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95화 (95/250)

95화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날.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는 환송식에 참여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활주로에는 길을 만들 듯 북한 주민들이 도열한 채 서 있었다.

화려한 빛깔의 한복을 입은 주민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회가 되면 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향란이 군복차림을 한 채 악수를 건넸다.

그녀의 눈망울에는 열의와 함께 나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나왔다.

출국하기 전, 룡재와의 대화가 원활하게 흘러가서겠지.

“그리 뛰어난 동무가 있습니까?”

반문하는 룡재에게 나는 당당하게 생각을 늘어놓았다.

단순한 천재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고.

모란봉악단의 단장이 직접 찾아낸 인재인데,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뛰어난 연주 실력에 음악적 상상력까지 가지고 있어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라고 덧붙였다.

지원하면 국가적으로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말에 룡재가 고개를 끄덕였었지.

“박이안 선생님이 그리 얘기하실 정도로 천재라면… 알겠습니다. 한번 잘 키워보도록 하죠.”

흥미롭다는 듯 반짝이던 룡재의 눈이 머릿속에 선명했다.

직접 내 연주를 보고 대단하다며 칭찬을 늘어놨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룡재 또한 내 안목을 믿는다는 듯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무대에서 훌륭한 연주를 듣게 해준 것과 교재 지원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지.

“다음에 만날 땐 만복이와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내 말에 향란은 옅은 미소와 함께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표현했다.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며.

군인의 명예를 걸고 언젠가 꼭 이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제는 정말로 작별할 시간.

나를 포함한 남측 예술단이 차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아 짐들을 정리하던 찰나, 익숙한 풍채의 북한 군인 한 명이 들어왔다.

“아이고 선생님, 이걸 전달해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조금 늦어버렸습니다.”

가슴에 훈장을 가득 단 남자.

북한 최고 음대의 총장이자 대장급 고위 간부, 황룡재였다.

그는 환송식을 진행하느라 미처 다가오지 못했다고.

이제야 들어오게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룡재는 줄 것이 있다며 내게 중간 크기의 함을 건넸다.

내 손바닥 크기 정도 되는 파란 벨벳 상자.

안에는 은빛 시계가 하나 들어 있었다.

간결한 디자인은 여타 시계와 비슷했지만, 시계의 가운데 붉은 별이 돋보였다.

“친애하는 위원장 동지께서 하사하신 겁니다.”

룡재의 뜻을 이해한 몇몇 사람들이 옅은 경악성을 내뱉었다.

북측에서 ‘위원장’이라는 호칭을 단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무대에서 감명 깊은 연주를 펼쳐주어서 고맙다고.

거기다 선뜻 교재 지원을 약속한 것은 물론, 만복이라는 뛰어난 영재를 추천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사히 잘 쓰겠다고 전해달라는 말에 룡재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자리를 떠났다.

아직 몇몇 이들은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적을 깬 것은 조율사였다.

“그거면 북한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을 겁니다.”

일종의 훈장이자, 북한에서는 이름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존함시계’라고 부르는 물건이라고.

국내에도 대통령 시계라는 명예로운 물건이 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착용한 것만으로도 북한에서의 모든 예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며 농담을 내뱉었다.

“북한에 쭉 눌러앉아도 되겠네요.”

“안 돼. 바빠.”

큰아버지의 근엄한 말에 몇몇 사람들이 웃음을, 몇몇 사람은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호박 같은 큰아버지의 면모와 앞으로 나의 행보를 고려하면 북한행은 어림도 없다며.

사람들이 시계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던 사이.

비행기는 점차 북한 상공을 지나 한국으로 향했다.

***

북한으로 갔던 우리 예술단, 일주일간의 일정을 끝내고 귀국.

클래식 인사로 참여한 박이안 피아니스트, 위원장 시계까지 받으며 환대받아 화제.

北 측, ‘뜻깊은 시간 보낼 수 있어 기뻤다.’ 남북 관계 개선 물꼬 트여.

