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04화 (104/250)

104화

호텔을 나설 때는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는데.

마지막 오케스트라 연습을 끝내고 돌아오니 밖은 밤이 된 지 오래였다.

내일이면 바티칸 성당에서 주최한 오케스트라 경연이 열리기에.

로마에서의 하루는 사실상 내일까지이리라.

‘오케스트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어 가네.’

나는 일전의 리허설들을 떠올렸다.

리스트의 사조를 시작으로 한 콜린의 오케스트라부터 관악과 타악기 활용을 우수하게 해낸 오케스트라, 몽환적인 환상미를 내세운 오케스트라까지.

각 오케스트라들이 보여주는 선율은 단지 과거의 교향곡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의 선율에 이어 오케스트라만의 생각이 가득 들어간 연주.

사조를 펼치고 싶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었다.

‘오케스트라를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알릴 수 있겠지.’

내 음악을 알리는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속적으로 유튜브에 음악을 업로드하는 것은 물론, 하르모니아 음반사에서 나온 내 앨범도 계속해서 판매량을 갱신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루트비히 출판사에서 만든 교재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내가 만든 곡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맞지만, 한계점은 명확했다.

‘거장들도 악단에 들어가서 활동을 했었지.’

사조라는 것은 내가 정립하고, 나 혼자서 연주를 한다고 해서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토벤, 슈베르트, 바흐, 등.

숱한 거장들의 음악이 후대에 이어 연주되고, 그들의 사조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뛰어난 예술가이자 ‘지도자’였기 때문이었다.

괜히 거장이 궁정악단으로 들어가서 연주를 하고, 곡을 만들었겠는가.

악단에서 우수한 곡을 만들어내고, 이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여 연주한다.

아마 그 과정에서 연주자들은 거장의 곡에 담긴 사조를 가장 먼저 느끼고 체득하겠지.

게다가 단순히 체득하는 과정을 넘어서 스스로 갈고 닦으며 사조를 깊게 이해할 것이다.

그 사조가 담긴 연주를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조가 전파되는 것은 당연지사.

더 나아가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거장의 곡을 들었을 때 사조를 느꼈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거장들이 해 온 것들이 현대에 와서 널리 퍼지고 있지 않은가.

‘아마 처음은 힘들 수도 있겠지.’

내가 곡을 쓰고, 연주하는 방식을 누구에게 가르칠 순 없으리라.

본능적으로 머릿속에 오선지가 그려지고, 그것을 펼치는 것을 따라 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표현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연주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내가 음악을 보는 방향과 곡에 담긴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을 알려주고,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교과서적으로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터.

‘표현력을 최대로 하여 음악적 영향력을 퍼뜨리는 것.’

마치 전시회에 그림을 내어놓고 사람들에게 보게끔 하는 것처럼.

고전 시대의 연주를 표현주의와 낭만주의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낸다.

그런 연주를 우수하게 펼쳐내기 위해선 나처럼 표현력에 두각을 드러내는 음악가를 모아야겠지.

그러한 인재를 어떻게 영입할지.

머릿속에 여러 고민이 떠오른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큰아버지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프라임플러스에서 연락이 왔더라.”

다큐멘터리를 찍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큰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은 내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프라임플러스 사의 대표 시리즈, ‘더 마스터’.

‘더 마스터’로 프라임플러스가 흥행 가도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국내에서도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은 예능이 유행하듯, 같은 기류를 타고 세계적으로 대단한 인물들의 일상과 고뇌를 담은 다큐.

나도 몇 개의 시리즈를 본 만큼 그 인기를 잘 알고 있었다.

‘방송에서 오케스트라 창단 의지를 밝힌다면?’

본사가 있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를 펼치고 있는 프라임플러스니까.

게다가 출연 제안이 온 프로그램도 ‘더 마스터’.

기존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내가 나온다는 소식을 전하면 음악에 관심 있는 시청자들이 볼 것이다.

그들 중 우수한 인재가 오케스트라 입단을 고려하게 할 수 있다면?

오케스트라 창단에 더욱 큰 도움이 되리라.

긍정적인 출사표에 큰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미팅 날짜 잡아보도록 하마.”

***

호텔을 벗어난 택시는 점차 시가지로 향했다.

목적지는 로마 우르베 공항.

프라임플러스 측에서 온다는 소식을 접한 탓이었다.

“나도 오늘 당장 온다고 할 줄은 몰랐다.”

큰아버지도 처음에는 놀랐다고.

미팅 일정을 잡자는 말에 당장 출발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최대한 빠른 일정이면 상관없다고 했다지.

나 또한 오케스트라 창단을 위해서 빠른 홍보를 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일루시아 오케스트라에게 필요한 말은 다 했으니까.

“연습 때만큼만 하십시오.”

마지막 조언을 구하는 콜린에게 나는 단 한마디를 남겼다.

짤막한 말이었음에도 그는 밝은 기색을 내비쳤다.

절대로 내가 실망할 결과를 가지고 오지 않겠다고.

꼭 좋은 소식으로 보답할 테니 내게 잘 다녀오라고 너스레까지 떨었지.

