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20화 (120/250)

120화

대한 오케스트라의 집무실.

모든 이들이 퇴근하고 난 후임에도 단장실만큼은 불이 켜져 있었다.

그곳에 앉아있는 젊은 사내.

다니엘 최.

그는 대한 오케스트라의 2대 단장이자, 그들을 통솔하는 마에스트로였다.

교포인 다니엘 또한 프라임플러스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프라임플러스가 한국에서 서비스하기 훨씬 이전부터 보았고, 그 발전을 목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특히 다니엘은 프라임플러스의 간판 프로, ‘더 마스터’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거장에 가까운 사람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그들의 고뇌를 실질적으로 맛볼 수 있는 프로이기에.

다니엘 또한 언젠가 ‘더 마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길 기대하곤 했다.

그런 ‘더 마스터’가 이안을 출연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이안의 입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대중 매체에서도 거장이라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지.’

이미 클래식계에서는 이안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었다.

피아노를 수학한 지 1년 만에 유수의 콩쿨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것은 물론, 자작곡을 발표하고, 음반 발표에, 심지어 오스트리아 베토벤 재단에서 곡을 받기까지 했으니까.

이름난 거장들도 이안의 행보에 대해 충분히 거장답다고 평가할 정도.

하지만, 그것이 대중 매체에 전해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단순히 클래식으로 위대할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큰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안의 독보적인 행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번에 프라임플러스에서 라이브까지 한다고 했지.’

그가 보고 있는 컴퓨터.

인터넷 기사 1면에는 프라임플러스의 소식이 떡하니 떠 있었다.

프라임플러스, 라이브 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혀 화제.

첫 라이브 시스템은 ‘더 마스터’에서 연주회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데 활용될 예정.

‘더 마스터’ 이안편 두 번째 이야기.

오케스트라 창단 일대기를 다룬 다큐의 마지막화를 라이브로 진행한다는 소식에 다니엘은 물론, 언론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벌써부터 프라임플러스에서 홍보 자료를 배포하고 있고, 언론에서도 기사들을 뽑아내고 있는 상태.

유례없는 행보이자, 이안의 연주가 다시금 라이브로 송출된다는 소식에 여러 팬들이 긍정적인 표를 던지고 있었다.

다니엘 또한 본래 같은 입장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안에 대한 묘한 존경심으로 <염라>의 편곡 허락을 맡을 정도였으니까.

이미 이안의 실력은 검증된 지 오래였고, 다니엘 스스로 본 바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어져 들리는 소식은 다니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국악과 함께한다는 이야기와 악기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이야기들.

신선하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다니엘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클래식의 기틀을 부수는 것 아닌가.’

오케스트라.

말 그대로 ‘관현악단’인데 반해 이안의 첫 선언은 악기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 아니었던가.

다니엘은 이 발언이 오케스트라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각종 악기들로 소리를 내는 것은 ‘밴드’이지 ‘오케스트라’가 아니라는 생각.

다니엘의 생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소 성급한 행보들이다.’

신생 오케스트라인 만큼,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태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새로운 행보를 이어왔던 이안이 만든 오케스트라이니까.

이미 <염라>를 토대로 헌정곡을 만든 다니엘에게는 이안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가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로서 뛰어난 것과, 지휘자로서 뛰어난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피아니스트는 연주하는 사람이고, 지휘자는 지시하는 사람이다.

지휘자는 대의(大儀)를 생각해야 하는데.

다니엘이 보기에 이안의 오케스트라는 클래식의 큰 뜻을 이어받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생각들로 보았을 때, 이안의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클래식’을 따른다고 볼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클래식은 클래식스러워야 한다.’

Classic.

한국에서는 ‘고전’이라고 번역되곤 하지만, 영어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내포된 단어였다.

일류의, 최고 수준의, 대표적인이라는 의미의 단어.

무엇보다 시대가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들을 지칭하는 말로써 의미가 컸다.

교포인 다니엘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느끼는 바가 남달랐다.

그렇기에 더욱 이번 사안을 넘겨짚을 수 없었던 것.

그동안 숱한 거장들이 이러한 클래식을 지키려고 했고, 다니엘 또한 클래식을 지키려는 쪽에 가까웠다.

다소 어렵다는 편견이 있어도, 클래식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곡들이 만들어지고, 결국 파생되었을 뿐 근간은 클래식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안이 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다니엘이 해온 것과는 정반대였다.

‘정형화된 규율을 따르지 않으면 더 이상 클래식이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기존의 클래식 오케스트라와는 다른 선택들.

그동안 정통 클래식을 고집했던 다니엘에게는 그러한 변화들이 달갑지 않았다.

클래식이 ‘고전’이고 음악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

100년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클래식이 각광 받는 이유는 단순히 ‘좋다’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모두가 인정할 만큼 모범적이며, 정형화된 규칙에서도 예술을 창작해내기에.

