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대박이다.’
비엔나 행 비행기에 탄 샬롯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더 마스터’를 촬영하면서 이만큼 흥미가 들끓은 적은 없었다.
22살의 나이에 거장 자리에 오른 이안을 담은 것도 큰일인데.
‘더 마스터’ 촬영 후보로 올랐던 사람을 인터뷰하러 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빈 필의 피아니스트가 신생 오케스트라에 출사표를 던지다!’
샬롯은 벌써부터 언론에 흘릴 내용까지 머릿속으로 정리해두었다.
촬영과 연출은 물론, 방영 전에 홍보를 하는 것도 샬롯의 역할.
매번 어떻게 홍보를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의 이름과 위치만 말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테니까.
샬롯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하자마자 빈 국립 오페라극장으로 향했다.
갈색 머리칼이 인상적인 피아니스트가 샬롯을 반겼다.
“안녕하세요. 요한나 켈러입니다.”
“안녕하세요. ‘더 마스터’의 총연출을 맡은 샬롯 매디슨이라고 합니다.”
샬롯은 익숙하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명함을 건네받은 요한나는 샬롯의 직위에 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프로그램의 최상급에 위치한 총연출가가 직접 올 줄은 몰랐다고.
요한나는 긴장해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 다른 인터뷰에서도 잘하시던걸요? 빈 필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시면서 쌓은 내공이 느껴졌어요.”
과찬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여인.
바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 요한나 켈러였다.
그녀는 이번 이안의 오케스트라 창단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기도 했다.
작은 사담을 나누던 두 사람은 카메라가 세팅됨과 동시에 곧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서로에게 듣고 싶은,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듯.
인터뷰는 무척 원활하게 진행됐다.
간단한 일상을 시작으로, 최근 연주의 향방이나 일정 등 인터뷰에서 흔히 나옴 직한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다.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에 앞서 샬롯의 눈길이 반짝였다.
“무척 궁금한 내용인데요. 아무래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면 무척 대단한 관현악단인데, 신생 오케스트라에 참여 의지를 보이신 이유가 있을까요?”
샬롯 또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이었다.
빈 필 오케스트라는 입단한 것만으로도 연주가로서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니까.
후학 양성을 하면서 편하게 보낼 수 있을 텐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를 묻고 싶었다.
샬롯의 질문에 요한나는 상념에 잠긴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저에게 이안씨를 표현하자면, 꺼진 등불에 불을 켜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요한나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를 꺼냈다.
‘악마’라는 별명을 가지며 누구보다 현란한 연주를 펼쳤던 요한나.
그러나 화려한 음색은 나이에 따라 쇠퇴하고, 일찍 써버린 손가락 근육은 전성기 때의 모습을 재현하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찾아온 회의감.
단원들의 기량은 오르지 않았고,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어도 손가락이 따르지 않았다.
모든 자신감을 잃고 빈 필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찰나.
“이안씨의 연주를 들으니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안의 연주, 자작곡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은 이전의 연주를 답습하기에 바빴다고.
진정한 연주란 기량뿐만 아니라, 그 기량에 자신의 심상을 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십에 가까운 생을 살아가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이안이 먼저 발견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이안을 따를 이유는 충분했다고 밝혔다.
“박이안 피아니스트에게 배우며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안씨가 말한 저만의 연주법을 찾을 수 있겠죠.”
요한나가 마치 무언가 깨달은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반대로 샬롯은 요한나의 말에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요한나도 거장에 가까운 사람이지 않은가.
‘피아노계의 파가니니’라는 이명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화려한 선율이 특기인 피아니스트였는데.
그런 사람이 자신보다 20살 이상 어린 청년에게 배움을 얻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
두당~두둥-탕~
음악실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오케스트라에서 관현악기들 협주곡의 시작을 알리듯.
높고 진한 피리의 선율을 시작으로 여러 음색들이 튀어나온다.
이어서 나오는 해금의 음색은 한 개의 현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기색을 보인다.
더 나아가 펼쳐지는 가야금의 향연은 이미 현을 뜯은 지 오래인데도 뜯은 현을 누르고 놓을 때마다 소리가 바뀐다.
거칠게 튀어나오는 것 같으면서도, 이내 소리는 연해지며 여린 기색을 드러낸다.
여운이 짙은 소리에 영상이 끝나도 소리가 머릿속에 맴도는 것 같다.
‘피아노로도 이런 소리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전통음악, 한국 국악(國樂).
북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만들어내는 판소리를 시작으로 사물놀이, 등 국악에도 많은 악기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궁중악인 제례악을 펼칠 때는 오케스트라 규모만큼 많은 악기가 사용된다.
그 말은 즉슨, 이미 오케스트라적 면모도 갖추고 있다는 것.
거기다.
‘국악의 소리로 다른 오케스트라가 채울 수 없는 소리를 채운다.’
