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표창장
위 사람은 헌신적인 노력과 적극적인 자세로 문화, 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국민 문화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장을 받은 것은 방송 출연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남북 예술단의 방북 소식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씩 뜸해져 갈 즘, 문체부에서 연락이 왔다.
-박이안 피아니스트님, 표창 수여식에 참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함이라고.
남북 예술단의 참여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온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더 발전하길 격려하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표창식을 거행한 후, 약소한 티타임에서 문체부 장관이 그리 얘기하지 않았던가.
“박이안 피아니스트님의 업적을 얘기하려면 입이 아플 겁니다.”
그의 입에서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술술 튀어나왔다.
카타리네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곡으로 서서히 해외에도 입지를 다졌던 것은 물론, 독일 하르모니아 음반사와의 계약, 비엔나에서 펼쳤던 특별전과 독주회 무대까지.
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것에 이어 국내에서는 다시금 남북 예술단이라는 기념비적인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느냐고.
게다가.
“정말 감명 깊은 곡이었습니다. 저희가 이리 넙죽 받아도 될는지요.”
이번 곡을 국가에 헌정하기로 했던 약속.
그 말에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냐며 너스레를 떨었지.
화관 훈장이 아닌 그 이상의 급을 수여했어야 한다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그런 장관에게 나는 훈장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며 화답했다.
일반적으로 훈장은 해당 분야에서 15년 이상 예술 활동을 펼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리라.
그때 받은 훈장이 음악실 한편에서 금빛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마 저 훈장이 쐐기를 박은 거겠지.”
섭외 요청을 정리해준 큰아버지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내 눈앞에 놓인 몇 장의 서류들.
모두 내가 표창을 받은 이후에 들어온 섭외 제안들이었다.
그중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고 싶다는 연락만 수십 가지.
국내 콩쿨뿐만 아니라 국제 콩쿨에서도 몇몇 연락을 취해왔다.
여러 제안들 중, 내 이목을 한 번에 사로잡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리스트 국제 콩쿠르.’
20세기 낭만파를 이끈 ‘프란츠 리스트’의 이름을 딴 콩쿠르.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름이었다.
화려한 기교와 풍성한 선율은 리스트로 인해 피아노 연주가 몇 배나 어려워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 탓에 리스트 콩쿠르에서는 화려한 기교가 연신 터져 나오는 게 기본이었다.
유수의 실력자들이 참여하는 콩쿨.
그런데, 내게 온 것은 단순한 참여 제안이 아니었다.
“심사위원 초청장이다.”
심사위원 위촉.
콩쿨 심사위원 자리는 마치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콩쿨 자체는 심사위원이 빛나는 자리가 아닐 뿐더러, 심사위원이 직접 연주를 펼쳐서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도 아니다.
하지만, 콩쿨 심사위원에 초청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당 콩쿨 주최 측이 얼마나 대상을 높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로 인해 대부분 심사위원은 노련한 음악가나 교수가 맡는 것이 정설.
그럼에도 나를 심사위원으로 추대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인정했다는 확인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무려 리스트 콩쿠르라면, 그 안목도 무시하지 못할 테지.
“네게 가장 걸맞은 자리일 것 같다.”
이전에도 심사위원 자리를 고려해보라고 했던 큰아버지였으니까.
여러 칭찬을 건네진 않았지만, 큰아버지는 확신에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게다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함으로써 많은 피아노 거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리스트 콩쿨은 참가자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크게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큰아버지였건만.
그는 오랜만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큰아버지의 말대로 콩쿨 심사위원 위촉만으로도 커다란 화제를 모을 수 있을 것이고, 콩쿨을 주최한 협회와도 친분을 쌓을 수 있겠지.
하르모니아 음반사와 베토벤 재단을 통해 여러 기회를 얻었던 나로선 그 성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중요한 이유.
잠깐 생각을 하던 큰아버지는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 때문이구나.”
20대 건실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군대를 가야 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의무.
이번에 수여 받은 문체부 훈장으로 입대 기한을 30세까지 연장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는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리스트 콩쿨은 예술 요원 편입이 가능한 국제 대회 중 하나.
이번 콩쿨에서 2위 이상의 성적을 달성하면 기본 훈련만 받고 나와 피아노 연주를 이어갈 수 있었다.
참여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
큰아버지 또한 상황을 이해하는 듯, 긍정의 표를 보냈다.
“그럼 거절 내용은 내가 전달해두마.”
***
큰아버지에게 콩쿨 거절 의사를 밝히고 연습을 이어가던 때.
어찌 알았는지 내 소식을 접한 클래식계가 발칵 뒤집혔다.
‘마크 듀셀이랬던가?’
클래식계의 헤르메스.
그 누구보다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모습은 신들의 전령(傳令)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서 붙은 이름이었다.
내가 하르모니아 음반사에서 <죽음>을 재탄생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베토벤 재단에 흘린 사람도 마크랬지.
이번에도 마크가 던진 작은 돌이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리스트 콩쿨의 심사위원 자리를 거절한 박이안 피아니스트.
ㄴ 22살에 국제 콩쿨 심사위원? 말 다 했지…
ㄴ 저런 자리를 거절했다고? ㄷㄷ 이안좌 대체 무슨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 겁니까.
ㄴ 다른 기사보니까 콩쿨에 참여한다던데?
심사위원 초청을 받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국제 콩쿨 주최 측에서 인정할 정도면 말 다 한 것 아니냐며.
