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13화 (113/250)

113화

국립 국악원.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음악 기관인 곳.

개원은 1950년대에 했지만, 과거 신라 시대 때부터 이어온 전통을 생각한다면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족음악을 보존·전승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곳.

내가 원하는 사람이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박선화 선생.’

국악원에서 선화의 입지는 대단했다.

20대에 대통령 표창까지 받을 정도인데다, 지금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며 자신만의 사조를 만드는 사람.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지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만한 위치에 있어서일까.

선화의 답변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좋은 제안 고맙습니다.

국악과 양악을 한데 모은 음악을 만든다는 의지는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창단에 함께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좋은 인연이 있으면 만나도록 하죠.

선화의 답장은 무척 간결하면서도 확고했다.

오케스트라 창단에 대한 회의감.

아마 국악과 양악 사이의 간극이 커서 그러는 것이겠지.

나 또한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사람들이 많이 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게다가 답변에서 묘한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선화도 흥미로워 보인다고 했으니까.’

다른 이가 같은 내용으로 답했다면, 나는 그 말이 사탕발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화는 달랐다.

무엇보다 선화의 연주를 들은 나로서는 진심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연주에는 연주자의 성격이 묻어나온다지 않은가.

그녀의 연주는 심지 굳은 성품이 드러났기에.

동서양의 합치에 대한 괴리감이 있으면서도 묘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확신을 심어주면 될 거야.’

삼고초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유비 또한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이나 발걸음을 향했다는 말.

나 또한 그만한 실력가를 데려오려면 세 번도 부족하리라.

국악원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울렸다.

내 방문이 무척 의아한 듯, 신기한 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곧바로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물음을 건네기도 전에 데스크 직원이 나를 알아본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박이안 피아니스트님 맞죠! 연주 무척 잘 듣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박선화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보통 갑작스레 약속하지 않은 손님이라면 돌려보내는 것이 원칙일 터.

하지만, 직원은 도리어 이 상황을 반기는 듯했다.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 전해 들었습니다. 박선화 선생님께 연락하셨다는 소식도요.”

이미 국악원에서는 나와 선화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고 덧붙였다.

신생 오케스트라의 탄생과 동시에 국악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말이 퍼지자 다른 국악원 식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늘 새로운 시도를 펼쳤던 나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와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꺼내는 직원의 말투에서 도리어 선화를 설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묻어났다.

복도를 따라 안내하던 직원은 한 연습실 앞에서 멈춰 섰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연습 중이세요.”

그녀가 조심스레 연습실 문을 열자 방 한편에 가야금을 켜는 선화의 모습이 보였다.

영상에서 봤던 것과 그대로.

하얀 소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동화 속 선녀의 이미지를 연상케 했다.

단정해 정리해 비녀를 꽃은 머리칼, 형광등 빛에 더욱 밝아 보이는 백옥 같은 피부.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선화의 연주였다.

‘직접 들으니 훨씬 좋다.’

영상으로 차마 담지 못했던 선율이 완연한 기색으로 들려온다.

얼핏 퉁기는 소리는 기타와 비슷하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절절함이 흐른다.

현을 뜯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현을 누르자 손에 쥔 힘에 따라 소리가 바뀐다.

마치 피아노의 트레몰로를 연상케 하듯 소리가 반복되면서도, 페달을 밟은 것처럼 울리는 소리는 아련함이 느껴질 정도.

무려 12개라는 많은 현에 손이 오가는데도 버벅거림 없이 정확한 음을 표현한다.

기타처럼 음을 알려주는 턱이 없는데도 터져 나오는 정확한 음색.

국악의 음계를 모르는 내 머릿속에 악보가 만들어질 정도로 뚜렷한 소리였다.

거기다.

‘마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은 선율이야.’

그동안 연주를 할 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짐과 동시에 색깔도 채워졌다.

단지 스케치처럼 보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풍성함.

빨간색, 노란색과 같은 밝은 색깔은 활기찬 느낌을 주고, 파랑과 검정과 같은 어두운 색은 우울한 느낌을 준다.

그러한 음색이 덧대어지는 것이 내 연주의 특징.

하지만, 선화의 연주를 들으니 검은색으로만 표현된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러나 선화가 미세한 손가락의 차이로 독특한 선율을 만들어내듯.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도 검은색을 얼마나 진하게, 연하게 칠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진다.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듯 이미지가 머릿속에 차올랐다.

돌들을 이어 그리면서 하나의 거대한 돌산이 그려지고, 그 옆에 자라나는 수풀과 이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굳건한 돌산처럼 굳은 심지가 느껴지는 연주.

선화의 연주가 끝나기 무섭게 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녀 또한 얼핏 나의 방문을 눈치챈 듯 놀라지 않고 천천히 나를 바라봤다.

“마치 북한산의 암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연의 모습을 한 폭의 수묵화를 나타내려는 것처럼.