클래식이 예술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그동안 클래식의 정통을 고수한 이안이었기에, 다니엘은 이안을 향해 존경심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염라>를 비롯하여 <죽음>, <조우>에서 목도한 정형미는 고전의 형식을 누구보다 잘 지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이안의 행보에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새로운 클래식의 지평을 열 것이라 기대했던 이안이 이렇게도 크게 바뀌자,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마저 흔들리는 기분에 휩싸였다.

‘대한은 그 클래식 전통을 지켜야 한다.’

다니엘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더 이상 클래식이 누군가에 휘둘러지길 원치 않았다.

정통을 고스란히 지키면서, 이것이 진짜 클래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다니엘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이글거렸다.

***

오랜만에 밤늦은 시간까지 음악실에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동안 오디션 준비에, 촬영 등으로 연주할 시간이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집중을 넘어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했다.

상황을 알려주듯 내 옆에는 단원들이 제출한 악보들과 메모들이 깔려있었다.

자신만의 색깔이 더해진 <항해>의 악보들.

그리고 피아노 악보대에는 그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 악보가 놓여있었다.

‘첫 연습.’

내일은 처음으로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합주를 맞추는 날이었다.

그동안 과제 곡으로 사용하던 <항해>를 처음으로 완성된 협주곡으로 선보이는 순간.

그와 동시에 단원들의 의지가 고스란히 녹아든 곡이기도 했다.

‘각자의 과제를 활용한 곡.’

마흔에 달하는 단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그들의 연주를 일일이 피드백했던 이유.

그 과정을 통해 악보를 직접 전달받고, 연주를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다시금 수정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뉘앙스를 더욱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단순히 내가 악보를 받고, 그것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는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없다.

각자가 하는 생각과 그리는 그림이 모두 다를 것이고, 그것은 곡을 쓴 당사자만 아는 것일 테니까.

그 뉘앙스를 제대로 가져오려면 각자가 연주하는 방식도 습득해야 했다.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에 힘을 빼는지.

악보의 기호로도 담을 수 없는 정보들이 이번 작업의 키포인트였다.

그러한 단원들의 음악을 미묘하게 조합하고 녹여낸 곡이 바로 <항해>였다.

‘<동행>을 만들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

<동행>을 완성하기 위해 연주했던 수많은 행진곡들.

특색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할수록 그림이 짙어지던 기억이 선명했다.

더욱 분명해진 이미지와 그림들을 바라보자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이미지를 넘어 두 가지 이상의 소리와 이미지를 멀리서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었다.

숱한 행진곡들의 특이점을 파악하고 그 특색을 피아노로 옮긴 것은 그러한 능력 덕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각 단원들이 만들어온 곡들을 여러 번 연주하고, 그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마치 갤러리에서 사진들을 주르륵 나열해서 보는 것처럼 각자의 특색이 드러난 연주들이 보였다.

그러나 <동행>을 만들었을 때와 다른 점은 곡들이 특색이 무척 강하다는 것이었다.

‘베테랑과 슈퍼루키, 그 밖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곡이니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연주자들.

그런 사람들이 만든 곡은 독자성이 강하기 마련이다.

요한나와 같이 오케스트라를 정통한 사람들 이외에는 자신의 생각은 물론, 오디션에서 자신의 기량을 여지없이 드러내기 위해 복잡한 화음을 쓴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특색들을 하나로 모으는 게 관건이거늘.

그 고민을 수차례 하던 중, 점차 내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사진들의 배치와 조화를 파악하여 위치를 바꿔놓듯.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서 조화롭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정원을 가꾸는 기분이었지.’

<동행>을 만들 때 멀리서 관망하여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에서 그쳤다면.

이번에는 각 곡이 가진 특이점을 파악하고 그 특색을 뽑아내 조합한다.

마치 각자의 연주가 커다란 나무처럼 보이게끔.

곡에 담긴 선율이 어떤 특색을 갖췄는지 보이고, 그 배치를 어찌할지 떠올랐다.

아무리 아름다운 나무라도 혼자 덜렁 있거나, 모양이나 색깔이 조화롭지 않으면 이질감이 느껴질 테니까.

푸른 대나무 숲 한가운데에 빨간 단풍나무가 있으면 어색하기 짝이 없듯이.

색깔에도 서로 어울리는 색이 있듯, 음악에도 서로 어울리는 화음과 분위기가 존재했다.

각자가 만든 곡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자르거나, 활용하기 좋은 부분은 살려서 다른 악기의 연주와 결합시킨다.

‘드디어 완성이다.’

마치 가지치기를 하듯.

오케스트라 협주가 더욱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최적의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단원들의 아이디어가 덧대어진 <항해>의 악보가 고스란히 떠올랐다.

숱한 연주와 연습을 통하여 각인된 <항해>.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악보를 재현하기 위해 피아노 건반에 떨어진다.

연주가 지속될수록 머릿속에 깃든 악보들이 더욱 밝게 빛나는 것 같다.

분명 음악실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은 나 혼자인데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오케스트라가 와 있는 듯, 다양한 선율들이 한데 뭉쳐 연주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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