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11화 (111/250)

111화

프라임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마스터’

- 피아니스트 박이안, 교황 행진곡을 만들다.

이안이 출연한 ‘더 마스터’는 시작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례적인 교황청의 행보에 이안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얼마나 좋은 연주를, 작곡을 했으면 교황이 직접 부탁할 정도냐고.

그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다큐를 보는 사람도 많았다.

가톨릭교도들은 물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더 마스터’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거기다.

ㄴ 영상미 미쳤다.

‘더 마스터’가 흥행한 것은 제작진의 공도 컸다.

이안의 유려한 연주를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은 것은 당연한 일.

샬롯이 최고의 오디오 팀을 붙인 덕에 피아노 선율이 직접 현장에서 듣는 것만큼 웅장하게 퍼졌다.

그뿐만이랴, 르네상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도궁을 배경으로 한 덕에 이안의 이야기는 다큐가 아닌 영상 화보처럼 보였다.

연주를 펼치는 이안을 시작으로 사도궁의 복도, 성 베드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차례대로 비추는 연출은 그야말로 하나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했다.

그 덕에 사람들의 극찬은 끊이지 않았다.

이안의 연주만으로도 좋은데, 그 연주를 카메라 워크로 더욱 부각시켰다고.

커뮤니티에서는 이안의 팬들이 올린 평들로 시끄러웠다.

화면에 대해서 경악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의미로 경악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 그사이에 저렇게 또 발전을…!”

요한나는 경악성을 내뱉으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TV에서는 거장의 이야기를 소탈하게 보여주는 프라임플러스의 ‘더 마스터’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중, 이안의 교황 행진곡 제작기.

이안이 사도궁 1층 연습실에서 숱한 행진곡들을 연주하던 장면이었다.

여느 음악가처럼 피아노를 치는 것은 같았으나, 그 수준은 요한나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야.’

요한나의 머릿속에는 이안의 첫 독주회가 각인되어 있었다.

연주곡에 따라 조율을 달리하는 것은 물론, 자작곡 <환생>을 여유롭게 연주하던 모습.

이야기를 꺼내듯 유려한 연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요한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러나, 화면에서 나오는 연주는 더욱 놀라웠다.

각기 다른 특색의 행진곡들을 연속으로 치면서도 곡의 특색이 섞이거나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곡의 특색을 모두 이해하고, 정립한 후에야 할 수 있는 실력.

그렇게 갈고 닦는데 단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에 요한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군다나.

“음악은 표현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표현력을 더욱 크게, 다양한 악기로 만들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창단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더 마스터’에서 밝힌 오케스트라 창단 선언.

이미 언론과 강연을 통해 이안의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은 퍼져 있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더 마스터’의 편집은 이안이 오케스트라에 대한 열정과 생각이 뚜렷하다는 것을 더욱 부각시켰다.

교황의 곡을 만들면서 활용하는 특유의 표현력.

거기다 표현력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원한다는 말에 그 시너지가 더욱 커졌다.

기존의 클래식을 넘어서 새로운 음악을 넘보는 이안의 모습에 요한나는 자연스레 확신이 섰다.

‘신청해야겠다.’

단순한 존경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자작곡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인 이안이 오케스트라를 만든다?

게다가 ‘더 마스터’에서 보았듯.

이안은 여러 곡들의 차이점을 단번에 알아내고, 그 차이점을 반대로 사용하여 더욱 유려한 곡을 만들었다.

그 옆에 나란히 선다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연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요한나의 생각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편이었다.

오죽하면 가장 처음 들었던 말이 ‘Are you crazy?’였겠는가.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을까?”

분명 위험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신생 오케스트라의 창립 멤버가 되는 것이니까.

본국인 독일을 두고 한국에 가는 것부터가 큰 도전인데.

그것도 빈 필의 자리를 반납하고 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무리였다.

“그럼에도 가고 싶어.”

요한나의 머릿속에서는 이안의 첫 독주회 때 기억이 잊혀지지 않았다.

피아노를 수학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환생>이라는 곡을 만들어내지 않나.

수습 단원들에게 거침없이 곡에 대한 해석을 이야기하지 않나.

머릿속에 자신의 곡이 완벽하게 정리된 것 같은 모습은 거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안에게 배우고 싶다.’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테니까.

요한나는 곧바로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러 컴퓨터로 향했다.

***

“서류가 더 늘었네요?”

방 한편에 가득 쌓인 서류들을 보며 샬롯이 입을 떡 벌렸다.

‘더 마스터’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이 광경이 신기한 듯 자꾸 렌즈가 아닌 서류 뭉치로 눈길을 돌렸다.

“샬롯이 힘써준 덕분이죠.”

예상대로 ‘더 마스터’ 방영 이후 서류들이 들어오는 양이 훨씬 늘었다.

특히, 해외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는 만큼, 해외 참가자들의 서류가 무척 많이 들어왔다.

독일을 시작으로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클래식으로 이름깨나 날린다는 곳에서 더욱 많은 양의 참가 서류를 보내왔다.

그중에는 내게도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요한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이자, 수습 단원들의 스승.

