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 박이안 피아니스트, 각국 유명 대학에서 강연을 진행할 예정.]
[ 강연과 동시에 오케스트라 창단 관련 소식도 전할 예정으로 밝혀져 화제 중.]
한국대를 시작으로 유수의 대학교를 순회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기사화된 시점이었다.
한국대 뿐만 아니라 미국의 버클리, 독일의 뮌헨 국립대, 등 각국의 대표 음대라고 할 만한 학교도 강연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강연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오해가 시작됐다.
ㄴ 결국 박이안도 고지식한 클래식 음악가였던 거임.
ㄴ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고, 너무 큰일 벌리니까 문제가 발생하지.
ㄴ 모두에게 음악을 전파? 개뿔. 만인을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결국 명문대들만 다니네.
“몇몇 사람들이 악성 글들을 퍼 나르는 모양이야. 어쩌다 보니 강연을 준비하는 곳이 명문대밖에 없으니까 어떻게든 나쁜 말을 하려고, 괜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니까 신경 쓰지 마.”
꽤 다수의 악플들이 존재하는데, 일부는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퍼뜨리려는 모습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같은 악플이 다른 곳에서도 보이는 것은 악플러들의 흔한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걱정스런 아버지의 눈길과 달리 소식을 접했음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제안이 들어온 학교라 가는 것뿐이다.’
명문대라고 해서, 내가 먼저 제안한 곳은 없었다.
내게 제안을 했던 곳들이 모두 연주계의 명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들뿐이었던 것이다.
모두 이전에 강연 제안이 들어왔고, 일정으로 인해 하지 못해서 이제야 답을 보낸 것일 뿐.
대중 클래식을 지향한다면서 천재들의 집단인 대학에만 강연을 한다는 말에 부정적인 의견이 더욱 가중된 듯 보였다.
아버지는 오케스트라 창단에 대해 여론의 상태를 체크하는 듯 보였다.
특히 이제 시작인 오케스트라 창단 홍보에 벌써부터 이러한 거부 반응이 보인다면, 분명 추가적으로 반응이 올라올 것이라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애초에 오해를 만들지 않는 게 좋으니까.’
아버지의 말대로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번처럼 크게 퍼지는 것은 의도가 아니더라도 분명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기존의 행보에 실망하거나, 어려운 클래식을 한다는 안타까움.
그러한 사람들의 인식을 그대로 놔두고 본래 일정을 강행한다면, 나중에 분명 이 문제가 회자될 것이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도 방법일 터.
방법을 생각하던 머릿속에 곧바로 대안이 떠올랐다.
“그럼 온라인 강연을 활용할까요?”
간결한 내 말에 아버지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애초에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불만을 들어줄 필요야 없지만, 유연하게 대응해주는 모습과 이전에 클래식계에 없던 혁신을 만드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명문대에서의 강연과 모집이 아니라 만들 오케스트라의 흥행 아닌가.
“오히려 온라인이 숨은 실력자들도 얻을 수 있겠지.”
이번에는 아버지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에는 거리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이 훨씬 많다.
자신들의 밴드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 바이올리니스트 홀로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명문대는 이미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해 놓은 장소라 시간과 인력을 절약하는 것에 효율적일 것인데. 온라인으로 몰려드는 인력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오래 걸릴 것도 없습니다.”
나처럼, 선율을 제6의 감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또는 그러한 잠재력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긴… 피아니스트 박이안의 사조를 따르려면 능력은 하나뿐이니까. 길게 볼 것도 없지. 어쩌면 이것 또한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
라이브를 위한 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기존의 반응을 정리하기 위해 진행하는 온라인 강연.
그것을 더욱 유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야말로 좋은걸요. 이안씨의 강연을 담당할 수 있으니까요.”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며 주수석님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 유튜브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주수석님의 팀이라면, 강연 라이브를 담당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테지.
게다가 내 유튜브뿐만 아니라 수석님의 유튜브를 활용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온라인 강연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구독자는 현재 93만.
여타 스케줄로 인해 영상을 업로드하지 못해 한창 정체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수석님은 매일 2개의 영상을 제작할 정도로 계속해서 채널을 키워 갔고, 이제 구독자 수 158만을 달성한 거대 채널로 성장해있었다.
부정적인 반응이 있다는 것을 얼핏 알고 있던 수석님은 내 요청을 받고 무척 놀라워했다고.
단 몇 시간 만에 대응을 떠올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내가 신기할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빠른 판단 덕분에 효과가 금방 나타나네요.”
라이브 시작을 1분 남긴 시점.
대기 중인 시청자 수만 명을 넘기고 있었다.
강연 시작과 동시에 더욱 늘어날 것을 고려한다면 그 수는 더욱 커지리라.
예상보다 높은 시청자 수에 수석님은 물론, 제작진 측에서도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단 하나.
‘내가 할 이야기를 한다.’
어려운 것은 없었다.
플랫폼과 동시 시청자 수가 달라졌을 뿐, 강연을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할 이야기도 내가 생각하고, 체득했던 것들.
마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악보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듯 강연 내용도 저장된 악보처럼 고스란히 머릿속에 떠오른다.
평소에 연주를 하듯이.
나는 그것을 진심을 다해 내놓기만 하면 된다.
이내 1분이라는 시간이 끝나고.
나는 담담한 기색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피아니스트 박이안입니다.”
한국대에서 했던 강연과 달리 박수나 환호성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그만한 열의를 대변하듯.
내가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채팅창에 댓글들이 우후죽순 달리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ㄴ 오늘도 연주 보여주시나요?
ㄴ ㅎㄷㄷ 동접자 봐.
