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87화 (87/250)

87화

“팀장님, 미팅 가실 시간입니다.”

통일부 대북협력팀 팀장, 박성환.

그는 계속해서 주어진 업무에 미팅 시간도 잊고 있었다.

10년 만에 이뤄지는 남북 정상회담이기에 통일부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게다가 특설 무대는 평화라는 슬로건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자, 북한에 민간인을 데리고 가는 중대 사안이기에.

성환 입장에서는 온갖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미팅룸으로 향하자 안에는 남성이 먼저 와서 성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환은 남자를 보자마자 곧장 허리를 숙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아휴, 아닙니다. 팀장님. 무대 관련해서 고생이 많으시죠?”

그는 자신의 앞에서 노고를 알아주는 남성에게 빙긋 미소를 지었다.

뿔테 안경에 푸근한 미소가 특징인 남성.

오현춘.

대중음악 작곡계의 거장.

8~90년대를 종횡무진하면서 숱한 명곡들을 남기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피스보다 이전 세대에 히트곡 제조기로 활동했던 사람.

그리고 이번 남북 정상회담 무대에 대한 총괄팀장을 맡은 사람이었다.

“이번 무대에 박이안 피아니스트를 초청한 것은 굉장히 좋은 생각 같아요.”

현춘은 이안의 합류를 무척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한국 음악계에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던 이안 아니던가.

1년만에 클래식의 본고장인 비엔나에서 독주회를 펼칠 정도로 세계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박이안 피아니스트.

그가 함께해준다는 것만으로도 현춘의 손이 묘하게 떨렸다.

최근 현춘은 이안에게 무척 꽂혀있었기에.

이번 미팅에서 이안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에 어렸다.

“안녕하십니까. 피아니스트 박이안이라고 합니다.”

이윽고 이안과 현철이 도착하자 무대 참여에 대한 미팅이 진행됐다.

정갈하게 인사를 건넨 이안을 향해 현춘도 악수로 화답하며 칭찬을 이었다.

“꼭 보고 싶었습니다. 박이안 피아니스트님. 덕분에 집에서 편히 이안씨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죠.”

현춘은 자신도 모르게 이안의 정보를 나열했다.

어쩜 그리 화려한 연주를 선보일 수 있냐고.

마치 거장의 환생을 바라보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안이 만든 자작곡의 특징을 모두 꿰고 있을 만큼 이안에 대한 현춘의 열정이 고스란히 미팅룸에 퍼졌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안의 태도는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하는 것과 동시에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이런 상황에 칭찬 일색이면 보통 또래라면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듬직한 모습은 강단 있어 보일 정도.

현춘은 단단한 이안의 모습이 묘한 미소를 피웠다.

“이안씨의 참여 의사에 북측도 매우 반기는 편이었습니다. 북측 담당자가 이안씨에 대한 최고급 대우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성환은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성과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북측 담당자가 이런 온건한 자세로 소식을 전한 것은 처음이라고.

회신이 오기까지 몇 주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했건만, 이안의 참여 소식을 전하자 단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특설 무대의 북측 담당자, 현향란을 잘 아는 성환에게는 더욱 뜻밖의 소식이었다.

‘그 얼음 마녀가…’

현향란.

모란봉악단의 단장이자, 이번 특설 무대의 북측 책임자.

매번 생글한 미소로 무대에 오르는 북한 가수이지만, 실상은 정치인에 가까웠다.

작은 사안에도 민감하게 받아들여 통일부에서는 ‘마녀’라고 통할 정도.

그런 그녀가 반가운 기색을 보인 것은 무척 이례적인 행보였다.

게다가 김정일 평양 호텔이라는 최고급 호텔에 스위트룸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으니.

통일부 입장에서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모든 공을 통일부에 돌렸다.

“제가 아닌 정부의 대처가 유려해서 그럴 겁니다.”

성훈이 발 빠르게 요청을 보내고, 회신에 대한 답을 보낸 덕이라고.

매번 남북 정상회담 축하 공연을 준비했던 현춘의 지혜가 돋보인 결과라고.

이안은 국무총리의 좋은 아이디어를 통해 이 자리에 서게 되어 기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겸손함을 내비치는 이안의 언행에 현춘은 빙긋 웃었다.

“그럼 혹시 어떤 곡을 연주하실 생각입니까?”

어떤 곡이어도 좋을 것 같지만.

현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곡들이 떠올랐다.

<아리랑>을 시작으로 <손에 손잡고>, 등 여러 평화를 상징하는 곡들.

과연 어떤 곡이 이안의 손에서 어떻게 피어날지 기대가 되었다.

한창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때.

이안이 내놓은 말에 현춘은 입을 떡 벌렸다.

“평화를 바탕으로 한 자작곡을 연주해볼까 합니다.”

또 다른 자작곡.

그동안 신묘한 창작곡들로 세계인을 움직였던 이안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곡에 대한 내용을 묻는 현춘의 질문에 이안은 거침이 없었다.

판문점 선언 7주년이라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평화와 번영, 통일’이라는 판문점 선언의 슬로건까지 읊는 모습에서 현춘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거장의 계획을 목도한 사람처럼.

이안의 입에서 나오는 계획들은 현춘의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거기에 이안은 한술 더 떴다.

“무대에서 연주할 곡을 국가에 헌정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곡을 시작으로 한국의 평화를 바란다며.

축하 무대에 오르는 만큼, 모두가 감상하고 연주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안의 선언에 성환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갔다.

자타공인 현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그런 피아니스트의 곡을 국가에 헌정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정부에 대한 큰 화제를 모으리라.

성환이 흥분하여 여러 말을 꺼내는 동안, 현춘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무척 똑똑한 친구구먼.’

