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일주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어느덧 시간은 축하 공연 당일이 되어있었다.
나는 나비넥타이를 매만지며 거울을 살폈다.
똑똑.
“박이안 선생님. 나가실 시간입니다.”
리금철.
소위 계급을 단 군인이자, 모란봉악단의 부단장인 그가 내가 등장할 시간이라고 일러주었다.
경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금철의 어투에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렇겠지.
내게 신경전을 걸었다가 향란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을 테니까.
마녀의 본모습을 본 그날.
향란이 나에게 양해를 구했던 것이 선명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부단장의 행실이 평소에도 조금 가벼운 편이었는데, 미리 제지하지 않은 제 탓입니다.”
흔히 다른 예술단을 만나면 신경전을 펼치는 것이라고.
우리 악단이 더욱 뛰어나고, 좋은 소리를 낼 줄 안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행위라고 했다.
특히 금철은 성격적으로 자존심이 몹시 센 사람이라 더욱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남북 관계라는 민감한 사안에 더욱 강하게 견제한 것이라고.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일러두겠다 했었지.
“앞으로 선생님의 일정은 리금철 동무가 책임지고 보좌할 것입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시고 꾸짖을 게 있다면 언제든지 꾸짖으십시오.”
처음엔 과한 호의를 받는 것 같아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향란은 이것이 그에 대한 처분이라고 설명했다.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보좌관을 붙여준다는 말에 도리어 금철이 매달렸다.
이 처분이 아니면 어떤 처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안다는 듯.
향란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대로 혼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묘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꼬리 내린 개처럼 시무룩한 얼굴이었으니까.
금철을 따라 무대 백스테이지로 이동하자 앞선 차례인 마술사가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빈손에서 카드가 튀어나오고, 납작하던 주머니에서 비둘기가 날갯짓을 하며 등장한다.
상자에 들어갔던 마술사가 순식간에 탈출하는 마술은 마법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연속적인 놀라운 마술에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박수 소리에서 미묘한 어색함이 느껴졌다.
‘기계적으로 박수 치는 것 같네.’
2천에 달하는 관객이 치는 박수는 말 그대로 우레와 같았다.
게다가 소리가 잘 울리는 극장의 특성 때문에 그 소리가 더욱 울릴 정도.
하지만, 무언가에 감탄하여 나오는 느낌보단 철저하게 계산된 박수 같았다.
마술에 대해 신기하여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 신기한 장면이 나와서 박수를 치는 것처럼.
앞 좌석에 앉은 몇몇 사람들은 입꼬리만 올려 웃는 체하는 것 같았다.
마술사가 마술을 모두 펼치고 인사를 건네자 아까와 같은 기계적인 박수 소리가 극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제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내 차례만 남아있었다.
“오늘 같은 기쁜 날도 벌써 마지막이라는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길 바라야겠죠?”
향란과 현춘은 대표로 나와 사회를 보고 있었다.
오늘처럼 뜻깊은 날이 또 언제 오겠냐고.
함께 예술을 나누는 활동이 무척 아름답다는 말을 덧붙였다.
현춘은 다음에도 또 불러달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향란도 이에 맞춰 웃으며 다음에는 자신들이 가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조선에서 제일가는 피아니스트, 박이안 선생님의 연주를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향란의 소개와 함께 스포트라이트가 내가 서 있던 입구에 뿌려졌다.
조명이 켜지기 무섭게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장내를 가득 뒤덮었다.
내가 무대의 중심에 서서 인사를 건네자 중간 앞 열에 앉아있던 두 지도자가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둘을 중심으로 가득 펼쳐진 북한 관객들.
검은 정장 차림인 사람도 있었고, 한복은 입은 여인들도 꽤 있었다.
한쪽에는 근엄한 표정을 지은 군인들도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이번에 내가 연주를 들려줄 사람들.’
북한이라는 특이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나와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사람들에게 내 연주를 들려주고, 내가 피아니스트 박이안이라는 것을 알릴 뿐.
피아노 앞에 앉자 스위치를 끈 듯 박수 소리가 순식간에 멎었다.
고요한 가운데.
아홉 번째 자작곡, <평안>이 장내에 흐르기 시작한다.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평안>의 악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가상의 오선지에서부터 참혹함이 느껴지는 <평안>.
거기에 추가로 묘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죽음>과 <조우>를 작곡했을 때는 전생의 기억이 강하게 작용했다.
곡을 만든 장본인이 전생이었으니까.
그 이미지를 고스란히 녹여낸 곡이 바로 <죽음>과 <조우>.
