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97화 (97/250)

97화

“이안이의 성공을 위하여!”

네 사람이 와인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해외를 오가며 활약상을 펼친 이안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이자, 이안의 가족과 현철이 오랜만에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최근 이안이 한국에 있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수철은 제대로 된 축하 한 번 하자며 활기찬 기색을 보였다.

“가끔은 이렇게 보내는 것도 좋네요.”

은희도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와인을 음미했다.

내내 이안이 집에서 연습만 했던 터.

최근에 은희와 수철도 바빠진 탓에 외식은커녕, 한데 모이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수철은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며.

인당 십만을 훌쩍 넘기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었다.

접시가 비어갈 즈음 나오는 대화 주제는 단연 이안에 대한 이야기였다.

며칠 전, 리스트 콩쿨의 온라인 예선 합격이 온 터.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렀다.

“이제 완전히 글로벌하게 움직이는구나.”

일본, 오스트리아에 이어 이젠 네덜란드까지.

게다가 오스트리아에는 하르모니아 음반사라는 협력체와 베토벤 재단이라는 거물이 있지 않은가.

이러다가 미국 진출도 하는 것 아니겠냐며 수철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 보니 이안이 네 통장에도 꽤 많은 액수가 찍혔더구나.”

현철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화제를 던졌다.

그의 말에 은희와 수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안의 수입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콩쿨 우승 상금은 물론, 애니메이션 OST 저작권, 비엔나 하르모니아의 음반 수익, 교재 인세, 거기다 지금까지도 조회수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유튜브까지.

그런 것에 비해 이안은 돈을 쓴 적이 좀처럼 없었다.

거금이 드는 비행기 티켓들도 카타리네 스튜디오와 하르모니아 음반사에서 내주지 않았던가.

현철의 입에서 억소리가 나오자 은희의 눈빛이 냉철해졌다.

“그 정도라면 단순 저축보다는 투자를 해보는 건 어때?”

은희의 답변에 현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아내로서 쭈욱 관찰했던 바로 이야기하자면, 은희는 생활력의 달인이었다.

일반적인 저축은 기본.

여유가 될 때는 투자를 하기도 했고, 일부는 주식을 융통하며 자금을 쌓았다.

오죽하면 경제 관리를 은희가 다하고 있겠는가.

일부는 안전을 위해 남겨두되, 투자를 해서 불려 나가는 것.

수철과 현철도 은희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이안도 나쁘지 않다는 듯 긍정 의사를 전했다.

투자처를 어디로 하면 좋을지 이야기가 오가던 중, 이안은 문득 은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 사업 준비는 어떻게 돼가요?”

“아직 초기 단계야. 이제 사무실을 구해서 본격적으로 직원 채용도 해야지.”

은희는 사업 얘기에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타인의 음악을 그대로 가져와서 음원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음악팀을 만들 예정이라고.

차후 사업이 진행되면 어떤 음악가와 미팅을 할지에 대한 계획도 상당히 상세했다.

현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하르모니아에서도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실무를 확인했던 그녀였으니까.

게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투자설명회에 참여하거나 사업 관련 지식들을 습득하며 준비를 이어갔던 터.

깐깐한 현철도 인정할 만큼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 어머니한테 투자하면 되겠네요.”

최소 필요 금액을 남기고 전부.

이안의 억 소리 나는 선언에 은희는 당황한 듯 손사래를 쳤다.

도와달라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 아니었다고.

애써 모은 돈을 자신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안의 태도도 강경했다.

“투자자로서 믿음이 가요. 방금 설명하신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이안은 독자적인 음악팀을 만든다는 것에 집중했다.

장르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어떤 방향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카타리네 스튜디오에서 OST를 만들었던 이안이었기에, 특히 OST 시장을 겨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조언을 더했다.

게다가 현철이 보기에 이안의 눈빛은 단순히 가족을 생각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녀석, 눈빛이 살아있네.’

물론 어머니이기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을 터.

하지만, 무언가 도움을 준다는 온건한 눈빛은 아니었다.

하르모니아 음반사에서 곡을 만들고, 독주회 준비를 하면서 보였던 냉철한 눈빛.

비엔나에서 내내 이안과 동행했던 현철은 그 눈빛이 객관적인 의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독특하다.

이번 리스트 콩쿨 곡 선정 방식을 보며 생각했다.

일반적인 콩쿨에서는 지정곡을 주거나, 여러 개의 선택권을 주고 원하는 곡을 연주하게 한다.

이전 리스트 콩쿨들도 그래왔거늘.

하지만, 이번 콩쿨은 두 관례를 섞어둔 듯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각 키워드를 선택하여 연주를 하라?’

키워드는 총 3가지.

Master, Nature, Paganini.

각 키워드에 할당된 3가지의 곡을 펼치는 것이 1차 본선 무대의 숙제였다.

거장, 자연, 파가니니라는 이름에 걸맞은 곡들의 향연.

키워드 ‘거장’에서는 리스트가 생애 편곡했던 거장들의 곡이 들어 있었다.

베토벤의 불후의 명곡인 <운명 교향곡>을 시작으로, 슈베르트와 바흐의 곡이 미션.

두 번째 키워드인 ‘자연’은 숲, 밤, 눈보라라는 이름을 가진 리스트의 곡들을 펼치는 것이 관건이었다.

자연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여타 리스트의 곡들에 비해 은은한 선율을 자랑한다.

두 키워드의 곡들 모두 매력적이었건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파가니니’였다.

