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대한 오케스트라 음악당.
오케스트라 창립 멤버를 뽑는 오디션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바라보자 관객석엔 오디션을 보러온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서류 심사에서 최대한 걸렀다고 해도 많은 숫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참가자가 있던 탓이었다.
게다가 객석에는 음악계에서 꽤나 큰 입지를 차지한 베테랑들도 있었다.
“덕분에 베테랑 음악가들도 다수 온 것 같습니다.”
나는 백스테이지에 함께 있던 선화에게 공을 돌렸다.
하지만, 선화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숟가락만 얹은 수준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이안씨의 새로운 시도를 따라가려는 사람들 아닐까요?”
선화가 반달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합류뿐만 아니라 내가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해서 그런 것이라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오케스트라에 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제한 없이 악기를 받아들인 것과 국악을 더불어 펼쳐지는 오케스트라.
신생 오케스트라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이 다른 베테랑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나저나 심사는 혼자 보시는 겁니까?”
선화가 심사위원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대 한편에 존재하는 심사위원석.
긴 테이블에 비해 앉을 수 있는 의자는 단 하나만 비치되어 있었다.
“네. 저 혼자 심사를 볼 예정입니다.”
내 대답에 선화는 의아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무척 확고했다.
만약 콩쿨처럼 하나의 악기를 두고 경쟁을 펼친다면 여러 심사위원을 두는 것이 훨씬 좋으리라.
다소 감성적일 수 있는 판단에 객관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수단.
하지만, 한 악기가 아닌 여러 악기를 한데 판단하는 경우에서는 달랐다.
모르는 악기들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논의한다면 그저 취향껏 선택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혼자 심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공정할 것이다.
나는 악기의 특색과 역사를 논하는 것이 아닌,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악보와 상대의 표현력을 보고 판단하니까.
전직 마에스트로인 큰아버지 또한 내 의견을 수긍했다.
‘네 곡에 얹는 것을 내가 볼 필요는 없겠지.’
혼자 심사를 보겠다는 말에 큰아버지가 한 말이었다.
애초에 과제 곡이 내 자작곡임과 동시에 그동안 음악을 듣고, 들은 것을 펼치는 것을 오래 보았기에.
이번 심사에서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장담했다.
‘신뢰도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요?’
선화는 다소 걱정 어린 어투로 말했다.
그녀의 말 또한 일리가 있었다.
여러 심사위원을 두는 것은 한 사람의 편향된 시선으로 보지 않게끔 만드는 의도.
한 명이 본다는 이야기에 그녀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 이유였다.
이를 위한 방지책도 준비한 상태였다.
“오로지 음악만 듣고 판단하기 위한 공정을 거쳤습니다.”
나는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을 흔들며 말했다.
오디션이 진행되는 중 합격자를 적을 수 있는 목록.
하지만, 목록에는 참가 번호를 적는 칸 이외에 다른 내용이 없었다.
몇 번째 참가자가 어떤 프로필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
오로지 이번 무대에서 내 자작곡, <항해>에 어떤 선율을 더하는지만 중요했다.
‘어떤 방식으로 <항해>에 음을 더할까.’
묘한 궁금증이 일었다.
이번 오디션은 어렵다면 무척 어렵고, 간단하다면 무척 간단하니까.
참가자는 자신의 차례가 되면 객석에서 무대로 이동하여 연주를 펼치면 된다.
피아노의 경우 음악당에 비치된 것을 사용하면 되고, 다른 악기들은 개인이 지참하여 와서 연주를 펼친다.
어떤 악기로 하든 상관없이 <항해>의 1악장에 자신의 선율을 더하면 끝.
여러 객석에 다른 참가자들을 상대로 온전히 자신의 연주를 할 수 있다면 여러 사람들이 관람하는 오케스트라 무대에서도 떨지 않을 테니까.
이제 오디션을 시작할 시간.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천천히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행자나 꾸밈도 없었지만,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심사위원석에 앉았다.
툭툭.
마이크를 건드리자 미묘한 긴장감이 음악당 전체에 감돌았다.
“그럼, 오디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생각보다 수준이 대단한데?’
객석에 앉아있던 요한나는 대기와 동시에 여러 연주자들의 소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1차로 서류와 포트폴리오로 검증된 인물들이라 그럴까.
루키와 베테랑, 그 수준을 가를 필요 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들이 연이어 나왔다.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엄청난 실력자들.