하지만, <평안>은 전생의 기억에 더불어 나의 개인적 생각이 더해진 곡이다.
그래서일까.
작곡할 때 떠올렸던 이미지들이 연주와 동시에 다시금 떠오른다.
‘당시의 참상을 그리고, 표현하는 것처럼.’
음표의 머리를 붓 삼아 그림을 그리듯.
뇌리에 각인된 악보를 고스란히 펼치는 것만으로도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작은 오선지와 음표들의 향연으로 표현한 참상.
포탄에 맞아 팔뚝 아래가 사라진 군인과, 엄마를 찾아 우는 아이가 등장한다.
거기에 <영감>을 떠올렸을 때처럼 감정이 더해지자 스케치 된 그림에 색이 더해진다.
디테일을 살릴수록 그림처럼 그려지는 선율에 끔찍함은 배가 된다.
핏자국과 서글픔을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하려는 듯, 내 연주는 더욱 강렬해진다.
Largo.
아주 느리게, 폭넓고 풍부한 표정으로.
슬프다 못해 비참함마저 느껴지는 선율들이 물감처럼 스며든다.
나또한 <평안>을 연주하며 그 감각에 점차 스며들며 더욱 곡에 감정을 실어 표현한다.
전쟁의 기억은 나에게도, 우리나라에게도 멀지 않은 기억이니까.
‘우리나라도 겪었던 이야기들.’
한국 전쟁.
한민족이 서로 등을 돌린 채 총칼을 휘둘렀던 안타까운 전쟁.
전생의 기억과 더불어 <평안>을 쓸 때 가장 많이 참고했던 이야기였다.
교과서나 참고 서적 속 얼굴들은 모두 나와 비슷했다.
다르다면, 나와 달리 그들은 비탄, 슬픔, 탄식, 통탄과 같은 아픔 가득한 감정이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
슬픔 이상의 감정들이 머릿속에 일렁이자, 이미지에 맞춰 곡조는 더욱 험악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느리고 침울했던 선율이 조금씩 빨라지며 점차 밝은 음색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같은 화음이지만, 전혀 다르게.’
가상의 오선지에는 이제 밝은 음표만 남아있다.
전생의 기억이 아닌, 온전히 나의 기억과 생각으로 채운 부분.
이제 새로운 선율을 그릴 차례였다.
앞서 느릿하게 펼쳤던 화음이 이제는 한 옥타브 높게, 보다 경쾌하게 나아간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익숙하다고 느낄 정도로 간결한 화음.
그에 맞춰 선율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진정 평화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앞선 선율보다 비교하면 무척이나 부드럽고 밝은 선율.
이제 머릿속의 그림은 이전과 달리 평화로운 분위기로 뒤바뀐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펼쳐졌을 풍경을 떠올리듯.’
단순히 옥타브만 올리고 속도를 달리했을 뿐인데 곡의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된다.
포탄 소리를 형상화했던 무겁고 울리는 소리는 밝음이 더해져 새해를 맞이하는 타종 소리처럼 울리고.
고아들의 비명을 형상화했던 날카롭고 높은 소리에 활기가 더해지자 즐거움에 깔깔대는 아이들의 목소리처럼 맑아진다.
악상을 떠올리면서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잔잔한 선율이 왜 평화를 상징하는지 알게끔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잔잔하다는 것으로는 평화를 표현할 수 없다.
반전을 활용하여 평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같은 화음을 다른 형식으로 펼치며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지 표현한다.
마치 커다란 종이의 반을 나눠 한쪽에는 전생의 경험을 토대로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고, 다른 한쪽에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담는다.
두 장면을 한데 모아놓은 선율이 극장을 가득 메웠다.
1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주를 끝내자 이마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손가락을 건드린다.
피부에 땀이 닿는 순간, 박수 소리가 극장을 가득 메운다.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재차 인사를 건네자 박수 소리가 미묘하게 더 커진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입꼬리만 움직이고 눈은 웃지 않던 사람들의 눈망울이 촉촉해져 있었다.
게다가 기계적이었던 박수 소리는 무언가 벅참이 느껴졌다.
감정이 들어간 덕에 부드러워진 박수 세례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
축하 공연은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채 막을 내렸다.
대기실로 돌아온 나는 연미복을 벗어던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옷들과 몇 가지 물건을 정리하던 찰나.
똑똑.
“박이안 선생님. 일정 설명 드리러 왔습니다.”
금철이 재차 나를 찾아왔다.
앞으로의 일정을 몇 가지 일러줄 것이 있다고.