국내에서는 이미 유수한 콩쿨에서 러브콜을 보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되며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거세졌다.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진 것은 국내 언론뿐만이 아니었다.
박이안 피아니스트와 경쟁할 수 있는 기회!
기자가 걸어놓은 헤드라인에 걸맞게 수많은 국가에서 관심을 내비쳤다.
콩쿠르 개최국인 네덜란드는 물론,
빈 필하모닉의 모국, 오스트리아 빈,
사토라를 배출해낸 일본까지.
각국 유수의 피아니스트들이 참가 의사를 밝힌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콩쿨 주최 측이 밝히길, 역대 콩쿨 중 최다 인원이라고.
온라인 예선을 이틀 남겨뒀음에도 이미 기록을 경신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연습을 더 해야겠네.’
관심이 집중된 만큼 다수의 실력자들이 한곳에 모이리라.
그만큼 경쟁은 과열될 테지.
이번 콩쿨에서 2위 이상을 달성해야 내가 원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기에.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연습을 하는 것뿐이다.
음악실에 들어선 나는 리스트의 악보들을 찬찬히 살폈다.
자유곡 15분.
온라인 예선에 필요한 음악을 찾아야 했다.
리스트 특유의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면서도 내 표현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
‘이걸 연주해볼까?’
악보집을 하나둘씩 넘기던 도중, 나는 한 가지 곡을 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피아노의 웅장한 음색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곡.
악보를 차근히 넘기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복사가 되듯 가상의 오선지에 음표들이 가득 찬다.
익숙하게 콩쿨 대형으로 카메라를 세팅한 나는 곧바로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렸다.
***
‘가히 놀랍구만 그래.’
이마에 주름이 자글한 여인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던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비 드 보아.
그녀는 네덜란드 피아니스트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이번 리스트 콩쿨 심사위원을 맡은 사람이었다.
이비의 시선이 꽂힌 청년.
참가 사실만으로도 클래식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국의 박이안 피아니스트였다.
‘Waltz from Faust.’
왈츠처럼 경쾌한 선율을 자랑하면서도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의 장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곡.
왈츠의 특성상 선율이 반복되지만, 그 속도를 생각하면 일반적인 전공생들은 지쳐서 쓰러질 정도의 난이도를 지닌 곡이었다.
여러 음표들을 한꺼번에 표현해야 함에도 영상 속 이안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마치 파우스트의 고뇌를 온몸으로 느끼는 듯.
옅게 좁아진 미간이 이안의 뜻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연주에 진실성이 가득 묻어나는군.’
예순을 넘긴 나이 동안 피아노에 전념했던 이비였기에.
그녀에겐 연주를 하는 동안 펼쳐나오는 모든 것들이 음악이나 다름없었다.
피아노에서 풍겨 나오는 선율을 시작으로 연주를 하는 제스처,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리듬까지.
그러한 면들을 통틀어 보았을 때, 이안의 연주는 오랜만에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오히려 참가자로 만나서 다행인가?’
연주를 바라보던 이비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현철의 답신을 통해 이안의 뜻을 전달받은 그녀였기에.
한국의 군대 문화를 잘 모르던 이비는 심사위원 자리 거절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국제 콩쿨의 심사위원은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에.
게다가 이비가 몸 담고 있는 리스트 협회가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모르는 피아니스트들은 없었다.
내심 아쉽다는 마음도 품었건만, 이안의 연주를 들음과 동시에 그 마음은 눈 녹은 듯 사라졌다.
‘존재만으로도 우리 콩쿨을 북돋는 존재이지.’
이안이 리스트 콩쿨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가.
언론에서는 연신 리스트 콩쿨 소식을 대서특필하는가 하면, 명망 높은 피아니스트들도 참가 의지를 밝히지 않았던가.
빈 필 클래스의 대단한 인재들이 단체 참가를 선언한데 이어 독일, 일본, 그 밖에 여러 클래식 강국들에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의 연락이 쇄도했다.
그러한 사람들의 관심이 순식간에 모여 전례 없는 숫자의 참가자를 맛보고 있었다.
1년 만에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오른 것도 대단한 실력이건만.
이비의 눈망울에 묘한 기대감이 담겼다.
‘그 녀석도 심사위원 배지를 내려놨지.’
리스트의 현신.
네덜란드에서 이비의 제자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유럽계 명망 높은 콩쿨에서 연신 우승을 차지하며 빠른 인지도를 쌓아가는 피아니스트.
이비의 추천뿐만 아니라 리스트 협회에서도 이미 완성된 인재라며 그에게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러나 한국의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심사위원이 아닌 참여자로 출전한다는 소식에 그는 곧바로 심사위원직을 내려놓고 예선 영상을 제출했다.
“그와 한번 경쟁하고 싶습니다.”
이비는 제자가 내놓은 말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이비 또한 한 때 여러 피아니스트들과 경쟁하며 연주를 펼쳤기에, 제자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경쟁자로서 피아니스트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전율.
심사위원석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게다가 또래의 유명 피아니스트를 심사위원으로서 평가하기엔 힘들었겠지.
제자 또한 이안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었으니까.
‘에휴. 나만 등골이 빠져나가겠군.’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에 사인을 했다.
박이안 피아니스트와 자신의 제자.
클래식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두 사람을 심사해야 하는 입장에 섰기에.
이비는 기대감과 걱정을 가득 담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