이들 중 합격자를 골라내는 것이 무의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랜 시간 피아노를 연주한 요한나조차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연주들이 튀어나오자, 요한나의 등골 한편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심사를 이안씨 혼자 보는 건가?’
가능하다면 물어보고 싶었다.
이미 안면을 튼 사이기에 물어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
하지만, 지금의 요한나는 오디션 지원자이기에, 이안에게 직접적으로 묻지 못했다.
혼자 생각을 여러 번 해봤지만,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3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넓은 심사위원석인데도, 심사를 보는 사람은 이안 혼자였다.
본디 이러한 오케스트라 입단 오디션은 단장뿐만 아니라, 해당 악기를 전공하는 악장이나 단원이 참여하는 것이 관례.
전공 악기의 수준을 판단하기에 그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게다가.
‘심사 기준을 도저히 모르겠어.’
요한나도 빈 필 수석 피아니스트로 있으면서 입단 테스트를 진행하곤 했다.
특히 피아노의 경우, 정해진 곡들을 알려주고 그 연주를 어떻게 하는지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해당 음악의 작곡가의 선율을 얼마나 살리는가, 그 선율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기교로운 면을 강조하느냐까지.
이미 곡의 포인트와 중요 지점이 정해져 있으니 얼마나 그 부분에 합치한 연주를 펼치는 것이 곧 심사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오디션은 베이스곡부터 이안의 미공개 자작곡.
게다가 실질적으로 보는 연주는 그 베이스곡을 얼마나 잘 치느냐가 아니라, 개인이 어떤 선율을 덧입혀 연주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 심사를 맡아온 요한나조차 심사 기준의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어 답답한 마음만 늘어갈 때, 옆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도 참가자인가?”
“악기를 가지고 왔으니 맞지 않을까?”
몇몇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요한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한 동양인 소녀가 앉아있었다.
안 그래도 부스스한 곱슬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헝클어지다 못해 떡이 져 있었고, 옷도 최소한의 연미복을 갖춘 사람들과 달리 트레이닝복을 입고 하고 있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악기를 보관한 케이스였다.
‘첼로를 저렇게 보관한다고?!’
피아니스트인 요한나도 경악할 정도.
첼로를 비롯한 현악기들은 파손되기 쉬울 뿐더러 온도나 습도가 무척 중요하기에 케이스도 무척 중요했다.
게다가 첼로와 같은 커다란 현악기는 부딪치기 쉬운 탓에 탄소 섬유가 추가된 하드케이스에 담아 이동하는 것이 평균이었다.
하지만, 소녀가 가지고 온 첼로의 케이스는 천으로 만들어진 소프트 케이스인데다 오래 사용했는지 여기저기 찢어진 부분도 적지 않았다.
안에 들어 있는 첼로가 괜찮은지 걱정이 될 정도.
“참가 번호 52번?”
이안의 부름에 소녀가 자신의 번호라는 듯 벌떡 일어났다.
제 몸 크기만 한 첼로를 꺼낸 소녀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소녀가 무대 위로 나타나자 다른 사람들도 소녀의 행색에 신기하다는 듯 수군거렸다.
하지만, 수군거리던 소리는 소녀가 연주를 시작함과 동시에 멎었다.
‘연주가 무척… 독특하네?’
피아노를 전공한 요한나였지만, 그녀 또한 오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첼리스트를 꽤 많이 봤던 사람이었다.
그런 요한나에게 소녀의 연주는 독특함을 넘어 신기할 지경이었다.
묵직한 선율을 잘 살려 연주하는 것은 여타 첼리스트와 다를 바 없었지만, 연주를 이어가는 손가락이 사뭇 달랐다.
현악기는 어느 위치의 현을 누르냐에 따라 소리가 바뀌고, 그 소리의 차이를 활용하여 음계를 따라간다.
헤드에 가까울수록 낮은음이 나오고, 본체에 가까울수록 높은음이 나온다.
높은음을 내려면 본체로 가까이 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더 쉬운 방법은 다음 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더욱 팽팽하게 이어진 현은 본체까지 손가락을 내리지 않아도 더욱 쉽게 높은음을 낼 수 있게 만든다.
그런데 소녀의 연주는 기본기조차 익히지 않은 사람처럼 최소한의 현만 사용해서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연주 실력은 대체.’
기본기조차 느껴지지 않은 운지법.
하지만, 소녀의 연주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현악기 특유의 꺾는 소리를 잘 표현하면서도 현을 잡은 손가락을 유지시켜 떨림을 만드는 기교까지.
운지법까지 완벽하게 익혔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드는 연주였다.