‘너무 훌륭한 바이올린 선율을 펼쳐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지.’

니콜로 파가니니.

바이올린을 수학했을 때 흔히 듣던 이름이었다.

리스트의 기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소름 듣는 선율을 펼쳤던 장본인.

‘악마’라는 호칭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나뭇가지로 바이올린을 켜는 기행에도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펼쳤다고 전해지는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기에.

파가니니의 연주에 감명받은 리스트가 이렇게 말했다지.

“나는 피아노로서 파가니니가 되겠다!”

리스트의 기교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파가니니였다.

파가니니를 닮고 싶어서였을까, 리스트의 곡들은 현악을 연상케 하는 빠른 선율이 특징이었다.

파가니니 키워드에 들어 있던 <라 캄파넬라>와 <사냥>, <에로이카>는 그 면모가 가장 두드러지는 곡들이었다.

여유 따윈 찾아볼 수 없고, 악보 또한 오선지에 검은 칠을 한 것 같은 비주얼.

아마 악보를 처음 보는 사람이 본다면 이걸 치라고 만든 것이냐고 기겁을 할 정도리라.

도리어 그렇기에 나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들이었다.

‘기교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들.’

다른 곡들도 기교적인 면에서 뛰어나지만, 파가니니의 곡을 옮겨온 것에 비하면 약소했다.

이미 존재하는 바이올린의 반복된 선율에 베이스를 덧댄 것처럼.

악보를 슬쩍 연습해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속도의 피아노 음색이 터져 나온다.

같은 음이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해서 좋아할 것이 아니다.

도리어 반복되기에, 그 반복을 몇 분씩 이어가는 것은 대단한 체력을 요구하는 작업.

처음 유지했던 속도에서 빨라져서도, 느려져서도 안 된다.

정해진 박자와 속도를 스스로 맞춰야 하는 고난이도 작업.

동시에 내 기교와 표현력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곡이었다.

“이걸로 한다.”

다짐과 함께 악보들을 피아노로 가져갔다.

파가니니의 곡을 연주했던 기억이 한편에 떠오르면서도 양손이 묘하게 움직인다.

분명 연주를 하는 것은 피아노인데 머릿속에서 바이올린의 선율이 함께 들리는 듯하다.

이 선율을 피아노에 녹아낸다는 생각으로.

손가락이 바이올린의 현처럼 세차게 움직인다.

***

“선생님. 본선 진출자들의 신청서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협회 직원의 말에 이비는 안경을 고쳐 썼다.

그녀의 눈 아래에는 거뭇한 다크서클이 짙게 깔려 있었다.

여태껏 몇 번이고 리스트 콩쿨을 진행했던 그녀였건만, 이번과 같은 관심은 처음이었다.

본선 진출자를 알리는 일자는 한정되었기에.

이비는 노령의 나이에도 밤잠까지 반납해가며 예선 영상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추려낸 14명의 인재.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나온 사람들 중, 이비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박이안 피아니스트, 파가니니를 선택했다라.’

이비는

이안이 선택한 키워드는 ‘파가니니’.

리스트가 지대한 영향을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거장이자, 낭만파의 폭풍과도 같은 선율을 만들어낸 장본인 아니던가.

키워드에 포함된 곡들은 이루 말할 필요 없이 명곡들이었다.

하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가에게 극악의 난이도로 잘 알려진 곡들이기에.

파가니니를 선택한 사람은 몇 없었다.

‘그 때문에 선택한 숫자는 많지 않군.’

총 14명 중 파가니니를 고른 사람은 단 세 명에 불과했다.

30분이라는 긴 시간을 파가니니의 곡으로 채울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일 테지.

특히 는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곡이자 모든 음악 전공자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곡이었다.

캄파넬라는 이탈리아어로 ‘종(鐘)’이라는 뜻.

곡은 이름에 걸맞게 종이 울리듯 빠르게 울리는 선율이 매력적인 곡이었다.

4분이라는 시간 동안 단 0.1초도 쉴 틈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만 빼면.

‘어쩌면 바이올린을 수학했다는 것이 선택 이유가 됐을 수도 있겠어.’

이제 이안이 본래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피아노를 잡았다는 사실은 흔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비 또한 이안의 소식을 접했기에 잘 알고 있었던 정보.

그렇기에 더욱 기대감이 어렸다.

‘정말 여유 넘치는 무대를 보였지.’

이안의 참여 결정에 이비는 그동안 이안이 연주했던 영상들을 모두 복기했었다.

그중에서 이비가 발견한 것은 이안의 우월한 표현력.

마치 음악이 꿈틀거리고, 허공에 음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선율이 돋보이는 것이 이안이 펼치는 연주의 큰 특징이었다.

그러면서도 연주를 임하는 표정은 무척 편안했다.

그동안 피나는 연습으로 완성한 곡을 펼치는 것보다는 이미 머릿속에 있는 곡을 내놓는 것에 치중하는 듯.

연주를 이어가면 갈수록 더욱 여유로워지는 이안의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이비였다.

‘이안은 어떤 파가니니를 펼칠 것인가.’

스스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이비가 눈을 감았다.

그녀는 영상으로 마주했던 이안의 모습에 경연곡을 펼치는 상상을 덧입혔다.

<라 캄파넬라>를 비롯하여 <사냥>과 <에로이카>를 펼치는 이안의 모습.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세 곡을 펼치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을 것을 상상하자 온몸에 전율이 인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음표의 세례를 과연 이안이 어떻게 표현할지.

이비의 입가에 기대감이 한껏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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