옅은 미소에 중후한 갈색 머리칼이 특징인 그녀가 서류를 보내온 것이다.

서류를 가득 메운 경력만으로도 합격을 줘도 모자라는데, 그녀가 포트폴리오로 보낸 영상도 무척 뛰어났다.

피아노 앞에 앉은 그녀의 모습은 파가니니 같다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화려하게 터져 나오는 피아노 음색에 샬롯도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어머, 이분은 빈 필의 피아니스트 아니에요?”

샬롯은 감탄사를 연발함과 동시에 카메라맨을 불렀다.

서류를 클로즈업해서 촬영하던 그녀는 요한나에 대해 아는 듯 보였다.

과거에 피아니스트계의 파가니니라는 이명으로 불린 만큼 독일에서의 명성이 대단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분이 신청할 줄은 몰랐네요. 서류 지원자 중에 요한나가 있다는 것을 연출하고, 요한나의 코멘트 하나 따면, 장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이미 머릿속에서 영상이 지나가는 듯, 샬롯의 입에서 연출 방안이 술술 나왔다.

빈 필이라는 유명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있음에도 신청할 정도였냐고.

본 오디션 전에 어떤 생각으로 신청하게 되었는지, 긴장되진 않는지, 여러 질문을 하면 본 영상은 물론, 예고편에서도 큰 화제를 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현직 오케스트라 단원이잖아요.”

현직 오케스트라 단원이 신생 오케스트라에 지원한다.

그 헤드라인만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 표현했다.

게다가 빈 필의 명성까지 더해진다면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은 물론,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가지는 음악가들의 관심까지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방송을 떠나 소식이 퍼지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나 또한 샬롯의 의견에 긍정표를 던졌다.

이미 연출 방안이 술술 나올 정도라면, 그 효과는 내가 굳이 손대지 않아도 정확하리라.

게다가 ‘더 마스터’의 CP가 움직인다면 방송하지 않아도 언론사에서 먼저 알아보고 연락할 테니.

“그럼 저는 요한나씨와 인터뷰를 준비하도록 하죠.”

샬롯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졌다.

***

새벽 3시.

서류를 검토하는 인원도 퇴근하고 큰아버지도 돌아간 시점이었다.

그러나 내 방의 불은 꺼질 줄 몰랐다.

아직 보아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

포트폴리오까지 확인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서류들을 넘길 때마다 나는 새로운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색다른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오케스트라들은 대부분 악기들이 정해져 있다.

관현악을 기본으로 몇몇 타악기와 피아노.

그 이외에 다른 악기들은 오케스트라 현장에서 보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리스트의 협주곡 중 트라이앵글이 등장하는 것에 몇몇 평론가들이 애들 장난이냐며 비꼬았겠는가.

클래식의 형식미가 때론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오케스트라는 그러한 사정을 따지지 않고, 오직 표현을 위해 다양한 악기를 활용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였다.

그 말을 방증하듯, 서류들 중에는 기존 관현악단에서 사용되지 않는 악기들로 신청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악기 제한이 없다는 선언에 참여한 것이겠지.

게다가.

‘베테랑들의 참여가 여전히 저조해.’

‘더 마스터’가 방영된 지도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요한나뿐만 아니라 몇몇 베테랑급 연주가들이 서류를 보내왔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아마 당연한 것이겠지.

빈 필하모닉처럼 200년 가까이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큼 업적을 쌓은 오케스트라도 아니니까.

이미 안정적으로 연주를 이어가는 베테랑들이 자신의 업적을 내려놓고 신생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역이용하는 것도 방법이겠지.

‘기존 오케스트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

기존과 전혀 다른 시도.

신생 오케스트라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클래식 특유의 형식미와 자존심으로 오케스트라가 바뀌지 못했다면, 내 오케스트라는 기존과 다른 차별성으로 나아간다.

악기를 제한 없이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기존 오케스트라와 다른 행보.

그 부분을 새로운 업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만든다면 베테랑들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나도 내 사조를 만들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만드니까.’

나 또한 그러지 않았던가.

새로운 업적에 힘입어 나만의 사조를 만들고, 퍼뜨리기 위해 오케스트라 창단을 결심했듯.

여타 베테랑급 연주가들도 새로운 시도로 업적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바람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부분을 더욱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시도라는 강점을 크게 활용한다면?’

기존의 실력자들이 하지 못했을 시도들.

이번 ‘더 마스터’에서 교황의 곡을 만들며 내 실력을 입증함과 동시에 화제성을 만들었듯.

실력 있는 연주가들의 관심을 돌리려면 또 다른 화제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시도가 단순히 보여주기식이면 안 되겠지.

내 사조를 만듦과 동시에, 오케스트라 창단에도 도움이 될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 시작을 악기에서 찾아보자.’

내 오케스트라의 최대 강점.

악기의 제한이 없다는 것을 활용하기로 했다.

소리의 향연을 그리고, 재단하고, 섞는 것은 내 전문이니까.

기존 관현악단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악기를 활용하고, 그 소리를 더욱 유려하게 펼칠 수 있다면.

새로운 업적을 원하는 베테랑들을 혹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서류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 악기를 찾기 위해.

서류들을 넘기는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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