소녀의 연주가 끝나고 나서 이안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내 마이크를 잡았다.
“52번, 합격입니다.”
이안의 선언에 요한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기본기조차 갖추지 않은 실력을 어떤 것을 보고 합격을 준 것인지.
클래식 상식으로는 고개가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안의 선택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합격 소식에 신기할지언정, 뽑힐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대체 어떤 것이 이안의 선택을 받게 만들었는지 묻고 싶었건만…
‘알 방법이 없네.’
참가 번호 52번으로만 불렸기에.
요한나는 그녀에 대해 그 이외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그저 아쉬움만 삼킨 채 요한나는 자신의 차례만 기다렸다.
***
자작곡에 자작곡을 덧입혀 오케스트라 선율을 만들라는 과제.
예상했던 대로 수많은 양상의 곡들이 무대에서 펼쳐졌다.
서류를 통해 엄선했음에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연주를 보인 참가자도 있었고, 예상하듯 뛰어난 연주로 머릿속에서 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참가자도 있었다.
내가 그린 이미지를 느낀 듯, 부드럽게 전진하는 이미지를 곡에 담은 참가자도 있었다.
심지어 완전히 관련 없는 선율을 넣은 참가자도 있었다.
아마 신선함을 추구한답시고 독특한 컨셉으로 눈에 띄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잘하는 연주라도, 이안이 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니까.’
오케스트라는 말 그대로 ‘악단’이다.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 연주를 펼치는 곳.
그렇기에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들어올 수 없었다.
독특하면서도 나의 곡을 제대로 이해하고 곡을 덧입힐 수 있는 사람.
내가 원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참가 번호 52번.”
이윽고 올라온 참가자는 지금까지 올라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얼핏 보았을 때, 그녀는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
그런데 그녀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무대로 올라왔다.
보통 클래식이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때는 잘 차려입고 오기 마련.
면접에 참여하기 위해 정장을 입듯, 오케스트라 오디션에서도 대부분 연미복을 입거나, 단정하게 입고 오는 편이었다.
별도의 복장 규정은 없건만.
감지 않은 듯 헝클어진 머리는 방금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게다가 첼로 케이스도 오래된 듯,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얼룩이 묻어있었다.
‘아, 그 사람인가 보다.’
여인에 대한 것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서류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포트폴리오로 보낸 영상 하나는 내게도 신성한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여러 첼리스트를 보아왔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연주였기에.
그녀를 서류 심사에서 통과시킨 것은 실제 연주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준비되면 시작해주세요.”
52번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첼로를 꺼내기 시작했다.
첼로조차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은 듯 칠이 벗겨지고, 색이 바래있었다.
오직 4개의 현만이 관리한 듯 반짝이고 있었다.
게다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면 긴장할 법도 한데.
그녀는 오직 나와 둘만 있다는 듯 여유롭게 첼로를 꺼내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미묘한 그림이 그려졌다.
‘포트폴리오에서 봤던 연주 그대로.’
그녀가 가장 두드러져 보였던 이유.
여인의 연주는 일반적인 첼로 연주와 전혀 달랐다.
첼로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것인지 기본적인 현의 운지법조차 모르는 듯 보였다.
3번 현으로도 충분히 낼 수 있는 소리를 애써 2번 현을 눌러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워낙 몸통에 가까이 현을 누르는 탓에, 그녀는 활을 누르는 위치도 마구 바꿔가며 제멋대로 연주를 펼쳤다.
그러나 52번의 연주 자체는 지금껏 들었던 연주 중에서 가장 낫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선율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항해>에 담긴 코드의 정렬을 제대로 이해한 듯.
미묘한 불협화음까지 섞어가며 연주를 이어가는 모습에 묘한 이미지가 그려졌다.
처음에는 낮지만 연한 선율로 느긋하게 나아가는 배를 표현하는 것 같으면서도, 차후에는 풍랑을 만난 듯 강렬한 선율이 내리친다.
<항해>의 선율에 다이나믹한 부분을 연출하려는 듯.
독특한 보잉은 악천후를 만난 배가 흔들리듯 나아간다.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악보가 채워지는 기분.
풍랑을 만나 혼란에 빠진 상태로 1악장이 끝나자, 도리어 2악장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마저 일 정도였다.
‘첼로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보이는데.’
운지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독특함을 떠나 몰라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 효율적으로 연주를 이어갈 수 있는 선율임에도, 52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선율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고수처럼 보였다.
나는 곧바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말로 옮겼다.
“52번, 합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