박이안 피아니스트, 北에서 새로운 자작곡 <평안>을 공개. 국내 공개는 언제쯤?

귀국한 지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예술단 축하 무대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보도가 나옴과 동시에 내 연주에 대한 화제도 덩달아 커졌다.

아홉 번째 자작곡을 공개했다는 소식에 하르모니아 측에서도 음반 제작 일정을 잡자는 연락이 오는가 하면, 레오와 사토라까지 생중계로 연주를 감상했다며 연락을 취해왔지.

주수석님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너스레를 떨었다.

-이안씨 성장세는 이제 못 따라 잡겠어~-

연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귀국 소식에 힘입어 수많은 방송가에서도 숱한 연락을 보내왔다.

뉴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자는 연락이 오는가 하면, 다큐 촬영을 해보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모든 형태의 TV 프로그램 섭외는 다 들어왔지.

그중 내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하나였다.

일명 ‘보라’.

고품격 음악 토크쇼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프로그램, ‘보이는 라디오’.

MC들의 거침없는 입담과 더불어 그에 대응하는 출연자들의 소탈한 말솜씨로 많은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이었다.

음악 토크쇼라는 독특한 컨셉에 출연자들이 직접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선보이는 무대도 있는 곳.

음악이 최우선인 내게 가장 걸맞은 곳이었다.

게다가 내가 보이는 라디오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언론이 너무 과열됐어.’

최근 들어 이뤄낸 것이 많아서 그럴까.

방송사에서는 연이어 나에 대한 보도를 꺼내놓았다.

하르모니아 음반사와의 계약부터 베토벤 특별전, 오스트리아 독주회, 이번 남북 예술단 공연까지.

한국에서 엄청난 피아니스트가 탄생했다며 연이어 대서특필했지.

이름과 음악이 알려지는 것은 좋다.

그 또한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방향이었으니까.

하지만, 뭐든 과하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

내 음악과 함께 클래식 평론가들의 이야기가 이어지자 기존 관행과도 같은 어려운 클래식이 되어버렸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러한 어려운 클래식이 아니었기에.

그 벽을 스스로 허물고자 나선 것이었다.

“주차하고 가마.”

정문에 나를 내려준 큰아버지가 이내 주차장으로 사라졌다.

유리로 가득 둘러싸인 방송사 건물.

안내데스크에 들어서자 미리 나와 있던 작가가 나를 대기실로 안내했다.

[남측 예술단 대표]

종이가 붙은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이안씨!”

멋들어진 가죽 재킷을 입은 찬희가 반가움에 포옹했다.

뉴스에서 벌써부터 난리라며.

오늘 아침에도 오는 길에 내가 나오는 기사를 봤다고 이야기를 이었다.

현춘도 아주 반응이 뜨겁다며, 자신이 살면서 클래식으로 인기를 끈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며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며칠 만에 만났지만,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한참 동안 그사이 어떻게 지냈는지 회포를 풀었다.

그때, 문을 열고 안경을 쓴 남자가 다가왔다.

TV에서 얼굴을 자주 비치던 남자.

나도 아는 이였다.

“아이구, 현춘 형님. 너무 오랜만에 뵙네요.”

“종인이도 그동안 잘 지냈지?”

김종인.

현춘의 전성기 시절, 가수로 이름을 날린 사람.

지금도 종인의 곡은 명곡으로 남아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임에도 종인은 예능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음반도 내고 있었다.

종인은 구면이던 찬희와 현춘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첫 방송이라 긴장되시죠?”

나를 편하게 해주려는 듯, 종인은 여러 사담들을 나누며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아침밥은 먹었냐는 질문부터, 오는 길 어땠냐는 사소한 질문들.

그는 여유롭게 대답하는 내 모습에 다행이라는 듯 편안한 표정을 보였다.

“유일하게 출연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정말 잘 선택한 거예요. 편하게 얘기한다고 생각하면 편집팀에서 알아서 잘해줄 거예요.”

