숱하게 봐온 레오였다.

하지만, 지금 바라보는 이안은 단순한 자존심을 넘어 레오조차 평가하기에 아득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자존심만 세웠던 것은 우리였을지도.’

그동안 정통을 고집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다른 오케스트라들이 뉴에이지 음악가와 협업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때도 빈 필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클래식의 정수라며.

빈 필은 무너지지 않는 댐을 자처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안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묘한 기색이 떠올랐다.

형식적인 클래식의 형식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색을 가득 입히는 이안의 음악들.

그동안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고민을 하던 레오에게도 큰 충격을 주는 음악이었다.

‘그의 곡이 어쩌면 뉴(New) 클래식 아닐까.’

클래식은 고지식하고 어렵다.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형식미를 깨우쳐야 하고, 형식에 맞춘 선율을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교양 지식이 없다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클래식.

그러나 이안이 펼치는 클래식은 그러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눈을 감으면 형상이 떠오르고, 그 형상을 움직이듯 선율을 펼쳐낸다.

이안의 연주는 클래식은 이렇게 변화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동안 펼쳤던 클래식은 정통성에 치우친 과거의 잔재라고.

그러한 생각이 들자 레오의 머릿속에 새로운 발상이 떠올랐다.

‘앞으로의 클래식을 펼치려면 이안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빈 필하모닉은 정통성을 중시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고전의 거장들을 답습하는 무대들을 펼쳤다.

하지만 더 많은 대중들에게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선 그러한 고정된 관습에서 탈피해야만 한다.

이안처럼 클래식을 연주하다가도, 뉴에이지 선율을 연주하기도, 대중음악을 연주하기도 해야 한다고.

앞으로 더욱 다변화되는 세상이기에.

더 이상 ‘클래식’이란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이라는 커다란 테두리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감돌았다.

‘물론 당장 쉽지는 않겠지.’

정통을 고수했던 것은 레오뿐만이 아니었으니까.

200년 가까이 클래식을 고수했던 빈 필하모닉이 아니던가.

단원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게끔 설득해야겠지.

그 시작을 이안의 곡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어렸다.

이미 요한나를 비롯해 견습 단원들마저 매료시킨 이안의 연주였으니까.

클래식과 뉴에이지, 대중음악을 넘나들며 다양한 선율을 표출하던 이안의 곡이라면 단원들을 넘어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

레오는 이안이 시작했던 것처럼, 자신도 똑같이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빈 필도 이안처럼 유튜브를 소통 창구로 삼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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