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연주는 대박인데…’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첫 협연 촬영본을 보고 있던 샬롯은 옅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처음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펼쳐지는 화음과 선율.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대단하다는 생각에 넋을 놓고 봤었는데.
촬영본으로 다시금 확인하는 모습은 대단하다는 정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그러나 촬영본을 차례대로 보던 샬롯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는 부족해.’
이안의 ‘더 마스터’.
이미 방영을 완료한 1부는 교황의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를 몰았다.
교황의 존재가 더해져 자연스레 찬양 구도가 만들어졌고, 그 업적만으로도 대단하기에 별다른 연출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창단 일대기를 담은 2부는 달랐다.
이안이 대단한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사실.
그러나 그 사실이 1부에 이어 2부에도 반복되자 촬영본이 급격히 루즈해졌다.
이안의 뛰어난 연주와 단원들의 인터뷰가 연속되자 다큐는 이안을 찬양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다큐는 말 그대로 인물의 기록이니까.’
오랫동안 ‘더 마스터’를 연출해온 샬롯의 철학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대단한 사람을 보기 위해서 ‘더 마스터’를 보는 것이 아니다.
거장에 가까운 사람들도 대중과 같은 인간이고, 대중은 거장들의 고민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더 마스터’가 지금의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
그저 ‘이안이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라는 사실만으로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샬롯은 새로운 구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구도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현철이었다.
“선생님. 이안씨의 오케스트라 창단에 우려스러운 목소리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리히트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에 음악계가 벌써부터 각각의 반응을 내놓던 시점이었다.
기대한다는 평도 많았지만, 비판론도 적지 않았다.
다소 성급한 시도라는 말과 함께 독특한 시도는 좋으나, 화제를 몰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강한 비평도 있었다.
샬롯은 그러한 비판론과 대결 구도를 만들 계획이었다.
한국에 있는 오케스트라 중 어딘가도 분명 같은 생각을 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전직 마에스트로였던 현철의 의견을 들으려는 것이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있던 대한에서도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이더군요.”
현철의 설명에 샬롯은 쾌재를 불렀다.
대한 오케스트라는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거대 오케스트라.
특히, 현철의 설명에 의하면 전통성을 강조하는 곳이니 이안과 완전히 상반된 곳이었다.
샬롯의 머릿속에 벌써부터 연출 방안이 그려졌다.
다니엘의 인터뷰를 통해 비판론을 제시하고, 이러한 비판론을 시원하게 깨뜨릴 정도의 연주를 펼치는 이안의 모습을 덧붙인다면?
다큐 스토리상으로도 무척 원활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허나 이야기를 이어가는 현철의 모습에 샬롯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왜 선생님이 더 기대하는 것 같은 눈치이지?’
방송 연출상으로 거장에 대한 비판들은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시청자들은 그러한 비판을 이겨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장을 기대할 테니까.
하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안과 반대되는 세력이 있다는 말이었다.
신생 오케스트라인 리히트 오케스트라에게 벌써부터 적이 있으면 그건 분명 좋지 않은 소식일 텐데.
이야기를 이어가는 현철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기묘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
어김없이 리드미컬 체임버홀이 크게 울렸다.
<항해>의 곡조가 완성되었으니 이제 해야 할 것은 완성도를 높이는 일뿐.
몇 차례 연습을 더 하자 점차 개선되어간다.
첫날에는 모든 악기에게 한마디씩 던졌건만, 이제는 피드백도 최소한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개선 사항들이 많이 반영됐네요. 하지만, 관악기에서 호흡이 조금씩 끊기는 게 느껴집니다. 그 부분만 유념해주세요.”
분명 피드백은 부족한 점을 집은 것인데.
되레 피드백을 받은 단원들이 더욱 열성적인 눈빛을 보낸다.
다음 연습 일정을 전달한 후, 나는 촬영 중인 샬롯에게 다가갔다.
샬롯은 한숨 돌리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했다.
“아주 대단한데요? 어떻게 그렇게 연습 때마다 곡이 변할 수 있는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연습을 거치면 거칠수록 음색이 다채로워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라이브는 잘 준비되고 있나요?”
“물론이죠.”
샬롯은 무척 당당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히려 프라임플러스가 실시간 중계 서비스를 준비한다는 말에 여타 전문가들이 먼저 손을 내밀 정도였다고.
프라임플러스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샬롯은 일부 공을 내게로 돌렸다.
업체들이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가장 먼저 중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단순히 프라임플러스의 일이 아닌, 내 영향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거기에 더해 샬롯은 무언가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덧붙였다.
“촬영본을 검토해봤는데, 연출이 다소 지루해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샬롯의 의견은 분명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1부와 다른 면모가 없다고.
내가 대단한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그 부분만 강조된다면 특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나 또한 그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지루하기만 한 다큐멘터리는 볼 필요가 없을 테니까.
오랫동안 ‘더 마스터’를 이끌어온 CP라면 보다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촬영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 확신에 걸맞게 샬롯은 자신 있게 로드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비판적인 의견들을 활용하는 것이었어요.”
신생 오케스트라임에도 기존의 관례를 따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에.
나에 대한 비판론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강한 의견을 가진 몇몇의 인원을 인터뷰해왔다고.
샬롯은 태블릿에 인터뷰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그런데 그녀가 인터뷰한 사람은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다니엘?’