종인이 장난기 섞인 말투와 함께 눈웃음을 지었다.

여러 제안이 왔을 텐데 ‘보이는 라디오’를 선택해줘서 고맙다며.

무척 인상 깊은 경험이 되게끔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종인의 말대로 ‘보이는 라디오’ 이외에 수많은 인터뷰와 방송 출연 제안은 무척 많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무대라는 점과 함께 독보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루가 된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거침없는 입담을 내뱉는 곳.

나를 신격화하듯 쏟아낸 기사들로 과열된 이미지를 식히기엔 충분했다.

“자! 촬영 들어가실게요!”

스태프의 출연으로 인해 우리는 사담을 멈추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라디오 부스를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면서 보라색, 금색, 은색, 등 화려한 색깔로 치장된 촬영 스튜디오.

촬영장의 중심에는 반원 모양의 테이블이 있었다.

스태프들의 안내로 한 자리를 차지한 나는 방송 시작을 기다렸다.

이윽고 마이크 착용까지 완료했을 즈음.

촬영장 벽에 걸려있던 ‘On Air’ 전광판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여러분은 지금 고품격 음악 토크쇼, 보이는 라디오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특유의 슬로건을 빠르게 내뱉는 종인의 말을 시작으로 녹화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무대와 방송에 출연한 찬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촬영장엔 이야기꽃이 피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나오셨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조금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죠~ 오 선생님께서 연락 안 했으면 조금 더 쉬었을 것 같은데…”

찬희의 입담에 화기애애한 시작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됐다.

클래식이라는 이례적인 선정에도 어땠냐는 질문에 찬희와 현춘은 도리어 그 덕에 자리가 신선했다고 칭찬을 덧붙였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있어서 나았다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토크가 무르익어갈 때쯤, 독설가로 유명한 남성 MC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북한 관련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이 아무나 못 가는 곳이잖아요. 그쵸? 현장은 좀 어땠나요?”

“저야 매번 예술단 단장으로 나가서 익숙했죠. 찬희씨랑 이안씨가 처음이었는데, 둘 다 인기가 대단했죠.”

“제가 뭐 대단한가요. 이안씨가 대단하죠. 거기 위원장이 시계까지 선물했는데.”

시계요? 하는 표정과 함께 화제는 내가 선물 받은 시계로 바뀌었다.

볼 수 있겠냐는 종인의 말에 나는 미리 챙겨온 시계함을 꺼냈다.

남성 MC가 자신이 무척 잘 안다는 듯 시계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캬… 저거 아무나 못 가지는 건데. 저게 훈장이나 다름없어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안씨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니까요. 게다가 그때 비행기에 들어온 사람이 대장급이라 하지 않았나요?”

찬희의 반문에 MC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참모총장급 인사에게 직접 전해 받은 것이라고.

국가 서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 준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말 대단한 것이라며, 북한 쪽에서 강연 제안을 할 법했다고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북한에서 한 강연 초청을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

“아무래도 제한이 많았다는 게 컸죠. 강연이라는 건 제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는 건데, 제한이 있으면 전달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MC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긍정표를 던졌다.

하물며 검열로 유명한 북한에서 했다면 오죽했을까라며.

내 답변에서 철학자 같은 면모가 보인다면서 MC가 칭찬을 건넸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자 어느덧 프로그램 녹화 종료를 앞둔 시간.

프로그램의 전통과도 같은 무대를 펼칠 시간이었다.

찬희는 고음퀸이라는 이명답게 찌를 듯한 고음으로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현춘은 기타를 치며 여유롭게 가사를 이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

키보드 앞에 앉은 나를 향해 MC와 출연진, 스태프들까지,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저는 북한에서 최초 공개했던 아홉 번째 자작곡, <평안>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짧막한 설명과 함께 내 손가락이 키보드를 주행하기 시작한다.

북한에서 펼쳤던 것과 같은 속도, 같은 마음가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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