굳센 면모와 함께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감각을 여운으로 표현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악의 색채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대단한 연주.

나는 머릿속에 감도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던 선화가 사뭇 놀란 듯 눈이 커졌다.

***

‘어찌 저런 표현을…?’

가야금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정악, 산조, 현대에 이르러 창작 국악까지.

그중 선화는 산조의 흐름을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마치 재즈 음악처럼 즉흥에 몸을 맡기고, 반주자의 장단에 맞춰 더욱 유려한 연주를 펼치는 것이 특징.

선화는 그와 동시에 새로운 길을 만든 사람이었다.

반주가 필요한 산조의 기틀을 깨고, 오로지 가야금의 선율로만 음악을 완성했기에.

국악원 내에서도 ‘박선화류 산조’라는 평이 자자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악인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것.

국악에 몸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국악을 먼저 배웠던가?’

본래 국악에 관심이 많았다면 정보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선화는 이상함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음악은 보이지 않는 예술이니까.

아무리 선화가 머릿속으로 표현하고 싶은 바를 떠올려도, 그것을 알아채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알아낸다고 해봤자, 어떠한 느낌,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느껴진다는 평 정도.

단번에 어떤 음악인지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어떻게 아는 것이지?’

이안은 선화의 연주를 보고 ‘북한산’이라고 표현했다.

국내 몇 없는 돌산 중 하나.

선화는 그러한 돌산의 굳건함을 가야금으로 펼치고 싶었다.

사시사철 변치 않고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는 모습.

그러한 모습을 보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절절한 현의 움직임은 사람의 심리를 더욱 담으려고 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그 때문에 굳건함이라는 키워드가 돌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죠.”

이안의 표현에 선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안의 말 대로 이 곡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비단 돌산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암벽처럼 단단한 음색과 기색에 오랜 시간 침략에도 굴하지 않은 한국인의 넋을 담고 싶었다.

그 생각에 손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묘한 아련함을 주었고, 국악 특유의 절절함을 가득 담았다.

가야금 기교 중 하나인 농현(弄絃)까지 파악하다니.

단 한 번의 청음으로 파악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으로 정확히 선화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목 뒤가 서늘해지는 감각.

과거 호랑이로 유명했던 스승에게 평을 들을 때만큼이나 긴장이 되었다.

‘단순히 호기로운 도전이 아니다.’

국악을 한데 섞은 오케스트라.

처음에는 스무 살 청년이 패기롭게 내뱉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의 청음 능력이라면, 오케스트라 창단은 고사하고 음악에 대한 깊은 사고를 가지고 있으리라.

도리어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선화의 마음속에서 일렁였다.

“국악을 접목시킨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다 하였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마치 이러한 질문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이라도 한 듯.

선화의 질문에 이안은 곧바로 대답을 이어갔다.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소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안이 만들고 싶은 오케스트라는 명확했다.

악기의 구분 없이 소리를 만들고,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악단.

자신의 생각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이안의 모습은 마치 철학자 같았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청사진을 고스란히 펼치듯.

이안의 입에서 계획들이 술술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국악과 양악의 조화.

그 기틀을 선화와 함께하고 싶다고 밝혔다.

“국악과 함께할 수 있다면 저희 오케스트라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양악과 국악의 구분을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

이안의 말에서 그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말함과 동시에 선화는 그동안 이안의 영상에서 보았던 표정과 같은 모습을 보았다.

굳은 심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갈 자신감이 담긴 표정.

그동안 선화에게 소모적인 사용을 제안했던 것과 다른 기류가 흘렀다.

‘참으로 신기한 청년이란 말이지.’

선화는 이안과 대화하면서 신비로움을 떨치지 못했다.

분명 눈앞에 있는 사내는 20대 청년의 외모를 하고 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깊고 다양한 생각들을 오랫동안 숙성시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오랜 고민이 묻어나는 말들.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이유가 피부에 와닿았다.

게다가 선화의 연주를 누구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림에 빗대어 표현하지 않았던가.

추상적인 표현임에도 그동안 이처럼 선화의 연주를 정확하게 지칭한 사람은 없었다.

이안의 천재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제가 이리 찾아뵌 분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거기다 진지한 생각을 나열하고는 여유롭게 너스레를 떠는 것까지.

젊은 청년에게서 이러한 관록을 느낄 수 있을지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비슷한 나이대의 국악인들과도 이러한 수준의 대화는 하지 못했다.

아니, 선화의 스승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이런 대화는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국악과 양악을 구분하지 않고 음악, 그자체로 느끼는 이안의 말솜씨.

30년 국악 인생에서 처음으로 음악의 뜻을 깨우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음악가는 음악으로 얘기해야 한다며…

“무척 좋은 연주에 보답이라도 하고 싶은데, 기회가 된다면 저희 집에서 연주를 들려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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