국내 최고 오케스트라, 대한 오케스트라의 현직 마에스트로.
다니엘 최가 영상에서 굳은 표정을 한 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안씨의 천재성은 인정할 만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오케스트라는 정통성과는 다소 멀어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정통 클래식 계보에 어울리지 않다고 일갈하고 있었다.
국악과의 콜라보라는 의견은 좋지만, 이는 클래식이 아니라고.
이미 구성에서부터 관현악단의 기준을 벗어났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다소 강한 어조의 말투에 샬롯이 슬쩍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상을 보면서도 내 얼굴은 변화가 없었다.
“네, 샬롯이 생각한 대로 가시죠.”
“뒤에 내용, 다른 건 안 봐도 되겠어요?”
샬롯는 다니엘 이외에도 몇몇 영상이 더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의견을 먼저 보아야 앞으로 향방을 정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그편이 내게 좋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뻔할 테지.’
이미 클래식 특유의 장벽을 알고 있던 나였다.
나 또한 리히트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에 어떤 반응이 올라오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클래식의 전통성을 깨뜨린다는 비판적인 반응은 수없이 본 상태였다.
기존의 관현악단과는 다른 행보에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을 붙이면 안 된다는 의견들.
대개 다니엘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었다.
아마 샬롯이 인터뷰했던 사람들도 비슷한 수준이겠지.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분명 지금 내 행보는 정통 클래식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음악은 클래식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다채로운 음악을 펼치는 것.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더욱 명확하게 표현하려면 지금처럼 나아가야 한다.
그 탓일까.
숱한 비판들을 봤음에도 내 머릿속에는 다음 연습 때 생각만 가득했다.
***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이안과 샬롯이 나눴던 이야기는 어느덧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퍼져있었다.
‘더 마스터’ 연출을 위해서 비판론을 활용하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대한의 마에스트로의 인터뷰를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단원들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신생 오케스트라에 지원한다는 말에 각 단원들도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던 탓이었다.
아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부터 학교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시립교향악단에 들어가면서 숱한 커리어를 쌓았던 아람이었기에.
대한 오케스트라의 코멘트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오케스트라 구성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방향이 기존 오케스트라와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었다.
1부, 2부 바이올린 악단을 편성할 정도로 바이올린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존 오케스트라와 달리, 리히트 오케스트라에는 바이올린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아람 또한 처음 합격자 발표가 나왔을 때 악기들을 보고 생소한 시선을 던질 정도였다.
‘가야금, 거문고, 대금까지… 게다가 테레민? 저건 뭐지?’
구성의 절반 가까이 국악기로 채워진 것은 물론, 오케스트라에서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악기들까지 존재했기에.
전문가들의 눈에는 특이를 넘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준이었다.
평소에 남다른 긍정 에너지로 살았던 아람조차 기대보다는 의문 섞인 시선을 보냈다.
화려한 연주를 보이기 전에 섞일 수 있을까부터 걱정했었거늘.
그러한 걱정은 첫 연습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짜 마법 같았지.’
첫 연습에서 완벽에 가까운 협주를 했던 기억.
그 한 번의 경험으로 리히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끈끈하게 붙을 수 있었다.
만약 단순한 신생 오케스트라였다면 다른 거대 오케스트라의 비판에 움츠러들었으리라.
하지만, 기적과도 같은 일을 직접 목도한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달랐다.
수많은 악기들이 뒤섞인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한 것만으로도 실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인데.
이안은 더 나아가 과제 곡을 주물러 제각기 특색이 반영된 <항해>를 만들지 않았던가.
그정도 능력을 지닌 이안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보여줍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도 성공리에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
단원들이 아람과 같이 목소리를 내며 다짐을 다졌다.
조금 소란스러워질 찰나, 한편에서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좀 해요.”
테레민을 점검하고 있던 루이사였다.
차가운 어조와 인상 찌푸린 표정에 다른 단원들도 멈칫거렸다.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묘한 카리스마가 깔려있었기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윽고 루이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소 반전이었다.
“연습을 해야 뭘 보여주든지 말든지 하죠.”
날카로운 루이사의 눈빛에도 열의가 담겨있었다.
툴툴거리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에 아람은 쾌활한 숨을 쉬었다.
아람이 다가가서 루이사를 껴안자 루이사는 징그럽다고 말하면서도 아람을 내치거나 하지 않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단원들이 제각기 연습을 하던 중에 이안이 들어왔다.
이안의 등장에 단원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마치 당장이라도 연습을 속행하자고 얘기하는 듯 이안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아람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무척 힘이 들어간 사람들의 반응을 안 듯 이안도 걸맞은 반응을 보였다.
“오늘따라 열의가 넘치는 것 같네요. 바로 연습에 들어갈까요?”
사람들은 대답 대신 악기를 고쳐들었다.
이안 또한 단원들의 의사를 알아보고 빠르게 지휘봉을 집었다.
아람의 눈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입은 플루트의 마우스피스에 가져다 댄 채 눈은 이안의 지휘봉을 바라봤다.
비단 아람뿐만이 아니었다.
루이사도, 요한나도, 선화도, 서령도.
그 밖에 모든 단원들이 일제히 전투적인 기색으로 이안의 지휘봉을 향해 눈을 고정시켰다.
이안이 지휘봉을 휘두름과 동시에 유려한 멜로디가 체임버홀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