그는 수첩을 꺼내어 향후 일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성공리에 공연을 끝낸 것을 기념하는 만찬이 있을 예정입니다. 북한 최고의 명물, 평양랭면을 드시러 옥류관으로 가실 겁니다.”
최종 리허설을 시작으로 극장에 온 것이 오전이었는데.
어느덧 시간은 지나 저녁을 향해 있었다.
창문 너머로 노을빛 하늘이 보였다.
금철은 만찬 이후 호텔로 돌아갈 것이며 그 이후에는 자유롭게 보내면 된다고 덧붙였다.
내가 알겠다고 응수하고 짐을 챙기는데, 그는 뭔가 할 말이 남았다는 듯 나가지 않고 있었다.
“강연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금철의 목소리에서는 정중함이 묻어났지만, 얼굴에는 묘한 적개심이 드러났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듯.
안 그래도 강연에 대한 자세한 조율을 해보려고 했는데.
누구와 이야기하면 되겠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여기 있으셨군요. 박이안 선생님.”
금철과 같은 군복 차림의 남성.
남성은 60대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군복 가슴팍 반절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훈장들이 남성의 관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남성이 등장하자마자 금철이 군기 잡힌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봐선 꽤나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황룡재라고 합니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내밀었다.
연주가 아주 감미로웠다고.
반전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연주에 대한 강평의 수준을 보아하니 음악에 대한 그의 지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대기실을 바라보던 룡재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런데 대기실이 이게 뭔가? 너무 허름하지 않은가.”
그는 혀를 차며 대기실을 바라보았다.
허름하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이 정도도 충분한 환대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연주를 준비하면서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기 마련이었는데.
별도의 대기실을 마련해준 것만으로도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룡재는 딱딱한 의자에, 소파도 제대로 두지 않았다며 금철을 나무랐다.
“부단장 동무.”
“예!”
“자네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을 알고 있나?”
푸근한 인상을 가진 룡재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잔혹함이 묻어나왔다.
속담을 인용한 말에 금철은 곧장 뜻을 이해한 듯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아마 향란의 입이 아닌 다른 이를 통해 보고를 받았다는 뜻이겠지.
각 잡힌 자세에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하는 금철이었지만, 그의 손과 다리가 묘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흔들리는 금철의 동공에서 공포감이 느껴졌다.
룡재는 나를 슬쩍 보곤 조금 누그러진 눈빛을 보냈다.
“단장 동지가 잘 처분했다고 들었으니 긴말하진 않갔어.”
“예! 명심하겠습니다!”
크게 소리치는 금철의 목소리에서 다행이라는 듯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룡재는 짤막하게 금철을 꾸짖곤 이내 표정을 풀었다.
금세 인자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향해 본론을 꺼내 들었다.
“박이안 선생님이 강연을 매우 기대하고 있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 찾아왔습니다.”
유려한 말솜씨로 말하는 룡재.
그는 당의 지도층이자, 향란이 강연을 제안했던 음악종합대학의 총장이라도 덧붙였다.
일전에 강연 제안을 보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온 모양.
룡재는 나의 이야기를 대부분 꿰고 있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에서 독주회를 펼친 것과 베토벤 특별전에서 미완성곡을 완성했다는 사실까지.
모두 엄청난 노하우와 관록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인데, 그것을 해낸 내가 대단하다며 칭찬을 덧붙였다.
거기에 오늘 연주를 들으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고.
직접 찾아와서 제안을 하고 싶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남조선은 물론, 세계를 아우르는 박이안 선생님 아닙니까. 선생님의 명성으로 저희 한 번 도와주시죠.”
명성에 힘입어 전할 말이 있다고.
거장의 곡을 덧입힌 나의 입을 통해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 더욱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면 큰 답례를 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나 또한 이러한 자리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다면 좋겠지.
북한이라는 국가의 최고 음대에서 강연을 하는 것은 물론, 한 번 더 연주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둘도 없는 기회리라.
하지만, 강연에서 무척 중요한 것이 있기에.
나는 허심탄회하게 룡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강연을 하는 데 있어서 제한이 있다면 강의가 어려울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다소 직설적으로 나아간 질문.
폐쇄국가에서 강의란 그럴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온갖 것을 선전에 활용한다는 사실은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대한민국 국민인 내가 강연을 하는 데 제재가 없지는 않겠지.
이러한 상황은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 룡재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금철 또한 이러한 상황을 상상하지 못한 듯 나와 룡재를 번갈아 보며 사시나무처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