ㄴ وسيم!
ㄴ Hi. Ian. I’m big fan of you :D
ㄴ 박이안 잘생겼다!
댓글과 함께 화면 한편에 있던 시청자 수도 점점 늘어난다.
숫자가 커질수록 주수석님과 팀원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갔다.
독일에서 독주회를 했을 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강연을 보고 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했다.
한국대에서 했을 때 질문이 나왔던 부분까지 보강하여.
강연과 함께 내 이야기가 차례대로 나왔다.
바이올린 연주하던 의미를 잃었을 때부터 피아노를 잡았을 때.
악보를 단순히 답습하는 것이 아닌, 음악 자체를 보고, 느끼고, 표현하라는 말.
내가 내린 정답이 이것이듯,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까지.
강연이 이어질수록 댓글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ㄴ 뭐지. 말은 겁나 추상적인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음.
ㄴ 우리 학교 교수님보다 말 잘한다.
ㄴ 저게 22살이 할 생각이냐. 나는 22살 때 뭐 했지…
ㄴ 윗분. 님은 평균임.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진짜 대단한 거임.
칭찬에 더불어 교수할 생각 없냐는 농담들까지.
반응은 이전에 한국대에서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을 아는 몇몇이 소식을 물을 뿐.
“이미 아시는 분들이 많네요. 맞습니다. 오케스트라 창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ㄴ ㅇ0ㅇ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만든다고?
ㄴ 진짜 대박. 가능한가?
ㄴ 뭘 물어보고 있음? 지금까지 해온 것도 가능의 수준을 넘었음.
오케스트라 창단 이야기에 댓글 반응들이 뜨거웠다.
몇몇 댓글은 무척 관심이 높은 듯, 규모와 악기 배열, 오디션 정보까지 상세하게 물었다.
나는 가장 먼저 규모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신생 오케스트라인 만큼 곧바로 거대 오케스트라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단원만 수백에 달하는 빈 필하모닉이나, 오페라를 전문으로 하는 콘체르테 오케스트라가 아닌, 30명 정도로 이뤄지는 체임버(Chamber) 오케스트라급으로.
대신, 필요에 의해 규모를 키울 생각은 있었다.
“악기에는 제한을 두지 않을 생각입니다.”
뜻밖의 선언에 댓글창에 무수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본래 오케스트라는 말 그대로 ‘관현’악단.
관악기와 현악기의 모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오케스트라는 악기의 제약을 떠나 음악 그 자체를 표현할 수 있는 악단.
그렇기에 현악기와 관악기의 비율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더욱 유려한 표현을 할 수 있다면, 한 번도 오케스트라에서 등장하지 않은 악기라도 영입할 것이다.
ㄴ 그럼 오디션은 어떻게 하나요?
“좋은 질문이 하나 올라왔네요. 우선 서류와 포트폴리오로 1차 심사를 진행하고, 2차 심사는 대면 오디션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대면 오디션에서는 주어지는 과제를 완수하면 됩니다.”
과제 이야기에 댓글은 과제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한국대 학생에게 그대로 보여줬듯, 피아노 앞으로 향했다.
둥-
선명한 선율의 G장조.
연주를 시작함과 동시에 빠르게 지나가던 댓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멎었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정지라도 한 것 같은 고요함.
그 고요함 위에 <항해>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치 바다를 연상케 하는 깔끔하고 활기찬 선율, 다른 악기들이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반주에 치중한 멜로디까지.
연주를 마친 나는 한국대에서 한 것과 똑같이 과제를 설명했다.
“방금 연주한 곡에 자신만의 악기로 선율을 더하는 것. 그것이 저희 오케스트라 입단 오디션 과제입니다.”
과제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댓글이 무서운 속도로 오르내렸다.
말도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이것도 자작곡이라는 질문들.
그들 중에는 언제까지 제출하면 되냐는 질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
서류 심사까지 주어진 시간은 약 3주가량이었다.
강연을 끝내고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서류들이 들어왔다.
나와 큰아버지 둘이서 확인하기엔 벅찬 양이었기에.
1차 적으로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들을 채용하고 나서야 조금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루키들이더라.”
큰아버지의 말대로 어린 나이에 도전한 음악가들이 많았다.
몇몇 콩쿨 경력은 있지만, 굵직한 업적은 없는.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에 관심을 갖고 들어온 신인 음악가들로 보였다.
꽤 우수한 포트폴리오를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해외 콩쿨에서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연주 영상을 첨부한 사람들.
하지만, 루키라는 표현에 걸맞게 대부분 내가 원하는 이상의 연주를 보이진 않았다.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보다는 악보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정도.
베테랑 연주가 수준의 참가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마 우려스러운 면이 있는 게지.”
큰아버지는 베테랑 연주자들의 부재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베테랑 음악가 정도 되는 사람들은 음악계의 현실적인 요소를 모두 알 테니까.
단순히 연주를 하는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베테랑 음악가들이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고 곧장 참여하기엔 리스크가 큰 것이 사실일 것이다.
게다가.
“네가 대단한 것이지, 아직 네 오케스트라가 대단한 것은 아니니까.”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비교하자면 내 오케스트라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와 같으리라.
그러한 신생 오케스트라에 참여하여 어떠한 업적을 달성하기엔 수치타산이 맞지 않을 터.
하지만, 동시에 큰아버지는 다른 가능성도 엿보고 있었다.
“다음주에 ‘더 마스터’ 방영이 시작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게다.”
제출 기한으로 둔 3주.
서류와 포트폴리오 제작을 고려한 시간이자, ‘더 마스터’ 방영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설정한 기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