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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94화 (94/250)

94화

“그래서 거절하신 겁니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성환이 기염을 토했다.

모든 무대를 끝마치고 만찬 일정에 참여하는 길.

나는 동승한 큰아버지와 성환에게 고위 관계자가 왔던 것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네.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을 때.

두 북한 사람의 표정은 서로 달랐다.

부단장, 금철은 불안한 눈빛을 한 채 나와 룡재를 번갈아 보았고.

당 지도부, 룡재는 오묘한 감정을 내비쳤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짜증 난다는 듯, 하지만 룡재는 애써 감정을 죽인 채 말을 이었다.

“강연을 앞두고 전문 인력이 원고를 검수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박이안 선생님도 편하실 겁니다.”

내 컨디션을 걱정하는 말처럼 포장했지만,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되도록 자신의 말에 따르라는 듯 압박감을 내비치는 모습.

에둘러 표현했을 뿐, 자신들의 입맛대로 읽고 내려오라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게다가.

“선보인 음악이 너무 좋던데. 우리 북조선을 위해 헌정해줄 수는 없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무척 좋을 것 같다고.

워낙 완성도 높은 곡이라 자신들이 발전시켜보고 싶다고 덧붙였지.

하지만, 말로는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하나, 북한에 곡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논란의 여지가 있을 터.

혹자가 북한을 찬양했다고 누명을 씌우기 좋은 상태이지 않은가.

오해를 받을 경험은 남기기 싫었다.

게다가 이미 <평안>은 우리나라에 헌정하고 싶다고 얘기해뒀으니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 자리에서 내가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말로 잘해야겠지.’

상대는 북한군 고위 간부다.

내 말로 인한 결과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

성환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제 태도가 돌변할지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의도는 숨기되, 말은 곧게 해야 한다.

“저는 아직 피아노를 배운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보다는 총장님께서 만드는 곡이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상대는 치켜세우되, 나는 부족하다는 뜻을 내비치며 거절한다.

전생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귀족들의 흔한 화법.

계급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거절을 할 수도, 그렇다고 긍정할 수도 없는 사안에서 뛰어난 효과를 자랑하는 말솜씨였다.

게다가 음악은 평등하니 원한다면 교재를 지원할 수 있다는 물질적인 지원을 약속하니…

“하하! 선생님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룡재는 내 말에 묘한 웃음을 짓다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또한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을 보내서 송구스러웠다고.

무척 뛰어난 언변을 가지고 있다며 칭찬을 덧붙였다.

게다가 지원을 약속한다는 말에는 도리어 감사하다는 뜻을 내비쳤지.

감사의 의미로 북한에 있는 동안 어떤 부탁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지 않았던가.

이야기를 듣던 성환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사람이 웃을 정도였다니. 이안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자신이 그 상황이었으면 어찌할 줄 몰랐을 것이라고.

그만큼 룡재라는 사람이 무시무시한 작자라고 덧붙였다.

황룡재.

그는 북한 내 서열 7위 정도 되는 거물이었다.

음악 대학 총장임과 동시에 대장급의 직위를 가진 존재.

우리나라로 치면 장관급 인사라고 표현했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형제들도 숙청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잔혹한 존재.

그런 사람의 웃음을 터뜨렸다는 것이 놀랍다고 전했다.

“그보다 더 좋은 대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안씨 덕분에 한숨 놨군요.”

한국으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털어낼 이야기가 생겼다며.

아마 통일부 직원들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놀랄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던 찰나.

어느덧 차량은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넓은 대동강을 낀 채 에메랄드빛 기와가 돋보이는 건물.

향란이 안내원을 자처하며 소개를 덧붙였다.

“여기가 평양 최고의 음식점, 옥류관입니다.”

북한의 명물인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곳.

이전 남북 정상회담이나 국가적 행사에서 자주 등장하던 탓에 뉴스에서도 몇 번 본 풍경이었다.

그곳을 직접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냉면이 차례로 나오자 옆자리에 있던 향란은 냉면 먹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음식은 입에 잘 맞습니까?”

옆자리에 앉아있던 향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답변에 그녀는 다행이라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남북 예술단이 한데 섞여 가지는 식사 자리.

이야기는 자연스레 무대 때를 떠올리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특히 향란은 모두에게 한 번씩 칭찬을 덧붙였다.

찬희에게는 높은 고음을 어찌 그리 잘 내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마술사에게는 신기한 마술에 넘어갈 뻔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박이안 선생님의 연주는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향란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백스테이지에서 내 연주를 듣던 단원들이 감탄을 참느라 애썼다고.

단원들의 감탄을 나열하려면 하루 이틀 가지고는 부족할 것이라며 칭찬을 건넸다.

“저도 비엔나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답니다.”

향란은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고위 간부의 자제로 태어나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여인.

덕분에 오스트리아 유학이라는 기회를 얻어 북한 최고의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비엔나가 클래식 성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곳에서 독주회를 펼친 것이 부러웠다며 묘한 표정을 품었다.

“혹시 박이안 선생님, 저녁에 바쁘십니까?”

그녀는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여섯살 배기 어린 제자가 하나 있는데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다고.

문득 나는 향란의 설명에 뉴스에서 본 한 아이를 떠올렸다.

“혹시 그 제자가 북한 피아노 영재로 알려진 장만복이라는 남자아이인가요?”

향란은 내 입에서 아이의 이름이 나오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내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

한창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클래식 열풍을 조명할 때, 뉴스에서 아이를 본 기억이 있었다.

뉴스에 나온 영상으로 연주를 잠깐 들었던 터.