그런데 잘 가던 택시가 어느 시점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을 살피는 차량들 사이로 사람들이 대거 몰려가고 있었다.

가히 사람의 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갑작스런 정체에 큰아버지가 택시 기사를 향해 질문을 건넸다.

“무슨 일이 있나 봅니다.”

“아마 교황이 거리에 나왔나 봅니다. 이곳에 차가 밀릴 이유는 그것밖에 없거든요.”

우리를 태운 택시 기사가 짧게 설명을 곁들였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도로가 바티칸 시국에서 교황이 나올 때마다 통제되는 도로라고.

그의 말을 방증하듯 라디오를 켜자 교황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스미스 교황을 실은 차량이 로마 오페라극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바티칸 성당 주최의 오케스트라 경연을 참관하러 가는 것인데, 교황이 경연에 방문하는 것은 약 200년 만으로…-

교황.

가톨릭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교황청의 수장.

전 세계 가톨릭인들의 선망을 받는 존재이지 않은가.

새해가 되면 전 세계에 축사를 전하는 것은 물론, 크리스마스 때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의 미사를 보기 위해 바티칸으로 발걸음을 옮길 정도.

특히 이번 교황은 평화에 관심이 많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남북 예술단 공연을 잘 보았다고 연락 왔던 교황이죠?”

내 질문에 큰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뉴스에서 기대 어린 반응을 보였다고.

큰아버지는 교황이 이러한 사건에 직접 언급을 하는 것은 여태껏 현 교황이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통일부에서도 교황이 연락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행렬이 지나갔나 봅니다.”

어느덧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이 줄어 있었다.

큰아버지와 교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행렬이 끝난 모양.

덕분에 차량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금 차량은 프라임플러스 제작진이 도착할 공항을 향해 나아갔다.

***

바티칸 오케스트라 경연.

바티칸 성당에서 주최한 경연이지만, 보통 교황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없었다.

과거 성가대를 뽑기 위한 목적이었을 때는 교황이 직접 악단을 선출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무려 200년 전 이야기.

고전시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열풍이 불었기에.

당시를 기점으로 바티칸 경연은 클래식 교향악단의 축제로 변모했다.

바티칸 성당과의 연결점은 우승자와 성당이 협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정도.

그러한 경연에 교황이 출연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리도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많다니!’

경연을 관람하는 스미스 교황은 내내 신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교황이라는 직위를 떠나 그 또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음악 자체를 무척 좋아했기에.

특히 클래식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에게는 이번 기회가 무척 달콤했다.

네덜란드 콘체르토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명성이 자자한 오케스트라가 대거 출연한 경연.

그 웅장한 선율은 가히 신의 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스미스 교황의 귀를 간질인 오케스트라는 그러한 웅장한 음색이 아니었다.

‘일루시아 오케스트라? 저 악단의 선율은 무척 독특하군.’

무릇 오케스트라 함은 웅장하고 압도적인 선율로 청중을 휘어잡는 것.

물론, 일루시아 오케스트라도 그러한 힘이 존재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몰아치는 감명에 스미스 교황도 벅찬 감정을 드러냈으니까.

하지만, 그사이 묘한 기류는 스미스 교황에게 이질감을 선사했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곡이 어떤 곡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연하게 울려 퍼지는 관악기 선율은 구슬픈 아이의 울음을 떠올리게 했고, 몰아치는 바이올린은 아이를 학대하는 채찍질처럼 들렸다.

평화를 사랑하는 스미스 교황의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가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선율.

하지만, 이내 펼쳐지는 팀파니와 심벌즈의 세례에 바이올린 선율이 약해지자 교황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림을 그리듯 매끄럽게 흘러가는 음악.’

클래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이야기를 상상하며 들을 수 있는 곡.

지금의 행진곡은 히브리어와 성경의 말씀으로 점철되어 일반 대중에겐 가까워질 순 없었다.

교황이 몸을 이끄는 동안만이라도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곡을 펼치고 싶었기에.

교황은 콜린에게 독대를 청했다.

“정말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교황은 콜린과 만나자마자 곡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들었을 때 곡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던 적은 처음이었다고.

처음으로 연주 자체에 집중해서 들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감명받길 바란다는 축복을 이어가자 콜린은 과분하다며 자신을 낮췄다.

“저희는 그저 목자를 만난 것뿐입니다. 축복을 받는다면 저희를 여기로 이끈 목자가 받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교황은 콜린의 뛰어난 언변에 감탄하며 그대의 뜻도 옳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황은 콜린이 말하는 ‘목자’가 그들의 스승을 일컫는 말인 줄 알았다.

스물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지휘자 자리에 올랐다면 분명 콜린을 이끈 스승이 있을 터.

아마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거장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박이안이라는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신께서 저와 박이안 피아니스트를 연결해주지 않았다면 교황님께 이러한 감동을 드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박이안?

콜린의 말에 교황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번 무대를 위해서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리허설을 도와주었다고.

지휘자인 자신도 찾지 못한 허점을 잡아준 덕에 유려한 연주를 펼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스미스 교황의 머릿속에 더 이상 콜린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교황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이곳, 로마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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