현춘은 이안의 눈빛에서 묘한 기색을 알아챌 수 있었다.

국내는 물론, 대외적으로 소식이 전해질 것을 아는 듯한 눈빛.

그 눈빛에서 이안이 어떠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유명해도 함부로 오를 수 없는 남북 정상회담 특설 무대.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름이 알려질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 아니던가.

거기에서 자작곡을 연주한다면 더욱 큰 흥행을 거머쥘 수 있으리라.

게다가 자작곡을 국가에 헌정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 이안에 대한 칭송을 더 높아질 것이다.

현춘은 이안이 부드러운 표정 아래에서 여러 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에 남몰래 감탄했다.

이런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청년이 어떤 곡을 펼쳐낼지.

벌써부터 악보를 받아볼 생각에 현춘의 가슴이 쉴 새 없이 뛰고 있었다.

***

‘이런 무대에 언제 설 수 있겠어.’

무대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떠올린 생각이었다.

바로 무대의 희귀성.

독주회나 일반적인 연주회는 제안만 들어온다면, 곡만 준비된다면 진행할 수 있었다.

연주회를 주관하고 싶다는 기업들의 제안만 해도 수십 개였으니까.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 특설 무대는 정상회담이 진행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연례 행사처럼 매번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살아가면서 한 번 받아볼까 말까 하는 제안이겠지.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으리라.

‘거기다 자작곡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

남북 관계는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르모니아 음반사에서도 소식을 접하고 축하 인사를 보낼 정도였으니까.

그곳에서 자작곡을 펼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

게다가 남북 평화라는 미명 아래에 곡을 만든다면 더욱 뜻깊은 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평화’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곡에 녹여낼 수 있을까.

나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전생이 살던 오스트리아는 전쟁의 연속이었지.’

화려한 귀족의 삶.

그 이면에는 한창 전쟁 상황이 오가는 현실적인 요소가 존재했다.

전생이 모시던 도련님, 로만은 예술 가문의 특성을 살려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일을 맡곤 했다.

그의 수발을 들던 전생, 이안 로크실트는 처참한 전쟁의 실상을 그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본 사람이었다.

‘전쟁이란 끔찍한 것이지.’

전쟁의 참혹함은 교과서에서나 보곤 했었는데.

전생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전쟁의 참상은 글로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포탄으로 인해 손이나 다리, 팔, 등 몸의 일부를 잃는 것은 기본.

그들 중 일부는 환상통을 겪으며 차라리 죽여 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사기를 고취시키는 연주회가 열릴 때면 천막 앞으로 아이들이 오곤 했다.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몰골에, 해진 천으로 몸만 겨우 가린 전쟁고아들.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주린 배를 끌어 잡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생의 기억이 흐름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악상이 떠오른다.

전쟁이란 폭풍이 지나가고 처참한 선율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졌을까.

몸이 절단된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갈 테고, 아이들은 동냥하러 나올 필요 없었겠지.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악상의 갈피가 점차 구체화 되고 있었다.

막 펜을 쥐려던 찰나.

똑똑.

“자작곡 준비 중이었어?”

큰아버지가 노크와 함께 들어왔다.

제안을 수락하자 국무총리가 추가 서한을 보내왔다고.

긍정적으로 검토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전했다.

서한을 내밂과 동시에 큰아버지는 그사이에 몇 가지 제안이 더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하르모니아 음반사와 협업한 이후, 음반사를 통해 해외 제안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유명 오케스트라의 합주 제의나, 음악 학교의 강의 제안 등.

그중 큰아버지는 국내에서 제시한 독특한 제안을 이야기해주었다.

“몇몇 콩쿨에서 심사위원으로 너를 위촉하고 싶다더라.”

내가 참가했던 청악 콩쿨을 비롯, 국내 유명 콩쿨 주최 측에서 나에게 심사위원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이미 연주회와 독주회로 검증된 실력을 보인 바.

독주회에서 펼친 자작곡은 독주회를 기점으로 수많은 클래식 팬들의 인기를 끌고 있고, 특별전에서 음악 대가, 베토벤의 곡도 완성시켰으니.

심사위원 자격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본래 너도 경쟁하기보단 듣기 위해 콩쿨에 참여했지 않냐.”

큰아버지도 심사위원 자리에 대해 긍정적인 표를 던졌다.

일전에도 유수 실력자들의 연주를 듣고 싶어서 콩쿨에 참여하지 않았냐며.

내가 원하던 대로 가장 근거리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음악을 단순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보고, 느끼고 싶어 하는 내게 무척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큰아버지의 말에 나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실력자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일본에서 열렸던 월드 피아노 콩쿨.

쇼팽 콩쿨 참가 자격도 있었지만, 실력자들의 현대 사조를 직접 목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천재 피아니스트, 히마리도 만나지 않았던가.

큰아버지가 건넨 서류에 적힌 콩쿨들은 제법 명망이 높은 콩쿨이었다.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콩쿨도 있을 정도.

이미 현역으로 움직이고 있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듣는다면 내 음악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생각이네요. 공연이 끝나면 자세히 고려해볼게요.”

앞으로 한 달 남짓.

지금은 남북 정상회담 축하 공연을 위한 곡 작업에 집중할 때였다.

큰아버지도 그 뜻을 알겠다는 듯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음악실에 혼자 남자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전생의 기억에서 밀려오는 포탄 세례와 고통 어린 고함들.

그러한 이야기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듯, 가상의 오선지에 붉은 음표들이 맺힌다.

평화와는 거리가 먼 잔혹한 선율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원하는 연주의 시작이었다.

그 시작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손가락이 핏기 어린 음표들을 재현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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