향란이 천재라고 평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북조선에는 선생님만큼의 기량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향란은 아주 조심스레 나에게 뜻을 전했다.

그녀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룡재와 달리 그녀의 눈망울에는 강압적인 것도, 강한 의지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오직 순수한 부탁과 가능성을 떠올리는 눈빛.

그녀의 절실함을 무척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 또한 소년의 유려한 선율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럼 호텔에서 뵙죠.”

***

현향란 단장의 진심은 호텔 강당을 대관하는 것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여기밖에 없다며.

향란과 함께 온 아이는 아직은 조금 부끄러운 듯 향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안녕하세요. 장만복입니다!”

만복의 앳된 목소리가 강당에 옅게 퍼졌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까까머리를 한 사내아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피아노를 건드렸던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는 외모였다.

남한의 또래 아이보다 훨씬 작은 모습에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

하지만 그러한 생각들은 아이의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단숨에 사라졌다.

‘<환생>을 연주할 줄이야.’

내가 만든 첫 자작곡, <환생>.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한 전생의 회한과 다시 태어난 듯 활기차게 펼쳐지는 선율이 특징인 곡이었다.

침울과 활기, 두 분위기를 동시에 나타내야 하기에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곡을 6살짜리 아이가 유려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천재라고 평가할 만하네.’

아이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선율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의 소리였다.

힘이 들어갈 부분에서는 만복이 온몸의 힘을 손가락에 전달하는 듯 몸을 움직였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연주를 펼치려는 것처럼.

그 힘에 따라 침울한 부분의 낮은 음색이 더욱 힘있게 들어갔고, 밝은 선율에서는 강하면서도 짧게 음을 펼쳐 활기를 내세웠다.

‘선율을 활용하는 방법도 잘 아는 눈치인데.’

보통 피아노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기계적으로 소리를 따라 하기 마련이다.

악보를 그대로 따라 하려다가 만들어지는 상황.

일전에 콩쿨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흔히 발생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만복은 10살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그 흐름을 모두 체감한 듯, 연주에 감정을 덧입히고 있었다.

게다가.

‘이 부분은 내가 한 것과 다른데?’

만복의 연주가 고스란히 가상의 오선지에 펼쳐지자, 나는 금세 내가 만든 <환생>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복의 손은 고급 난이도의 <환생>을 완성하기엔 작았다.

그럼에도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선율은 고급 난이도와 같은 급.

묘하게 변형된 선율이 부드럽게 귀로 흘러들어온다.

달라진 음색과 손가락의 변화로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한계에 맞춰 변형시킨 건가?’

마치 내가 교재를 위해 난이도를 바꿨던 것처럼.

필요한 선율은 남기되, 변형시킬 수 있는 소리는 다른 음으로 대체하여 소리를 만든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남들보다 많은 음악적 지식을 가진 것은 물론.

들은 것과 생각한 것을 가상의 오선지로 녹여내는 능력으로 숱한 자작곡을 만들고, 즉흥곡을 펼칠 수 있었다.

단순히 상상에 불과했던 악상을 구체화시키고 표현하는 것.

그 고난이도 작업을 6살짜리 만복이 해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제 조언이 필요 없겠는데요?”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였기에.

앞으로 이 재능을 더욱 크게 꽃피우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를지 궁금할 정도였다.

지금 나이대를 고려한다면 연주의 완성도는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내 평을 듣던 향란은 당치 않다며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박이안 선생님만큼 큰 그릇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그릇은 선생님보다, 이 아이보다 작으니 아이의 조언을 선생님께 부탁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천재와 천재가 만나면 이뤄지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나와 만나는 것만으로도 만복에겐 좋은 귀감이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향란의 말에 나는 만복의 옆에 앉아 피아노 건반에 손가락을 얹었다.

만복이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

오선지의 시작은 천재를 마주한 놀라움이었다.

놀라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음표들이 빠르게 펼쳐진다.

단순한 화음이지만, 손가락을 자주 바꿔야 하는 기교를 활용한 탓에 난이도가 어려운 선율.

따라 해보라는 식으로 손바닥을 내밀자, 만복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가락을 건반에 올렸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어디에서 들을 수 없었을 즉흥곡이었음에도, 만복은 곧바로 연주를 따라 함과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화음을 추가하여 풍미를 더했다.

마치 머릿속에 떠올렸던 가상의 오선지를 훤히 들킨 느낌.

내가 만복을 보고 연주했다는 것을 안다는 듯, 만복 또한 나를 바라보면서 화음을 추가했다.

더 이상 피드백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유로운 연주를 펼칠 수 있도록 응원할 뿐.

국제무대가 더욱 기대되는 아이였다.

하지만…

“참으로 뛰어난 재능인데, 펼칠 수 없을까 걱정입니다.”

만복은 향란과 같은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없는 아이였다.

연고도 없고, 출신도 명확하지 않은 꽃제비 출신.

동생이 근무하는 고아원에 갔다가 연주하는 만복의 모습에 단번에 천재성을 눈치챘다고.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자로 데려와 키우고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여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아마 여러 문제가 있겠지.’

향란이 애써 표현하지 않았지만, 얼핏 사정은 알 것 같았다.

극도로 폐쇄적인 정책을 펼치는 북한이었으니까.

연고가 없는 만복은 해외 콩쿨 같은 유수의 기회를 얻지 못하겠지.

하지만, 나 또한 향란처럼 만복의 재능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분명 교육을 받으면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장성할 피아니스트가 될 아이인데.

방법을 떠올리던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북한 최고 음대의 총장이자,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

교재 지원 약속으로 원할 때 도움을 주겠다고 덧붙인 사람.

“혹시 황룡재 선생님의 도움이 있다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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