아릿한 여운이 담기는 음색.
국악기가 가진 특유의 울림은 양악기로는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 특유의 ‘혼’과 ‘얼’이 담긴 선율.
때론 흥겹게, 때론 서글프게 나아가는 곡조는 곡의 그림을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고유의 분위기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한국미로 오케스트라의 특색을 만들 수 있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일.’
여러 자료와 영상을 본 결과.
내가 머릿속에 상상하는 그림을 그린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몇몇 오케스트라가 두 선율을 한데 모을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이벤트성에 지나지 않았다.
양악과 국악 사이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선율의 체계부터 시작하여 음을 부르는 이름,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식까지 다르기에.
두 음악을 동시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콜라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악보가 떠오른다.’
영상 속 국악의 향연을 듣는데도 머릿속에 악보가 그려졌다.
소리를 파악하고, 그림처럼 그려나간다.
국악의 선율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떤 피아노 선율을 더해야 할지 감이 왔다.
국악기가 들어오더라도 연주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
하지만, 더욱 완벽한 곡조를 만들어내려면 국악 지식에 무척 해박하고, 국악을 기술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더 나아가 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유려한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
며칠간 자료와 영상을 찾고 나서야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
두둥-
여인의 손길에 가야금이 서러운 선율을 드러낸다.
거친 음색이 터져 나오면서도 여려지는 음색.
마치 해방 직후 행복을 꿈꾸던 사람들에게 38도선이 그어지며 느꼈을 절망감을 표현하듯.
은은하게 퍼지는 소리가 서글프게 들려온다.
그러한 소리를 내는 여인.
오랜 시간 가야금을 뜯으며 손가락에 박힌 굳은살은 그녀의 노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얀 한복을 입고 머리에 비녀를 곱게 꽂은 여인은 선화였다.
박선화.
그녀는 대한민국에 몇 남지 않은 국악의 줄기를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3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악판에서 인정받은 인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제자도 가르칠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가진 천재였다.
한 국악 평론가는 그녀의 가야금 연주는 손이 아닌 눈물로 이뤄진다고 평했다.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의 얼이 느껴진다고.
그런 선화가 처음 이안의 요청을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뜬금없이.’
선화는 늘 하던 대로 콜라보 제안을 무시했다.
그동안 오케스트라나 양악에서의 콜라보 제안이 오면 무시했기에.
제자들도 매번 그러려니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결이 달랐다.
“선생님! 정말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선생님께 제안을 했어요?”
아침부터 제자들이 소란스러웠다.
수년간 콜라보 제안들을 거절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생기 어린 눈빛으로 선화를 찾아왔다.
“선생님도 박이안 피아니스트는 아시지 않습니까?”
“오케스트라 창단도 대박인데, 선생님과 함께하고 싶다뇨. 이런 빅뉴스가 어디 있습니까?”
숱한 제자들의 말에도 선화의 표정은 굳건했다.
굳은 표정을 보고 나서야 제자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선화도 이러한 제안들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이안처럼 국악과 양악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오케스트라와의 합주를 부탁하며 선화를 찾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선화는 그들의 제안을 모두 반려했다.
‘일회성으로 소모할 것이라면 할 필요가 없다.’
국악인으로서 긍지이자, 자존심이었다.
양악은 아름답다, 화려하다며 칭송하면서도, 국악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칭송받는 아이러니.
국악 또한 음악인데도 마치 고리타분한 유물 취급하는 것이 싫었다.
엄연한 음악인데.
대중들은 새로운 음악을 탐닉하는 눈길이 아닌, 오래된 골동품을 보는 눈길로 국악을 바라보았다.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 정도로 연주가 소모될 바에야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국악은 수련하는 것과 같다.’
선화의 철학은 확고했다.
국악은 단순히 악기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닌, 한국 특유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라고.
한국인의 한(恨)과 얼을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빠른 시간 내에 명인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 철학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오케스트라 창단에 소모적으로 사용하려는 것이겠지.’
선화는 이안도 대중 매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창단을 위해 큰 화제를 몰고, 인기도를 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국악과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것이라면 더더욱 이안의 제안에 응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제자의 생각은 다른 듯 보였다.
박이안 피아니스트는 다르다며 몇 번이고 설득을 했고, 극성인 제자들은 이안의 영상을 찾아 내밀기도 했다.
워낙 극성인 제자들이 애타게 원하기에.
선화도 이안의 영상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 선화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연주였지.
‘천재라고 불릴 만하다.’
독일에서 펼친 독주회 영상이었다.
자신의 자작곡을 펼치는 이안의 손길은 피아노를 잘 모르는 선화도 그 수준을 가늠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주목한 것은 이안의 표정.
허공을 바라보다가도, 눈을 감고 연주를 이어가는 모습은 가야금 곡조를 느끼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했다.
음악에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처럼.
그제야 이안의 요청이 조금은 호기롭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